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외전 : 인더스 문화대혁명(2)
주 인더스 고려 대사관. 캘커타.
“반동들을 척결하라!”
“혁명의 적들을 불태워라!”
대사관 주차장에 있던 몇 대의 차량이 불탄다.
의외의 사실로, 불이 붙은 차는 그리 쉽게 폭발하지는 않는다.
그냥 불타버릴 뿐.
그러나 문제는 저들이 대사관 담장 너머로 화염병을 던지고, 총기로 무장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대사관 주둔 병력에게 전원 실탄 지급 완료했습니다.”
“통신은?”
“전부 끊겼습니다.”
“신 중령님. 현재 상황은......”
“보다시피 좋지는 않소, 좀 전에 정문이 박살났소. 문은 빠짐없이 잠갔으니 잠깐은 괜찮지만....”
“대사관의 모든 창문과 문은 방탄유리고, 폭탄을 동원해도 어설픈 사제폭탄 정도는 막을 수 있습니다. 계속 터지거나, 감당 못할 규모거나, 제대로 된 대전차로켓이라면 뚫리겠지만요.”
“얼마 못 가겠군. 지원은 기대할 수 없나?”
“기대 못 합니다. 모든 전화선이 끊어졌고, 인더스 정부는 저 폭도들에 대한 통제를 상실한 걸로 보입니다.”
저들 중 대부분은 이때를 노려 한 몫 잡아 보려고 날뛰는 강도떼다.
사람들을 폭행하고 살해하고, 약탈하고 방화하며, 부녀자를 겁간하고 능욕하는 이들.
“중앙당 내에서 터진 내분 탓에 저들을 지휘하는 체계도 희미하다는 게 내가 마지막으로 받은 정보요, 게다가 조금 전의 방송이 있었는데도 저들이 해산하지 않고 있소.”
“방송이 있었습니까?”
“항공기였는지 차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제법 큰 확성기로 해산하라고 떠들더군요, 그런데 폭도들의 소리에 묻혔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상황 자체는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군이 투입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군도 제대로 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되려 패퇴하는 걸 우려해야 할 지경이죠.”
“즉 우리 힘만으로 버텨야 한다는 거군.”
그 순간, 어디선가 큰 폭음이 들렸다.
“뭐야?”
“빌어먹을! 저 폭도들이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벽에 박았습니다!”
“뭐?”
“저 미친 새끼들이 장갑차를 끌고 와서 외벽에 들이박았다고요!”
순간, 총성이 울렸다.
실내였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 타타타타타!
콩 볶는 듯한 총성이 저쯤에서 들렸다, 그 직후, 그들이 있던 공간의 벽이 무너졌다.
“적이다!”
“사격 개시!”
권총만 가지고 있던 신 중령은 미끄러지듯이 책상 아래로 엄폐하면서 책상 위에 있던 부시맨 기관단총을 낚아채었다.
총알세례를 피하자마자 곧장 폭도들에게 조준사격을 때려박아준 신 중령은 곧장 명령을 내렸다.
“대사관에 적이 침투했다! 대사님은 어디 계시지?”
“지하의 패닉룸으로 가셨습니다. 1개 사격조가 배치되었습니다.”
“직원들을 최대한 대피시켜, 저놈들도 대사관 안쪽까지 차량을 끌고들어올 수는 없을 테니 문이란 문은 다 막고 최대한 버티라고 해!”
“임 부장은 어디 있나?”
“자기 사무실에서 기밀서류 소각을 진행 중이랍니다. 아까 전에 5분이면 끝난다고......”
“젠장, 그 양반이 안가 키를 가지고 있는데.”
“안가 말씀입니까?”
“그래, 대사관에서는 오래 못 버틴다. 안가로 가야 해. 일단 대사님과 합류하고, 그쪽에서 내선전화로 임 부장이랑 통신해보자고.”
잠시 뒤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수는 적어도 전부 군인인 고려 경비대는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하고 숫자로 밀어붙일 뿐인 홍위병들 따위는 순식간에 궤멸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대사관 직원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미 살해당한 이들이 많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시체들을 보며 복수를 맹세하는 것 뿐이었다.
“장담컨대, 본국에서 이 개자식들 머리 위에 핵을 쏠 거다.”
핵은 아니어도 최소한 공습 정도는 가해지리라.
인디아 연방은 핵개발을 진행한다는 의혹은 있지만, 일단 최소한 핵투사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것이 중론.
탄두는 어떻게 한두 발 만들었더라도 그걸 투발할 능력이 없다.
반면 고려군은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등으로 언제든 보유한 수백 발의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
유럽연방과 미국이 보유한 수천 발에는 미치지 못해도 저 개자식들에게 교훈을 주기에는 충분한 숫자.
그러니,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아서 이 참상을 본국에 보고해야만 했다.
“솔개!”
“강철.”
암구호를 외친 신 중령은 패닉룸으로 들어섰다.
“통신 되나?”
“내선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무전은 계속해서 연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임 부장은?”
“아까 통신이 됐습니다. 지금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임 부장이 합류하는 대로 안전가옥으로 간다. 대사관은 포기한다.”
“적들은 장갑차에 야포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훈련도가 낮은 군대, 혹은 민병대라고 봐야 합니다. 본국에 지원 병력을.......”
“너무 늦어.”
“그럼 항공지원이라도 요청해야 합니다.”
“무전이 연결되면 그거부터 요청하겠네.”
***
댐푸, 고려연방. 제 179항공단.
“비상! 비상!”
“실제 상황이다! 반복한다, 이것은 훈련 상황이 아니다. 전 부대 실탄 장비하고 출격하라! 반복한다, 출격하라!”
활주로에 온통 환한 유도등이 켜지고, 조종사들은 급히 항공기에 탑승했다.
고려연방의 주력 항공기인 제공호는 급하게 이륙하기 시작했다.
높이 상승한 제공호 편대는 날개를 접었고, 후퇴익 형상으로 날개를 바꾸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에프터버너가 가동되며 두 개의 엔진이 초음속으로 전투기들을 가속시켰다.
스텔스 설계를 통한 침투능력과 가변익기 특유의 기동성, 고성능 전자장비 등 존재하는 모든 항공기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라 불리는 제공호 전투기.
가변익과 스텔스라는 답이 없는 유지비의 조합 때문에 공군의 예산귀신으로도 유명하지만, 그 밥값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넓은 국토에 적은 인구는 결국 강력한 공군을 필요로 했기에, 국초부터 방위성금을 걷어 가면서 전투기들을 최대한 많이 보유해왔다.
그리고, 이들은 또 다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
얼마 뒤, 이들은 어차피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는 적들의 방공망 레이더에 한 차례도 포착되지 않고 유유히 전투가 벌어지는 상공에 도착했다.
“잘 들어라, 시간이 별로 없다. 현재 아군은 대사관을 포기하고 국정원 안전가옥에서 저항하고 있으나 적들이 장갑차와 야포를 이용해 안전가옥을 공격하고 외벽을 붕괴시킨 상황이다. 우리는 그들의 지원에 응답해 근접항공지원을 수행한다, 이해했나?”
“예!”
“해동청, 여기는 까마귀, 항공지원임무 대기하라.”
“해동청 대기중.”
“공격시간 10초, 근접항공지원, 편대 거리 비표준, 접근 방향 030, 당소가 무전으로 유도해주겠다, 입감했는가?”
“입감 완료, 계속하라.”
“안전가옥은 대형 건물로, 높은 담벼락과 감시탑을 가졌으며, 파괴된 보병전투차 다수가 인근에 있다. 확인했는가?”
“확인.”
“그쪽에서 서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비계가 다수 설치된 고층 건물이 있다. 확인했는가?”
“확인.”
“그리고 동쪽으로 펼쳐진, 다수의 기갑차량이 파괴된 지역 동쪽으로 가면 남북으로 뻗은 대로가 있다, 확인했는가?”
“확인.”
“그 대로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큰 마당을 가진 대형 저택이 있다. 확인했는가?”
“확인.”
“귀소의 목표물은 그 저택 마당에 배치된 적 대전차포 포대와, 남북으로 뻗은 대로 동쪽의 밭에 은신한 약 400여 명으로 보이는 적 보병과 6기의 장갑차량, 그리고 비계가 설치된 고층 건물에 은신하고 있는 저격수다.”
“해동청 전부 입감 완료, 090으로 진입한다.”
“확인했다, 작살내버려!”
“무기 안전장치 해제, 발사.”
내부무장창에서 튀어나온 대전차미사일은 그대로 날아들어 건물의 비계를 맞췄다.
공사중이던 건물의 비계는 그대로 무너져내렸고, 저격수가 거기서 살아나갈 재간은 없었다.
그 다음은 카메라 유도 공대지미사일의 차례였다.
공대지미사일 두 발은 그대로 날아들어 76mm 구형 대전차포를 야포로 사용하던 홍위병들을 산산조각냈다. 대전차포는 그대로 공중으로 튀어올라 산산이 분해되었고, 홍위병들은 뼈도 추리지 못했다.
마지막은 각자 두 발씩 들고 온 클러스터탄이 장식했다.
집속탄은 공중에서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수많은 자탄들을 세상에 풀어놓았고, 대로변에 은신하고 있던 적들은 졸지에 날벼락을 맞았다.
군에서 깽판을 친 뒤 몰고 나온 장갑차의 위에서 터진 자탄은 엔진을 박살내고 불을 질러 차량을 유폭시켰고, 안에 타고 있던 홍위병들은 불 붙은 디젤유를 뒤집어쓴 채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와 바닥을 구르며 불을 끄려 노력했다.
폭발에 휘말린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팔다리가 몇 조각씩 나서 누가 누구 팔이고 누구 다리인지 알아보려면 저승으로 가는 길에 제법 자기들끼리도 골치썩일 듯 싶었다.
“해동청 북쪽으로 이탈한다, 폭격피해평가 대기중.”
“해동청, 여기는 까마귀, 폭격피해평가, 목표물에 좋은 효과, 적 장갑차량 3기 격파, 2기 기동 불능, 1기는 길이 막혀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적 보병 80여명 사살, 목표 건축물 제압 및 적 저격수 사살, 적 야포 3기 모두 파괴, 대로변에 대한 재공격이 가능한가?”
“입감했다. 재공격하겠다.”
잠시 뒤, 이번에는 기관포탄이 쏟아졌다.
20mm 발칸은 인간의 육신과, 장갑차의 알루미늄 상부장갑을 뚫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건스, 건스, 건스.”
“건스, 건스, 건스.”
편대는 그대로 지상을 긁고 지나갔고, 인간의 피륙은 그대로 산산조각났다.
“여기는 해동청, 당소는 탄약이 고갈되었다. 공대공미사일만 남았다.”
“해동청, 여기는 까마귀, 폭격피해평가, 100점 만점에 100점, 적은 괴멸했고 무질서하게 후퇴 중이다. 반복한다, 적 병력은 궤멸했고 무질서하게 후퇴 중이다!”
“알겠다, 기지로 귀환하겠다.”
그때, 국경 너머에서 위성을 통한 통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 통사에게 알린다, 여기는 외무성이다, 내각에서 인더스 연방 내 모든 외교공관과 교민에 대한 즉각적인 철수 명령을 내렸다. 반복한다, 모든 외교공관과 교민에 대한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모든 문서 자료와 컴퓨터를 소각, 삭제, 폐기하라, 그 외 무력화해야 하는 장비가 존재할 경우 자체 판단하에 무력화하라. 동시에 모든 고려연방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더스 연방으로의 출국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최대한 많은 교민들을 구조해서, 살아서 귀환하라.”
***
“이게 무슨 미친짓이야!”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책상이 넘어갔다.
“부부장 동지는 대체 무슨 미친 짓을 한 거요!”
“내가 할 소리요! 홍위병을 제어하는 건 당신 일이지 않았소 선전국장 동지?”
“이런 빌어먹을...”
“홍위병들이 시체를 길가에서 끌고다니며 모욕하고 있습니다!”
“젠장, 막아! 막으라고! 저게 외신에 뜨는 날에는 진짜 핵무기가 날아올 거라고!”
“홍위병이 제어를 도저히 듣지를 않습니다! 총리 동지께서 직접 나가서 말리려고 하셨지만 돌이 날아왔다고....”
좆됐다.
아랫것들이 광기에 휩싸였을지언정 최상층은 상황이 제어불능이 되었더라도 현실감각까지 날려먹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냉정한 판단으로는, 자신들은 이미 충분히 좆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