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동지(2)
중국은 조각났다.
영토는 명나라 시절로 쪼그라들었고, 다시 그 영토를 쪼개서 만들어진 거대 세력만 해도 20개. 게다가 그 세력들 내에서도 최소 50여 개의 소조직들이 날뛰고 있었다.
유럽연방과 고려연방이 합동으로 분석한 중국 내 군벌은 최소 1천 개에서 최대 9천여 개에 육박한다.
숫자가 불명확한 이유? 뻔한 거 아닌가. 실시간 모니터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이게 다 구심점 자체가 철저하게 연합군에 의해 파괴된 탓이다.
전쟁의 여파는 중국의 향촌 사회고 나발이고 싸그리 박살냈다. 오토 슈코르체니 휘하 부대의 부대에게 참수작전을 당해서 저 새는 해로운 새네 뭐네 할 겨를도 없이 뇌가 물리적으로 시원한 공기를 쐬게 된 누가 홍위병을 동원할 것도 없이 싸그리 날아갔다.
사실 좀 불리하다 싶으면 전술핵을 쏴대는 싸움이 중국 전역에서 벌어졌는데 뭐가 남아있는 게 용하다 싶다만.
그리고 유럽연방과 미국은 한 가지에 합의했다.
중화사상이 이 전쟁을 이끌어냈는데, 중화사상을 놔두면 이놈들은 똘똘 뭉쳐서 다시 전쟁을 일으킬 거다. 이미 몇 번 보지 않았는가.
그래서 20개의 국가로 찢었다.
그리고 그 20개의 국가를 다시 연방으로 강제로 바꿔서 각 국가마다 수십 개의 주, 정직하게 말하자면 군벌 세력들이 날뛰게 했다.
다시는 뭉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전승장군이자 전 중국 군정장관, 그리고 이제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더글러스 맥아더는 대놓고 중국의 모든 지역을 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실제로 짓밟힌 중국에게는 공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인구의 시너지를 줄이기 위해서 최소 1000개의 주를 만들어냈고, 다시 그 주들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도록 조장했다.
물론 그래도 충분치 않다.
중국의 인구는 억 단위에, 전쟁이 끝났으니 다시 미친 듯이 불어날 터.
만약 중국 인구가 빠르게 불어 원 역사에 못 미치는 10억이 된다고 하면 주 하나당 인구 100만이 돌아간다.
정말 최대치로 쳐서 군벌 10개가 한 주 안에 들어 있으면 산술적으로 그 평균치는 10만. 군벌 하나가 아이슬란드나 맨 공국보다 많은 인구를 관할한다.
그 인해전술에 학을 뗀 연합국에게는 중국의 인구야말로 최악의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산업을 제한하는 건 물론이고 중국이 그 인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중국을 쪼개서 수많은 머리들이 영원히 서로를 물고 뜯게 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지방정권들의 봉기를 조장한 결과 줄줄이 각 주들의 연방 탈퇴로 공중분해된 신생국가들도 여럿. 심지어 국가를 형성한 독립 주들조차 내분이 벌어져 다시 나라를 공중분해시키려 하는 군벌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연합군이 원했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나라가 공중분해되기는 쉬워도, 다시 합치려고 하면 국제연맹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압박을 넣을 테니까.
그러나, 그 틈바구니를 소련이 파고들었다.
더 정확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파고들었다.
소련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전범국 주제에 움직였다가는 국제연맹이 핵빠따를 날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본론을 읽은 지식인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종하는 것, 그리고 오염된 트로츠키주의가 아니라 유일하게 오롯하게 공산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소련에 호감을 품고 있는 것은 애초에 소련의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수상할 정도로 많은 자본론이 대륙에 뿌려지기는 했지만, 지하 인쇄소에서 자기들이 대륙의 기상으로 찍어냈다는데 뭘 어쩔 건가.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니고.
중국이 도시국가 수천 개로 조각날 때쯤 되면 각국도 그 압박의 고삐를 늦추고 다시 뭉치지만 못하도록 신경쓰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중국에 대한 혐오가 전 세계 각국에서 MAX를 달리고 있으니 공산주의에 현지인들이 친밀해지게 하는 정도로 그쳤다.
북아프리카에 트로츠키주의가 퍼져나가고 있는 문제는 방법이 없었지만,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적어도 북아프리카 외의 아프리카 지역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손을 뻗는 일만큼은 훌륭하게 저지하는 중.
그리고, 공산주의가 싹트는 마지막 한 조각은 다름아닌 남미였다.
브라질, 그란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칠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에서 줄줄이 일어난 혁명, 쿠데타.
물론 미수에 그친 것도, 간신히 성공하니 미군이 쳐들어와 원상복귀한 곳도 많았지만,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프롤레타리아의 분노가 심어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사상의 확산이 아니다.
정상국가화, 국제사회 복귀. 그리고 경제성장.
베리야의 입장에서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해내야 하는 과업이었다.
***
파리, 유럽연방.
“이스라엘에서 간디와 네루가 사망했답니다.”
“....... 뭐?”
“간디와 네루가, 이스라엘에서, 사망했답니다.”
“어째서?”
“평화 시위대 가장 앞줄에 서 있다가......”
“...... 총 맞았다고?”
“예, 그렇습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유대 정권은 끝이군.”
그리고 이제 인도 전역에서 파괴와 학살의 광기가 펼쳐지리라.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을 융화시키고, 인도의 상황을 그나마 평화적으로 종결시킬 수 있었는 가능성이라도 가지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였어, 그가 죽어버렸다면, 그 뒤는 보나마나지.”
마하트마 간디가 죽었다면, 인도의 지옥은 예약된 거나 다름없다.
일단 유대인들이 살해당할 거고, 이슬람교도들도 죽어나갈 거고, 힌두교도도 죽어나가고, 시크교도도 새우등이 터질 터.
게다가 어디 인도 아대륙만 문제인가? 당장 이스라엘의 권역은 동남아에까지 미친다. 공식적으로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이라지만 그게 사실상 식민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동남아에서도 지옥은 예약되었다.
“이스라엘 지역 인구가 절반으로 준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네, 다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 공산주의자들은 두 동강이 나 있다는 거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이슬람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트로츠키.
그리고 베리야의 소련.
“둘 중 하나를 끌어들여 상대를 고립시켜야 한다면, 어딜 찌르는 게 좋겠습니까.”
“소련.”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명백한 사실은, 지금 소련은 러시아 공화국보다 허약해.”
당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저놈들 이름으로는 레닌그라드도 뺏겼다. 원 역사의 스탈린그라드, 즉 볼고그라드도 뺏겼다.
바다로 나갈 길은 모조리 봉쇄된 사실상의 내륙국에, 국경에서 수도까지의 거리는 300km도 안 된다.
물론 적지 않은 수의 국가들은 국경에서 ‘수도가 300km?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말하겠지만, 그런 경험 자체가 거의 없는 러시아인들에게는 정말 살 떨리는 상황일 터.
러시아 유럽 영토의 과반, 산업의 쌀인 철강과 석탄 산업을 9할 이상 상실, 전체 산업능력의 8할 이상 상실, 철도망의 절반 가량 상실.
사실상의 국가멸망 상태다. 저 상황에서도 철권을 휘둘러 가며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을 몇 년 더 유지한 스탈린이 엄청난 거지.
베리야가 부랴부랴 나라를 추스르려 시도하고 있지만 잘 될까 의문인 상황.
반대로, 러시아 공화국은 다르다.
일단 저놈들이 이란과 중동을 통째로 깔고 앉고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이미 답은 나왔다. 공업화가 안 돼?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 석유를 판 돈으로 3S 정책이라도 펴면 되니까.
아니, 석유 점유율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하면, 트로츠키가 진짜 석유 판 돈으로 배급제를 실시해서 문자 그대로 최소한의 노동만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도 남을 거다.
거기에 남는 오일머니로 각국의 공산당을 후원한다면?
이미 북아프리카에 그 공산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는 판, 당연히 최우선적으로 견제해야 할 대상은 러시아 공화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련을 가볍게 보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일이지.”
소련이 재기할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
소련과 러시아 공화국은-이제 슬슬 뭐 이슬람사회주의 공화국이든 트로츠키 연방이든 뭐든 간에 국호 바꿀 때가 된 것 같긴 한데, 러시아 땅이라고는 한 뼘도 안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체 왜 러시아 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여태 가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당장 러시아 제국도 고려연방이라고 현지화를 끝냈는데 말이지-서로 이념 가지고 박터지게 싸우고, 국지전도 열심히 벌이고, 대리전도 한두 번씩 벌이고 하는 정도면 딱 좋다.
물론 이 둘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소결렬 이후의 중소관계, 혹은 소련에게 개기던 티토를 비롯한 제3세계, 그 정도면 된다.
애초에 종교인이 절대로 용납 못 하는 건 이교도가 아니다. 무신론자도 아니다.
종교인들이 용납 못 하는 건 이단이다. 물론 이단을 멸절시킨 다음에 무신론자들도 조져버리고 이교도들을 상대로 십자군을 걸든 지하드를 걸든 하겠지만, 거의 모든 성직자들에게 경계해야 하는 상대를 물으면 이교도보다는 이단이 더 위험하다고 할 거다. 적어도 이교도나 무신론자는 눈에 보이는 적이지만, 이단은 언제 배후에 침투할지 모르는 역병들이니까.
주변의 교회만 봐도 어디 인근의 절이 신경쓰이는지 아니면 이단 교회들이 우려되는지 물으면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단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빨갱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르크스주의의 탈을 쓴 사이비 종.....사상인 트로츠키주의는 프롤레타리아들을 현혹하는 이단서고, 부르주아 계층의 지배를 받는 서방 세계는 트로츠키주의자들보다는 덜 위험하다, 저놈들 사상에 따르면 어차피 언젠가는 혁명나서 망하거든.
반대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소련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 권위를 세우기 위해 숙청을 해야 하는 타락하고 눈먼 체제다.
그리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사상에서도 언젠가 서방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망할 놈들.
한 마디로 제놈들이 끼고 다니는 마르크스묵시록에 ‘서방의 부르주아들은 결국 혁명세력에 밀려 모조리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거고 자본주의는 결국 착취의 끝에 모순에 못 이겨서 붕괴할 테니 최종 승리는 우리 빨갱이들임’이라고 박혀 있는데, 그래서 그 끝에 천당으로 들려올라갈 놈이 구교인지 신교인지, 아니, 레닌주의자인지 트로츠키주의자인지는 안 적혀 있다 이거지.
그러니까 당연히 자기들이 천당에 들려올라가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 결론은 뭐다? 사생결단.
“내가 장담하건대, 핵전쟁이 터진다고 하면 우리나 미국보다는 아마 저 빨갱이들 간의 내분이 원인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네, 아마 내 생전에는 보기 어렵겠지만 내 아들, 혹은 손자 대에서는 볼 수 있겠지.”
나도 이제 갈 날이나 세야 하는 처지인데, 따지고 보니 당연하다.
조금쯤은 서글펐다.
“조제프 녀석 결혼식은 보고 가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