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모래시계(3)
이 전쟁이 끝나면 중국은 원 역사의 북한보다 못한 꼴이 될 거다.
이유야 당연히 중국이 핵개발을 하도록 우리가 놔둘 리가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고 있는 게 FDR이다.
그는 중국을 쪼개서 미합중국의 가장 큰 시장을 말아먹고 싶어하지 않아했으니까.
그랬기에 온갖 계획을 세우고, 방해공작을 준비하고, 갖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건 사람이되 이루는 건 하늘이라고 했던가.
세상은 내가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또 다시 크게 변하려 하고 있었다.
***
“집무 도중 갑작스럽게 쓰러졌다고 합니다.”
“....... 회복할 가망이 있다고 하나?”
“거의 없습니다. 현재 미합중국 행정부에서는 부통령 존 낸스 가너의 대통령직 승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존 낸스 가너.
미국 부통령이자, 원 역사에서 히틀러가 기대했던 표트르 3세라 불렸던 인물.
고립주의 성향이며, 친나치 성향이었다고 평가받는 자.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도 이는 명백한 낭보였다.
미국이 고립주의로 돌아서면, 우리가 구대륙에서 북 치고 장구 쳐도 아무 소리 못할 테니까. 국내와 남미에 산적해 있는 똥이나 죽어라 치우라지.
다만, 미국이 없다면 공산주의의 확산을 우려하기는 해야 할 텐데. 현재 공산주의는 투톱 체제다. 소련은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그로기 상태가 되었고, 전 세계의 공산주의자를 지원할 사람은 역시 트로츠키뿐.
그런데 트로츠키는 공산당 사상을 왜곡시키는 과정에서 이슬람을 끌어들여야 했고, 이로 인해 트로츠키주의는 이슬람과 불가분의 사상이 되었다.
총칼과 폭력으로 이루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슬람=트로츠키주의로 바뀌었고, 거기에 북아프리카에도 종교를 무기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결국 이슬람교도들에게만 선교가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지.’
현 상황에서 러시아 공화국 밖에서 이슬람교도들이 유의미한 숫자로 있는 국가라고 해 봤자 아프리카 일부와 동남아시아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 혼란 속에서 추방당하든 학살당하든 하면서 사라졌거나 애초에 없거나, 유의미한 숫자를 유지하지 못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트로츠키주의로 공산화가 되어봤자 북아프리카와 동남아까지다. 더 잘 쳐주면 이스라엘도.
‘그리고 그렇게 되면, 언젠가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트로츠키주의 공산주의와 불가분의 관계가 될지 모르지.’
그게 무너질지 아닐지는 모른다. 종교와 융합한 이념이란 게 어떻게 돌아갈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원 역사와 그대로 돌아가지는 않겠지.
“다음 대통령 가너에게 미리 접촉해두고... 아니, 당연한 일은 굳이 지시할 거 없겠지, 외무부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아직 유럽연방 행정부가 아직 자리를 잡지는 못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려나. 유럽연방 명의? 아니면 프랑스 제국 명의? 유럽연방 명의로 하는 게 더 낫겠지.
***
“토스카나 1방공여단, 지금 착임했습니다.”
이탈리아군의 첫 전투부대의 도착이었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미치겠네.”
“대체 저건 왜.......”
“차라리 저 놈들 그냥 보병으로 투입하면 안 되나.”
무장 수준 때문이었다.
이탈리아군 예하 토스카나 1방공여단의 주장비는 ‘단발’식 24mm 대공포였다.
딴에는 적 항공기를 ‘저격’하겠답시고 나름 24x102mm 포탄에 독일에서 들여온 미넨게쇼스 기술을 적용해 만든 ‘대공 저격포’라지만 일단 대공포의 주 용도가 전선에서 달려오는 적 보병들을 긁어주거나,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적 항공기들에게 마구 갈겨서 최대한 많이 떨구는 용도로 운용되는 상황, 대구경 대공포도 아니고 소구경 ‘단발’ 대공포 따위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물건 그 자체였다.
“군단장님, 토스카나 1여단은 방공임무에서 해제시키고 대전차임무로 재배정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방공임무에는 이딴 장비는 전혀 쓸 데가 없습니다.”
제트전투기에는 맞지도 않고, 극동에서는 한 발이라도 많은 포탄을 쏘는 게 중요하다. 차라리 보병용 기관총이 더 나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24mm 대공포 정도로도-유럽 기준이라면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중국군이 굴리는 트랙터 수준의 탱켓 정도는 제압할 수 있다.
물론 그조차도 많지 않지만. 정말 다른 수단이 전혀 없다면 몰라도 저런 부대를 방공전선에 투입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무슨 모든 부대가 탄약이 동시에 다 떨어져서 이탈리아군에게만 방공을 맡겨야 한다면 모를까.
문제라면, 이런 식으로 보급만 잡아먹고 쓸모가 없는 부대들이 몇 뭉텅이 더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이유였다.
“이탈리아군이 다 이 모양이라면 이탈리아군에게는 후방 경계를 주로 맡기는 쪽으로 가는 게 좋겠군.”
“이탈리아군 지휘부가 반발할 것 같습니다만.”
“그럼 한 번 최전선에 쳐박아서 저놈들 공세를 한 번 몸으로 받아내라고 하지.”
사기가 높으면 뭐 하는가, 장비 자체가 구닥다리인데.
“그렇다면 서부에 배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부라.”
주 전선이자 작전 목표인 해안을 따라 올라가 적들을 내륙으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서부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졌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윈난성과 광시, 귀주성을 확보하는 공세가 예정되어 있기는 했으나, 광둥을 점령한 연합군의 공세는 푸젠, 저장, 장쑤, 산둥을 거쳐 화북까지였고, 장시나 후베이, 안휘, 허난 등은 우선도가 더 떨어졌다.
문자 그대로 전 국토가 쑥밭이 되어야만 중국인들이 굴복하리라고 판단한 최고사령부의 계획안이었다.
“그 망할 놈들이 허베이와 산시 성만 공격했어도 우리에게 오는 압력은 한참 줄었을 텐데 말입니다.”
화북과 산시 등은 중국의 공업지대 대다수가 위치한 곳.
당연히 북방에 아군이 있으면 그 부대가 중국의 공업지대를 쑥밭으로 만들어줘야 하건만, 좀 남하하나 싶더니 병력도 물자도 부족하다면서 주저앉기를 반복하니 멱살을 쥐고 탈탈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령관님, 차라리 항공대를 대거 고려로 보내서 산시와 화북에 전략폭격, 내지는 핵공격을 가하는 방안은 어떻겠습니까?”
“.......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되긴 했군요.”
이제는 중폭격기 상대로 충돌 공격까지 감수하며 공격해 오는 적들 때문에 전략 폭격의 난이도는 배로 뛴 상태, 피해도 적잖았다.
저놈들 중 하나만 편대 사이에 난입해도 대폭발과 함께 반경 1km 범위의 살상지대가 만들어지는 판이었으니 오죽할까.
“이탈리아군은 일단 계산에서 빼도록 합시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상하이 공략전이니까요.”
중국은 넓었다.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도 연합군은 피똥을 싸야 했다.
그런데 광저우에서 상하이까지의 거리와, 상하이와 북경까지의 거리가 비슷하다.
게다가 진격하면 진격할수록 중국군이 구축한 방어선의 밀도가 더 두터워지고 있는 게 계속해서 올라오는 보고로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싸움보다, 앞으로 이어질 싸움이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 명백하다.
“상하이를 점령하고, 즉시 전력을 동원해서 적들의 수도, 난징을 칩니다. 적 정부의 주요 관료들은 이미 난징을 탈출했다고는 하지만, 수도 함락의 상징성은 결코 적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이번 전쟁은 사상의 전쟁이다.
저들의 대가리 속에 있는 사상을 뽑아내주려면 그 방법은 하나, 압도적인 폭력뿐이다.
압도적인 폭력으로 중화라는 이름을 영원히 금기시하게 만들고, 중화사상 자체를 소멸시키고, 한족이란 개념 자체를 인위적으로 파멸시킨다.
원 역사에서 독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독일주의가, 게르만 민족주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인들을 영원히 거세시킨다.
그것이 정치인들의 결정이었다.
“르끌레르 장군, 드골 장군.”
“말씀하십시오.”
“본국에 핵탄두를 더 요청할 수 있겠소?”
더글러스 맥아더는 차분한 표정으로, 하지만 그 눈빛은 숨기지 않은 채 물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42발 정도. 중국의 모든 주요 도시에 핵을 갈겨놓으면 일이 편하겠소만.”
맥아더의 계산은 간단했다.
적들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니, 그 사람을 없애버리려면 인구 밀집지역에 핵을 ‘아낌없이’ 퍼부어 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문제도 있었다.
‘귀국해야 하나.’
루즈벨트가 죽어가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은 과연 어떤 방침을 세울 것인가.
그는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써 이런 문제들에 대처해야 할 책무가 있었다.
그때, 부관이 들어왔다.
“뭔가?”
“사령관님, 조금 전, 대통령 각하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입니다.”
“...... 그래, 그렇게 됐군.”
맥아더는 정치인이 아닌 군인이었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고,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미합중국의 고급군인이란 정치랑 엮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니, 미합중국에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어느 나라든 별을 달면 반쯤은 정치인이 되어야 하니까.
그렇기에, 이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새 대통령은.... 당연히 존 낸스 가너.’
다른 별명은 선인장 잭.
고립주의자지만, 이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 이미 미국은 전쟁에 확실하게 끌려들어갔으니까.
그리고 열렬한 인종차별주의자에 눈치는 쥐뿔도 없으며 온갖 문제들이 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대통령으로써 자격미달이고 비판받을 요소가 많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으니까.
‘가너는 뉴딜 연합을 유지하기는커녕 뉴딜에 적대적이니 연합을 통째로 자기 손으로 때려부술 자다.’
FDR은 문자 그대로 정치의 괴물이었지만, 가너는 아니다.
그런데 FDR이 하던 대로 하려고 했다가는 찢겨질 거다. 맥아더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D.C가 혼란에 빠지고, 대통령이 제대로 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그 경우, 그는 D.C의 압박을 받지 않고 상당히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합중국에서 문민통제의 원칙은 지엄하지만, 모든 것을 정치인들의 손에 맡겨만 두었다가는 될 일도 되지 않는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일관적인 움직임이 중요하다.
이는 오롯이 미합중국의 국익을 위해서다.
다른 놈들은 다들 저능해빠졌으니 어쩌겠는가.
능력이 있는 자는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니까.
‘FDR이라면 모를까, 가너 그 머저리가 다 짜놓은 판을 망쳐놓게 놔둘 수는 없지.’
멀리 보는 사람은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 아니던가.
적어도 역사는 그의 판단을 인정해주리라, 설령 당대의 멍청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것을 알고 보는 미래의 후손들은 이 시대에 깨어 있는 자라고는 이 더글러스 맥아더 한 명밖에 없었다는 것에 안타까워할 터,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가오고 있는 파국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