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86화 (186/200)

186화 외전 : 공산주의의 황혼(3)

매캐한 시가 연기는 방 전체를 너구리굴로 만들었다.

“각하.”

“빌어먹을. 생각 좀 합시다. 생각.”

“...... 예상보다 호응이 뛰어납니다. 이슬람권 전 지역에서 이맘들이 끌려나와 살해당하고 있고, 쿠란에 대한 화형식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대가로, 비잔티움 연방 공화국, 그러니까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를 제외하고는 전 지역이 완전한 무정부 상태로 진입했습니다.”

“비잔티움 민주 공화국을 인정하자는 거요?”

“적어도 유의미하게 군사력과 실효지배 영토를 갖추었고, 대화가 통화는 상대입니다. 각하.”

“..... 핵탄두 세 발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소? 그것들을 찾아내야 하오.”

“적어도 비잔티움 민주 공화국 내에 있지는 않습니다. 아라비아 반도, 아니면 페르시아, 그도 아니면 북아프리카, 세 곳 중 한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키로스 국경 밖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면 당연히 그랬겠지. 하나마나한 소리 말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시오. 그러라고 월급주는 거 아니오?”

“이번 테러의 배후는 그..... 반종교주의자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비잔티움 민주 공화국은 이번 테러를 의도한 게 아닌, 기회가 오니 움켜잡은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우리가 비잔티움을 저들에게서 떼어내면 어떤 실익을 거둘 수 있소?”

“우선 흑해의 안전이 확보됩니다.”

“흑해..... 흑해.”

한숨을 푹푹 쉰 대통령은 담배를 물었다.

“왜 내 임기 동안 감당할 수 없는 일만 터져대는지 모르겠소.”

***

콘스탄티노플, 비잔티움 공화국.

수십 대의 경전차들이 앞을 지난다.

105mm 무반동포를 오버헤드건으로 단 대전차용 경전차와 오래 전 사용된 구축전차 비슷한 모양새의 75mm 무반동포를 탑재한 무포탑 경전차들, 25mm 기관포를 단 IFV, 같은 차체에 대구경 방사포를 단 경자주포와 트럭을 개조한 차량형 다연장로켓들이 부대를 이루어 전진했다.

한 종류의 차체에서 탄생한 탓에 극단적인 경사장갑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전차와 장갑차들은 정규 기갑부대에게는 전혀 상대가 안 될 터.

하지만 적어도 대보병전에는 유용하다.

산악전에 뛰어나고, 대보병 한정으로는 전투력도 높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적 전차들에게 비벼볼 만한 한 방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비잔티움 공화국에게는, 동로마 공화국에게는 유용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키로스 내부의 내전에 사용하기는 더 적합할 수가 없다.

이들의 열병식을 보여주는 목적은 충분히 하는 것이다.

미합중국 대사는 묵묵히 눈앞을 지나가는 부대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제 2기갑사단입니다.”

“흥미롭군요.”

물론, 미합중국 육군 대장 출신인 대사는 그저 입에 발린 말이나 간신히 해 주었다.

저건 지금 미합중국 육군의 주력전차를 끌고오면 포격으로 날려버리는 게 아니라 맞아주면서 깔아뭉개도 될 정도였다.

‘후방을 대놓고 내주지 않는 한 뚫릴 가능성은 없겠군, 가장 성능이 뛰어난 전차라고 해도 IFV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하겠어.’

사해의 소금만큼이나 짜디짠 평가를 마음속으로 내렸지만, 저 숫자가 전선에 흩어졌을 때 보병전이 주류가 되는 상황에서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지는 않았다.

하늘에는 폭격기들 다수가 하늘을 날았다.

대형을 이룬 5기짜리 편대가 총 8개 편대니 이 상공에 떠 있는 폭격기는 총 40기.

그 40기가 전부일 리 없으니 더 많긴 할 것이다.

물론 더 많은 수의 폭격기들이 하늘을 지나긴 했지만, 대사는 거기에 속지 않았다.

같은 편대를 행사장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게 여러 번 같은 자리를 뺑뺑이 돌려서 국제적으로 아군의 전력을 과대평가시키는 블러핑은 여러 나라에서 써먹는 수법이었다.

더군다나 저들은 본국의 지원이 간절한 상황.

자신들이 가진 전력을 최대한 보여주는 게 중요했고, 폭격기 40기가 저들이 보유한 전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항공전력과 지상전력을 저 정도로 보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자국 방어 정도는 충분히 하겠지만.’

“저희 공화국은 구 키로스 전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으며, 사기도 왕성합니다. 결국 승리는 우리에게 돌아가겠죠.”

“........”

그러니 우리를 지지해 달라.

“신뢰하지 않으신다면, 실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

유럽연방이 사라진 핵무기 3발 중 최소 1발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는 중인 유력 후보 중 하나이자 8만톤급의 트로츠키급 항공모함 네임쉽 트로츠키는 연방의 유일한 항공모함이었다.

이 함선의 가장 특이한 점은 스텔스를 지향했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유연성이 떨어지거나 사고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아무튼 간에 연방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현재 호위도 없이 홀로 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호위해줄 군함 자체가 없었고, 키로스 정부의 마지막 충성파들이 모여들어 간신히 세력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만일 트로츠키를 상실한다면 그것은 곧 키로스 충성파의 전멸이며, 내전 세력이 비잔티움파, 공산주의 복고파, 그리고 개혁개방파로 삼분되는 셈이었다.

비잔티움파, 혹은 동로마 공화국파는 개혁개방파와 비슷한 정치적 입장이었지만, 워낙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한 탓에 공동의 적과 맞서더라도 세력을 합치는 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한 배를 탈 수는 없는 입장이었고,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키로스의 수뇌부를 날려버려 내전을 촉발한 공산주의 복고파는 명백히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적대 세력이었다.

복고파는 비잔티움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고, 이는 개혁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셋 모두 충성파에 비우호적이었다.

물론 호위함이 없다는 문제쯤은 세 세력 모두에게는 제대로 된 해군력이 없었기에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방공만 잘 하면 되니까.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

“적 초계기 3기 발견, 전기 격추했습니다.”

“적 전투기 8기 추가 발견! 아군 폭격편대를 노리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요격편대에게 대응하라고 해!”

가용한 공군력과 장거리 공격 능력을 총동원해 머릿수로 밀어붙인다.

그게 비잔티움 공화국이 내린 결론이었다.

당연히 막대한 희생과 전력의 타격을 전제로 한 무리수에 가까운 작전임에도 강행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죽음으로 주변국의 지원을 받아낼 수 있다면, 그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혈전이 벌어졌다.

“적함이 계속 전투기를 이륙시키고 있습니다!”

“적기 미사일 발사! 미사일 접근 중! 180km!”

“ECM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유도가 어렵습니다!”

“ECM 전파의 발신지로 유도지점을 재설정해!”

“알겠습니다!”

동료기들이 한 조각 불덩어리가 되어 추락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목숨을 노린 수많은 살의가 다가오는 와중에도.

비잔티움의 폭격편대는 굴하지 않았다.

마침내 목표를 사거리에 넣은 폭격대는 폭격기마다 한 발씩 들고 온 거대한 순항미사일을 분리했다.

“잘 가라, 개자식아!”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남은 폭격기들 전부에서 거대한, 농담이 아니라 전봇대만한 미사일들이 발사되었다.

대형함이나 활주로 등의 대형 고가치 목표물을 격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순항미사일들의 파도를 향해 곧장 함재기에서 요격 시도가 있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미사일은 이미 폭격기들을 향해 쏴버렸고, 목표물을 이제 와서 재설정하는 게 불가능했다는 점이었다.

몇몇 전투기가 보유한 단거리 미사일을 쐈지만, 그걸로는 중과부적이었다.

용기인지, 만용인지 전투기 한 대는 편대를 이탈해 아음속으로 나는 순항미사일을 따라잡아 기총을 쐈고, 순항미사일의 1톤짜리 탄두가 연료와 함께 폭발하면서 그 전투기는 폭발에 휘말려 산산조각났다.

그렇게 첫 번째 저지선을 뚫어낸 순항미사일을 향해 두 번째 공세가 덮쳤다.

트로츠키는 함재기 외의 자체무장으로 1문의 함포, 8문의 기관포 CIWS, 6문의 16연장 CIWS형 적외선 대공미사일, 그리고 2정의 8연장 레이더 대공미사일 발사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사일 발사대에서 16발의 레이더 유도 미사일과 96발의 적외선 미사일이 날아들어 두 번째 저지선을 이루었다.

재장전할 틈 따위는 없었다. 이게 뚫리면 저지력이 약한 CIWS 8문만으로 남은 미사일들을 전부 막아야 할 판이었다.

선두를 날아가던 순항미사일 한 발이 미사일에 피격되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연기를 뚫고 순항미사일 한 발이 더 날아들었다.

조금 앞서서 날아간 적외선 미사일 32발이 폭발했지만 격추된 건 오직 세 발 뿐이었다.

명중률이 예상보다 너무 낮았다.

곧장 날아든 두 번째 제파는 조금 더 나았지만, 역시 좋은 성적이라고는 빈말로도 해줄 수 없는 명중률을 선보였다.

연기가 걷힌 뒤, 21발의 미사일이 여전히 날아들고 있었다.

기관포와 근접신관을 장착한 함포가 미친 듯이 불을 뿜었지만 5기의 미사일을 공중격추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나머지 16발의 순항미사일 중 15발은 그대로 항공모함을 두들겼다.

마지막 한 발은 막 이륙하던 헬기 한 대가 몸으로 막아냈지만, 그들이 몸으로 막든 말든 15발의 순항미사일은 항공모함을 굉침시키고도 남을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1톤짜리 탄두 15개에 정신없이 두들겨맞은 트로츠키는 그대로 기울어지면서 굉침했다.

생존자는 사실상 없었다.

동로마 공화국 측의 피해는 막대했다. 작전에 참가했다가 복귀에 성공한 폭격기는 단 2기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한때 연방의 자랑이었던 트로츠키 함은 격침되었고, 연방 충성파의 마지막 군사력도 함께 심해로 가라앉았다.

또한, 이 전과를 냄으로써 서방은 동로마 공화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니, 그들은 희생을 감수하며 자신들의 목적을 전부 이루었다.

***

홍해를 끼고 있는 작은 항구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뒤에 여러 사람들을 끼고 있었다.

반대편에도 여러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물건은 준비했나?”

“물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손가락을 튀겼다.

“그쪽이 요구한 조건을 맞추느라 고생이 많았지, 구하는 데 비싸게 들었소.”

“긴말하지 않겠다. 어디 있지?”

“서두를 거 없소, 물건은 확인시켜 줄 테니 대금을 확인시켜주시오.”

“좋소.”

잠시 뒤, 가방을 확인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하게 되어 좋군.”

“물건은?”

“저기 뒤 차량에 있소.”

“.......”

“공식적으로는 저 밑 심해에 쳐박힌 물건이오, 서류상으로도 그렇지.”

“크군.”

“그야 5톤짜리니까. 나머지 두 개는 여기 있소, 연방의 소형화 기술의 결정체라고 할까.”

가방 두 개를 내려놓은 남자는 씩 웃었다.

“물건은 거기 내려놓으시오. 난 여기 내려놓을 테니까.”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구려.”

“당신네 타코들이 이 물건을 가져가서 어디다 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그것과 계산이 확실한 건 다른 이야기니까.”

“우리도 이 거래 빨리 끝내고 당신들 면상 다시 보기 싫은 건 마찬가지니까 빨리 넘기고 치웁시다. 그리고 우린 당신들을 모르는 거요.”

“우리도 당신들을 모르지, 거기까지 합시다. 이 돈이 당신네 여자들이 몸을 팔아서 만들었든 마약을 팔아서 만들었든 우린 관심 없으니 말이오.”

잠시 뒤, 가방들이 교환되었다.

그 둘은 아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뒤따라온 자들은 여전히 서로 경계하고 있었고,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화물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돈을 받은 패거리는 유유히 차에 나눠 타고 사라졌고, 물건을 받은 쪽은 즉시 지시했다.

“크레인 써서 컨테이너 실어 놔,”

“알겠습니다.”

“때가 가까웠다.”

“심판의 날이 가까웠습니다. 두목.”

“그래, 그렇지.”

이마에 흉터를 새긴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안심하면 안 된다.”

“물론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