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49화 (149/200)

149화 요동(3)

크렘린, 모스크바.

장성들은 죽을 듯한 침묵 속에 있었다.

바실렙스키가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간첩과 반역 혐의로 변명 한 마디 못 하고 처형당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야말로 처참한 대패가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선의 상황을 보고하도록.”

롬멜에게 맡겨진 임무는 분명 견제 임무였지만, 벌판에서 뭔 놈의 방어냐면서 키예프에 있던 전선을 폴타바에서 적을 섬멸해버린 뒤 하르카우와 도네츠크까지 진출했고, 이제는 벨로고드가 위협받고 있었다.

그리고, 장군들은 이를 숨김 없이 스탈린에게 보고해야 했다.

이제 몇 명이나 죽을까.

그걸 고민하던 장성들은 스탈린의 냉랭한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과한 것을 명령했나?”

“아닙니다.”

“후퇴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 자리에서 버티라고 하지 않았나, 병력을 몇 명을 충원해주었던가, 얼마나 많은 인민들이 더 피를 흘려야 우리 붉은 군대가 공격도 아니고 ‘방어’라는 걸 성공할 수 있겠는가.”

드네르프 방어선이 무너졌다. 롬멜의 기습 한 방에.

“적들은 이제 스탈린그라드로 향할 것입니다. 스탈린 동지.”

“이유는?”

“스탈린 동지의 이름을 딴 도시이니 상징성도 있으며, 무엇보다 남부의 주요 공업지대 중 하나인 만큼 무너질 경우 심각한 피해가 우려됩니다.”

“...........”

“발트 지역이 완전히 무너지고 레닌그라드가 포위된 지금, 벨라루스 전선군은 거대한 가위의 날 사이에 목을 들이민 형국입니다. 그리고 그 손잡이는 저 반동들이 쥐고 있습니다.”

“라스푸티차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반동들 역시 라스푸티차 기간 동안은 공세를 중단할 것입니다. 그 시기를 노려 반격을 해야 합니다.”

전선을 좁히면 안 된다.

전선이 넓어야 소련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만큼, 벨라루스가 통째로 돌출부가 된 지금은 오히려 일견 유리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동지, 발트 해의 제해권 상실은 가시적입니다. 스칸다나비아 전선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렵소. 해당 전선에 있는 우군에게 보급을 해주기가 거의 불가능하오.”

“발칸 전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독일군이 크림 반도를 공격하고 있으며, 크림 반도가 무너지면 발칸의 동지들은 고립되어 전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남부의 트로츠키주의자 반동분자들이......”

“스칸다나비아와 발칸은 포기하도록 하지, 발칸의 병력을 크림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 옮기고, 그대로 크림 방어에 투입해서 발칸의 병력을 최대한 빼낼 시간을 벌도록, 스칸다나비아의 병력들은 레닌그라드 구원으로 투입해.”

이제 와서 그런 명령을 내려봤자 빼낼 수 있는 병력이 많을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서기장이 허가해주는 것과 그냥 후퇴하는 것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그럼........”

“후퇴금지령은 아직 유효하다. 허가된 지역 외에는 후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때, 베리야가 스탈린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그리고, 스탈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

***

스탈린그라드 서쪽 180km 지점. 소비에트 연방.

“정지! 정지!”

기관차가 끼익거리면서 멈춰 섰다.

장갑열차에서 뛰어내린 병사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고, 장갑열차에 설치된 기관총이 사방을 경계했다.

그리고, 객차의 뚜껑이 열렸다.

“결합 완료!”

“크레인 가동.”

그리고, 열린 뚜껑으로 거대한 기둥 같은 것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연료 주입이 순조롭다.”

“안전장치 분리 중..... 해제되었다.”

“클리어.”

A4 로켓의 연료주입장치가 분리되었다.

“전 대원 위험범위 밖으로 물러서라!”

“자이로스코프 정상, 타겟 입력 완료.”

“발사.”

그리고,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하나의 불덩어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걸 본 병사들은 곧장 다시 승차했다.

“전 대원 즉시 출발 준비해라! 놈들이 우리 위치로 포격을 날릴 거야!”

목표물을 사거리 내에 안정적으로 넣기 위해 좀 과할 정도로 최전선에 나온 탓에 문자 그대로 쏘고 튀어야 했다.

잠시 뒤, 열차는 빠른 속도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섬광을 포착한 적에 의해 포탄이 날아오든 항공 폭탄이 떨어지든, 이미 게임은 끝났다.

잠시 뒤, 스탈린그라드라 불렸던 도시는 30킬로톤에 달하는 핵폭발에 휩쓸려 그대로 지도에서 소멸했다.

비슷한 시각, 표트르 대제가 피로 만들어낸 도시,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바다 저 멀리에서 날아온 30킬로톤급 핵폭풍에 휘말려 파괴되었다.

얼마간 끊겼던 핵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

요인수송용 망구스타 헬기 내에서 보고가 이어졌다.

“핵탄두 잔량은 이제 3발밖에 없습니다.”

“아끼라니까.”

나는 이마를 짚었다.

“핵탄두의 추가 생산은 어떻게 되었나.”

“추가 생산 중입니다만, 플루토늄 추출 시설에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서 해결 중입니다. 플루토늄 공급 문제만 해결되면 핵탄두 20발의 추가 조립이 가능합니다.”

그야말로 나라가 휘청할 정도의 예산을 퍼부어 완성된 핵시설은 1개월에 2발의 핵폭탄 양산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문제는 플루토늄 생산 시설에 발생했다는 기술적 문제였다.

“이것들이 사용 제한 풀어주니까 마음대로 쏴대네.”

“모스크바 인근에 도착하면 모스크바에도 한 발 더 쏘겠답니다.”

“빌어먹을 자식들이.”

아주 핵으로 적 밀집방어지역 날려버리는 습관을 들여버리니 뚫기 어렵고 적 병력이 밀집한 전략 요충지다 싶으면 핵 한 발 단거리 탄도탄에 장착해서 쏘고 보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이번 전쟁까지는 그 짓 해도 되지만 다음 전쟁부터는 상호확증파괴 때문에라도 그런 짓은 하면 안 될 텐데.... 아니, 생각해 보면 냉전기 교리랑 별로 다를 것도 없나?

지금이야 총력전이지만 저놈들은 국지전도 조금 안 풀리면 핵 쏘자고 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리고 모스크바를 날려버리면 협상은 누구랑 할 건가?”

“비현실적인 강화 조건을 내세우기만 하는 모스크바의 볼셰비키들보다는 핵으로 한 번 쓸어버리고 신정부와 협상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제발 지랄하지 좀 말게.”

평화협상이 안 풀리니까 핵을 쏜다고? 미치겠네 진짜.

나는 그러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세계 최초로 군에 제식화된 헬리콥터인 망구스타 헬기는 3명의 승무원과 다수의 무장병력이나 화물을 수송하거나, 혹은 기관총, 기관포, 건포드, 로켓, 지뢰살포기, 심지어 장기적으로는 대전차미사일까지 장착할 계획이 있는 무장헬기다.

공격헬기는 또 따로 개발하고 있는 물건이 있고.

VIP 수송용 버전인 황실 수송기는 그 정도의 중무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각종 통신장비 등이 가득 차 있다. 항상 주요 인사가 지상과의 연락이 끊기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저치였다.

“다 왔습니다.”

“그래.”

주요 지휘 벙커인 S34기지의 시험 비행장에는 대전차미사일과 함께 제식화될 공격헬기의 프로토타입인 교차식 로터를 가진 날렵한 모양의 헬기와 시험용 항공기들이 다수 주기되어 있었다.

독일과 공동개발이 진행 중인 치타 공격헬기의 시제품을 슬쩍 곁눈질한 나는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헬기에서 내렸다.

“충성!”

장교들이 경례를 붙였지만, 내 눈은 한 여성에게 고정되었다.

이렌느 퀴리.

마리 퀴리의 딸이자 유망한 핵물리학자이며 프랑스 핵무기 프로그램의 핵심 요인 중 하나.

“상황 보고하게.”

내 목소리에는 내가 파리를 비우고 여기까지 빨리 와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라는 식의 짜증이 미세하게 배어 있었다.

“볼가 강에 네덜란드군이 도달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시내로 진입하지는 않았으나, 스탈린그라드 내에 있는 적 병력의 전멸은 시간문제입니다.”

“그 이야기면 서면으로 하면 되잖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완전 점령되었습니다, 그러나, 포로와 민간인, 병력 등에게서 이상한 징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몰로토프 역시 우리가 세균병기를 사용했다면서 비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균병기? 사용되었나?”

“아닙니다.”

“하긴, 사용되면 안 되지.”

비인도적이네 뭐네 그런 문제가 아니라 통제가 안 된다.

“증상은 현기증과 마비 증세, 구토입니다. 백혈구 수치가 급감하며, 출혈이 발생하고, 호흡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다가........”

아 잠깐.

나 그 괴질의 정체를 알 것 같은데......

“발견된 환자들의 공통점은, 아군이 핵을 투발한 이후에 피격 지점에 접근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핵물리학 팀에서는 방사선이 어떠한 질환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한 방에 맞췄다.

“만일, 방사성 물질이 그 질환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핵폭격을 즉시 중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전세가 유지되는 건 바로 그 핵병기 사용 때문이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이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기고 있지, 그러나 그 승리는 우리가 적의 기동과 집결 등 모든 것을 제한하고, 일방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싸움만을 해 왔기에 가능한 거네.”

핵무기 한 발이 군단급의 사상자를 없던 것으로 한다.

핵무기 한 발로 최소 수만 단위의 전사자를 낼 시가전을 없던 걸로 만든다.

스탈린그라드, 펑.

레닌그라드, 펑.

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거점은 그냥 포위하고 핵을 한 발 갈겨서 정리한다.

적의 주요 배후 거점에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면 전방의 적 부대는 보급도, 증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휘부가 증발한 상태에서 괴멸당한다.

핵무기가 없었으면 몇천 대의 전차가, 몇천 대의 항공기가 더 손실된다.

그러고도 이 모양이다.

핵무기를 이용해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도 전선에서는 새 부대를 창설하는 게 아니라 손망실되는 장비들을 보충해주기도 급급하다. 미국은 그 명성과는 다르게 화끈한 지원을 해주지 않고 대부분의 전력을 태평양으로 집중하고 있었으며, 공산주의자들의 사보타주 따위가 아니더라도 프랑스의 공업 능력은 이미 그 한계를 시험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핵무기까지 봉인하면 당장 내년으로 예정된 벨라루스 점령전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우리는 지금 압도적인 적과 맞서 싸우고 있네, 우랄 산맥 너머에서 셀 수 없을 규모의 전차와 전투기들이 볼셰비키들의 요새에서 밀려나오고 있고, 저들은 땅에서 병사들을 캐내다시피 하며 밀려오고 있어.”

안타깝게도, 인권이라는 고상함은 총력전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 중 하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약속은, 이 전쟁을 조속하게 끝내고, 다른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것뿐이네.”

핵을 사용하는 것만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상대가 핵을 뒤집어쓰더라도 저항한다는 결정을 내린 한, 우리 역시 뒤가 없는 치킨 게임에 말려들어간 셈이었다.

‘전쟁은 끝나야 한다.’

어쩌면, 그 끝 역시 그리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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