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64화 (164/200)

164화 모래시계(2)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마냥 웃을 수 있는 나라는 아무도 없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먹고 북미를 통일했으며 군수산업 등으로 경기를 활성화하며 디플레이션을 끝내고 활황에 돌입했지만 멕시코에서는 여전히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캐나다는 그래도 어찌 수습이 됐다지만, 텍사스 남쪽으로 가면 연방정부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독립세력과, 그걸 때려잡으려고 탱크를 끌고 간 미군의 총격전은 하루에도 몇백 단위의 사상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도 미국 입장에서는 개미 눈곱만큼이나 다행인 점은 그 사상자 중 미군의 비율은 매우 적다는 것?

대부분은 현지인들이었지만, 그럴수록 멕시코인들의 저항은 완강해졌다.

그렇다고 멕시코인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기도, 역으로 독립시켜주기도 어려운 판. FDR은 멕시코의 병합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걸 포기하는 순간 국뽕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할 국민들이 들고일어날 거고, 탄핵은 아니어도 3선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기껏 징집한 천만 대군 중 수십만 단위의 군대를 다시 멕시코에 박아둬야 했다.

그리고 그 부대가 단지 주둔만 하느냐? 교전도 하고 사상자도 꾸준히 내고 있다.

쿠바 같은 경우는 섬 지역인지라 불순분자들을 충분히 쓸어낼 수 있었지만 멕시코는 진짜 답이 없는 지역.

당장 파나마 운하보다 니카라과 운하가 먼저 착공된 것도 파나마 운하가 테러나 적 공격에 취약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된 탓이었으니 말해 뭣하랴.

그리고 유럽.

헤르만 괴링과 하인리히 힘러가 죽이 맞아서 폴카춤을 추면서 유럽 연방의 창설에 동의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술술 풀린 건 아니었다.

“민주주의 원칙은 나약한데 그걸 굳이 해야 합니까?”

“독일인들이 그런 간판이라도 안 걸면 유럽연방을 받아들이겠소?”

“예? 반발하는 운터멘쉬 따위는 그냥 다 죽여버리면 그만입니다.”

뽕에 취해 뇌의 인지능력이 마비된 건지 힘러는 그냥 4개국을 통일시켜버리면 되지 않느냐는 한심한 소리를 해댔지만, 일단 4개국이 자국의 정부를 유지한 상태로 외교와 군사 노선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에 맞추어 할아버님은 군권과 외교권을 공식적으로 프랑스 의회에 이양했고, 이건 몇 시간만에 유럽연방 의회로 권한이 넘어갔다.

독일군은? 과거의 ‘독일 제국군’은 해산되어 SS에 흡수되었고, 슈츠슈타펠은 신 연방군에 자발적으로 합류할 기회를 준 뒤 맨 섬으로 표표히 떠나갔다.

네덜란드군이야 이미 박살난 상태라서 편입이고 뭐고 육군 내에 네덜란드 군단 하나로 타협을 했지만, 문제는 이탈리아였다.

프랑스가 어르고 달래서 편입된 이탈리아 연방의 국방은 무기 체계도, 지휘체계도 전부 다른 수많은 주방위군들로 수행되고 있었고, 프랑스는 ‘어차피 니들 약하잖아. 그냥 군대 간판 떼고 자치경찰 겸 국가헌병대로 개편하면 어때?’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연방에서는 ‘네덜란드 장성들도 최고사령부 내에 지분이 있는데 왜 우리는 안 되냐!’고 항의했고, 이에 프랑스는 ‘그럼 니들 대가리부터 일단 하나로 통일하고 와, 그럼 인정해드림.’이라고 답했고, 이에 그간의 문제가 폭발한 이탈리아군은 그대로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하느라 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의회 구성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우리 이탈리아 연방은 연방 해체 후 각 주들이 자발적으로 편입되는 방식으로 유럽연방에 가입하는 방법을 제안함.

-도르신? 야, 그럼 니들 상원 투표권은 어떻게 행사할 건데?

-당연히 1주당 1표지.

-프랑스랑 독일, 네덜란드가 각자 투표권 하나씩 가져갈 건데 니들 진짜 미쳤냐?

하원 투표는 인구비례로 뽑힌 의원들이 1인 1표로 행사하니까 상관없지만 상원 투표는 1국 1표로 행사되는데, 자기들이 머릿수로 밀어버리겠다고 하자 뚜껑이 열린 프랑스와 독일은 곧장 답을 보냈다.

-니들 그딴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신성로마제국 시절로 돌아가는 수가 있다.

-그만해 미친것들아, 프랑스 의장국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1표씩 총 4표로 결정할 거임, 추후 가입하는 국가 있으면 걔들도 1표씩, 이의 안 받음.

-에이 그래도 초기 4개국에게는 뭔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할 수단이 필요하지 않겠음?

-이익 보호고 나발이고 4개국이 모인 데서 뭐 거부권이라도 달라고?

-안 됨?

-야, 4개국이 모인 데서 4개국 다 거부권 가지자고? 미쳤냐?

-그럼 어쩌라고?

-애초에 유럽연방의 건국 의의는 처음도 반공, 끝도 반공임, 빨갱이들의 침략을 막고자 만든 건데 그냥 거부권 없이 나가자, 대신 이 4개국 정부가 모여서 헌법을 만들자고.

-핵무기 사용권도 공동으로 나눠가지는 거 맞지?

-맞긴 한데 이건 어디까지나 거래다, 보나파르트 왕조가 실권 다 내려놓고 유럽 연방의 명목상 국가지도자가 되고 수도도 파리에 두는 조건임. 나중에 딴소리 하면 뒤진다 진짜.

-연방의회는 양원제로 하기로 했으니 그대로 가고, 법률은 어쩔 거임?

-일단 헌법부터 만들어놓고, 법률은?

-연방법은 각국의 법률보다 우위에 있음, 물론 각 지역에서 자기들 영토에서만 통하는 법률을 새로 만드는 건 문제 없지만 충돌이 발생한다면 연방법이 무조건 우위에 있음만 명확히 하자고.

그 외 의회 권한 설정이나, 도량형 제정이나-어차피 다 미터법이니 편했다-유럽 연합 통일 화폐의 발행이나, 내각에 분배될 자리나, 그 외 의회에게 금지된 권한, 주에게 금지된 권한을 확정하고. 총리와 내각의 권한을 확정하고, 연방 사법부의 임명 권한 문제도 논의하고.

말은 쉽지만 이 와중에 온갖 종류의 파워 게임이 벌어진 건 당연한 일.

거기에 덴마크 정부도 졸지에 먹을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입에 쑤셔넣어진 잉글랜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히스파니아 연방으로 이름을 바꾼 톨레도 공화국은 여전히 내전의 불씨를 못 끄고 있는 중.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자체개발한 버스틴 전차들을 동원해 세르비아계 저항세력들을 밀어버렸고, 저항세력들은 산에 들어가 게릴라가 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시민혁명이 터졌고, 소련과의 종전으로 인해 소련의 힘도 빼고 완충국도 만들기 위해 동유럽에 우후죽순 생겨난 수많은 잡다한 나라들은 건국 초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중 하나인 힘러의 맨 기사단국은 오컬트 매니아 증세가 도진 힘러에 의해 사실 아발론은 맨 섬이었고 옛 이름을 되찾아 아발론 SS국으로 개명을 추진 중이고.

러시아 공화국은 트로츠키가 문화대혁명 비슷한 짓을 하고 있고, 그 불똥은 애먼 아프리카까지 번져서 온통 빨갛게 빨갛게 불태우고 있었다. 당연히 유럽 국가들이 기절초풍을 한 건 당연한 일.

지금 중국을 아직 못 때려눕힌 상태라서 아프리카의 빨갱이들을 빨갱이었던 것으로 바꾸어주기는 어렵지만, 일단 유럽연방 논의는 탄력이 붙었다. 외부의 위협만큼 내부를 단결시키는 것도 없으니까.

전쟁 당사국인 이스라엘과 동남아, 중국과 고려연방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남미조차 자기들끼리 전쟁이 붙었다.

그리고 미합중국은 멕시코인들에게 납탄을 먹여주면서도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

더 정확히는 FDR이다.

하지만 할아버님은 뭔 짓거리를 해서든 FDR의 꿍꿍이에 엿을 먹여줘야 하는 입장.

유럽연방의 완성과 패권의 유지를 위해서는 전 세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 혹은 국지전 등으로 높은 긴장도를 유지해야 한다.

일단 이번 전쟁의 원죄가 있는 중국은 갈아버린다. 아주 수십 수백 개로 찢을 수 있는 만큼 찢어서 조각내고, 신성로마제국 안에 있던 나라 수만큼은 쪼개버린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이스라엘이든 미국이든 간에 알아서 해먹도록 한다. 어차피 저길 계속 쥐고 있으려고 들면 좆된다, 괜히 반쯤 빨간 물이 든 인도를 넘어 중국과 동남아까지 붉은 물이 퍼지는 건 막아야 한다. 네덜란드가 들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좀 문제기는 한데 빨갱이만 아니면 협상 통해서 독립 못 시켜줄 게 없다.

그리고 진짜 문제, 빨갱이들이 장악한 러시아 공화국, 그리고 계속 그 물이 번져가는 아프리카, 그리고 은근히 사상이 빨갱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이스라엘까지.

물론 트로츠키와 스탈린주의자가 서로를 찢어죽일 만큼 증오하는, 일종의 이단자로써 서로를 치부할 뿐 아니라 영토도 맞닿지 않으니 그 두 세력이 서로를 지원할 일은 없다.

하지만 소련이 실패한 지금, 동쪽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서쪽으로는 모로코에 닿는 빨갱이들의 연맹이 형성되는 건 굉장히 골치아프다.

물론 완충지대는 충분히 있고, 이탈리아를 회유와 협박으로 끌어들이면서 지중해에 대한 제해권은 반은 확보된 상황이니 완충지대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압박할 수단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경쟁에서 이기는 일이고, 그러면 FDR의 간잽이질에 대해서는 싸대기를 날려줘야 한다.

식민지 독립? 못 시켜줄 거 없지, 하지만 그 의도가 단순히 유럽을 미국의 시장이자 2중대로 전락시키는 거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그게 결과적으로 빨갱이들의 성장을 방관하는 거라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고.

차라리 소련이면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트로츠키는 근본적으로 모험주의자이자 세계혁명론자, 그런 놈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진짜 쏴버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으니, 차라리 핵개발 조짐이 보이면 잠수함에서 핵미사일을 갈겨 콘스탄티노플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리면서 3차대전을 벌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게 할아버님의 의견.

한 마디로 어차피 시간과 인명피해가 문제지 승전이 확정된 극동 전선에 신경쓰기보다는 이제 슬슬 빨갱이 견제부터 시동을 걸자는 메시지를 꽃아넣는 게 조제프의 임무였다.

물론 조제프도 납득 못하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이랑 왕정이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인 건 맞다. 트로츠키의 명령으로 구 귀족과 황족들이 대거 학살당했고, 과거 트로츠키가 세계혁명론에 심취한 것도 맞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미가 전혀 없는데다 일단 동맹 아닌가.’

‘일단 전쟁이 났으면 적부터 때려잡고 봐야지 동맹 뒤통수를 갈길 총알을 장전하는 게 맞는 건가? 중국이 그 인구만큼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 난징도 점령 못 한 상태에서...?’

물론, 나폴레옹 4세의 식견이 조제프보다 위일 건 확실하다. 애초에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차원이 다르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그 행적으로 자신의 판단 능력을 입증해왔으니, 아무리 잘나봤자 군에서 사단장 이상의 책임을 지기는 어려울 거라고 스스로 판단한 조제프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말이 맞겠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FDR과 대담을 나누는 동안, 조제프는 상당한 혼란에 빠져야 했다. 그와의 대화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구심을 더 증폭했으니까.

그러나 더 골치아픈 문제는 이조차 노련한 FDR에게 속아넘어간 게 아닐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었다.

물론, 그는 그냥 시킨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그 이상의 고단수는 할아버지가 할 일, 애초에 전문 외교관이 아닌 자신을 내세운 것도 단지 위신 문제만이라고 생각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다른 뭔가가 내포되어 있다고 봐야지.

결국, 조제프는 한숨만 내쉬었다.

“그래, 까라면 까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