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66화 (166/200)

166화 모래시계(4)

렌윈 인근 해상, 중화민국 영해. 레드 비치.

적 자폭기만이 아니라 중국이 최근 개발한 ‘정상적인’ 쌍발 전투폭격기의 공격까지 간간이 날아오는 탓에 눈이 시뻘개진 견시들과 전탐병들이 전투를 준비하는 가운데, 미 해군의 군함들은 유유히 바다를 갈랐다.

상하이를 공략하는 아군을 배후에서 지원하기 위한 상륙작전.

적의 해군력은 일소되었으니, 상륙만 하면 된다.

“그 상륙이 어렵지.”

이 상륙을 위해 수백 개의 프로펠러가 장비되고 상륙하자마자 떨어져나가도록 고안된 플로트를 양측에 장비한 경전차들과 차륜형 자주포, 상륙전을 위해 개발된 수륙양용전차 및 장갑차들이 수송선에 실려 있었다.

그러나, 적들은 이미 상하이 해안에 대량의 기뢰를 깔아둔 상태에 해안포들도 다수 있었다.

-콰아아앙!

전함의 일제포격은 순식간에 해안을 연기로 가득 메웠다.

적 해안포진지를 항공력과 함포를 총동원해 하나하나 제압하고, 소형 선박들을 내보내서 기뢰를 소해해 가는 와중에도 시간은 쉴새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러다 육군 놈들이 먼저 상하이를 함락시키겠군.”

맥아더의 작전, 렌윈강 상륙 작전.

상하이와 난징을 공략하는 동안 렌윈강에 상륙, 쑤저우를 목표로 하는 공세를 가해 장쑤성에 한가득 모여 있는 적들을 일거에 포위섬멸한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차라리 칭다오에 상륙할 것을. 거긴 이미 교두보가 있잖나.”

물론 그냥 해 본 소리에 불과했다.

칭다오 시 주변에 수십만 적 병력이 집결해 있고. 이번 작전도 애초에 장쑤성만이 아니라 산둥반도 내에 있는 적 병력도 같이 포위섬멸하는 게 목표였다.

돌출부를 통째로 잘라내는 게 쉽겠는가, 돌출부를 정면으로 밀어내는 게 쉽겠는가.

그걸 생각하면 상륙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해군 제독들에게는 더욱 짜증날 문제는, 이 상륙작전을 위해 각 함선들의 지휘권을 땅개들이 넘겨받은 것이었다.

상륙 전후 3일간만이라지만 해군 입장에서는 절대 마음에 들 문제가 아니었다.

“상륙정들이 발진합니다!”

선두는 전차들이었다.

플로트를 단 전차들과 보병들을 태운 상륙정들, 수륙양용 전차와 장갑차들이 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곧장 대응사격이 날아들었다.

물에 둥둥 떠서 전진하던 수륙양용전차 한 대는 장착된 90mm 포를 단 한 발도 쏴 보지 못하고 뒤집혀 가라앉았다. 차라리 대전차포를 맞았다면 도탄이라도 되었을 것을, 해안포가 인근에 떨어진 탓에 전복되는 건 답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화력에도 불구하고 몇몇 전차와 상륙정들이 땅에 닿았다.

문제는, 부대 몇이 섞였다는 것이었다.

토치카 대부분은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해안에는 곳곳에 크레이터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해변에 괴상한 생김새의 쇳덩어리가 기어올랐다.

프랑스군의 상륙장갑차 한 대가 멈춰서고, 병사들을 풀어놓았다.

“뛰어! 뛰라고! 컥!”

장교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

그만 쓰러지는 게 아니었다. 쏟아붓는 기관총탄은 사신의 낫이 되어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쓸어담았다.

“계속 움직여!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아군 전차다!”

“저거 전차 아냐! 자주포가 왜 벌써......”

설마, 전차들은 이미 다 당했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155mm 포탄 한 방이 토치카에 적중했다.

그리고 동시에 포탄이 날아들어 대폭발이 일어났다. 포탄 가대에 포탄이 적중한 게 분명했다.

그 뒤를 따라 전차 몇 대가 더 양륙되었다.

쐐기꼴의 포탑을 가진 특이한 중전차는 경사장갑에 힘입어 적의 포탄을 도탄시키면서 전진했다. 몇몇 전차는 재수없게 드러난 얇디 얇은 측면을 피격당해 격파당했지만, 나머지 전차들은 차라리 자주포에 가까운 160mm 주포를 발사했고, 상륙전에 쓰기 위해 대건물용 고폭탄을 꽉꽉 채워넣은 전차가 쏜 고폭탄은 콘크리트 벽을 산산조각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상륙했어야 할 미군과 프랑스군이 뒤섞여 상륙한 탓에 혼란이 심했지만, 그래도 목표는 명확했다.

일단 교두보를 장악한다.

해안에 올라선 납작한 형상의 경전차는 곧장 거추장스러운 플로트를 분리하고 75mm 주포를 겨누어 쏘았다.

벙커 안에 있던 대전차포가 경전차의 전면장갑에 적중했지만, 포탄은 그대로 탄자가 깨져나갔고, 포격을 견뎌낸 경전차는 75mm 주포를 몇 차례 발사해 벙커를 붕괴시켰다.

그 다음으로는 155mm 포를 단 자주포의 직사사격과, 90mm 수륙양용전차의 포격도 가해졌다.

몇몇 전차들은 지뢰나 포격에 파괴되었지만, 나머지는 보병들의 엄폐물이 되어 조금씩 전진해나갔다.

M29 계열의 전차들 여러 대가 죽을 힘을 다해 돌진한 상륙정에 의해 해안에 내팽겨쳐지다시피 하면서 상륙했고, M92 자주포가 240mm 포를 직사해 토치카 하나를 콩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기관총! 기관총 사격이다!”

“전차에 붙어!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해!”

“전방에 적 탱켓!”

-타타타타타타타타타!

참호 안에 숨은 채 기관총을 쏟아내던 탱켓을 향해 포탄이 떨어졌다.

하지만 괜히 전차호 안에 매복한 게 아니라는 듯, 그리고 썩어도 장갑차량이라는 듯 멀리서 쏜 총탄 정도는 막아내고 포탄은 맞추기 어려웠기에 그 탱켓, 아니, 기관총 진지는 미 해병대의 발을 묶었다.

전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콰앙!

단 일격에 산산조각나는 적 탱켓을 보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들이 존재를 알지 못했던 다른 탱켓이 45mm 경박격포를 수평사격하며 저항했지만, 미군의 전차는 애초에 대전차포도 아니고 60mm도 안 되는 수형박격포 따위의 직사포격에 쉽게 파괴될 존재가 아니었다.

고폭탄 사격에 아예 전복되며 무력화된 탱켓을 지나친 미군 보병들은 폭약을 쑤셔넣어 철조망과 장애물들을 날려버렸고, 전차 몇 대는 아예 철조망을 비롯한 장애물들을 깔아뭉개고 통과했다.

“전진! 전진한다!”

프랑스군의 FAB 시리즈를 참고해 개발된 불펍 소총인 스프링필드 XM22를 든 병사는 완전자동으로 60발짜리 탄창을 비워버렸다.

거의 보지도 않고 쏴대는 데다 애초에 신형 플레셰트 탄의 특성상 탄이 마구잡이로 휜 탓에 단 한 발도 맞지는 않았지만, 전기톱 소리를 낼 만큼 빠른 연사속도로 인해 적어도 적 기관총 사수들의 사격을 저지할 수는 있었다.

개머리판에 두 개의 탄창을 앞뒤로 이어붙인 모양새의 탄창을 다시 꽃은 병사는 곧장 유탄발사기를 쐈다.

40mm 유탄이 펑펑 터지면서 적 기관총진지를 어느 정도 제압한 병사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전진 비슷한 걸 시도라도 할 수 있었다.

미군과 프랑스군의 전차들이 앞서나가고, 보병들은 보유한 화기를 종류와 구경에 관계없이 모조리 쏴대면서 전진하며, 구축함들은 좌초를 무릅쓰고 직사포격을 퍼부었다.

전차들은 포탄과 기관총, 화염방사기를 비롯해 보유한 모든 종류의 무기를 아낌없이 퍼부어 가면서 토치카를 제압했고, 보병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넘고 넘어 간신히 해변에 삼색기와 성조기를 휘날릴 수 있었다.

시체를 켜켜이 쌓았지만, 첫 번째 교두보는 확보되었다.

조립식 항구가 배달되고, 적 후방에 강하한 공수부대원들이 재집결하면서 전선은 안정회되어갔다.

그 와중에도 중국군은 계속해서 공세를 펼쳐 왔지만, 기갑병기도, 중화기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들은 고립되어 있던 공수부대조차 탄약이 있는 한은 어렵잖게 격퇴할 수 있었기에 전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

워싱턴 D.C.

가너와의 회견을 마친 조제프는 한숨을 쉬었다.

“에르망두아 장관.”

“예, 대공 전하.”

“저 가너.. 가너 대통령이 오래 자리를 지키는 건 좋지 않을 것 같군요, 미국을 위해서라면 말이죠.”

“제국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의미군요.”

“그렇습니다.”

조제프는 멀어져 가는 백악관을 바라보았다.

“저 자는 고립주의자, 전쟁이 끝난다면 필시 과거처럼 알 속으로 들어가려 할 겁니다. 고립주의라는 알 속으로요.”

그러나 그 알은 깨졌다.

미국인들은 그 방향성을 이미 깨달았고, 레일 위에 올랐다.

결국 미국인들은 다시 세계에 개입하게 되리라.

“그리고 제국은 거기에서 미국의 가장 큰 적수가 될 터, 가너 대통령이 그 시간을 벌어 준다면, 제국에게는 좋은 일일 겁니다.”

“말에 묘하게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군요.”

“....... 저 자는 전형적인 딕시크렛. FDR이 돌려놓은 미국 민주당에서도 부외세력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이 있다고 해도.

과연 그것만으로 당의 반도 아니고 3분의 1에 간신히 미치는 지지세력만을 가지고.

남부 주들만 가진 상태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FDR이 죽은 이상 공화당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 미국의 다음 대통령은 공화당에서 나오겠지, 공화당이 고립주의자들이라고 한들 이 상황에서 전쟁에서 빠지네 마네 할 리도 없고.’

간단한 계산이었다.

“현재 공화당 경선이 진행 중이죠. 그리고 그 후보는....”

“대사관에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토마스 듀이가 가장 유력한 후보랍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가 다음 대통령이 되겠군요.”

민주당이 가너 외에 다른 후보를 내세우기는 어렵다, 현직 대통령이니까.

하지만 이미 좌향좌해버린 당의 골수 지지층의 3분의 2를 잃고 시작하는 민주당이 야당 신세에 질릴 대로 질렸을 공화당의 대대적인 반격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어떤 집권당도 지지자의 3분의 2가 빠져나갔는데 타격을 안 받을 수는 없다.

그건 상식이다.

그러나 가너는 눈치도 없고, 인간미도 없는 통나무 같은 양반, 지지율 따위 신경쓰지 않을 인물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조제프는 그가 단독 강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설마 표트르 3세마냥 강화한 뒤 중국 편으로 참전이라도 하겠냐마는, 그에 준하는 짓거리는 충분히 자행할지도 몰랐다.

물론, 이제 와서 중국이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는 데다 미국에 선빵을 친 국가를 그렇게 놔뒀다가는 국민들의 분노를 감당해낼 수 없겠지만, 역사 속, 세상을 진짜 지배했던 지도자들 가운데 그 이상의 미치광이짓을 한 군주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가너는 대통령이지만, 그 대통령직은 기본적으로 선출된 것이 아닌 승계받은 것.

게다가 가너를 데려간 것도 결국 FDR이 자기 죽을 줄 모르고 그저 당 내를 장악한 딕시크렛 세력들과의 타협을 위해 어떻게든 노력한 결과였으니 애초에 부통령에게 대통령의 자질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다음 선거까지 미합중국의 꼴 참 볼 만 할 겁니다. 이번 공세가 종료되면 아마 맥아더 장군도 귀국할 텐데.......”

대통령이 죽었는데 사령관이 한 번쯤 귀국 안 하겠는가, 그 누군가의 말마따나 ‘미국의 카이사르’,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의 정치군인이 대통령 유고 및 부통령 취임이라는 초유의 사태 와중에도 D.C에 얼굴을 안 비춘다고? 차라리 내일부터 펭귄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하는 게 더 말이 될 것이었다.

“맥아더 장군과 가너 대통령이 충돌하면.”

“최악의 경우 대통령 직권으로 맥아더를 해임할 수도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정치적 파장이 몰아치겠지만,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잖습니까.”

“총사령관이 피치 못할 이유도 아닌데 자주 교체되는 건 전쟁에서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닌데 말일세.”

“오히려 기회 아닙니까? 우리 측에서 총사령관 자리를 가져올 기회 말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