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외전 : 인더스 문화대혁명(3)
미국, 백악관.
미합중국 대통령 베리 골드워터는 현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고려연방군이 항공기를 이용해 인더스 연방 수도를 폭격했습니다. 물론 정밀타격이었고, 고립된 외교관들과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다지만......”
“국제법을 먼저 위반한 것은 인더스 쪽이 맞습니다. 국제연맹 주제 코리아 대사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연맹에서 인더스 연방의 만행에 대한 규탄안을 제출하겠다고 합니다.”
“이번 난동으로 적어도 40여 명의 고려인이 죽고 다쳤습니다. 확인된 사망자가 전부 대사관 직원이고, 현지 대사도 목숨만 간신히 건졌습니다.”
“여론은 고려연방에 유리합니다. 고려연방이 무력행사를 했지만 이는 정당방위를 위한 것이었다는 거죠.”
“문제는 폭도들이 더 날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더스 연방의 정부와 군부는 이미 대부분 무력화된 걸로 보입니다. 중앙위원회에서 폭도들을 제압하라는 명령이 내려갔지만, 군사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군 장성들이 폭도들에게 구타당해 사망했다는 불확실한 정보가 사실이라고 간주하면, 국가의 중추 자체가 붕괴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군.”
“성명서를 발표하시겠습니까?”
고려연방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혈맹이었다. 당장 고려연방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제공호 전투기도 미국과 공동개발했으며, 기밀 중의 기밀인 SLBM과 수소폭탄 개발도 적극 협력한 바 있었다.
“당연히 해야지. 국무부에서 초안을 준비하게, 수위가 좀 높아도 상관없네, 어차피 명분은 우리 쪽에 있으니까.”
명분도 확실하고, 능력도 있고 실리도 있다.
안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때, CIA 국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국장, 무슨 일인가?”
“대통령 각하, 히말라야 산맥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
고려연방, 충무시설.
성형 요새로써 지어진 충무시설은 막대한 저지력을 제공할 수 있으며, 고려연방의 전략적 고지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세워진 현대의 성채, 혹은 요새라고 부를 수 있는 거점이었다.
물론 우회할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지어진 목적이 인근 지역 전역을 환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감제고지이자 전략적 최중요 거점의 방어능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고, 핵무기나 화학무기로 밀어버리려고 했다가는 자국 수도에 핵보복이 날아올 게 너무나도 뻔했기에 쉽게 꺼낼 카드는 아니었다.
이런 요새는 보급물자가 떨어지지 않는 한 한 개 중대가 사단을 저지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 주고, 그 이점을 극대화한 이 지역을 본 각국의 무관단 역시 난공불락이라는 데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요새가 바로 충무시설이었다.
고려연방군 1개 여단 병력이 상시 배치되어 있으며, 여단장은 요새 사령관 직위를 겸한다.
주변은 온통 바위산이라 엄폐물 비슷한 것도 없고, 요새는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강철로 보강되었으며, 가장 얇은 벽이 1m에 달한다.
주위에는 지뢰와 다중 철조망, 각종 장애물로 둘러싸였고, 요새 내에는 30대에 달하는 전차와 20여 대에 달하는 장갑차, 이들의 정비와 보급이 가능한 부대시설들에 더해 유사시 이들이 벙커 내에서 발포가 가능하도록 설비가 되어 있었고 155mm 자주포 1개 중대, 대공포 4개소, 단거리 대공미사일 발사대 4개소, 중장거리 대공미사일 발사대 4개소, 거기에 요새사령부 직속으로 수송헬기 4기, 공격헬기 6기, 대전차미사일을 보유한 무장 수송헬기 2기, 그리고 이들을 정비할 인력과 장비가 상시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간단했다.
만일 무력으로 이 지역을를 탈취하려고 한다면, 최소 군단급 병력이 갈려나가는 피해는 각오해야 한다는 것.
애초에 단일한 시설물도 아니고 수많은 벙커와 요새, 유개호들이 바위를 뚫고 만든 갱도들로 서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에 가까웠고, 문자 그대로 그 중요성만큼이나 아낌없이 돈을 쳐발라 만든 이 요새는 인더스군의 공세를 정면으로 막아내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설을 향해 맹폭이 쏟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 포격 따위로는 충무시설을 어찌할 수 없었다. 문자 그대로 벙커버스터라도 들고오지 않으면 답이 없고, 주요 방어구획을 뚫으려면 진짜 전술핵이라도 가져와야 한다.
NBC 방호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전술핵 공격도 어느 정도 방호해내고 전투력을 유지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충무시설이었는데 어설픈 대구경 박격포 사격 따위로 전투능력을 상실할 리 만무했다.
잠시 뒤, 포격이 멈춘 틈을 타 동굴형 갱도 밖으로 나온 155mm 포대는 이미 후방에서 대포병 레이더로 계산한 탄도에 따라 TOT 사격을 개시했다.
산그림자에 가려진 갱도진지에 숨어 있던 프리머스 자주포 한 개 중대의 신속한 TOT 사격은 인더스 민병대의 중구난방식 사격보다는 확실한 효과를 보였다.
순식간에 포대들은 산산조각났고 시체들이 사방을 뒹굴었다.
아무리 머릿수로 밀어붙이려고 한들 총안구로 목표를 겨냥한 전차포 30여 문이 산탄을 토해내 접근하는 적들을 피떡으로 만들었고, 내부에 숨어 있던 장갑차들도 기관포를 빗발치듯 퍼부었다.
인더스 군은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변변한 엄폐물도 없는 상황에서 절벽에 가까운 경사로를 기어올라가야 했다.
전차와 장갑차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만, 가지고 있다고 해도 도저히 이 지형을 돌파할 수가 없었기에 동원한다면 공병전차를 선두에 내세워서 길을 만들면서 돌파해야 할 판이었지만, 당연히 사방을 겨누고 있는 고려연방군이 그걸 구경이나 하고 있을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수천 발의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져내렸고, 여단이 보유한 각종 지원화기도 불을 뿜었다.
심지어 후방에서 300mm 다중 로켓 발사 시스템(Multiple Cradle Launcher)의 지원포격까지 쏟아져내려오자, 결국 인더스 민병대는 수많은 시체만을 남기고 다급히 후퇴해야 했다.
***
고려연방, 서울.
“인더스 연방의 공업 중심지에 핵공격을 가해 보복해야 합니다! 이건 명백히 선을 넘었습니다!”
“적 주요 군사시설과 국가 중추에 대한 핵공격이 가해져야 한다는 데에 본 장관 역시 동의합니다.”
펄펄 뛰는 국방장관을 재무장관이 거들었다.
외무부장관은 총리를 바라보았다.
“현재 군부에서는 적들이 수백만 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아 티베트의 방어를 무력화하고 침공작전을 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충무시설에 병력 증원을 해야 합니다. 거의 15배 이상의 병력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충무시설은 40배, 60배의 적과도 맞설 수 있게끔 된 지역이오, 보급물자만 넉넉하다면 함락될 리가 없소, 지금 문제는 다른 지역이지.”
“최악의 상황이라도 48시간은 사수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너무 멉니다.”
국경요새를 건설한 근본적인 이유였다.
보급로는 너무 길고, 있는 도로도 날씨가 나쁘면 사용하기 어렵다.
유사시 전쟁이 발발하면 즉각 지원을 보내는 게 쉬운 게 아니니, 국경을 요새화하고 후방의 주력부대가 올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핵공격은 24시간 동안은 하지 않겠소, 미국 대사를 불러 주시오.”
둘 다 상임이사국이긴 하지만 미국과 고려의 영향력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려가 미국의 애완견마냥 고분고분하게 굴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우방인 미국의 지지를 받아둬서 나쁠 건 없는 것이다.
애초에 총리 본인도 핵공격을 가한다는 것을 마땅찮아하기도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적들은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 고산지대 적응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공군력은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충무시설에 탄약과 연료 보급만 제대로 된다면 오히려 반격작전도 가능합니다.”
“그 보급이 안 되니 문제 아니오.”
지형이 기본적으로 너무 지랄맞다.
평소에는 육상 수송이 어려우면 헬기로라도 수송을 해 줬는데, 전시에 그게 쉬울 리가 없다.
“호크아이 105mm 차량화 자주포와 DIVAD 30mm 자주대공포, 하이랜더와 야크트치프틴은 헬기나 전술수송기를 이용해 항공수송, 혹은 공수투하가 가능합니다. K-3 전차는 어렵겠습니다만.”
K-3 전차는 갈수록 대형화되는 주포의 크기에 맞추어 7.2인치 포를 장착한 MBT다. 어지간한 자주포보다도 구경이 크고, 무인 포탑을 도입하고 승무원 수를 줄이고 자동화를 해 가면서 경량화해도 전 세대의 중전차만큼이나 무겁기에 C-14 수송기를 동원해도 작전상태로의 수송이 거의 불가능하다.
“총리 각하, 해군은 항공모함을 이용한 인도에 대한 해상제압을 제안합니다.”
“해상제압?”
육군참모총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라카 해협은 어떻게 뚫을 생각이오?”
“우회할 겁니다.”
“차라리 라싸에서 우리 공군이 출격해서 캘커타를 폭격하는 게 훨씬 쉬워 보이오만. 발키리 폭격기를 동원하거나 순항미사일을 쏘거나 말이오.”
“훨씬 가깝지만, 인도에 대한 해상봉쇄를 수행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선 저들이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걸 명확히 해 저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 있습니다.”
“키로스는? 아니, 멍청한 소리였군.”
키로스는 절대 인더스를 돕지 않는다.
국경분쟁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데다, 서로를 수정주의자, 사이비 등으로 부르며 공격해대는 게 하루이틀도 아닌데 국경전투에서 좀 밀린다고 지원? 그럴 리가 있나.
되려 이 틈에 인더스의 서쪽 국경을 침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면 높았지, 키로스가 인더스를 지원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그리고, 국경을 접한 상대가 그 둘밖에 없는 한, 인더스는 해로가 차단된 이상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그 봉쇄를 뚫을 수 없다.
“인더스 놈들이 핵을 가졌을까?”
“가능성은 반반 아니겠습니까.”
인더스가 핵을 개발한다는 의혹은 많았다. 소비에트 연방이 핵을 개발한다는 의혹과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는 의혹이었다.
전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져도 좋다고 허가된 국가는 다섯이다.
미합중국, 유럽연방, 고려연방, 키로스, 그리고 다뉴브 연방.
다뉴브 연방은 말이 핵보유국이지 국방정책이 사실상 유럽연방에게 귀속되어 있는 등 유렵연방의 괴뢰국에 한없이 가까운 형국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4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핵을 개발한다는 의혹을 가진 국가들의 명단은 수두룩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란콜롬비아의 핵개발 의혹,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개발 의혹, 인더스의 핵개발 의혹, 소비에트 연방의 핵개발 의혹, 알비온 연방의 핵개발 의혹, 앵글로노르드 연방의 핵개발, 그리고 스위스의 핵개발, 히스파니아의 핵개발 정황.
이들 중 다수는 실제로 드러나 국제사회의 압박과 침공 위협 등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해체하거나,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그란콜롬비아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경제위기로 핵개발을 포기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민주화와 함께 핵 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했다. 알비온 연방은 유럽연방의 강력한 압박으로 인해 핵개발을 비공식적으로 중단했다. 앵글로노르드 연방은 미국과 유럽연방의 압박에 핵개발을 중단했다. 스위스는 여러 요인이 거쳐 핵개발을 중단했고, 히스파니아는 관련자가 세간에 히스파니아의 핵개발 시도를 폭로하는 바람에 중단되어버렸다.
그러나 인더스와 소비에트 연방의 핵개발은 굉장히 높은 신빙성을 갖추고 있었고, 국제사회의 압력을 버티면서 진행하고 있다는 건 동일했다.
“최소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개발보다는 더 진전되었을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그래도 폭격기에 달아 떨어트리는 수준 정도일 거고, 그 정도면 우리 공군이 충분히 방호할 수 있네, 저놈들이 스텔스기를 갖춘 것도 아니니까.”
언제나 그렇지만, 연방의 뇌와 심장인 한반도와 만주만 공격당하지 않으면 치명상은 면할 수 있었다.
“공세를 준비하게. 저놈들에게 자신들이 지금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를 깨닫게 해 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