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모래시계(5)
유럽 전선의 총사령관은 유럽에서, 중국-태평양 전선의 총사령관은 미국에서 가져갔다.
이는 양 전선에서 가지고 있는 군대의 비중에서 볼 때 너무나도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전선에 미군들이 대부분인데 프랑스에서 총사령관을 가져간다거나, 전선에 유럽연방군이 대부분인데 미국에서 총사령관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당연히 반발이 일어날 테니.
그러나, 유럽 전선은 끝났다.
이제 전쟁은 태평양 전선만 남았고, 각국은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전력을 투입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조금씩 마찰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국가와 국가 간이든, 아니면 사람과 사람이든.
조금씩 파열음이 생겨났다.
공동전선의 의의 자체를 부정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이들의 신경전은 결국 ‘전쟁 후의 세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에 기초하고 있으니까.
가너 대통령과 맥아더가 불편한 사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존 낸스 가너는 전형적인 딕시크렛, 맥아더는 남부 혐오자.
거기에 직위와 직책상 충돌할 일도 잦았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치졸하게 나온다 이건가.’
워싱턴 D.C에서 지급으로 날아온 전문을 구겨버린 맥아더는 이를 악물었다.
“리지웨이 장군.”
“예, 사령관님.”
“현재 8사단의 위치는?”
“톈진 인근까지 진출했습니다.”
“패튼에게 알려, 당장 군단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베이핑까지 달려가라고!”
“예?”
광시와 귀주의 포위섬멸은 끝났다지만 장쑤와 산둥의 포위망은 아직 유지 중이다.
그 말은, 아직 적 병력이 포위된 채로 그대로 남아있다는 거고, 심지어 난징 역시 아직 교전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베이핑을 치라고?
“헨리 스팀슨, 이 작자는 대체 왜 이 안을 그대로 내려보낸 거지? 백악관이 이런 개소리를 하지 못하게 막는 게 육군장관의 역할 아닌가!”
직무유기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를 바득바득 간 맥아더는 진땀을 흘리고 있는 참모장을 호출했다.
“아이크!”
“예, 사령관님.”
“산둥성의 적 잔존병력을 최단시간 내에 청소하게, 할 수 있겠나?”
“7일 내로 완료하겠습니다.”
“브래들리 장군, 난징을 청소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장쑤 포위섬멸전을 끝내라는 게 아니네, 난징과 상하이만 확보한다고 가정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적의 저항이 적다고 가정해도 2개월은 필요합니다.”
“2개월, 그래, 2개월....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괜찮겠군,”
이를 부드득 간 맥아더는 고개를 돌렸다.
“드골 장군, 베이핑으로 향하는 육군 제 3군에 대한 프랑스 1군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겠소?”
“르끌레르 장군에게 확인해보아야겠지만, 그가 거절하지는 않을 거요.”
“모델 장군, 하지 장군의 24군단과 워커 장군의 20군단을 독일 중국원정군에 임시로 배속할 테니 산시 방면의 적 잔존병력을 고려군과 협력해서 섬멸해주시오.”
“알겠소.”
“쓰촨 공략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쓰촨성은 후방이 안정된 뒤에, 그리고 프랑스에서 폭탄이 더 온 뒤에 하겠소.”
맥아더는 수십 장의 지도를 보고, 지형도를 분석한 끝에 쓰촨 공략에 대해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저 빌어먹을 산간지대로 진입하려면 어지간한 대규모 상륙작전과 맞먹는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준비가 급하게 될 리가 없으니, 일단 놔두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프랑스에서 핵무기가 도착하면 쓰촨성을 핵으로 찜질해버린 뒤에 진격할 심산이었던 것도 있었다.
“사령관님.”
아이젠하워가 나직이 물었다.
“D.C에서 무슨 명령을 내렸습니까.”
“공세 작전을 지양하고 고려군을 기다리라는군.”
“.......예?”
“자기들 영토에서 20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적의 주요 도시를 공격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놈들을 기다리라는군. 그들을 선두로 세워서 중국을 잡으라는 거지.”
“비현실적입니다. 고려군은 제대로 된 무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유럽 기준으로는 러시아 공화국이나 이탈리아, 스웨덴군의 무장수준과 거의 비슷하지. 보조전력이면 모를까 단독으로 한 개의 전역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해, 인구도, 훈련도도, 무장도.”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받아먹고 있다고는 해도 그 조그만 나라에서 100만 대군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 100만 대군으로도 병력이 모자라다고 한탄하고 있고, 그 국경의 상태를 보면 그 말이 맞다고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사실상 중국의 북쪽 국경 전부와 서쪽 국경 절반을 혼자 커버하고 있는 데다 본토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 본토와 마주보고 있다.
게다가 그 지역들에 부대를 배치하기 용이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철도도 전쟁 터진 뒤에나 부랴부랴 놓아서 이제야 거의 다 놓아간다던데.
나라는 큰데 인구가 너무 적고 또 가난하기까지 하다.
유럽 전선 끝나고 소련에서 전리품이랍시고 우랄 산맥으로 옮겨놓은 공장시설 좀 뜯어갔다지만 그게 당장 도움이 되기는 쉽지 않을 터.
그래서 맥아더도 그럭저럭 저 고려인들의 밍기적거림을 이해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유럽 연방군을 앞에 내세우라고 하면 납득이라도 갔겠지.”
미군보다 무장이 잘 되어있고 소련과의 전쟁에서 고도로 훈련된 정예병력들로 구성된 유럽연방군은 미군이 얻어터지면서 전훈을 배우는 동안 맹활약했다.
이건 명백한 견제 행위였다.
이 더글러스 맥아더의 명예에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추한 견제 행위.
어지간한 놈이 그랬다면 그냥 넘겼으련만, 그가 가장 혐오하는 딕시크렛이며, 동시에 대통령이기까지 한 작자가 이딴 식으로 나오면, 결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
“저들의 지휘관은 조지 패튼, 그리고 우리가 맞닥트려야 할 적 부대는 미군의 3군단, 군단장 이름은 제임스 밴 플리트라고 하더군.”
“흠.”
린뱌오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펑더화이와 가오강을 보았다.
“마오 동지께서는 특별한 명령이 있으셨나?”
“없으셨네.”
“현장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뜻일까.”
획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아는가, 이걸 가지고 나중에 트집을 잡을지.
그러나 애초에 선택권이 없었다.
“베이핑을 무대로 기동전이라.”
“화북 전역이 전장이 될 거요.”
“방독면은?”
“충분히 배급됐으리라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정치장교들을 통해 현장에서의 임시 조처 방법은 전파해두었소. 그걸로 안 되면..........”
그런 응급조치가 통하지 않는 수준의 독가스면 애초에 중국제 방독면으로는 답이 없다.
그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독가스 공격을 이뤄지지 못하게 하려면 전장 자체를 계속 옮기고, 적들 사이로 섞여들어 적들이 투사 수단을 자주 옮기고, 사격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야 하지, 그러니.....”
기갑차량이 없거나 부족한 중국군에게 있어, 기동전은 보병의 발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습.
미군도 공습에 지긋지긋해했지만, 중국군도 공습 때문에 곤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홍군의 고위급 간부들이 미군의 공습에 폭사한 일들도 제법 있었으니까.
즉, 주간작전은 불가능.
야간에, 장거리를, 고속으로 행군해야 하며, 은폐를 유지해야 한다는 미친 조건.
그러나 중국공산당에는 그런 미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예병력이 있기는 했다. 그들 덕에 오랜 기간 군벌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우린 다 죽네.”
하필 장소가 좋지 않았다.
철저한 게릴라 소탕전으로 밀려나가고 밀려나가다 보니 온 화북.
남북이 다 전선에 퇴로는 끊겼다.
그들의 핵심 전술은 게릴라전이었지만, 문제는 게릴라도 산이나 민가 등이 있는 등 다양한 조건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게릴라들에게 지겹게 당한 연합군은 아주 잔혹한 토벌전을 벌였다.
상대가 청야전술에 더해 압도적인 물량으로 섬멸전을 가하고, 외부지원을 올 세력은 전부 박살나고 있으며 중화기로 거점들을 산산조각내는 방식으로 대응하자, 인민과 외부지원 양자 모두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된 홍군은 문자 그대로 말라죽을 뻔하고 간신히 화북으로 도망쳐 왔다.
화북에서 무너진 군벌들의 잔당들을 재규합해 수십만 대군을 갖추게 되었지만, 무기도, 탄약도, 식량도 부족했다.
이 상황에서 탈출한다면 인민들 사이의 평판에도 치명타를 입고, 위신의 복구는 거의 불가능할 터.
즉,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싸워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싸우는 동안에 퇴로가 닫혀버릴 건 뻔한 일.
‘아마 마오 동지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시는 것도 그 이유겠지.’
질 게 뻔해 보이니 책임을 여기 있는 자들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책임을 질 발언을 전혀 하지 않는 행동.
정확히는, 도망도, 돌격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총대를 멜 수밖에 없는데 본인이 매지 않기 위한 행동이다.
도주한다고 해도 ‘이놈이 참언을 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라고 덮어씌울 수 있고, 지면 ‘이놈이 잘못 지휘해서 졌다!’ 혹은 ‘이적행위를 해서 졌다!’라고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최고지도자로써 마오쩌둥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아랫것에게 적당히 뒤집어씌우고 잘라내는 것과 본인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건 이야기가 다르니까.
하지만 마오를 따라 순장당하고 싶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이들은 이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린뱌오의 머리는 그야말로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어차피 중화민국은 망했다, 그러나 영원히 망할쏘냐? 누군가는 다시 이 나라를 세워서 그 정점에 앉을 것인데, 그렇다면 연합군이 누구를 지지하겠는가.’
당연히 입 안의 혀처럼 굴 놈들을 지지하겠지.
‘적에게 강한 반격을 가해 진격을 멈춰세우고, 마오를 묶어서 넘기고 귀순하면?’
그럴 듯한 생각 같아 보였다.
사실, 이게 아니면 어느 쪽이 되든 간에 목이 날아갈 게 뻔했기 때문에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자기도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홍군의 전력과 자신의 지휘관으로써의 역량을 되도록 크게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 번, 단 한 번 공세를 가해서 적의 발목이라도 붙들고 늘어진다, 쓸모없는 사냥개는 솥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그 사냥개가 아직 쓸만하다면 굳이 삶지는 않는다는 의미 아니던가.’
몸갑을 올리고, 연합군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어필한다.
특히 상대가 미군이라면 더욱 좋다. 연합군의 숫적 주력을 차지하고 있고, 최고사령관도 미국인 아닌가.
그 공세 한 번으로 홍군의 70만 대군이 깡그리 다 죽는다고 한들, 일단 수뇌부만 살아남으면 상관없다.
어차피 인민이야 중원에서는 끝없이 솟아나는 것이었고, 미군이 넘쳐나도록 가지고 있는 밀가루 한 자루면 그게 매국행위든 애국행위든 간에 신경쓰지 않고 군인이 될 자들은 중원에는 차고도 넘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