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낙엽(1)
1943년 7월 27일, 현지 시각 22시 00분. 쓰촨 성.
-전 장병에게 알린다, 총통 이하 중국 정부 수뇌부는 자살을 택했고, 나머지 잔당들은 항복했다. 반복한다. 중국 정부가 무너졌다. 각급 부대 장병들은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새로운 명령을 대기하라.
포병관측기 한 대가 하늘을 맴돌며 방송을 이어갔다.
고풍스러운 건물에는 분리된 전차 포탑이 쳐박혀 있었고, 뒤집힌 전차 잔해가 길을 틀어막고 있었다.
사방에 시체들이 널려 있었고, 탄피와 죽은 자의 무기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 끝났다.
“이겼다!”
“제국 만세!”
“승리 만세!”
병사들이 사방에서 환호했고, 총을 들고 환호하던 한 병사가 지나가던 다른 부대 여성 의무관을 끌어안고 키스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종군기자 한 명이 플래쉬를 터트렸다.
***
나는 신문 1면에 실린 기사를 바라보았다.
종전! 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진 제목 아래, 카키색 군복을 입고 의무장교 완장을 찬 앳된 여성이 검은 군복을 입은 군인과 키스하는 장면이 풀컬러로 있었다.
음, 이거 원 역사에서 본 그 구도 같은데, 2차대전 종전하면 떠오르는 딱 그 사진 아닌가.
다만 두 사람은 아마 원 역사와 당연히 다른 사람일 거고, 사진을 찍은 기자 이름은..... 마가렛 히긴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는 손에 총 대신 쟁기를 들어야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겠지.”
맥아더 그 빌어먹을 놈은 기어이 우리가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한 발까지 알뜰하게 중국에 투하하고 나서야 전쟁을 끝냈다. 핵무기의 사용은 드골 장군 이하 프랑스 장성들이 직접 관리하는 사안이었으니 빼돌리지는 못했겠지만, 아무튼 참 밑바닥까지 깔끔하게 긁어다 썼다 싶다. 핵전력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는데.
아니, 차라리 잘된 건가? 그냥 이대로 원폭은 퇴역시키고 수소폭탄을 양산하는 쪽으로 갈까.
“괴링 대통령은 연방의회에 사하라 녹화 계획을 제출했습니다. 원래 전쟁 전에는 독일 제국이 단독으로 추진하던 프로젝트였는데, 자금 조달 문제로 좌초되었었죠.”
“사하라 녹지화 계획이라.”
나는 관자놀이에 주름을 잡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콩고 강에 댐을 세워서 차드 호로 물길을 연결하고, 이를 통해 차드 호의 크기를 키워서 이를 기반으로 사하라 사막에 대량의 물을 공급해 녹지화한다는 계획, 맞나?”
“예, 그렇습니다. 거주민의 이주와 자재 공급 등의 문제까지는 어떻게 되었고, 설계안도 만들어졌지만 실제 건설에 들어가고 얼마 가지 않아서 전쟁이 나는 바람에 중단되었습니다.”
“자재는?”
“아프리카에서 전투가 일어났다면 진지축성용으로 사용할 계획이 있었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그 정도의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대부분의 물자는 그대로 있습니다.”
“설계도도 있고, 자재도 있고, 남은 건....”
“인력과 비용과 시간이죠, 인력이야 현지인들을 동원하면 됩니다만, 비용 문제는 독일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렵답니다.”
“그래서 연방의회에 상정한 건가?”
“중국에서 받아낼 전쟁배상금 일부를 콩고 댐 완공에 전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무엇보다 전후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수요 축소와 실업자 발생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이점이라고 하면 안 되지, 작정하고 대규모로 공공사업을 할 거면 아예 호주도 녹지화를 하든가.”
호주의 내륙을 쓸만하게 개발하면 막대한 이득이 예상된다.
거기에 들어갈 자금이 무지막지해서 그렇지.
전쟁이 끝나면, 높은 확률로 디플레이션이 닥쳐온다.
대전쟁기에도, 다른 때에도 그렇다.
전시라는 이유로 허락된 무제한적인 자금 지원, 그리고 전쟁이 게걸스럽게 빨아먹던 막대한 물자를 대기 위한 수요가 한순간에 증발한다.
물론 수요가 단숨에 끊기는 건 아니다. 전후복구라는 게 있으니까.
유럽의 경우만 따져도 프랑스 본토는 초토화를 면했더라도 독일과 네덜란드는 처참하게 불탔고, 새로운 우방국이자 위성국인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방, 캅카스 공화국, 폴란드는 거의 무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판.
거기에 브리튼 섬도 총체적 쑥밭이고, 스칸다나비아도 그렇고, 도나우 연방도 불바다가 된 건 마찬가지.
거길 다 복구하려면 막대한 수요가 들 거고, 당연히 눈앞에 있는 우리 프랑스가 1번, 그리고 그 존재 자체만으로 치트키인 미국이 2번일 거다.
당장 독일과 네덜란드는 관세도 안 물게 되었고 여권 검사도 안 하게 되었으니 자본이 넘어다니기도 쉬울 거고, 그럼 프랑스 기업들이 독일과 네덜란드의 전후복구는 다 잡아먹었다고 봐도 되겠지, 이탈리아도 개평은 좀 가져갈 거고.
그 다음은 ‘남’인 동유럽 국가들인데, 암만 그래도 접근성은 우리가 나으니 1점씩은 먹고 들어간다.
아시아는 미국이 가져갈 확률이 높겠지.
그런데, 중요한 점이 있다.
과연 그걸로 충분한가.
물론, 당연한 소리지만 독일과 네덜란드가 입은 피해는 끔찍한 게 맞다.
그리고 그걸 복구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프랑스는 문자 그대로 거대한 군수공장 꼬라지다.
모든 산업이 전쟁을 위해 재편된 상태, 그 산업들을 공황을 겪지 않고 연착륙시키는 데에 독일과 네덜란드 체급으로 충분할까.
심지어 어느 정도 복구되면 저들 스스로도 복구에 나설 거 생각하면 그냥은 어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 공공사업을 대규모로 동원해 제대 군인들의 헌신에 보답할 일자리를 준비한다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다만 그럴 돈이 있냐가 문제지.
***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동남부에 위치한 에어 호(湖)의 수위를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디 교수라는 양반이 내 앞에서 기후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설교하는데, 뭔 소린지는 모르겠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밖까지 기후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며, 중부 지역의 강수량을 그 자체적으로 크게 올릴 것입니다. 사막의 강수량이 늘어나면 녹지화는 일사천리입니다. 서부까지는 그 효과가 닿지는 않으나, 이는 수로 건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어 호의 수위는 어떻게 높일 거요?”
그게 문제잖냐, 이 양반아.
“해수를 채울 겁니다.”
“.......... 뭐라고 하셨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상대를 바라봤다.
아니, 내가 들어도 당장 큼지막한 호수 하나가 소금물로 바뀌면 터져나올 문제들이 뻔히 보이는데?
“민물을 대량으로 확보할 방법이 없으니 불가피한 일입니다.”
대충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았다.
거대한 운하를-필요하면 핵무기까지 써서-뚫는다.
뚫린 운하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수위가 높아진다.
막대한 양의 물이 생기면, 일반적으로 지어지는 댐 근처의 기후가 변하는 것의 훨씬 큰 스케일로 호주 중부지역의 기후가 변한다.
그 늘어난 강우량은 호주 내륙 사막지대를 구석구석 해갈시킬 수 있도록 다시 물길을 파준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절충안을 제시했다.
“대형 해수 담수화 설비를 설치해 에어 호에 들어가는 물에 대한 탈염 작업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운하와 에어 호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해수 담수화 설비가 설치된 댐에 의해 간접적으로 연결될 것이오.”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될 것입니다.”
“...... 그럼 방법이 있지.”
나는 호주 남부의 한 지점을 손으로 짚었다.
“원자력.”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도 슬슬 지을 때 되지 않았냐. 전쟁 용도로 실컷 썼으니 민간 용도로도 써봐야지.
***
유럽연합이 식량 문제의 해결을 위해 콩고 강에 댐을 세워 차드 호를 범람시켜 분지 전체를 통으로 초거대 호수로 바꿔 사하라 사막을 녹지화하겠다는 독일 제국 시절의 프로젝트를 재개하는 데 이어 호주의 녹화사업까지 시작되자, 다른 국가들에 영향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물론 기후변화나 환경파괴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중대한 문제였다.
“저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저런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까닭이 뭐라고 생각하나?”
트로츠키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인민을 먹여살리기 위함은 명분에 불과해, 이제 자기들의 세상이 왔다. 이런 거대한 전쟁을 치르고도 자신들에게 역량이 남아 있노라고 세계에 선전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세워진 국가는 지금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자신들은 이렇게 부유하다고 자랑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맞습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자본주의자들이 아무리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착시에 불과하다. 그건 그저 노동자를 착취해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모든 부를 독점시킨 결과물이니까.
하지만 전쟁의 상흔이 채 씻어지지 않은 지금, 트로츠키는 결단했다.
“우리도 대응할 만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대응할 만한 프로젝트라면......”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콩고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네, 우리도 비슷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두 가지 정도는 진행해야 인민들에게 우리 역시 아직 쇠하지 않았다는 걸 알릴 수 있어!”
사회주의의 유일한 종주국으로써의 지위가 위태롭다.
그것이 트로츠키가 내린 결론이었다.
“북아프리카에는 많은 혁명의 동지들이 있네.”
유럽이 포기한 식민지들.
도저히 채산성이 나오지 않는 북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 유럽연방은 거의 철수했고, 히스파니아의 모로코 지역과 알제리 지역 등에서 저항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식민지인들에 대한 선전이 필요한 시기였다.
“개간에는 개간이네, 이집트의 사막을 옥토로 바꾸도록 하지.”
“어떻게..... 말입니까?”
“공화국의 학자들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카타라에 대량의 물을 끌어들이면 비가 더 자주 내리게 될 걸세, 카타라는 해수면보다 100m 이상 낮은 곳에 위치하니, 운하만 뚫어내면 충분히 리비아의 사막을 옥토로 바꿀 수 있네!”
트로츠키는 회의장에 오기 전에 다 결론을 내리고 온 듯, 기운차게 외쳤다.
“그리고 아라비아 사막 역시 개간할 걸세, 저들이 하는데 우리가 못하겠는가? 사해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거대한 규모의 염호를 만들 걸세. 여기는 카타라보다 훨씬 쉽지.”
현재 공화국에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식량 문제였다. 계속해서 식량을 대량으로 수입하지 않으면 아사자가 나올 지경이었으니, 어떻게든 개간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식량증산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놈들이 하는데 비슷하게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트로츠키는 전쟁 내내 경험한 자본주의자들의 압도적인 생산능력에 경악했다.
지난 전쟁에서는 같은 편이었다고는 해도, 결국 언젠가 백척간두의 결전을 벌여야 할 상대.
정면대결이 승산이 없다면, 역시 세계혁명으로 세상을 적화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스탈린, 그 멍청이의 소비에트 연방과는 다르게 공화국은 유지되어야 한다.
위신이 깎이지 않고, 저 제국주의자들의 총본산에 맞서 당당하게 맞서야 했다.
애초에 이건 실제로 개간이 가능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게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전 세계에 선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일 뿐.
그리하여 모든 노동자-농민 계층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것이 공화국이 진정 걸어가야 할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