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80화 (180/200)

180화 외전 : 인더스 문화대혁명(5)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획한 프로펠러기 1기는 예상보다 많은 활약을 했다.

적의 대공포에 격추당할 때까지 적 헬기를 수 대 격추하고, 포격을 유도하는 등의 활약을 펼친 것이었다.

그러니, 하필 자기가 보고 있을 때 노획 항공기가 대공포에 엔진이 피격당해 추락하고, 조종사가 낙하산을 펴고 뛰어내리는 것을 쌍안경으로 바라본 여단장은 표정 수습이 힘들었다.

“여단장님, 현재......”

“보고 있네.”

헬기를 제외하고 가용한 유일한 공중전력이 사라진 걸 확인한 여단장은 입을 열었다.

“항공지원은?”

“적들이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탓에 제공권 유지만으로 벅차다고 합니다. 공중지원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신 극초음속 활공 중거리 탄도탄을 배치해서 적 후방을 타격하겠답니다.”

전략병기를 전술 목표에 소모하는 건 어마어마한 낭비지만, 문제는 비축된 탄약이 슬슬 전국적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반 총포탄이라면 모를까 정밀유도무기는 그리 쉽게쉽게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현재 보급된 탄약은 넉넉합니다. 연료, 식량, 그리고 교체 부품이 부족해서 문제입니다.”

군수참모의 답에, 여단장은 한숨을 쉬었다.

“추가보급은 요청해 보겠네만 기대하지 말게, 헬기의 비전투손실이 심각하다더군.”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다니는 게 쉬울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차라리 빨리 협정이나 체결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더 이상 진격하면 소비에트 연방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포자기한 인더스 연방은 악수를 두었다.

캘커타 북쪽 20km 지점까지 고려연방군이 진격해왔다는 공식 발표를 한 것이었다.

물론 사실무근이었다. 고려연방군은 공수부대를 동원해 간신히 히말라야 이남에 교두보를 하나 구축한 상태였지만, 이러한 보도를 내보낸 건 간단했다.

고려군을 막는 건 불가능하니, 차라리 국제사회가 빨리 개입해서 전쟁을 중단시켜주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징벌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인더스 연방정부에게 정식으로 항의하면 만족스러운 답변이 돌아올 겁니다. 이미 고려군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써 아시아의 패권국으로써의 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였습니다. 어떤 국가도 고려연방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건 인더스 연방을 제외한 전 세계가 그러했소,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우리는 승전국이었으며, 상임이사국이니,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을 무시하는 비상식적인 국가가 있기는 있었지만 말이오.”

“사태에 책임이 있는 군관구 사령관과 홍위병 지도자들에 대한 국제군사재판, 역시 책임이 있는 수도방위사령관과 내각의 사퇴, 대사관 건물 손상과 직원들이 입은 피해, 현지 고려인들이 입은 피해, 침공당한 군이 입은 피해와 고려군이 사용한 전비 등 모든 손해에 대한 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인더스 연방은 귀국의 요구를 거절할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금으로 내라면 금으로 배상금을 지불할 수도 있고, 아니면 국경협약에서의 대폭적인 양보를 받아낼 수도 있으며 국경지대의 비무장화와 중립국 감시, 영공 상시 개방, 무역협약 체결 등을 요구조건으로 걸어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미 단 4천 명이 방어하는 고려연방군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20만 명이 공격했다가 8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인더스군은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고려연방의 영웅적인 항전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연방의 위신은 충분히 세운 게 아닙니까?”

어차피 군비제한 같은 건 걸어도 의미가 없다.

당장 2차대전 이후 군비제한이 강력하게 걸렸던 소비에트 연방만 해도 결국 나중에는 전함도 만들고 미사일도 만들고 만들 거 다 만들었다.

군사기술개발이 수십 년씩 뒤쳐져서 그걸 따라잡느라 피똥을 싸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간에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핵이야 전 세계적으로 못 만들게 하니 그것만은 쉽지 않지만, 이미 핵심기술 정도는 확보했으리라는 것이 각국의 중론이었다.

“그렇다면, 만일 본국이 전쟁을 지속하겠다고 한다면 귀국은 참전할 것입니까?”

“그것은 제게 허용된 권한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본국에 보고하고 훈령을 기다리되, 최대한 양국의 전쟁을 중재할 뿐입니다.”

여기서 인더스 연방이 망하면 소비에트 연방은 가장 큰 우방을 날려먹는다.

그야말로 팔 한 짝과 다리 한 짝을 잘라내고 거기에 더해 눈 하나를 뽑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한 사태이자, 그들 식으로 말하자면 혁명의 큰 후퇴가 된다.

머리끝까지 분노한 고려연방의 분노를 진정시키고 인더스 연방의 목숨만큼은 붙여 둬야 했다.

제풀에 붕괴하지 않도록.

그리고 얼마 뒤, 인더스 연방의 외교관들이 도착했다.

***

“먼저, 국제법상 설령 양국 간에 전쟁이 발발했더라도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대사관 직원들과 근무 인원들, 병사들, 그리고 외교관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 행위가 행해진 점에 대해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민병대의 불법적인 월경이 양국 간의 전쟁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본국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식으로 인더스 연방을 대표하여 사죄하겠습니다.”

인더스 연방이 저자세로 나오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싱가포르와 방콕, 캘커타 등에 해군 항공대의 공습이 가해진 것이었다.

이는 벵골만에 고려연방 항모전단의 진입을 허용했다는 의미이자, 양측의 항공력 수준을 감안하면 인더스 연방 전역이 고려군의 공격범위에 들어갔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귀국에 있소, 이에 대해 인정하시오?”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현지 홍위병의 지휘관들, 그리고 이들을 통제하지 못한 군관구 사령관들, 그리고 수도방위사령관과 국방장관, 외무장관과 내무장관의 책임입니다. 또한 대사관에 대한 습격과 월경행위를 저지른 홍위병들,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한 일부 장병들에게도 명백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더스 특명전권대사는 이에 대해 선을 그었다.

“가장 책임이 큰 이들은 대부분 죽었습니다. 홍위병들의 지도자급은 전원 체포되거나 저항하다가 사살당했습니다.”

물론 홍위병 조직 자체가 해체되지는 않았다.

그저 당의 교시가 조금 바뀌어 책임질 자들을 솎아내었을 뿐. 여전히 홍위병 조직 자체는 군벌화되어 존재했다.

“이들을 국제군사재판에 회부하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또한 군관구 사령관들 역시 책임을 물어 보직해임 후 불명예제대했으며, 사전죄(私戰罪 : 국가의 명령 없이 멋대로 전투를 벌인 죄, 공격당하지도 않았는데 상부 명령 없이 멋대로 외국에 쳐들어간다거나 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형이나 그에 준하는 처벌이 규정되어 있다.)를 적용해 처벌할 예정입니다.”

홍위병 수뇌부 일부야 잘라내는 데 어려움이 없다.

군관구 사령관들은 위신 문제가 있으니 자체적으로 처벌할 것이며, 전부 사전죄를 적용해 총살시킬 테니 직접 재판은 참아달라.

“또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외무장관과 국방장관, 내무부 장관, 수도방위사령관에게는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국방장관은 병사했고, 외무장관과 수도방위사령관은 자살했습니다. 내무장관은 해외 망명을 꾀하다가 추락사했습니다.”

진실은 아니었다.

네 사람이 죽은 건 사실이었지만, 이유는 달랐다.

근본적으로 홍위병을 만든 주석의 책임을 대신 뒤집어쓴 국방장관은 패전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홍위병들에게 린치당해 맞아죽었다.

나머지 세 사람은 당내 여론이 자신들을 숙청하는 쪽으로 모이자 궁지에 몰려 쿠데타를 기도했지만, 사전에 차단되었다,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걸 직감한 수도방위사령관은 사령부에서 권총자살했고, 외무장관도 관사가 진압군에게 포위당하자 목을 매어 죽었다. 내무장관은 항공기를 타고 가족 및 측근과 함께 도망치다가 오만 만에서 엔진 고장으로 추락해 숨졌고, 시신은 키로스 연방이 인양했다.

하지만 그런 내밀한 사정을 실토하기에는 국가적 위신이 땅에 쳐박힐 상황이었으니 적당히 둘러댄 것이었다.

“또한 당사자인 홍위병들은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귀국과의 전투 와중에 포격과 공습, 부대 간의 교전 중에 대부분이 사망했고 아사하거나 동사한 이들도 많습니다. 이는 국경을 침범한 이들 뿐 아니라 대사관을 공격한 이들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귀국의 공습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당시 근접항공지원이 이뤄지던 중 민간 건물과 차량에 대한 오폭으로 죽어나간 민간인들도 제법 되었지만, 인디아 대사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만일 추후에라도 당시 관련된 이들이 생존했다는 증거가 발견될 경우 색출해 처벌하겠으나, 적어도 이 시점에 개전 책임을 물을 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개전 책임을 가진 4인방은 전부 사망했고, 나머지는 전부 재판을 거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며, 색출이 어려운 사병들에게 전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게 분명합니다.”

합당한 처벌이라고 해 봤자 총살형 아니면 교수형이었다. 홍위병 지도부들은 내란죄 및 외환죄로 교수형을, 장성들은 사전죄로 총살형을 당하리라.

“각하, 카슈미르와 아루나찰프라데시를 반환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카슈미르.

고려연방은 카슈미르를 강습해 카슈미르를 통째로 점령하고 주둔 중이었다.

현재 고려연방이 전쟁으로 점령한 지역은 카슈미르, 히마찰 프라데시, 유타란찰, 시킴, 네팔, 부탄,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 전부.

문제는, 이 지역들은 경제적 가치도, 군사적 가치도 상당히 높은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사태의 단초이자 홍위병들의 난동에 명분이 되었던 국경분쟁에서 고려연방의 입장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또한 홍위병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고려 국적 민간인에게 배상할 것이며, 알려지지 않거나 발견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던 피해를 알기 위해 인더스-고려 간 평화를 위한 진실조사위원회를 창설, 최소 10년간 피해에 대한 조사를 할 것이며 고려의 요청에 따라 20년까지 활동 기한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이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는 인더스 정부가 지불할 것입니다.”

“그걸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거기에 더해 고려군이 소모한 전비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겠습니다. 배상금의 액수는 협상이 가능합니다.”

“그렇게는 어렵겠습니다.”

고려 특명전권대사는 딱 잘라 말했다.

“연방은 귀국을 선의로 대했으나, 어떠한 국제적 명분 없이 불법적인 기습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충무기지의 주둔 병력은 거의 전투불능이었다. 거의 모든 장비가 파괴되었고 기지가 완파 직전까지 몰려서 도저히 뭘 더 할 수가 없다는 게 부사령관의 보고였다.

기지 사령관은 포격으로 전사했다.

“그러니, 본국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영토를 받아내어 국경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해당 지역에 있는 인더스 주민은 전원 인더스로 추방할 것입니다.”

초강경한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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