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외전 : 인더스 문화대혁명(4)
K-1 전투소총이 7.92mm 마우저탄을 내뿜었다.
본래 5kg도 안 되는 무게로 7.92mm를 자동으로 쏴대기는 힘든 탓에 클로즈드 볼트 상태로 반자동으로 사격하는 게 기본이지만, 이 상황은 오픈볼트로 변경한 뒤 자동으로 마우저탄을 퍼부어야 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꼬리에 추진용 프로펠러를 단 공격헬기가 기수에 장착된 유탄발사기와 미니건, 기수 하단의 30mm 기관포, 날개의 로켓을 퍼부어대는 와중에도 적들은 계속해서 몰려왔다.
장전되어 있던 20발짜리 탄창을 싹그리 비운 병사는 급히 총신 옆면에 다른 탄창을 끼웠다.
“적 장갑불도저 접근 중!”
적들도 대충 여기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감을 잡았는지, 불도저로 길을 내고 그 위로 장갑차를 올려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터져나가는 차량이 다수였지만, 요새가 보급을 받기 어렵다는 것 하나만 믿고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는지 적들은 끝도 없이 몰려왔다.
“적이다!”
적병 하나가 기관총을 겨냥했다.
원반형 탄창에 권총손잡이 없이 개머리판 위치에 방아쇠 뭉치와 전기톱형 손잡이를 달아놓은 괴상한 모양새의 기관총을 든 적병이 벙커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
그리고 그 보답으로 곧장 총탄 여러 발이 날아들어 그 적병을 타격했다.
그 병사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지만, 마우저 탄은 어렵지 않게 그 방탄복을 관통했다.
적병이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걸 신호탄으로 소화기 사거리 이내에 들어선 양측은 목숨을 건 격전을 벌였다.
전차 한 대는 어디선가 날아온 기관포탄 세 발을 후부에 맞고 엔진룸에서 흑연을 뿜어내며 격파되었다.
그 기관포를 쏜 장갑차를 향해 자주포 한 대가 155mm 62구경장 포를 직사해 적중시켰다.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어벤져 스텔스 공격기들이 하늘을 날아 인더스 군의 위에 폭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인더스군은 계속 진격했다.
승리하기 위해.
지키기 위해.
점령하기 위해.
덧없이.
***
인도 대통령 무하마드 싱은 의장용 권총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있지 않았다.
저 총으로 자기 대가리를 날려버리는 게 어떨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국의 총리가 그런 생각을 품을 만큼 상황은 최악이었다.
국제연맹의 인더스 규탄안은 통과되었다.
여러 정보원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해군 함대가 해상봉쇄를 위해 출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올렸다.
충무기지를 공격했던 병력은 기록적인 사상자를 기록했다.
사상자 7만 9천 명.
단 하나의 전략적 거점을 점령하기 위해 발생한 사상자였다.
민병대가 무식하게 돌격만 해댄 까닭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화력 지원이 쏟아졌기에 기지 전경은 구경도 못 해 보고 폭사한 이들이 수두룩했다.
이들의 포격으로 후방의 보급부대나 포병대까지도 정밀타격을 당하는 등, 문자 그대로 ‘수준 차이’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심지어 그 정도 피해를 입고서도 아직 그 고지에는 고려연방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승리할 수 있답니다.”
“조금만? 그래서, 그 조금만으로 몇 명이 죽어야 하나? 40만? 100만? 500만?”
“전쟁을 계속하면 정말로 500만 명이 죽을 겁니다. 동지.”
“그런 패배주의적인 발언은 삼가시오!”
“우리가 질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니오, 냉정하게 500만 명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 거요.”
거기에 국방장관은 비아냥대듯이 한 마디 더 던졌다.
“이미 전쟁 나기 전에 죽고 다친 사람이 500만은 되지 않겠소? 그만큼만 더 희생하면 되겠구려.”
국방장관으로써는 애초에 이 문화대혁명에 반대했다. 그 혁명의 대상이 자신들의 권력 기반인 군부까지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의 권력기반이 깎여나가는데 좋아할 인물은 없다.
“당장 협상을 진행해야 합니다.”
***
히말라야 산맥. 세계의 지붕을 수십 대의 헬기가 지나쳐 날고 있었다.
공격헬기와 수송헬기, 경량 정찰헬기 등으로 구성된 비행대대는 다수의 공수부대원들을 싣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공격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렇기에, 항공력을 이용해 상대에게 단시간에 강력한 타격을 줘 상대를 무릎꿇린다는 전술은 시도해 볼 법 했다.
정 상황이 좋지 않으면 핵위협으로 포위를 풀어버릴 수도 있고 말이다.
비대칭 전력의 존재는 전략적인 선택의 폭을 한참 넓혀 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기는 C-2, 여기는 C-2, 전 밀레니엄 통사에게 송신, 레이더에 다수의 비행물체 포착, 비아군 항공기, 속도로 보아 제트기는 아니다. 헬기일 가능성이 높다.
C-2는 후방의 조기경보통제기였다. 지상 레이더를 피해 산악으로 날고 있던 항공기를 포착했고, 자신이 관제하는 공수부대와 적들의 진로가 겹친다는 것도 파악했다.
-여기는 파파장이다, 전 그래닛 통사에게 알린다. 공대공전투, 반복한다, 공대공전투 준비하라.
헬기를 헬기로 상대할 필요는 없다.
전투기가 단거리 적외선 유도 미사일, 하다못해 기관포만 달고 있어도 벌집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게 헬기다.
그나마 공대공미사일을 장착한 공격헬기들은 반항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중초계를 돌고 있던 아군기가 달려오기도 전에 조우할 판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지랄맞은 기상과 지형 때문에 포착이 늦은 탓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적들 역시 제법 태평하게 날아오고 있다는 것 정도?
“곤줄박이에서 파파장에게, 적기를 육안으로 포착했다. 적은 아직 아군을 포착하지 못했다. 헬기가 아니다. 저속비행하는 프롭기다.”
“프롭기?”
“글래스 노즈를 갖춘 중형 쌍발기 다수, 복엽 단발 프롭기 다수 확인.”
“재송하라, 곤줄박이.”
“1차대전에나 썼을 법한 구닥다리 비행기들이 폭격 대형으로 느릿느릿 날아오고 있다. 소수의 단발 단엽 급강하폭격기도 보인다.”
잠시 뒤, 명령이 내려졌다.
“그래닛 전 편대에게 알린다. 보유한 기관포, 기관총, 공대공미사일을 사용해 적 편대를 격파하라, 해당 편대는 야음을 틈타 아군 비행장을 공습하고자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제압하라.”
“카피.”
레이더 유도 미사일을 이들이 갖추고 있었다면 이 시점에서 데이터 링크를 이용한 대공미사일이 빗발치듯 날아왔겠으나, 아쉽게도 이들이 보유한 건 레이저 유도 미사일, 혹은 적외선 유도 미사일 뿐이었다.
대전차미사일이나 공대지 미사일 중에는 레이더 유도가 가능한 장비도 있긴 했지만, 아낄 필요성이 있었다.
아무튼 강습작전이 취소된 건 아니고, 마주친 김에 쓸어버리고 지나가는 거니까.
곧장 공격헬기들은 고도를 높여 목표를 시야에 두었다.
자체 레이더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아직 적들은 등화관제 중인 헬기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질 뿐이다.
-삐이이이이!
적외선 미시일의 시커가 냉각되었다는 신호음과 함께 락온이 끝났다.
“폭스 2, 폭스 2.”
“폭스 2! 폭스 2!”
그리고, 미사일들이 하늘을 날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적외선 미사일들의 공격에 다수의 항공기들이 불덩이가 되었다. 20mm 기관포를 가지고 있던, 그나마 신형에 가까웠던 급강하폭격기는 최우선 공격 대상이었고, 단숨에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미사일의 수보다 적들의 수가 많았다.
헬기당 4발, 혹은 2발씩 장전되어 있는 공대공미사일들이 소진되자 헬기들은 먼저 접근하면서 도그파이트를 걸었다.
단숨에 반수 이상을 잃은 적 항공기들은 순식간에 우왕좌왕했지만, 공격헬기보다도 느린 복엽기들은 문자 그대로 차려놓은 밥상이었다.
“건스! 건스! 건스! 스플래시 원!”
공격헬기의 30mm 열화우라늄탄을 뒤집어쓴 폭격기는 단숨에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 곁을 정찰임무를 하고 있던 경공격헬기가 스쳐지나갔다.
“건스, 건스, 건스.”
미니건에서 50구경 탄들이 뿜어져 나갔다. 붉은색 예광탄들의 줄기를 뒤집어쓴 복엽 전투기는 산산조각나서 아래로 추락했다.
경공격헬기라면 몰라도 기관포도 20mm급은 어렵잖게 막아내고, 심지어 우월한 엔진 출력 탓에 자기들보다 빠르기까지 한 대전차 공격헬기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죽음이었다.
뒤를 잡고 50구경 기관총을 퍼부어봤자 기관총탄 따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적 헬기는 그대로 기관포 터렛만 돌려서 그들을 벌집으로 만들어주었다.
정면에서 달려든다면 상대속도 덕에 50구경 기관총탄이 장갑을 뚫을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사수의 시선에 연동되는 30mm 기관포가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상대의 영혼을 육신에서 강제로 찢어낸다는 점이었다.
문자 그대로 양들 사이에 떨어진 맹수처럼 헬기들은 구닥다리 항공기들을 갈가리 찢었다.
아직 추락하지 않은 적기들도 그저 살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달아났지만, 고도를 올리는 순간 레이더에 포착되어 여러 미사일들의 표적이 되거나, 뒤쫓아온 헬기들에 당하거나, 심지어 야간인지라 지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절벽 등에 들이박아 추락하는 등 그야말로 지리멸렬했다.
심지어 몇몇 항공기는 용케 포위망을 빠져나갔지만, 그들은 하필 수송헬기들에게 다가갔고, 무장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던 수송헬기들은 대전차미사일이나 로켓을 쓸 것도 없이 50구경 도어건만으로 목숨만 간신히 건져서 도망쳐 오던 적 항공기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수송헬기들이 상대였다면 그래도 이빨이 먹혔겠지만, 공격헬기들이 짠 킬 존에서 벗어나자마자마자 어둠 속에서 수송헬기의 대편대에 뛰어든 꼴이었던지라 레이더도 없는 상황에서 사방에서 날아오는 기관총 사격은 사신의 낫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고려연방군은 1개 여단급 헬리본 작전을 성공시켰고 공격헬기와 수송헬기들로 이루어진 공중강습여단 하나가 고정익기도 없이 인더스 공군 예하 항공사단 하나를 피해 없이 쓸어버렸다는, 전사에 길이 남을 기록 하나가 세워졌다.
***
히말라야 산맥 남부의 교두보. 인더스군 비행장.
쑥밭이 된 비행장을 본 고려연방군 공수여단장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수송기를 강행착륙시키는 건 일단 활주로를 복구하지 않으면 어렵겠군, 혹시 뭔가 쓸만한 게 있나?”
“일단 격납고에 딱 1기의 항공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쌍발 단좌 프로펠러 전투기로, 20mm 기관포 2문과 50구경 중기관총 2정이 있습니다. 적 부대 내부 기술 자료에 의하면 최고 속도는 680km, 항속거리는 890km, 상승한도는 12km 정도입니다.”
“그렇군.”
“유사시 아군 전투기의 항공엄호가 불가능할 때 대헬기 작전 정도는 할 수 있겠습니다만.....”
“굳이 띄우기보다는 맨패즈가 나을 텐데?”
“아니면 지상에 대한 기총소사라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뭐가 되었든 간에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입니다.”
아무리 쓸모없어 보여도 세상에 평생 쓸 일이 없는 물건은 없다. 도저히 전군 전투준비태세 검열 시기에 서류랑 맞나 비교받는 것 외에는 쓸데없어보이는 물자들도 가끔씩 필요한 상황이 생기고, 전전대쯤의 행정보급관이 짱박아놓은 것만 같은 도저히 쓸데없어보이는, 창고에서 반쯤 잊혀져 있던 물건들을 꺼내 쓰는 일들도 가끔씩 생기니까 말이다.
노획물자라고 해서 마냥 썩혀두기보다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나쁠 리가 없었다.
“조종사만 구한다면 알아서 해 보게. 어차피 유류는 넉넉하니까.”
물론 적 유류탱크를 운 좋게도 통째로 노획한 덕에 생긴 행운이었지만, 아무튼 유류 보급은 계속 받고 있었다.
“활주로만 정비되면 아군 수송기도 착륙할 수 있겠지. 그때까지가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