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톨레도 회담(1)
톨레도, 히스파니아 공화국.
역사에는 아마 이번 회담이 톨레도 회담이라고 남을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톨레도에서 한 회담이니까.
회담 장소가 톨레도로 결정된 이유도 복잡했다.
“일단 슬슬 승기가 보이기도 하니 연합국 수뇌부가 한 번에 모여서 이번 전쟁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될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의합니다.”
“그럼 회담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파리.”
“뉴욕 어떻습니까?”
“지랄 마시고요, 내 나이가 몇인데 대서양을 건너갑니까? 파리.”
“정정해 보이신 양반이 다리 병신을 꼭 대서양 건너오라고 하셔야겠습니까? 우리 바다 건너려면 대통령이 체신머리없게 수송선 타고 갈 수도 없고 주력함 타고 가야 하는데 우리 지금 주력함 여유가 없어요.”
“니네 엔터프라이즈 저번에 특공인지 나발인지 쳐맞고 도크에서 수리 중인 거 거의 끝났잖음, 어디서 약을 팔아? 파리.”
“........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니 시발 장유유서 모르심? 니네 대통령이 응애거릴 때 우리 황제 폐하는 이미 황제였거든?”
“좋습니다, 히스파니아 공화국의 톨레도. 거기까지 하죠.”
물론 이 싸움질의 본질은 자존심 싸움이었다.
어차피 FDR이 없으면 전쟁 수행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없다고 전쟁 수행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연합국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다.
프랑스는 핵을 펑펑 쏴가면서 언제나 자기주장을 강렬하게 하고 있고, 미국은 대량의 물자를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은 전쟁 끝나고 나서 파산 상태인 유럽에게 ‘우리 물건 좀 팔아먹게 식민지 뱉고 꺼져주시지 않으시겠어요?’라고 정중하게 묻고 싶고, 우리는 거기에 정중하게 중지를 치켜들어 줘야 하는 입장.
물론 못 먹는 식민지는 뱉는다. 이미 알제리도, 그리고 다른 식민지들도 그렇게 뱉었다.
그러나 미국이 진짜로 침을 흘릴 식민지는 여러 섬들로 이루어진 프랑스의 태평양 식민지일 터.
이유야 간단하다, 그게 없으면 미국의 태평양 패권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이거든, 하와이 없이 태평양을 통제해? 말이 되나?
미국이 정녕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현하고 싶다면, 사생결단을 내서라도 우리에게서 태평양을 빼앗아야 한다.
미국은 해양세력이니까.
우리에게서 태평양 식민지를 뺏은 다음, 그걸 꿀꺽하지 않는 한 미합중국의 패권 달성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이 휠체어맨과 눈싸움을 벌이는 거고.
“반갑습니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입니다.”
“프랑스 제국의 제 1시민 샤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요. 흔히 나폴레옹 4세라고들 하지.”
악수를 나눈 뒤, FDR이 선공을 가했다.
“프랑스 제국과 미합중국은 하나의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저 아시아에 있는 어둠의 제국, 중화민국이죠, 민주주의를 자칭하지만 실상은 독재 국가이며, 전체주의적 사상 아래 자국민들에게 자살을 명령하는 악의 제국에 맞서 미합중국, 프랑스 제국, 이스라엘, 네덜란드, 독일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용맹히 싸우고 있습니다.”
“미군의 노고에 치하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현재 태평양 전선에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한 미합중국으로써는 현지 식민지인들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나, 귀국의 식민지 정부들은 미합중국 정부와 군이 식민지인들과의 공조를 반드시 총독부를 거쳐서 진행할 것을 요구하는 관계로 현장에서 다소 잡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본국에서 식민지에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한다면 태평양 전역에서의 승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적 수사는 금방 내 머릿속에서 번역되었다.
‘니들이 식민지 자율권을 전시라는 명분 하에 좀 늘려줬으면 좋겠어, 어차피 니들이 식민지에서 원하는 거 뜯어가려면 그 자율권 도로 뺏을 수밖에 없고, 선례가 생긴 이상 식민지인들은 순순히 안 받아들일 거고, 그런 식으로 가다 보면 결국 독립해서 걔들이 미국 품에 안기게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조금 더 직설적으로 번역하면.
‘니네 식민지 우리가 좀 침 바를 건데 괜찮지?’
뭐, 총독부가 자기 존재감 살리고 싶어서 움직이는 것도 사실, 원칙적으로 미군이 식민지와 공조하려면 식민정부와 같이 움직여야 하는 것도 사실일 거다.
근데 니들이 원칙 퍽이나 잘 지켜가면서 식민지와 교류하고 있겠다, 응? 아주 그냥 태평양 식민지를 털도 안 뽑고 삼키고 싶다고 말하시지?
“총독부는 이미 미합중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교류가 필요하다는 걸 보니 현지 민중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미군의 판단 같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저들이 내세우는 것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사상 및 ‘중화사상’. 핵심만 말하자면 중국은 그 자체로 세계이며, 그렇기에 중국은 세계를 정복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또한 저들의 주장인 대동아공영권, 즉 모든 유색인종들이 한데 뭉쳐 타 문명들을 절멸시키고 중국 아래에서 세계를 정복하고 통치하자는 사상이 실제로 유색인종들 간에 호응을 불러일으킨 사례가 있는 이상 현지 유색인종들에 대한 신뢰는 불가능하며, ‘이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미군은 이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저들이 판 함정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경험이 풍부한 현지 프랑스 제국의 현지 관헌들이 미군에 더욱 협조할 것입니다.”
‘좆 까셔.’
태평양 식민지도 우리도 포기가 가능한 부분이 아니다. 그 지정학적 위치와 자원 등은 대체를 하고 말고 할 차원이 아니니까.
정말 어쩔 수 없이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면 모를까, 아직 여유가 있는데? 웃기지 말라고 해라.
영연방 수준으로 식민제국을 연착륙 시키는 건 가능하다. 거기까지는 허용 범위에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무력하게 강탈당하는 것은 프랑스의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기분이 더러운 건 내 반발을 루즈벨트도 예상했다는 듯이 그대로 한 발 뺐다는 거지만.
물론, 제국주의는 무너지게 될 거다.
무너져야만 옳다.
그렇기에 나도 프랑스 연방을 꿈꾸고, 유럽연방을 계획하고 있는 거다.
프랑스 제2제국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서.
***
서로 혓바닥으로 검투를 한참 벌인 후, 우리는 대전략을 논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상륙하느니, 언제 상륙하느니, 어디서 공세를 펼치느니 이런 건 전부 실무자들의 일.
우리의 일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먼저 모두의 신경을 가장 긁은 일은, 역시 전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논의였다.
“소련과 중국은 충분한 응징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최소한 수십 조각으로 조각내야 마땅하죠.”
“본국은 다음과 같은 분할안을 제안합니다. 먼저 발트 3국을 발트 연합 공국으로 통합, 독립시킵니다.”
“그리고 핀란드는 스웨덴에 합병하나, 국경을 조정합니다.”
핀란드에 새 국경이 그어졌다.
오네가 시에서 오네가 호 남단까지 남남서로 직선을 그어내리고, 호수의 남부 경계를 따라 국경선을 설정, 다시 스비리 강을 따라가서 라도가 호의 남쪽 해안을 따라가 네바 강을 거쳐 발트 해까지.
그리고 발트 3국의 영역을 좀 넓혀서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루가와 프스코프를 거치는 새 국경선을 그었다.
이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두 동강이 나서 스웨덴과 새로 성립될 발트 공국으로 나뉘어지고, 부동항 무르만스크를 포함해 스칸다나비아 반도의 러시아 세력은 완전히 축출되며, 동시에 발트 해에서도 축출된다.
발트 3국은 하나의 국가로 통짜로 독립하게 될 거고.
“또한, 벨라루스, 폴란드, 우크라이나는 독립합니다. 캅카스 역시 러시아에서 분리되고요.”
우크라이나에 루마니아를 합치고 캅카스와 카자흐스탄을 분리독립시키면 러시아는 지중해는 물론이거니와 흑해와 카스피 해에서도 축출된다.
“만일 러시아 공화국이 우리를 도와 참전하기로 결의할 경우,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캅카스는 이들에게 할양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들은 독립 국가가 될 것입니다.”
“고려 연방 역시 대중, 대소전에 참전할 경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프리모리예(연해주)를 얻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의도는 명확했다.
소련을 모든 바다에서 축출하고, 얼어붙은 바다만 있는 곳으로 쫓아내, 영원히 그 능력을 거세해버리겠다는 것.
고려 연방은 내부가 불안해 감히 밖을 바라보지 못할 거고, 러시아 공화국도 마찬가지,
아니, 사실 트로츠키주의 러시아 공화국도 똑같이 위험한 놈들이니 고려연방으로 하여금 저들을 견제하게 해야 한다.
그 지도를 보고 있던 독일 연방의 대통령 괴링이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황제 폐하께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래 우방이었으나 볼셰비키의 혁명에 휘말려 불운하게 무너지고 말았지.”
“남독일 연방을 해체하고 이들을 흡수했지만, 오스트리아에 대한 보상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트로츠키주의자는 스탈린주의자와 궤만 다르지 똑같이 위험한 자들, 저들이 현 영토 밖으로 기어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으음?
“저희 독일 연방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복원을 제안합니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그냥 막말로 러시아 공화국이 먹고 남은 발칸의 잔재 전부.
이들을 한 덩어리로 묶은 괴링은 말을 이었다.
“바이에른을 내준 대신 오스트리아만 보전한 구 남독일 왕가인 비텔스바흐 가문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복원하게 하고, 스위스는 별도로 다루어 합스부르크 가문의 개인 영지로 간주합니다.”
어.... 그러니까 비텔스바흐 가문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복원해서 러시아 공화국의 서쪽 누름돌로 쓰고, 스위스에는 ‘스위스 왕국’을 세우자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보다는, 그..... 일종의 연방제 형식으로 ‘도나우 연방’을 세우는 게 더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네, 기껏 국가를 재건해 뒀더니 금방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합스부르크 가문이 스위스인들의 반발을 감당할 수 있으려나.
“프랑스 제국과 독일 연방, 네덜란드 왕국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우호관계와 동맹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 연방을 탄생시킬 것이며.......”
“독일 연방은 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프랑스가 제안하고 독일이 동의했는데 쩌리인 네덜란드가 뭐라고 하랴.
피레네 이남은 아프리카 취급이니 넘어가도 이탈리아에게도 연방 가입 ‘권고’가 나갈 예정이었다, 뭐, 생각이 있으면 거절 못하겠지.
괴링이 이상하게 번뜩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찝찝하기는 한데, 한 번 질러본 수도를 파리로 하는 안과 국가원수를 내가 맡는 것까지 전적으로 동의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연방 성립 후 사임하겠다고까지 하는 걸 보면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잉글랜드 문제.
“브리튼 섬에서의 아일랜드의 학정은 국제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선을 넘은 지 오래입니다.”
으음..... 그 아일랜드의 후원자나 다름없었던 입장에서 양심이 쿡쿡 찔리긴 하네. 아일랜드인들이 브리튼 섬에서 몇 배로 갚아주겠다면서 날뛴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일랜드인들은 분명 잉글랜드인들에게 상당한 학정을 당했습니다. 이는 정당한 복수의 권리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으실 텐데요?”
“저희는 중세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정한 재판과 배상 요구를 통해 피해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의 개소리를 듣자니 배알이 슬슬 꼴려 온다.
그래서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들 중에 제대로 배상금 받은 나라가 있긴 하던가? 갑자기 위대한 잊기 운동이라는 이름이 생각나는구만.
“이미 아일랜드군은 잉글랜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상실했습니다. 브리튼 반군은 덴마크가 지원하고 있고 말입니다. 이는 연합국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입니다.”
내가 알기로 페로 제도에 하도 집적거려서 팔 걷어붙이고 패러 간 거였던가 그럴 텐데.
“그러나 프랑스 제국은 아일랜드와는 우호 관계이며, 이 혈맹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아일랜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할 생각이 없음을 나타냈다.
내가 배째라고 드러누우면 미국도 좀 골머리가 아프긴 할 거다.
“아일랜드 측에서는 잉글랜드의 독립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독립’이 아니게 되면 될 거 아닙니까?”
이건 또 뭔 소리냐.
“아일랜드에서 잉글랜드 동부 부분은 이번에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한 덴마크에게 관리를 맡기고, 나머지 웨일스 방면과 콘월 방면, 스코틀랜드는 아일랜드가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
잠깐만, 덴마크에 잉글랜드를 붙여 줘? 그럼 이거 계산이 어떻게 되나?
먼저 잉글랜드는...... 그래도 포텐셜이 제법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그 자체적으로도 기술력이 제법 되는 국가, 잉글랜드의 산업 잠재력과 합쳐지면.... 엄청나다고 봐야지.
새로운 해상 세력으로 부상할 만큼.
그러나 바다를 건너가 미국을 압박하지는 못할 정도고, 한동안 미국의 충실한 개가 되어서 기어다녀야 할 텐데.... 스웨덴은 어차피 내 딸이 왕비인 이상, 그리고 이번에 떡고물을 받아먹게 된 이상 유럽연방과 적극 적대하지는 않을 테니 덴마크-노르웨이를 밀어주시겠다?
어차피 유럽 연방을 상대할 국가가 없긴 하다, 도나우 연방? 유럽 연방군이 국내에 주둔할 거다. 러시아 공화국? 걔들이 아시아지 유럽이냐? 소련? 조만간 눈 내리는 나이지리아 될 예정이고, 동유럽에 한 무더기 생겨날 신생국들도 유럽 연방에 적대적일 확률은 낮고, 히스파니아랑 북유럽에 잉글랜드를 더해서 우리를 눌러보려고 하시겠다?
잉글랜드를 그냥 독립시키려 들었다가는 잉글랜드에 털린 기억이 많은 우리가 가만 안 있을 테니 일단은 연합국이고 잉글랜드에 한 발 걸치기도 한 덴마크를 앵글로노르드로 만들어서 우리를 견제하시겠다는 발상인가.....
꼴받지만, 들이받는 건 하책이다. 딴 데서 물어뜯어 줘야지.
“중국은 철저하게 분할되어야 합니다. 최악의 비열한 기습을 당하신 미국 역시 이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으시겠죠?”
미국은 중국이 한 덩어리이기를 원할 거다.
왜냐고? 중국 시장이 탐나거든.
그리고, 원래 나는 베를린 회의 때부터. 상대가 날 꼴받게 하면 트롤링하면서 똥오줌 갈겨놓는 외교를 해 온 사람이다.
명분도 있겠다, 루즈벨트 당신도 엿 좀 쳐먹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