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일루미나투스 작전(4)
“인민의 파도만이 우리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소.”
“징집 하한선을 낮추겠소, 11세 이상의 모든 성인 남성, 그리고 여성도 징집을.....”
“여자가 군대를 가면 소는 누가 키워?”
“20세 이상의 모든 여성을 징집하겠소, 어차피 16세만 넘어도 시집가는 세상에 20세 이하 여자들만 뽑아도 후방 공동체가 유지는 되겠지. 그 여자들은 후방 공장에서 무기를 생산하고, 농사를 지을 것이오.”
이 조치로 기존에는 너무 늙어서 징집되지 않던 자들도 징집되었다.
“군 훈련을 견뎌내지 못한 이들은 광산 노동과 공장에 투입한다. 그 쓸모없는 몸뚱이로 조국에 다른 방식으로 봉사하라고 해!”
더 많은 병력은 더 많은 전투력으로 이어진다.
나라의 기둥뿌리를 뽑는다고? 농사를 지을 사람이 부족해진다고?
예로부터 굶어죽는 사람들이야 나오기 마련이었는데 뭐가 문제인가.
그러나, 그들의 머리 위에 천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숴! 다 부숴!”
“철로, 도로, 교통수단, 전부 파괴해라, 강에는 기뢰를 투하한다.”
“공장, 숲, 밭, 전부 합법적인 공격대상이다. 보이는 게 있으면 쏴버리고 적이 활용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태워버려!”
연합군의 압도적인 공군력은 지상에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을 강림시켰다.
그리고, 폭탄이 쏟아지는 동안 연합군 사이의 드잡이질도 거의 끝나갔다.
프랑스와 이스라엘은 연합군이 필요로 하는 대량의 물자를 제공했고, 연합군의 증원병력이 속속 도착하자 곧장 공세작전을 입안했다.
“총력을 기울여서 적들의 해안지대를 분쇄하고 북부전선과 연계하며, 적들의 곡창지대와 주요 공업지대를 단시간 내에 파괴합니다.”
오케스트라 작전.
일종의 역(逆) 대륙타통작전이라 할 수 있는 작전계획.
샤먼, 푸저우, 윈저우, 항저우, 상하이, 난징까지.
문자 그대로 남부 해안지대를 싹 쓸어버리면서 올라가고, 북부에서도 거기에 호응한 공세를 해서 중국 해안을 싹 쓸어버리고 적들을 내륙으로 몰아넣는다.
그 다음, 모든 국경이 아군이니 사방에서 적을 압박해서 적의 전투력을 확실하게 소모시킨 다음 적을 서부로 몰아넣는다.
평야 지대에서는 기갑전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지만, 중국에는 안타깝게도 평야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군과의 상성은 참 특이하다.
중국군이 자신들의 우위를 살리려면 평야에서 최대한 전선을 길게 늘어트린 상태에서 싸워야 한다. 머릿수 하나는 징글징글하게 많으니까.
그러나, 전선의 길이는 몰라도 평야에서의 결전은 연합군도 바라마지않는 바다. 압도적인 기갑전력으로 족히 백만 명씩 쌈싸먹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렇기에 중국군은 자신들의 우위를 살리기보다는 산지에서 싸우는 게 더 효율적이다. 산지에서는 연합군과의 화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적을 계속해서 소모시킬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남부와 서부, 북부에서 모조리 밀려난 적들은 산맥이 가득한 중국 서부로 끌려갈 수밖에 없고, 그 중 제대로 된 인프라가 있는 지역은 하나. 서부, 쓰촨이다.
삼국지에도 남은 촉의 분지 지형.
적들이 기어나올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지점들을 지키는 것만으로 적들의 진출을 막을 수 있으니 연합군은 굉장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단위부대당 화력은 당연히 연합군이 우세하니까.
기어들어가려면 연합군 역시 막대한 희생을 각오해야겠으나, 연합군에게는 압도적인 공군력과 온갖 신병기가 있다.
쓰촨성을 거대한 가마솥으로 만들어버리고, 적들이 지쳤을 때쯤 기어들어가서 끝장을 본다.
일단 저 망할 항구부터 다 때려부숴야만 저 망할 자폭공격대의 출격을 막을 수 있고, 해군의 징징도 틀어막을 수 있다. 동남아시아 사방에 흩어진 중국군을 정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고.
게다가 목표물에는 중국의 대도시란 대도시는 다 들어가 있고, 특히 중국의 수도 난징이 있다.
중국이 넓은 만큼 수도 하나 따인다고 무너지지야 않겠지만, 본국에 보낼 전과로 적들의 수도를 땄다는 보고만큼 깔끔한 게 또 없는 법.
난징 함락 정도 되면 전 국민을 열광시키기 충분하지 않겠는가. 떨어지는 전쟁지지도도 복구가 가능하겠고.
그리고...... 아무한테나 말하지 못할 진짜 목적도 있었고.
‘1944년 전에 전쟁을 끝내면.’
전승장군 타이틀을 달고 1944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지 않겠는가.
루즈벨트는 전승대통령이 되겠지만, 그도 워싱턴 이래 내려온 3선 금지의 전통을 깨고 출마하지는 않을 터.
재선으로 물러나는 전승대통령과, 그 후임으로 올라가는 전승장군. 모양새도 좋다.
1940년 대선은 이미 늦었다. 루즈벨트랑 정면으로 싸우는 건 쉽지 않고, 시기상으로도 많이 늦었다. 출마하려면 상륙작전을 1년은 일찍 했어야 한다.
사실 대륙의 광활함을 생각하면, 그리고 중국인들의 항전의지를 감안하면 그렇게 했어도 무리지만, 적어도 맥아더는 그렇게 생각했다.
***
울란바토르, 고려연방.
“인수증에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고려연방 중국원정군 보급총감인 고시복 중장은 그야말로 입을 딱 벌렸다.
전차.
전차가 끝이 없었다.
“고려군에 제공될 T-34 전차입니다.”
원래는 미군 셔먼 전차가 제공되어야 했지만, 셔먼 전차는 전차들이 대거 갈려나간 유럽 국가들과 미군에게 지급하기 바빴고, 무엇보다 너무 멀고, 중국 해군이 심심찮게 출몰하는 해상으로 운송이 힘들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제국은 어차피 종전조약 때문에 소련에서 압류될 T-34를 주변 동맹국, 그 중에서도 특히 북부전선을 혼자 떠맡아 중장비가 절실할 고려연방에 넘기자고 제안했고, 이로 인해 수천 대에 달하는 전차들은 감시위원단의 관할 하에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실려가고 있었다.
물론 그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토막토막 파괴된 탓에 그걸 복구하느라 죽을 고생을 해야 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렇게 많은 전차로 부대를 무장시키면 얼마나 조국에 도움이 되겠는가.
소련군 장교들의 침울한 눈빛과, 눈을 빛내는 고려군 장교들의 눈빛, 그리고 별 감정 없는 연합국 소련 감시위원단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번에 공급되는 장비는 T-34-57형입니다, 대전차임무에 특화된 전차이니 유념하십시오.”
“대전차라.”
중국 땅에 전차가 있기는 한가. 뭐, 아무리 그들이 주로 할 대인임무에 특화되지 않은 장비라고 해도 공짜로 주는데 고려연방군이 왈가왈부할 상황은 아니긴 했다.
“참고할 사항은 다 사전에 전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운영할 전차병들도 다 편성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약간의 강세를 둔 발언.
T-34는 전차병, 특히 조종수의 생존을 보장하기 어렵기에 원 역사에서는 이들 조종수의 상당수는 형벌부대원이었다.
그리고, 고려라고 형벌부대가 없는 게 아니다.
단순히 죄수들로 구성된 것만이 아닌, 정치범들을 숙청하는 부대가.
탄생 이래 계속 소련과 대립하면서 배워온 것 중 하나로, 인간들은 나쁜 건 안 시켜도 잘만 배워온다는 산 증인이었다.
놀랍게도, 이들은 한때 러시아의 식민지배에 적극 협력하던 이들이 다수였다.
대타협 당시 민주적인 과정으로 정권을 잡은 신정부는 대부분 과거 반러 투쟁을 벌였던 이들이었기에 과거 자신들을 탄압했던 옛 부역자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기 원했고, 황실과 군부는 어차피 현지인들이 그들의 존속에 동의하지 않으면 알아서 말라 죽을 판이니 ‘황실을 포함한 태생적 러시아인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약속만 받아내고 부역자들을 버렸다.
러시아인들에게서조차 토사구팽당한 이들은 처형당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고, 이제는 전장에 나가게 되었다. 물론 그런 부역자들만이 아닌 진짜 범죄자나 권력 투쟁에 패배하거나 줄을 잘못 선 이들도 수용소에 끌려가 형벌부대로 배치되고는 했기에, 그들이 100% 부역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소련과의 전쟁에서도 많이 소모된 저들을 전훈에 따라 소련군을 벤치마킹, 전차 조종수로 투입하는 건 별로 깊은 고려를 하지 않아도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면 죽어도 아깝지 않은 자들을 내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본질적으로 고려의 내정 문제니 이는 철저히 본관의 사견이지만, 국가를 위해 싸우는 숭고한 전쟁에서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죽음을 당하기 위한 부대가 존재한다는 게 좋게 보이지는 않소.”
연합국 감시위원단 소속의 프랑스군 장교 하나가 툭 내뱉었다.
“프랑수아 대령님.”
“철저히 본관의 사견이오, 잊어버리시오.”
프랑스군 대령, 프랑수아 라 로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빨갱이가 싫었지만, 저들이 빨갱이든 반역자든 간에 죽도록 내몰리는 걸 보는 걸 즐기는 미치광이는 절대 아니었다.
전쟁 따위에 존엄은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시민의 의무 자체는 숭고한 것인데 이를 범죄자의 처벌수단 따위로 소모한다는 것 역시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가 잠깐 입을 다문 동안, 불편한 공기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대화는 다른 주제로 빠르게 넘어갔다.
“고려군은 이미 이번 공세작전만을 위해 2개 전선군을 신규 편성했습니다.”
그게 서류상으로만 전선군, 실제로는 병력 규모든, 장비 수준이든 간에 야전군도 아슬아슬한 수준이고, 진지하게 미군 등의 기준으로 따지고 들면 2개 군단급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일단 서류상으로는 2개 전선군이었다.
전선군 휘하에 4개 군단, 1개 군단에 1만 5천명이라는 초경량 편제, 그러니 일단 전선군이긴 하지만 1개 전선군이 6만 명.
2개 전선군이면 12만 명.
누가 들어도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는 수준의 병력이었지만, 이런 거창한 이름이 붙은 건 결국 정치 논리 때문이었다.
“거기에 이번에 보급된 전차들로 신규 기갑부대를 편성해 방면군을 충원, 미군 공세에 호응할 예정입니다.”
애초에, 처음부터 굉장히 골때리는 국가구조와 인구구성을 가진 국가가 고려연방이다. 비슷한 걸 따지자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도나 유사하리라.
당장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고 보니 부대 내에서 사병들 언어가 서로 잡탕이다. 그간은 백군 시절부터 높은 전투력을 자랑하는 부대들로 소련과 싸워왔으며 대중국 전선은 방어로만 일관해왔으니 그나마 전선이 유지되었지만, 연합국의 요구에 따라 본격적인 공세로 나서려면 대체 얼마나 죽어나갈지 모르는 상황.
그 결과, 고려연방이 내놓은 답은 이거였다.
‘방면군 하나 새로 창설해서 명목상으로만 공세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가 전쟁 더해 봤자 이미 쳐먹은 게 많은데 영토를 더 받겠나 뭘 더 받겠나, 아니, 사실 영토 받아도 소화 못 시키니 적당히 뱉어야 할 판이긴 한데, 지금 치고 나가면 100% 쳐발릴 텐데 괜히 적 기세 세워주느니 연합군이 북경에 올 때쯤에나 제대로 공세하고, 지금은 적당히 성의만 보이는 걸로.’
1개 사단을 5천 명으로 창설, 3개 사단을 모아 군단. 그 군단이 4개가 모이니 전선군.
편제상 전선군 최소 3개, 일반적으로 4개에서 5개 정도는 모아야 1개 방면군이니 기갑부대를 새로 꾸리고 부대를 짜깁기해서 전선군 하나를 더 만들어낸 뒤 이들을 합해서 방면군 하나.
실제 병력은 야전군 수준의 방면군을 동원해 공세를 하고, 성공해서 북경이라도 점령하면 대박, 실패해도 ‘방면군이 적의 압도적인 수를 상대로 용감히 싸우다가 패퇴했네요, 아무래도 다음 공세는 한 내년쯤에나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이러고 입 싹 닦기.
‘솔직히 지난 전쟁에서 소련군 30만 잡아놨으면 잘한 거 아니냐. 이 나라 체급에.’
‘독이 잔뜩 오른 뙤놈들이랑 싸우자면 100만은 우습게 나올 텐데 수양제만한 대군을 보낼 적들이랑 싸우다가 망한 고구려의 역사를 반복할 일 있더냐.’
‘해줄 거면 백만 대군 보내주고 무기대여법인지 뭔지 물자도 좀 팍팍 주든가, 후순위랍시고 지원을 좀생이처럼 해주는데 우리도 좀 좀생이같이 군다고 누가 뭐라 하랴.’
애초에 연합국이 원하는 건 고려연방의 나라 기둥뿌리가 뽑히든 말든 열심히 중국군과 싸워주는 것, 그러나 전쟁이 끝난다면 고려연방에 대한 볼일도 사라지는 연합국과는 다르게 전후에도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당사자들은 당연히 피해를 최소화하고 연합국이 열심히 싸워주기를 바랐기에 이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합국도 이런 고려의 속내를 뻔히 알았다.
아는 거랑 그걸 대놓고 지적할 수 있는 거랑은 제법 다르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동맹은 동맹이고, 애초에 중립국으로 개전할 이유도 별로 없는데 연합국에 참여하면서 개전한 거니까 전후 지분 등에서 깔 수밖에 없지만.... 상대가 전후 지분에 미련이 별로 없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