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85화 (185/200)

185화 외전 : 공산주의의 황혼(2)

“물건은?”

“여기.”

WHO 직원 복장을 한 남자는 작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언제지?”

“2주 후. 알렉산드리아.”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날 알렉산드리아의 콰이트베이 사원에서 최고위급 인사들의 만찬이 있다. 와하브파의 고위 성직자들 15명, 그리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20명, 장성 12명이 그 자리에 모인다. 문자 그대로 이 나라의 최고위층은 죄다 모이는 거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20명, 장성 12명, 와하브파의 고위 성직자 15명이면 문자 그대로 연방의 두뇌 그 자체다.

와하브파의 교리는 연방에게 있어서도 제법 써먹을 만 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지도층이 무슬림이기만 하면 아무리 학정을 펼치든 닥치고 있으라는 교리도 있었기에.

그렇기에 와하브파 성직자가 되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이었지만, 동시에 모든 민중의 증오가 집중되는 곳이기도 했다.

정부는 그들을 굶겨죽이고, 와하브파는 정부 앞에서 나팔을 불면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만일 정권이 붕괴되면 와하브파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맞아죽을 거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와하브파에 대한 시선은 중동과 이란 전역에서 독재자들의 앞잡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군부를 대표하며 군을 통제하는 최고위 장성 12명, 상무위원 20명, 고위 성직자 15명, 총 47명이 일시에 날아가면 이 나라는 끝이다.

“두 명 더 있을 텐데?”

“전략군 총사령관 카심 장군과 제2서기는 불참이다. 그 둘은 다른 동지들이 처형할 거다.”

“행운을 비네, 동지.”

“..... 저들은 진작 사라졌어야 했다. 과거의 유물들이지. 저들을 남김없이 죽여야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우리는 그 세상을 새롭게 쓸 칼날이 되어, 저자들의 몸에 박힐 뿐이다.”

안에서 부러지든 어쩌든, 저 자들의 생명만 앗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젖히는 통로가 되어서.

과거의 잔재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2주 후에는 반드시 그럴 것이다.

***

알렉산드리아.

고대에는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서 있던 자리에 세워진 요새는 오늘날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스크의 중심에서는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술에 돼지고기까지, 신실한 무슬림이라면 질겁할 식탁이었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술을 따르고, 식사를 하는 모습에는 신실한 종교인들의 모습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종교를 이용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종교를 섬기지 않았다. 종교가 그들을 섬기게 했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민중은 그 종교 자체에 환멸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그들의 권세는 영원할 터였다.

그래야만 했다.

그 시각, 알렉산드리아 역의 선로통제실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컥!”

“좋아, 그놈이 마지막이다.”

“선로전환기는 손에 넣었나?”

“됐어.”

컴퓨터 앞에 앉은 남자는 디스크를 컴퓨터에 꽂았다.

“폭탄 설치 완료.”

“선로 변환 완료, 이제 준비됐어.”

“조금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세 곳에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만약 재수가 없어서 단전이 되더라도 비상용 디젤발전기를 예열해뒀으니 즉응할 겁니다.”

“그래.”

“대장, 경찰들입니다.”

“젠장, 놈들이 눈치챘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피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발포해, 시간은 몇 분이나 남았지?”

“73분 정도입니다.”

“젠장, 너무 느린데.”

“여차하면 그냥 폭파시킬 수도 있습니다.”

“최대 화력을 내야 해, 콰이트베이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확실하게 터트리지 않으면 연쇄폭발을 노리기 어려워.”

콰이트베이를 날려버릴 폭발물을 저기까지 가져가기는 무리다.

저들도 경비가 삼엄하고, 철저하게 경비하고 있으니까.

즉, 저들을 암살하고자 한다면 도시 전체를 초토화시킬 폭발을 일으켜야 했다.

핵무기와 견줄 만한 위력의 폭발을.

하지만 핵무기를 빼돌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달랐다.

열차 충돌.

열차들은 상당히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당 고위 간부들이 지나다니는 동안에는 상당히 철저히 관리되나 그 뒤에는 도로국밥일 터.

그리고, 알렉산드리아항은 막대한 양의 석유가 수출되고, 반대로 막대한 양의 비료가 수입되는 항만이다.

사하라에서 재배되는 밀을 키우기 위한 질산암모늄을 실어나르는 열차와, 대량의 경유를 실은 유조열차를 철로를 조작해 정면충돌시킨다.

그리고 거기에서 폭탄을 터트려 뇌관 역할을 해서, 수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그 폭발은 충분히 저들이 술을 퍼먹는 장소까지 미칠 것이다.

물론 관제소는 박살날 거고, 그들은 시체도 남기지 못할 게 너무나도 뻔했다.

하지만, 뻔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목숨이 아까웠다면 애초에 여기에 발을 담그지도 않았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자들은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들이 바로 그러했다.

***

“제 2서기 동지.”

“아, 소위 동무, 왜 그러나?”

“한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말해보게.”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2서기는 고개를 들어 소위를 바라보았고, 자신을 겨누고 있는 권총을 마주했다.

단 몇 초간 정적이 있었다.

그 직후 2서기는 권총을 뺏기 위해 손을 뻗었다.

-타앙!

그리고 그 순간 총성 한 발이 울렸다.

팔에 총을 맞은 2서기가 바닥에 쓰러진 순간, 두 번째 탄환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

연회가 한창 진행되던 와중, 장교 한 사람이 들어와 귓속말을 했다.

“서기장 동지.”

“뭔가?”

“제2서기 동지가 총에 맞았습니다.”

“뭐라고?”

“지금 돌아가셔야 합니다.”

“알겠네, 헬기 준비시켜.”

순식간에 연회 자리는 싸해졌고, 급하게 옷을 걸친 당 비서들이 건물을 빠져나온 순간 충돌음 비슷한 굉음이 울렸다.

“뭐야?”

“사고가, 난 모양입니다. 어디서 교통사고가 난 건지.......”

그 말을 한 직후, 어마어마한 2차 폭발이 기차역에서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콘크리트 장벽이 산산조각나며 수많은 파편이 아무런 방비도 없이 노출되어 있던 서기장 일행에게 고열과 함께 덮쳐왔다.

전술핵무기의 격발에 맞먹는 막대한 폭발력이 일대를 휩쓸었다.

결사대 전원 역시 그 폭발에 휘말려 시체도 찾지 못하게 되었지만, 온전한 시체를 남기지 못한 건 서기장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단 두 명만이 그 화염 속에서 잠시나마 생명을 부지해 후송되었지만, 몸의 8할 이상에 화상을 입은 사람과 머리에 파편이 박혀 두개골이 손상된 사람이 제대로 긴급사태에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헬기 한 대가 군 비행장에서 천천히 이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륙하는 헬기를 향해 한 발의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옆구리에 미사일을 얻어맞은 헬기는 불덩어리가 되어 빙빙 돌다가 추략해 폭발했다.

전략군 사령관 카심 장군이 탄 헬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혼란의 시작이었다.

***

국제연맹 상임이사회.

한 자리를 비운 채 모인 각국의 대표는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았다.

“3일 전, 대대적인 습격으로 키로스 연방은 중앙통제력을 상실했습니다.”

“핵무기를 통제하던 카심 장군이 사망해버린 건 최악의 상황입니다.”

“미합중국 해군은 긴급작전에 돌입, 잠수함을 동원해 키로스 연방이 보유한 SSBN 9척을 모두 격침시켰습니다. 당장 수백 발의 핵탄두가 서방 세계로 쏟아질 걱정은 덜었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확실한 거요?”

“예.”

“엉뚱한 잠수함을 침몰시키고 핵잠수함을 격침시켰다고 하는 건 아니길 바라오.”

“미합중국 해군 잠수함대의 실력은 확실합니다. 지금까지 미합중국은 계속해서 핵잠수함들의 위치를 추적해 왔었습니다. 페르시아 만과 아라비아 해에서 작전 중이던 함선 3척을, 홍해에서 1척이 파괴되었으며, 흑해에서 훈련중이던 함선 2척, 지중해에서 1척을 추적해 격침시켰습니다.”

“나머지 2척은 어디 갔소?”

“해당 함선들은 베이루트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본래 3척이 정박해 있었는데 지중해에서 격침당한 함선이 작전 개시 직전 항구를 빠져나갔고, 즉시 격침당했습니다. 해당 함선들은 키프로스 왕국의 협조 하에 특수부대를 강습시켜 키프로스 인근에서 자침시켰습니다.”

“으음.......”

“알고 계시겠지만, 키로스 연방은 ICBM을 전량 퇴역시키고 보유 수량 전량을 SLBM으로 개조해서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잠수함들이 모두 침몰한 이상, 전략핵 투발능력은 상실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키로스 연방은 구식이지만 핵투발이 가능한 폭격기 800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상에 남아 있는 핵탄두가 몇 발인지도 불명입니다.”

“이 부분은 본국이 답하겠소.”

고려연방 전권대사가 입을 열었다.

“현재, 본국은 간접적으로 키로스 연방의 생존한 책임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소, 그리고 내무인민위원장과 연락이 닿았지.”

내무인민위원장, 연방 공식 서열 3위다. 물론 실질 권력서열은 좀 아래로 밀리지만, 실권자 중 한 명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내무인민위원장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상태지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오, 그는 우리 대사가 핵잠수함에 탑재되지 않은 핵탄두에 대해 이야기했고, 3발의 핵탄두가 핵잠수함에 탑재되지 않은 상태로 보관되고 있다고 했소.”

“3발입니까?”

“그 핵탄두 중 하나라도 유출되면, 모스크바의 비극이 반복될 거요.”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뒤 그 잔해를 들쑤신 결과, 그 이상의 핵무기를 소련이 보유한 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기는 했다.

“그리고, 다른 문제가 있소, 서류상으로는 퇴역했지만, 아직 폐기되지 않은 ICBM이 있다더군. 그것도 세 발이오. MIRV는 아니고 다들 단탄두지만, 메가톤급 핵탄두를 탑재하고 있어서 도시 하나쯤은 가볍게 지워버릴 수 있소.”

“어디 있습니까?”

“....... 바로 그게 문제요.”

***

성 소피아 대성당의 종이 울렸다.

“오늘, 우리는 민중의 이름으로 비잔티움 민주 공화국이 독립하였음을 선언하노라!”

“비잔티움 민주 공화국 만세!”

“주님께 영광을!”

환호가 터져나왔다.

비잔티움 민주 공화국.

발칸 방면에 가득한 정교회 세력이 중앙의 권력이 무너지자 반군으로 변해 단숨에 키로스군을 격멸한 뒤 아나톨리아까지 점령한 기독교 군벌들은 자신이 아슬람-공산주의자들의 지배에서 해방된, 로마 제국의 후예인 비잔티움 민주 공화국임을 선포했다.

물론 반발도 없지 않았다.

제 3의 로마였던 러시아 제국을 계승했으니 자기들이 제 4의 로마라는 주장을 국가 단위로는 내세우고 있지 않되, 황제의 칭호에 로마 황제라는 칭호를 아직도 박아놓은 고려연방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에서도 5세기 가까이 지난 뒤에 뜬금없이 동로마의 부활을 외치는 비잔티움 공화국을 떨떠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미합중국은 이놈들이 키로스를 외교적으로 계승한 국가로 인정을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뜬금없이 국경을 맞대게 된 이 신생국에 지원을 해줘도 될지 말지를 논의하느라 비상사태가 걸렸고, 유럽연방은 다른 건 집어치우고 핵무기 6발의 위치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답은 의외로 금방 알게 되었다.

ICBM 세 발이 발사되어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을 20메가톤의 핵폭발로 증발시킨 것이었다.

***

“종교는 인류의 모든 죄악의 산물이며, 그 총체다.”

전 세계 방송사에 보내진 영상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은 도저히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가면을 쓴 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종교는 착취의 수단이고, 압제의 수단이다. 이슬람은 없다, 알라는, 무함마드는 압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는 허구에 불과했다. 우리 키로스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알라는 죽었다, 무함마드도 죽었다. 레닌의 시체를 박제해두었던 소련인들이 그러했듯, 저들은 박제된 알라와 무함마드를 자신들의 권위로 이용했다.”

“그러니 그 모든 걸 파괴해야 한다, 알라와 무함마드는, 코란과 하디스는 모조리 불태워 바다에 뿌리고, 배신자 트로츠키, 겁쟁이 트로츠키의 목을 쳐 테헤란 시내에 내걸어야 한다. 소련인들은 스탈린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군사독재 국가로 변질시켰다. 트로츠키는 이슬람을 통해 연방을 종교국가로 변질시켰다. 이 모든 건 잘못된 일이다. 신은 죽었으며, 유물론적 사고관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메카를, 메디나를, 예루살렘을 파괴했다. 그래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형제들은 모든 곳에 퍼져 있다. 아직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이맘들이여, 과거의 신화에 매달리며, 존재하지 않는 신에 수많은 인민들을 제물로 바쳐 그들의 피와 살로 제 배를 불린 착취자여, 그리고 당원들이여, 우리의 분노가 너희들의 위로 내리칠 것이다. 이슬람은 틀렸다, 이슬람은 실패했다. 너희들은 너희를 상대로 하는 대 지하드를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다. 너희들은 이단이고 사이비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희들을 묻어버릴 것이다. 이 타락의 고리는 우리의 손으로 끊어질 것이고, 우리들, 인민 스스로의 지성과 힘으로 끊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이다.”

“우리는 모든 억압받는 민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너희를 묻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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