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68화 (168/200)

168화 모래시계(6)

“패튼이 르끌레르 장군과 협력해 북경 방면에서 포위섬멸 진행 중, 모델 장군은 적 잔존 병력을 성공적으로 각개격파해 섬멸했고, 미군 주력은 현재 쓰촨성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추가 핵탄두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4세 폐하의 전언입니다.”

“경청하겠네.”

“작작 쓰라고 합니다. 추가보급은 없을 테니 알아서 하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노력해보겠다고 전하게, 이상.”

이번에 수송된 탄두는 정확히 100발이었지만, 그 100발은 전부 용처가 정해져 있었다.

작전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추가보급이 필요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그래서 200발 달라고 했던 건데.”

“그랬다가는 황제 폐하께서 사령관님 머리에 총알을 박기 위해서 직접 오실 겁니다.”

아무리 핵탄두 사용비는 랜드리스 대금에서 상계한다지만 미군의 핵무기 남발은 심각한 게 맞았다.

“그래도 전장은 언제 큰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곳이네, 여분이 20발만 더 있었어도 작전에 더 여유가 있었을 텐데.”

다수의 전략폭격기를 이용해 핵탄두 100발을 적의 주요 집결지, 인구 밀집지역, 공업 중심지, 적 주요 방어시설 등을 싹 밀어버리고 진입한다는 계획.

미국은 아직 방사능의 위험성을 몰랐기에 밀어붙일 수 있는 작전이기도 했다.

“웨드마이어 장군, 장강으로 진격하시오, 목표 인근에 있는 적은 모두 핵공격으로 청소될 것이나, 적의 증원 등에 대해 경계해야 하오.”

물론 여기도 장강삼협이라 불리는 험준한 계곡이 있어서 대군을 밀어넣기에는 어렵지만, 그 길이 그나마 고대부터 상업용으로도 쓰인 역사가 있는 통로다.

“웨인라이트 장군은 검각으로 부대를 보내시오, 단, 이는 절대 주공이 아니오.”

검각을 면밀하게 항공정찰한 미군은 저곳에서는 도저히 보급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고, 그래도 길은 길인 만큼 중국군이 일부 병력을 할애하게 만든다는 게 목적이었다.

레인저 위주의 부대를 편성하고, 기갑부대는 거의 없이 공수부대와 레인저들 등으로 편성한 것은 당연히 성동격서를 목적한 것.

그냥 적들이 신경쓰게 하면 그만이다.

“아이젠하워, 촨산 공로로.”

이게 진짜 주공.

촨산 공로는 불과 몇 년 전에 개통된 산길이다.

좁아터져서 많은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검각이나 장강삼협보다는 훨씬 선녀같지 않은가.

차라리 맥아더는 핵무기를 한 몇천 발 보급해서 그냥 저 빌어쳐먹을 분지를 핵무기로 정화해버리고 일방적으로 승전선언하면 안 되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 넓은 분지를 다 쓸어버릴 핵무기는 없었다.

아예 핵으로 산을 날려서 길을 뚫을 수는 없을지, 그게 안 되면 하다못해 적들의 수원지를 끊어버리기 위해 티베트 방면의 고려연방군이 핵무기 등을 토목공사에 이용해 장강의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리는 게 가능할지 진지하게 연구해 보라고 공병대에 명령하기까지 했으니 더 말해 뭣하랴.

물길을 돌려서 장강을 말려버린다는 미친 계획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실제로 고려연방군에 의해 시행되고 있을 정도로 맥아더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이젠하워가 어떻게든 부대를 밀어넣어서 최소한의 평지만 확보하면, 비행장을 지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브래들리 휘하의 부대를 대대적으로 공수한다. 대부분의 병력 투입은 항공로를 통해서 이뤄져야 할 걸세.”

이 단 한 번의 작전을 위해 전 세계의 항공기들을 날 수 있는 거라면 다 긁어모았다. 심지어 패전한 소련의 항공기들도 싹 압류해서 여기 투입했고, 전쟁이 끝나려 하니 줄서기식으로 선전포고한 중립국들의 항공기들도 모조리 동원했다.

제공권을 잡기 위한 전투기, 적을 섬멸하기 위한 공격기와 폭격기, 사람을 실어나르기 위한 수송기, 병력을 수송하고 엄호하기 위한 헬기들, 장강 작전을 위한 비행정 등등 문자 그대로 날 수 있다면 뭐든 투입되는 수준이었다.

“드골 장군이 마술을 부려서 핵무기를 한 20발쯤 더 지원해줄 수 있다면 모르겠네만.”

“지금까지 쏜 핵무기만으로 귀국하면 황제 폐하께서 절 쏘지 않으실까 우려될 지경입니다.”

“아니면 대공 전하께 여쭤보기라도 하는 게......”

“황제 폐하가 거부하시면 대공 전하가 승인하셔도 무리입니다. 아마 제가 요청하는 것보다는 워싱턴 D.C를 경유해 대사관에 정식 요청을 넣으시는 것이.......”

“후, 되든 안 되든 해 보는 수밖에.”

설령 그 작전을 시행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해도 핵무기 여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쁠 게 없다.

“핵무기 지원으로 줄어들 수 있는 예상 사상자 규모와 기타 등등, 최대한 부풀려서 보내, 어차피 부대가 전부 집결하려면 3개월 정도 걸리니, 그 전까지 어떻게든 답을 받아온다.”

핵무기를 이용해서 장강의 물을 돌려버리면 장강삼협을 통과하는 일도 훨씬 쉬워질 터. 거기에 더해 쓰촨으로 장강의 물이 흘러들어가지 않으면 기후의 특성상 포위만 하고 있어도 적 병력 대부분이 말라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러고도 항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환장할 지경이었다. 보통 그쯤 가면 당연히, 당연히 항복하겠지만, 저 중국인들을 상대로 애초부터 상식 비슷한 게 통한 적이 단 한 번도 있었나?

이 대륙에 발을 딛기 전부터 상식이란 것에 숟하게 배신당한 맥아더는 이 대륙에 발을 딛은 이후에는 상식이란 개념 자체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저 한숨만 나올 뿐.

솔직히 말하자면 이쯤이면 항복할 줄 알았다.

핵을 퍼붓고, 네이팜으로 찜질을 하고, 독가스로 도배를 해도.

저놈들은 여전히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저들에 대한 이해는 이미 자폭 공격이라는 광기를 부린 시점에서부터 어려웠다.

***

1943년 9월 11일. 중국 성도.

총통 량훙즈는 벙커 안에 있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군벌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온 모든 이들이 이 안에 있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이미 죽은 게 확인됐거나, 그렇지 않아도 죽었으리라.

핵의 섬광과 함께.

억울했다.

전쟁은 그가 결정한 게 아니었다.

민족주의를 내세운 이상 그 누구도 대놓고 반대할 수 없었을 뿐이었고, 그 누구도 협상을 말하지 못했다.

협상안도 현실적인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번번이 묵살했다.

그래서 버텼다.

인민들을 죽여나가면서도 버텼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면 백인들은 그들을 남김없이 처형할 터였다. 군벌이라는 군벌들을 모조리 파멸시키려 들 터였다.

그래서, 어차피 죽는다면 싸우다 죽기 위해 발악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이렇게 돌아오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한 파멸이 목전에 닥침으로써.

‘파촉으로 도망치면 몇 년은 견딜 수 있을 줄 알았거늘.’

항공력.

이 압도적인 항공력이 전세를 바꿨다.

비행기가 뜰 만한 곳은 전부 핵으로 폭격하고, 장강과 항공로를 이용해서 보급을 받아 가면서 충칭이 함락되고, 이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

그 의미는 하나였다.

‘죽어야 하는구나.’

삶을 구걸할 방법이 없다.

살고 싶었다. 무척이나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살 길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깨끗이 죽어 후대에 명예로운 이름이라도 남기자,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만, 살 길이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수치를 당하고 죽느냐, 아니면 죽음만 당하느냐 중 하나만 남은 상황이라는 것,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반전을 말하는 순간 한간으로 몰리고 파멸할 것을 알았기에 바른말을 할 용기가 없었을 뿐.

총통? 웃기지도 않는다.

총통이야 어차피 돌아가면서 해먹는 자리, 실제로 총통이 하는 일은 명예로운 일 뿐이고, 그저 헛기침이나 하면서 자리나 따뜻하게 데워놓을 뿐, 총통이든 위원이든 간에 실질적인 권력은 군벌에서 나왔다.

돤치루이가 세웠던 군사정권의, 군벌들의 연합정권의 태생적 한계였다.

‘쑨원의 의지가 다른 누군가에게 계승되어졌다면 조금 달랐을까.’

이제 와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대동아공영......”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 그들이 꿈꿨던 새로운 시대의 천조질서는 한낱 하룻밤의 꿈으로 사라졌다.

중화라는 개념은 시궁창에 쳐박혔다. 쳐박히게 될 것이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런 걸 바라지는 않았으리라.

수백 수천 번씩 조롱당하고, 광기에 휩싸인 광인들의 광몽으로 이 모든 미래가 끝나는 것은.

그들은 그저 이 제국의 정점에 서고 싶었을 뿐이었다.

황제가 되고 싶었던 수많은 군웅들처럼.

어느 하나가 나머지를 전부 제압할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피를 필요로 했고, 국내의 피만이 아니라 국외의 피도 필요로 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보였다.

더 이상 국가는 개인에게 명령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국가는 인민들에게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의 지배력은 파괴당할 것이다.

그것이 마땅한 도덕이 될 것이다.

그들이 세계에 지은 죄에서 비롯된 새로운 시대의 도덕이 되리라.

인민은 본디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야 하거늘, 국가의 권위가 깎아내려져 인간의 밑이 되는 시대가 오리라.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될 테니까.

이제, 꿈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학살, 전쟁, 비극의 지옥도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가 되었다.

마지막 연회는 절정에 도달했다.

애첩들을 끼고 술과 음식과 마약을 실컷 즐긴 장군들 가운데, 그가 입을 열었다.

“대의를 부르짖고 일어섰으나, 힘에 부쳐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었소, 하지만, 우리가 죽은 뒤에도 인민들은 저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할 것이오, 동아의 모든 인민들이 우리를 기억할 것이오.”

거짓은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그들을 기억하리라.

최악의 학살자로, 권력의 망자들로. 파시스트들로.

음악이 끝나고, 침묵이 내려앉았을 때, 그들은 준비를 마쳤다.

이미 유언장들은 각자 준비해놓은 뒤였다.

마지막 건배 후, 한 사람 한 사람씩 쓰러져갔다.

청산가리를 탄 독주를 마신 이들은 천천히 죽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들의 죽음은 죄값에 어울리지 않게 마약과 술에 쩔어 고통 없지만 추하게 죽어갔다.

문이 잠긴 벙커에 숨을 쉬는 사람은 둘뿐이었고, 그 두 사람은 시체들이 가득한 벙커에서 미리 준비되어 있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빠져나갔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의 숨은 멎었다.

벙커의 출구는 핵폭발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역의 폭심지에 위치해 있었고, 심각한 수준의 방사선이 그들을 피폭시킨 것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벙커의 주요 기둥이 폭발과 함께 붕괴하며 내려앉았다.

천장까지 내려앉아 거대한 무덤이 된 벙커 주변에 살아돌아다니는 것은 곤충 한 마리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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