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외전 : 소비에트 내전(2)
고려-인더스 평화조약의 체결로 양국의 전시상황은 끝났지만,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으니까.
“우랄 군관구가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반 코코노프 장군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북러시아 군관구 역시 카잔에서 공개적으로 모스크바의 명령을 무기한 거부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시베리아 군관구 사령관 볼코프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자신들은 정통정부에 충성하나, 우랄 이동에서 모스크바의 명령을 따르기 어려운 만큼 현재의 혼란상이 종식될 때까지 작전지역을 지키면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답니다.”
“말은 좋군.”
그냥 자기들도 딴 생각이 있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지만.
“현재 일본 열도는 어떤가?”
“시베리아 군관구에서 수 개 여단을 헬기로 강습시켰습니다.”
“일본 열도를 장악하면 시베리아만 가지고도 자립할 수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시베리아 군관구의 사령부는 예카테린부르크, 예비사령부는 첼랴빈스크와 투먼에 있지만, 선포는 옴스크에서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성 추적 결과 이르쿠츠크까지 이동했다는군요.”
“극동이 신경쓰인다는 의미군.”
“고려연방이 시베리아와 사할린의 연결을 끊으려면 간단히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혼란을 틈타 일본 열도까지 집어삼키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장담도 없죠.”
“그럼 진짜 전면전이네. 게다가 일본 열도 인구가 5천만이야. 아무리 고려연방의 인구가 2억에 달한다고 해도 단숨에 5천만 인구를 흡수했다가는 문자 그대로 국가 허리가 꺾일 걸세. 고려연방 정부는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어.”
물론 이 틈을 타서 일본을 뜯어내서 괴뢰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할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이 시기에 군대를 움직였다가는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게 뻔한 상황, 지금은 서쪽에서 영토를 뜯어낸 걸로 만족하고 자중해야 할 때였다.
“아무르 강에서 고려군의 통신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르 강은 고려연방과 소비에트 연방의 동쪽 국경이며, 양측 모두 비무장지대로 선포한 곳이었다.
물론 말이 비무장지대지 양측이 둘러대는 게 불가능한 기갑부대만 배치하지 않았을 뿐 헬기를 시작으로 각종 중화기들을 쌓아놓고, 국경수비대라는 명목으로 정규군을 대거 배치했다는 건 기밀도 아니었다.
고려연방과 소비에트 연방 간의 국경조약의 의거, 고려연방과 소비에트 연방은 동경 135도 이상이며 북위 49도 이상이 되는 지역에는 어떤 정규군도 상시주둔시키지 않는 협정이 맺어져 있었다.
지키지는 않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사할린-일본으로 가는 항로를 지키고 싶어했고, 고려연방은 당시만 해도 연방의 군사력은 소비에트 연방보다 한참 약했기에 침공 우려를 배제할 수 없었던 탓에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무장지대는 유명무실화되었고, 고려연방은 언제든 소비에트의 불알을 틀어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고려연방에 현 상황을 확실히 주지시켜.”
“그게..... 저.......”
“제발, 뭔가 다른 일이 났다고는 하지 말아주게.”
“정보부 보고에 따르면, 고려연방군이 첼랴빈스크를 노린 공습을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첼랴빈스크? 거기는......”
“소비에트 연방의 핵개발 중심지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빌어먹을.”
“코리안들은 첼랴빈스크에 대한 공습으로 핵무기의 유출 가능성을 원천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정보부 판단은?”
“한 번의 공습으로 완전히 제거할 확률은 40% 미만입니다. 아무리 소비에트 연방의 핵개발 진행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해도.....”
“즉 아차 하면 핵이 터진다는 거고, 3차대전으로 이행될 확률도 높다는 거겠지, 빌어먹을.”
“급한 소식입니다.”
“또 뭔가.”
“북러시아 연방관구에서 내분이 터졌습니다. 적어도 세 동강이 났다고.......”
소비에트 연방에는 여섯 가지 알록달록한 색이 칠해졌다.
먼저 군사위원회가 장악한 모스크바.
남쪽으로는 캅카스와의 경계인 돈 강, 고려연방과의 국경인 볼가 강까지의 경계를 확보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스칸다나비아와 대치하고 있는 병력들은 확실하게 장악한 것으로 보였다.
동쪽으로는 또 경계가 볼가 강이다. 고려연방령 카자흐스탄과의 경계는 남쪽에서 끝나지만 강 자체는 계속 북쪽으로 이어져 북쪽 국경지대인 오네가 호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남부 볼가 강 동쪽, 볼가 강과 연결되어 있는 카마 강과 우랄 산맥. 남으로는 고려연방과의 국경선으로 타 지역과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
남부 우랄 군관구 사령부가 있는 곳이며 소비에트 연방의 임시수도였던 사마라 지역이다.
이 지역은 명백히 반군 지역이다.
그리고 북쪽으로 강 하나를 건너 볼가 강을 남서쪽에, 카마 강을 남동쪽에, 우랄 산맥을 동쪽에, 북쪽에는 비체그다-북드비나 강으로 타 세력과 경계를 형성한 세력이 있다. 카잔, 중립파다.
북부 러시아 군관구의 세 잔해 중 하나다.
다른 둘은 비체그다-북드비나 강과 페초라 강 사이를 장악한, 아르항겔스크를 중심으로 한 반정부군 세력인 아르항겔스크 군, 그리고 보르쿠타를 중심으로 페초라 강 이북에서 북극지대 사이에 존재하는 친정부군 세력인 코미 자치공화국군, 이렇게 나뉜다.
물론 이 세 세력은 존재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북부의 추운 러시아 지역에서 자기끼리 지지고 볶아서 뭐하겠는가.
산업시설도 없고 기껏해야 목재뿐, 군사력도 애초에 누가 여길 쳐들어올 일도 없어서 배치된 병력 자체가 미약하기 그지없고, 인구도 거의 없는 북극권 지역은 딴 생각을 품은 시베리아, 그리고 사마라의 코사크 반정부군, 그리고 모스크바 정부 셋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당사자들도 보급이 다 끊겨서 다 죽게 생긴 판이었고 말이다.
그나마 아르항겔스크군은 항구가 있고, 카잔군은 스웨덴과 국경을 접한 덕에 백해를 통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코미 자치공화국의 경우는 진짜 죽을 맛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저 세 세력이 존립하는 이유는 하나.
셋 다 서로를 쳐들어갈 힘이 없어서다.
어느 쪽이든 전쟁이 끝나면 단숨에 진압될 상대니 신경을 끄고 다른 셋, 시베리아, 코사크, 러시아를 보면 백중세다.
가장 약한 코사크군은 고려연방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시베리아군은 극동함대를 이용한 일본 열도에서의 물자 보급을 받으며 버티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가장 강했지만, 그 병력으로 사방을 경계해야 했던 탓에 병력을 집중시켜 공세를 개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양측은 그저 소모전만 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후방은 시끄러웠다.
***
“고르바초프를 석방하라!”
“군사정권 물러나라!”
“위원회는 꺼져라!”
모스크바를 수많은 시위대가 뒤덮었다.
전차들이 통로를 막고 군인들이 바리케이트를 쳤지만, 군인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는 지 오래였다.
이제 누가 반역자고 누가 정통정부인지 명확해진 것이다.
“고르바초프를 석방하라!”
“석방하라!”
함성은 위원회가 있는 소련 공산당 당사 건물까지 전해졌다.
“당장 기갑부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해야 하오! 타만스카야 전차사단을 시내로 진입시키면...”
“명백히 자살행위입니다. 지금 군부의 사기가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러자, 내무장관 보리스 푸고가 이를 악물었다.
“아직 한 가지 수단이 남아 있소.”
“뭡니까.”
“핵무기.”
“...... 지금 뭐라고 했소?”
“단 두 발의 핵탄두가 지금 가용한 상태요. 얼마 전에 간신히 출고했지.”
“......”
“이를 밝히면 평시라면 당장 폭격을 당하겠지만, 지금은 평시가 아니오. 이를 즉시 지하철을 이용해 노긴스크의 신형 항공기 실험장으로 수송하겠소.”
“그래서 어쩔 거요.”
“신형 스텔스기를 출격시켜, 사마라를 폭격하면 될 거요, 사마라에는 대규모 적 기갑부대가 집결해 있다고 하니 좋은 표적이지, 그 다음, 다른 한 발의 존재를 공개하고 핵협박으로 사태를 종결시키겠소.”
“상임이사국들은 바보가 아니오, 즉시 정밀타격으로 탄두 발사 수단을 없애버릴 텐데.”
“누가 탄두를 발사하겠다고 했소?”
“........?”
“허튼 짓을 하는 순간, 우리도, 고르바초프도, 모스크바도, 그 안의 시민들도. 전부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똑똑히 알려주면 저놈들도 사태를 이해할 거요.”
***
국제연맹 본부는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라도 된 듯 소란스러웠다.
“진작 폭격을 가했어야 했소!”
고려연방 대사는 고함을 질렀다.
“본국이 총대를 매고 소비에트 연방의 핵시설을 정밀타격으로 제거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당신들이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작금의 사태는 애초에 벌어지지 않았을 거요!”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지는 맙시다.”
미합중국 대사가 영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했을 때 고려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지한 게 미합중국이었으니 책임이 없는 게 아니었다.
“50kt급 핵폭탄이 사마라를 날려버렸습니다. 피해 인구는 아직 정확한 추산이 되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일 것입니다.”
“군사위원회는 동급의 핵탄두가 하나 더 있으며, 현재 그 핵탄두는 모스크바에 있다고 했습니다.”
“....... 협박이군.”
여차하면 다 같이 죽겠다는 그런 협박.
“소비에트 연방의 존속을 위해서는 뭐든 하겠다는 게 저들의 선포지만, 그 의미는 간단합니다.”
“자신들의 정권이 무너지고 법정에 설 바에는 자살하겠다는 건가. 미친 것들.”
“그리고 그때는 수많은 모스크바 시민들도 길동무가 되겠죠.”
“탈출은?”
“불가능합니다. 모스크바 시민들의 단체행동도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탈출이든, 시위든, 혁명이든, 그게 일정 수준을 넘는 이상 군사위원회는 핵을 격발시킬 겁니다.”
발악이다.
그러나 그 발악은 핵무기였기에, 충분한 영향력이 있었다.
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버튼 하나면 끝이다.
“모스크바 밖에도 사람은 많지만, 모스크바를 희생시키고 다른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해도 여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을 겁니다.”
“.........”
“방법은 둘입니다. 협상을 하든가, 아니면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적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거나.”
그러나 그 무력화 역시 쉽지 않을 것이 자명한 상태였다.
당장 투입 가능한 부대는? 남은 시간은?
방어 태세는? 병력 규모는?
물론 저들 모두가 광기에 빠져 있을 리는 없으니 공산당 간부들을 제외한 상당수가 그들에 동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해버린다면, 핵무기를 구경하기도 전에 군사위원회가 핵으로 자폭해버릴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미합중국 정부는 결코 현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핵무기를 무력화하겠습니다.”
한 국가의 수도라는 대도시를 인질로 잡은 초유의 인질극이나 다름없는 사태였지만, 그래도 해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