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52화 (152/200)

152화 전환점(1)

FDR은 국무장관 코델 헐이 들어온 것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통령 각하.”

“아, 코델.”

“이번은 너무 섣부르셨습니다.”

“...........”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프랑스와 독일은 우리에 대해 반감만 잔뜩 키웠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를 덴마크에 넘기신다니요? 프랑스와 독일이 우리가 제공하는 물자가 없으면 말라죽을 지경인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하게 움직이셨......”

“뭐, 인정하겠네.”

FDR은 시원스레 답했다.

“내가 4년만 일찍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국에는 아직 대공황의 상처가 깊숙하게 남아 있고, 캐나다인과 멕시코인들은 여전히 우리의 통치에 반발하고 있네.”

미국은, 아직 세계 경영에 나서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하다.

“그리고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핵무기.

그 저주받을 무기를 본 순간 직감했다.

저 탄두를 더 멀리 날려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순간, 더 이상의 ‘세계 대전’은 일어날 수 없으리라고.

그래서 무리수를 두었다.

프랑스의 식민지에 손을 뻗어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하려 했다. 프랑스의 견제세력을 유럽 내에 심어두려 했다.

사자의 콧털을 뽑는 수준으로 위험한 곡예였고, 경계도 잔뜩 뒤집어썼다.

“이번 전쟁이 미합중국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 세계의 패권을 우리에게로 가져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네.”

10년만 전쟁이 늦게 일어났어도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대공황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고, 국내의 불안을 가라앉히지도, 양면전선을 치러낼 국력을 갖추지도 못했다.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8년이면 국내의 문제들은 전부 정리할 자신이 있었네, 그리고 이 전쟁이 터졌을 때,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버틴다면 미국의 패권을 영원불멸할 반석 위에 올릴 자신이 있었어.”

결국, 대부분의 요소는 유럽인들이 요구한 대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아직 유럽 전체와 대결하기에는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역전의 기회가 없는 건 아니지.”

외교적 싸움은 외교관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서도 언제든지 판이 뒤집힐 수 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려면 아직 멀었고, 미국의 국익을 관철할 기회는 아직 많았다.

***

민스크 인근, 벨라루스, 소련.

이곳에서는 중전차와 중형전차의 구분이 없었다.

서로를 향해 쏘면, 맞았다.

그리고 중형전차도 중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수백 대의 전차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쏘았다.

완벽한 난전 위에 날아든 헬기들은 소련 전차들의 머리 위에 사격을 퍼부었고, 기관포탄이 적의 상면 장갑을 꿰뚫었다.

전차들을 노리는 지상공격기들, 그리고 이들을 엄호하는 전투기들 역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하늘과, 지상에 걸친 지옥도가 펼쳐졌다.

“쏴!”

한 발 한 발이 전차를 격파할 위력을 가진 로켓들이 망구스타의 측방에서 쏟아져내려 타격했다.

그 순간, 섬광이 터졌다.

포격 범위에 재수없게 들어간 망구스타를 직격한 야포탄은 그대로 헬기 한 대를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치타 공격헬기는 자신을 노리는 전투기를 피해 도주했다. 아군 전투기가 날린 공대공미사일에 적기가 불덩어리로 변한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대공포탄이 날아들어 헬기를 에멘탈 치즈 꼴로 만들어버렸고, 잠시 뒤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상에는 붉은 별이 달린 탱켓들도 다수 굴러다니고 있었다.

20mm 기관포를 장착한 탱켓들은 굴러다니면서 장갑차와 전차의 후면을 노렸고, 전차들은 그 주먹만한 탱켓들을 기관총으로 박살내버렸다. 소련이 이런 병기까지 최전선에 투입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증거였다.

대거 투입된 독일제 대전차 소총이 참호 속 소련군의 손에 들려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전차를 향해 날아들고, 몇몇 전차에서 탄두가 붕괴하며 발생한 장갑의 파편들이 승무원들에게 튀어 부상자를 만들어냈지만 큰 피해는 아니었다.

소련군에게는 변변한 대전차 무기가 없었기에 이런 거라도 사용하는 셈이었지만, 그래도 전차의 관측창을 손상시키는 등의 피해는 일으켰다.

그리고, 전장의 화룡점정은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이었다.

벨라루스를 점령해 돌출부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연합군과, 이를 막으려는 소련군은 겨울 내내 가용한 모든 전력을 이곳에 집중시켰고 프랑스군은 전선에서 그동안 비축한 핵을 다 쏘겠다는 듯이 핵공격을 퍼부었다.

실제로 양군의 전체 전력이라고 해도 거짓이라 할 수 없을 규모의 병력이 모여 있었기에 핵폭탄이 줄줄이 터져나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탑승한 차량을 잃고도 살아남은 전차병들과 추락한 조종사들은 참호에 몸을 숨기고 대전차수류탄이든 화염병이든 대전차소총이든 들고 사방으로 공격을 가해 댔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

독일군 레오파르트 중형전차가 라인메탈 90mm 대전차포로 T-34의 전면장갑을 뚫어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몇 발 쏘기도 전에 T-34에게 피탄당한 독일군 전차는 그대로 내부 탄약이 유폭해 불덩어리가 되었다.

900m 거리에서 쏜 소련제 76mm 포탄쯤은 방어할 설계가 되어 있었음에도 발사 거리가 너무 가까웠고, 맞은 지점과 각도도 맞는 입장에서 나빴다.

거친 형상을 가진 포탑이 탄약이 유폭되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다른 전차의 포탑에 둔탁한 충격을 남기며 떨어져내렸다.

그야말로 전장에 내던져진 순간 이미 소모는 확정적인 형태였다.

이들을 지휘하는 발터 모델은 그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예비대가 부족하군.’

전선의 면적에 비해 아군이 부족하다.

그의 손에 남아 있는 예비대는 독일 보병연대 1개와 프랑스 기계화보병연대 1개.

가진 패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했음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적이 너무 많아.’

그때, 보고가 들어왔다.

“사령관님, 적 신규 부대가 확인되었습니다. 적 연대급 전차부대가 전선에 출현. 12사단에서 52전차대대를 재배치하겠다고 응답했으나, 그렇게 재배치하면 스비슬라치 인근의 적 여단급 부대를 저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전차와 보병, 포격을 동반한 공세랍니다.”

“포병 화력 추가 할당하고 27연대를 거기로 보내.”

프랑스 기계화보병연대는 중대급 전차부대 정도는 단독으로 제압할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차량이 중기관총 한 정만 덜렁 단 장갑차지만 40mm 대공포와 105mm 대보병 곡사포를 단 차량들도 있고, 포병과 보병 휴대 대전차장비 등도 있으니 여단급 적 정도는 저지할 수 있을 터.

전차부대라면 한 개 대대만 보내도 되었을 것을, 전차가 모자라서 한 개 연대 병력을 통째로 투자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전차라고는 한 대도 없는 보병연대 하나뿐,

“정찰기 보고입니다. 체르벤에 전차대대 1, 보병대대 1, 방공대대 1, 포병대대 1 확인, 전차대대와 보병대대가 조지나 방향으로 자력행군 중.”

“아군 전선과의 거리는?”

“4km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측방이 또 찔린다,

하나라도 찔려서 비전투부대가 공격당하면 위험하다.

‘예비대를 더 투입해야 하나.’

저 소련 놈들은 아군이라고는 중국 놈들밖에 없으면서 전차 하나는 끝없이 찍어내 투입하고 있었다. 병력 역시 끝이 없었다.

막대한 규모의 병력의 지휘권을 받자 환영해주는 건 그보다 훨씬 많은 적들이었다.

“포병관측기 띄우고, 군단 포병부대에게 적 부대 싹 쓸어버리라고 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74연대나 그 예하부대에 이동지시를 내리지 않으셔도 상관없겠습니까?”

모델의 참모 중 하나가 주저하며 말했다.

“74예비연대는 차량화부대도 아닌 일반 보병부대로, 이동 수단은 연대 직속으로 있는 정찰대가 보유한 군마와 자전거를 제외하면 도보뿐입니다.”

지금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장군님, 보고입니다, 적 포병대대와 방공대대 섬멸, 기동 중인 포대는 확인되지 않음, 다만 정찰 보고에 따르면 파괴된 전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 보병대대와 전차대대는 자리를 이탈한 것으로 보인답니다.”

“74연대에서 1개 대대 병력을 차출한다. 그리고 연대 직할부대도 전부 그쪽으로 돌려.”

2개 대대는 남긴다. 포병 지원을 몰아주면 어찌어찌 막을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 선 직후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리고 사령부 호위를 위해 남겨둔 구축전차 소대 하나와 중전차소대 하나가 있었지.”

각 3대씩 총 6대.

“예.”

“74연대에 합류시켜서 작전 투입에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6대의 전차와 구축전차가 전열에 합류한다. 정족수에 부족하긴 하지만 어거지를 쓰자면 1개 감편중대.

이제 예비대는 중전차중대 하나에 보병대대 둘이 남았다.

“지원 요청은 어떻게 됐나?”

이대로 가다가는 막기는 막아내도 결정적 승리를, 작전 초에 기획했던 포위섬멸을 해낼 수 없다.

기갑부대가 필요했다.

“보내고 있다는 말밖에 없습니다.”

“.... 믿어 봐야겠지.”

그가 아무리 전장의 신이라고 해도, 전장 뒤쪽의 문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네모난 박스 같은 것에서 뛰어내린 프랑스군 병사들은 장갑차를 방패 삼아 적과 사격을 주고받았다.

지난 대전에서 상륙작전의 난점을 교훈삼아 만들어진 상륙장갑차는 해군육전대만이 아니라 육군에서도 전차를 엄호하는 역할로 제격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후 반궤도장갑차를 대체할 육군 보병의 탈것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전쟁이 좀 일찍 터지지 않았으면 그랬을 거라는 거다.

결국 이 장갑차는 많은 부대에 배치되지 못했고, 대부분의 프랑스군은 장갑차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하프트랙이나 타고 다니는 판이었다.

물론 그것도 없는 뚜벅이 독일군이 듣는다면 배부른 소리 한다면서 360도로 구를 소리였지만, 아무튼 프랑스 상층부에서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탑승병들에게 있어서 이 장갑차는 총알에게서는 보호를 해 줘도.....

“2호차 피격! 씨발!”

“내려! 멍청이들아! 내리라고! 다 뒤지려고 작정했냐!”

어그로를 무지막지하게 끌어들여서 총 맞고 뒤질 걸 노릇노릇하게 구워주는 병기가 될 수도 있었다.

-콰앙!

“크라우트 놈들 중전차다! 아군 중전차야!”

120mm 대공포를 개조한 주포를 단 중전차가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미국에서 구매해온 이 중전차는 프랑스군에서는 배치되자마자 온갖 욕질의 대상이 되었다.

-평야지대에서 적 전차를 저격하라니, 이게 대전차자주포지 중전차냐?

-포탑 정면만이 충분한 방호력을 지닌다, 심지어 어느 부위를 맞느냐에 따라서 뚫릴 수도 있다! 피탄각에 유의하면서 수세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게 무슨 중전차냐? 공격작전에선 써먹을 수가 없잖아!

그러나, 독일군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왜냐면 독일군에게는 이미 유사한 무기체계가 구축전차라는 이름으로 있었고, 거기에 따라 운영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697 중전차대대, 적과 교전을 속행한다.

그날, 소련군은 해골 세 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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