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54화 (154/200)

154화 전환점(3)

단 7일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죽었다.

전선에 투입된 부대는 병력이 최소 절반 이상 줄어 있었고, 전차사단에 가용한 전차가 대대급이나 남으면 다행이었다.

기갑여단 중 기갑병기를 20대 이상 보유한 부대가 없었고 군단 전체에 전차가 한 자릿수로 감소한 경우가 흔해빠졌다.

항공세력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다. 작전에 투입된 고정익기 세력의 손실은 70%에 달했고, 회전익기 세력의 손실은 90%에 달했다.

물론 그 중 절반 가량은 여러 문제로 인한 비전투손실이었지만, 아무튼 손실은 손실이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핵탄두는 아예 재고가 없었다. 폭탄 재고를 확보하려면 몇 달은 있어야 하리라.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보유한 탄약의 수량 역시 극적으로 감소했다, 그만큼 쏴댄 것이었다.

“석유는 아예 비축량이 바닥났지만, 미국에서 대량으로 들어오기로 했으니 선단만 들어오면 됩니다.”

“장비를 날려먹은 게 뼈아픕니다. 탄약, 부품, 전부 박박 긁어모아야 합니다.”

프랑스 후방 공장지대에서는 지금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긁어모으느라 곡소리가 나고 있을 게 뻔하고, 후방에 쌓여 있던 탄약을 추진하느라 철로는 항상 포화 상태였다.

대승을 거두고, 벨라루스 전역을 손에 넣었지만, 공세역량 자체를 상실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종전협상에서 요구해야 할 영토 거의 전부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강화협상을 제안하는 것도 모양새가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종전 협상장에서 요구해야 할 게 그거 하나는 아니지 않은가. 배상금과 소련의 비무장화 정도는 요구해야 하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모스크바까지 진격할 수 있는 병력이 없습니다.”

“적들도 방어할 병력은 없지.”

백 번 양보해서 모스크바에서 미친 듯이 관료들이 일을 하고 현지 공산당원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우크라이나 밭에서....... 근데 그 우크라이나가 우리 손에 떨어졌으니 중앙아시아 논밭에서 감자 캐듯이 병력들을 긁어냈다고 하자.

근데 무기는 어디서 조달하시려고요? 그쪽도 장비 싸그리 날려먹은 건 피차일반일 텐데? 여기서는 랜드리스도 없다.

“장갑열차 일부를 동원해서 오룔 방면으로 진격하도록.”

“예?”

“오룔, 스몰렌스크, 열차들을 동원해서 모스크바로 향한다. 저항에 부닥치면 적들이 조직적인 저항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므로 즉시 복귀시키고, 그게 아니라면 그대로 밀어버리라고.”

원 역사에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맺어질 당시에는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를 지킬 군대도 없어서 열차에 탄 독일군이 기관총을 들고 내려서 해당 지역의 공산당 간부들을 포로로 잡고 다시 전진하는 방식으로 쾌진격을 거듭했다지?

과연 우리가 이번에 거둔 승리가 그 정도 되는지 한 번 보자고.

그때, 외무장관이 급히 보고를 올렸다.

“황제 폐하, 고려연방이 소련에 선전포고했습니다.”

***

소련, 카자흐스탄.

수백 마리의 말들이 초원을 달린다.

고려연방 특유의 민무늬 녹색 군복을 입은 기병들은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돌격 앞으로!”

털모자를 쓰고 군복을 걸친 남자 한 명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깃발을 휘둘렀다.

프랑스제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고려연방군은 함성을 내지르면서 전선을 질타했다.

그들을 가로막는 적은 없었다.

이들을 지휘하는 고려연방군 대령은 마유주를 한 손에 들고 꿀꺽 삼켰다.

그러자 그 뒤에서 따라오던 늙은 장성이 타박을 했다.

“전선에서 술이라니, 김 대령, 참모들이 들으면 경을 칠 일이네.”

“전우들이 보면 자기도 한 잔 주지 혼자 먹냐고 할 일이지 않습니까. 홍 장군님.”

“허, 참.”

두 사람은 한때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독립운동가였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 정부의 대타협, 사실상의 백기투항 앞에 독립 세력들은 혼란에 빠졌다.

아예 러시아인들이 전부 떠날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세력이 한 부류, 이제 슬슬 타협하자, 국명이 대한이 아닐 뿐이지 태극기도 허용하고 정치 참여도 허용하고 민주주의 하자고 하지 않느냐. 대한인이 머릿수로 밀어붙여서 조선인 총리를 뽑고 의회도 조선인들로 채우고 하면 모든 권리를 다 내려놓겠다고 약속한 황실은 그냥 장식품 아니냐, 이제 그만 타협하자는 게 한 부류.

그리고 아예 적극적으로 이들을 집어삼키자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이 타협을 받으면 노서아인 황제를 모셔야 하는 건 맞지만, 노서아 황제는 한성에 도읍할 것입니다. 이미 구라파에서도 다른 나라 출신의 군주를 모시는 게 드문 일은 아니고, 그 자식들은 결국 한인으로 자라게 될 터인데 타협하지 못할 게 있습니까?’

‘외교가에서 조선이라고 하면 비웃음을 당해도 러시아 제국 외교관이라고 하면 아무도 무시하지 않네, 소위 말하는 네임벨류가 있단 말이야. 이름이야 뭐든 어떤가? 결국 민족은 한민족이고, 한글도 허용되고, 태극기도 정식으로 허용되고, 조선인 총리와 장관들이 권력을 잡고, 의회도 조선인들로 가득 채우고 장성들도 조선인들로 가득 채우면 문제가 될 게 있겠나? 우리가 저들 손을 잡으면 10년 내로 군부와 의회, 내각은 모두 조선인 몫이 될 걸세.’

‘지금 저들의 손을 잡아서 저들을 역으로 집어삼키면 우리는 만주를, 고구려의 옛 영토를 합법적으로 가질 수 있지 않소! 만주! 몽골! 토번! 신장! 가즈아아아! 고구려의 기상! 만주벌판을 달리고 요동이 우리 손으로 넘어온단 말이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빨갱이는 막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한 번 교섭을 해 봅시다. 아예 교섭조차 안 해보면 저들도 폭력적으로 나오고 무익한 피만 흐를 겁니다. 무슨 조건을 내놓는지 들어나 봅시다.’

결국 세상 천지에 조선 독립을 꿈꾸는 자들이 다 모인 임정은 ‘그래, 뭔 소리를 하나 들어나 보자’라는 쪽으로 여론이 흘렀고, 대표단을 뽑아 협상장에 내보냈다.

그리고, 대표단은 예상보다 큰 건을 가져왔다.

‘우리가 대타협에 동의해준다면 군부에는 독립군 인사들을 받아들이고, 내각은 즉각적으로 해산한 뒤 총선을 하겠다는군, 출마에 제한은 없고, 당을 조직하는 데도 제한이 없으며 선거가 의심되면 우리 쪽에서 참관위원을 보내도 된다고 하는군.’

‘황제의 권한은?’

‘신체 불가침권과 기타 몇 가지 권한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네, 일단 실권 관련된 건 거의 없고, 막말로 목숨만 붙여 달라는 쪽에 가깝더군.’

이렇게 되자 다시 논쟁은 불이 붙었다.

‘이걸 안 받을 이유가 있습니까? 말이 그렇지 그냥 조선 독립 아닙니까,’

‘지금 저들이 크게 양보했을 뿐이지 저들이 힘이 없는 게 아니란 거 명심하십시오, 저들은 아직 조선팔도를 피바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정도 협상도 거절하면 저들은 자포자기해서라도 대량학살을 저지를 게 뻔합니다. 대체 그 고집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러야겠습니까?’

‘우리가 그냥 독립하면 만주를 우리가 영유할 수 없잖습니까! 만주의 동포가 해 봤자 얼마나 된다고.... 만반도 가자아아아!’

‘조선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독립 이외에는 협상할 수 없소!’

‘야, 니들 지금 저 빨갱이놀음 하고 싶어서 그런 거냐? 독립하고 나면 저 오스트리아-헝가리처럼 나라를 통째로 빨갱이들에게 가져다 바치려는 거 아냐 이 자식들아!’

‘만주를 안 가져가면 이는 민족에 대한 죄악이고........’

‘아니 진짜 저 파쇼가.’

‘한민족의 정당한 강역은 만주이며 이는 광개토대왕릉비에도 나와있다!’

결과적으로, 임시정부는 분열했다. 이 정도면 이름만 대한이 아니지 독립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판단하고 이탈해 신정부 수립에 참여한 파벌이 하나. 그리고 이를 배신으로 간주하고 독립 투쟁을 이어가는 파벌이 이념 따라, 지도자 따라 총 14개 계파.

계파 숫자로 보자면 후자가 압도적이었지만, 머릿수와 영향력으로 보자면 전자가 압도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계파들을 뜯어보자면 우익 계통은 죄다 합류를 선택했고 공산주의와 아나키스트 세력들이 이합집산하는 것에 가까웠고, 같은 사상을 가진 이들 가운데도 자기들끼리 분열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트로츠키주의자들만 해도 분파가 다섯 개였고, 스탈린주의자 계파가 여덟, 아나키스트 세력이 하나였고, 이들은 근본적으로 그 수가 많을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얼마 안 가서 죄다 해외로 튀었다가 스탈린주의 계파들은 싸그리 스탈린 본인에게 숙청당했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옛 동지들에게 숙청당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마음을 돌린 것은 국제정세 그 자체였다.

조그마한 나라들은 인근 국가에 집어먹히는 게 일상인 세상, 설령 독립하더라도 낼름 소련에게 집어삼켜질 확률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이러니 타협 자체를 격렬히 반대하는 좌익 세력은 소련에게 이 나라를 들어다 바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고, 결국 이는 우파 세력들이 타협에 더더욱 반대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했고, 실제로 그 우파 세력들이 그 직후 있었던 선거에서 집권당이 되었으니 더더욱 불만을 품을 리가 없었다. 자기들이 여당이 되어 정권을 잡은 나라에 불만이 있으면 자기들이 바꾸면 되니까.

다퉈 봐야 자기들 내의 노선 갈등이지 폭력, 유혈 투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그런 방식으로 흡수된 세력이었다.

아니, 오히려 군 내에서는 독립파였던 이들이 주류였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일이었는데, 구 러시아 백군 세력은 적군과의 전투에서 주요 간부진이 몰살당하는 등 거의 궤멸적인 수준이었고, 그나마 남은 노장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들 은퇴해버렸다.

새로 세워진 사관학교에서 배출되는 졸업생들도 대부분 한민족이다 보니 당연히 군권이 한국계로 넘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엇고, 이제는 그냥 고려연방 그 자체가 한국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게 되었다.

그나마 아직 한국 독립 투쟁을 벌이는 대표적인 세력으로 아나키스트 세력이 있지만, 이들은 아나키즘 자체의 한계로 인해 결국 제풀에 무너졌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고려연방의 이름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조선민족의 생활권을 넓히는 전쟁에서 어찌 뒤로 빼겠습니까.”

“자네 철기랑 너무 친해졌어. 어떻게 그 친구 하는 소리만 똑같이 따라하는가?”

“조선민족의 정당한 생활권, 다시 말해 ‘생존권(Lebensraum)의 확보를 위한 성전입니다. 우리가 제 역할을 하면 영토를 크게 떼어주겠다고 구라파의 열강들이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연합군이 소련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이긴 상황이다. 소련은 이제 수도를 지킬 군대도 모으기 어렵게 되었다는 소리가 들리니 조선 민족의 생활권을 넓히기에 참으로 적절한 상황이 아닌가. 실로 조선 민족에게 있어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호기이지 않은가.

물론 모두가 그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군부의 여론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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