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외전 : 소비에트 내전(3)
“모스크바의 수백만 시민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
가감없는 진실이었다.
핵무기를 수도에 가져다두고 여차하면 다 같이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게 인질극이 아니면 뭔가.
“20일 0730, 델타 포스가 현지에서 지원할 ISA 요원들과 합류한 후 수송기 편으로 민스크로 이동한다, 민스크에서 다시 그린베레 작전팀과 합류, 스몰렌스크로 이동한다.”
브리핑은 빠르게 이어졌다.
“21일, 벨라루스의 유럽연방군 스몰렌스크 기지에서 최종 리허설과 작전 정보를 갱신한 뒤 24일 1800, 수송기 편으로 모스크바로 출격한다. 같은 시각, 네이비 씰과 SWCC 팀 역시 골프 지점으로 이동, HRT 팀과 합류해 아이스 비치에서 헬기를 재급유하고 대기한다.”
골프 LZ는 헬기 항속거리 최대치 아슬아슬하게 안쪽에 있는 지점이었다.
“페이즈 2로 돌입하면 선도 수송기 1기는 LZ로 정해진 파크 패트리어트에 도달, 현지에 있는 24STS 팀의 유도를 받아 착륙한다. 이후 다른 수송기들이 착륙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국가들에게 급하게 협조를 요청해 끌어모은 전략수송기 10대가 동원된다.
“착륙한 수송기들은 작전 수행을 위해 가져온 8기의 헬기와 10대의 차량을 내리고, 급유작업을 진행한 뒤 헬기들은 그린베레와 레인저들을 탑승시키고 울버린 지점으로 이동, 수송기들은 파라레스큐 팀과 함께 다시 이륙해서 벨라루스로 복귀한다. 울버린 지점에 도착한 헬기들은 레인저를 내려주고 고트 지점에 가서 헬기를 은닉하고 대기, 델타포스는 24STS 팀과 함께 차량을 이용해 이동, CIA가 마련해 둔 CIA 현장팀 그레이 폭스 팀의 은거지에서 낮 동안 대기한다.”
“그레이 폭스 팀은 도보로 야간정찰을 수행한 뒤 에코로 이동, 차량 중 2대는 델타포스를 탑승시키고 목표를 수색, 2대는 이들을 엄호. 나머지 6대는 레인저를 탑승시키고 후방에서 대기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시내로 강습, 군사위원회 수뇌부를 무력화시켜 기폭장치를 제압하고, 델타포스가 탑승한 4기의 차량은 핵무기가 실제로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 광장을 수색해 핵탄두를 탈취한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수의 CAS 항공기가 준비되어 있으며, 그린베레 팀이 탑승한 헬기 8기가 탈취한 핵탄두를 회수하고 대원들을 퇴출시킨다.”
“구출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미 해병수색대와 CCT 병력이 수송기를 타고 모스크바 공항을 강습, 모스크바 공항은 대대적인 시위와 시가전으로 인해 사실상 버려진 상태로, 주둔 병력이 거의 전무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이들에게도 다수의 항공지원이 뒤따를 예정이다. 활주로가 확보되면 벨라루스에서 대기중이던 수송기가 도착해 타격조를 기다리고, 타격조는 핵무기와 함께 벨라루스에서 도착한 수송기를 타고 탈출, 해병수색대는 타격조가 탑승했던 헬기들을 전량 파괴한 뒤 타고 왔던 수송기편으로 귀환하면 임무 완수다. 이 경우, 네이비 씰 역시 골프 지점에서 지체없이 철수한다.”
“플랜 B는 모스크바 공항의 점령에 실패하거나 헬기들이 손실되어 병력을 퇴출시킬 수 없을 경우로, 핵탄두를 파기한 뒤 네이비 씰의 지원을 받아 항속거리 한계인 일멘 호까지 헬기로 퇴출, 헬기를 파괴하고 CCT의 지원을 받아 강을 따라 국경인 라도가 호까지 탈출, 스웨덴으로 간다.”
“현재 모스크바의 방위능력은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다, 소규모 친위대를 제외한 소련군의 조직적 저항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방공능력 역시 거의 무력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그렇더라도 굉장히 복잡한 작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복잡해진 건 당연히 정치적 사정 때문이었다.
아직 특수작전이라는 것은 미군 내에서 제대로 개념이 잡히지 않았고, 육군, 해군, 공군, 정보부, 해병대 등등 거의 모든 부서가 한 다리씩 걸치고 싶어했다.
당연히 작전이 복잡해지고, 어딘가 꼬이는 건 운명이었다.
***
모스크바는 대낮인데도 비구름으로 인해 어둑어둑했다.
폭풍의 전조였다.
뒤틀린 자연환경은 자신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슈퍼태풍을 빈번하게 불러내었다.
연방의 중심 공업지대였으며 현재는 시베리아 군벌의 핵심 공업지대인 일본 지역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들이쳐서 초토화 수준의 피해를 입히는 건 애교였고, 한반도의 경우는 부산의 절반을 침수시키는가 하면 한강에 홍수를 발생시켜 서울에 큰 피해를 입힌 적도 있었다.
구 중국령의 도시국가들은 통일이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태풍 상대로라도 공동대응하기 위한 연맹체 결성을 허가받았을 정도였다. 다만, 유일하게 ‘수도가 아시아에 위치한.’ 선진국인 고려연방의 지도를 받는 조건이었다.
류큐도 국민소득을 보면 선진국의 말석에 턱걸이 정도는 할 수준은 맞긴 하지만 영세중립국이기도 하고 다른 부족한 요소가 많기에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건 애교였다.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아대륙, 아라비아 해까지도 매년 폭풍이 육지에 상륙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간혹 모스크바까지 올 때까지 그 기세를 잃지 않는 폭풍도 있었다.
가능성은 낮았지만, 벌어지지 않는 일은 아니었다.
슈퍼태풍이 너무나도 흔해진 이 시대에는 몇 년에 한 번쯤은 벌어지는 이벤트였다.
“적 전차! 전방에 요동포탑 단 적 중전차! 쏴!”
대전차로켓을 꺼내 든 사수에게 곧장 122mm 야포탄이 날아들었다.
사수와 부사수는 그대로 파편에 걸레짝이 되었다.
소수정예인 델타에게 있어서 악재였다.
곧장 그들을 향해 중기관총 사격이 쏟아졌고, 델타 요원들은 다급히 모델 45A 자동소총과 하이드 카빈으로 응사했다.
물론 워낙 많은 부대가 참여한 탓에 지금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다니는 미군 소속 병력은 세 자릿수에 달했지만, 그럼에도 전차를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모스크바 시내의 분위기도 그들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을 주적으로 여기도록 수십 년간 세뇌된 이들이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의 실정으로 인해 공산당에게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고, 서방의 자유주의적 세계에 동경을 품은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의 군대가 이 땅을 자기 마음대로 걸어다니는 것까지 동의할 자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어째서 왔는가도 알 수 없는 판에, 적대하지는 않더라도 환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는 어려웠다.
“적 중형전차 1개 소대가 접근 중!”
100mm 전차포를 단 주력전차들의 접근 사실을 경고받은 베크위스는 곧장 명령을 내렸다.
“공습 요청해!”
“알겠습니다!”
지금 하늘에는 미합중국 공군의 항공기들이 잔뜩 떠서 돌아다니고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모스크바의 하늘을 방위하는 방공망은 그 악명과는 다르게 거의 불을 뿜지 않고 있었다.
전투 시작 직후에는 몇몇 대공미사일 기지에서 대공사격이 가해지거나 대공포가 날아가거나 몇 대 정도의 전투기가 급하게 출격하기도 했지만, 호위기들에게 격추당하거나, 전자전으로 레이더가 마비되거나, 대레이더 미사일로 박살나버린 뒤에는 아예 대응사격 자체가 없었다.
덕분에 건쉽 같은 느려터진 항공기도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불벼락을 쏟아부을 수 있엇다.
방공시설들의 병사들이 대응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일단 정당한 정부를 엎어버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고, 얼마 전까지는 쿠데타에 반발하는 민주화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명령하고, 내전으로 상황이 악화되어 코너에 몰리자 핵무기를 꺼내들어 자기들 혼자 죽지는 않겠다고 협박해 가면서 시위를 해산시키고 사태를 종결시킨 자들을 위해서 굳이 전선에 나가야 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사병, 부사관, 장교까지, 모스크바를 방위하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 모양이니 이들이 적극적으로 교전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게 안 먹히는 부대들도 여럿 있었다는 점이었다.
전차사단 1개, 정보부 직속의 스페츠나츠 부대들, 러시아 경찰, 그리고 수적 주력인 KGB 국경군. 다시 말해 국경수비대 병력이었다.
국경과는 거리가 한참 떨어진 곳이었음에도 이들이 모인 것은 수적인 열세를 우려한 위원회가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쿠데타군에게 가장 광신적으로 충성하는 이들이었고, 당연히 미군 특수부대와도 적극적으로 교전했다.
작전에 가장 큰 지장을 주고 있는 이들이었다.
특히, 스페츠나츠들은 대부분 경보병 수준에 가까웠지만 정예부대도 있었고, 전차들과 함께 행동하는 경우도 많은 탓에 델타 포스에게도 큰 위협이었다.
-콰아아앙!
대폭발과 함께 전차의 포탑이 날아갔다.
대전차미사일에 피격된 전차의 탄약고가 유폭하고, 사람의 살이 타는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제기랄, 남미랑은 전혀 다르군, 후져도 정규군이란 건가.”
“그놈들의 약 빤 미치광이짓에 높은 훈련도, 좋은 장비가 결합한 기분입니다.”
북미대륙에서도 반연방주의자들은 수두룩했고, 미국은 그들을 계속해서 특수부대를 투입해 처리해 왔다. 미합중국의 국내 사정은 아직도 안정되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남미에서의 반미 감정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던 탓에 그것도 신경을 써야 했다.
물론 부족끼리 나라를 째서 나눠가지고 자기들끼리 피를 피로 씻어대는 아프리카보다야 남미의 사정이 훨씬 낫기는 했지만, 남미의 반미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토벌은 몇 번 시도되었음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적 전차와 장갑차 다수가 접근 중!”
“이번에는 쉽지 않겠는데.”
“발키리에서 입전! 탄약 고갈! 철수하겠답니다.”
“젠장, 아직 당사까지는 길을 뚫지도 못했는데.”
“슈퍼 64 피격!”
그때,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이린이 당했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꼬리날개가 사라진 헬기는 빙글빙글 돌면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잠시 뒤, 큰 충격음이 베크위스가 서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
“결국 이렇게 되었군.”
보드카를 홀짝이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분위기를 보면 포도주를 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의 선택은 보드카였다.
러시아의 혼.
러시아인의 영혼.
독한 싸구려 보드카.
부유한 이들, 당 간부와 같은 이들이 먹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술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이 술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러시아인이었기에.
오래 전 죽은 한 여가수가 부른 아리아가 고풍스러운 주크박스에서 들려왔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목구멍 안으로 넘긴 그는 자신의 가슴이 따스한 혁명 정신으로 나아갈 용기를 다시금 그 남자에게 선물해주었다.
뒷문으로 들어간 그는 몇 가지를 조작했다.
이미 밖의 총성은 멎었다. 저 바깥쪽에서 미국인들의 잡담이 들려오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이 도시와, 반동분자들과, 서방에서 온 침략자들까지 전부 쓸어버릴 계획을 세운 지 오래였기에.
그리고 쓸려나가는 대상에는 자신이 들어 있다는 사소한 문제도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죽고, 오직 남는 건 조국의 영광뿐이니까.
그는 천천히 기폭 장치를 집어들고 잠시 살폈다.
마지막으로 요모조모 뜯어보기를 마친 그는 스위치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