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48화 (148/200)

148화 요동(2)

덴마크, 쾨펜하운.

크리스티안 10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다가오는데,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없는가.’

현재 자국의 모든 영토를 실질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스칸다나비아 내의 유일한 군주로써 크리스티안 10세는 나름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칸다나비아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이 전쟁은 분명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거다, 그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의 대전쟁에서 스칸다나비아는 계속해서 침략당했다.

그렇다면 다음 전쟁이 있다면?

그때도 국토가 짓밟히고 주권을 빼앗기는 경험을 해야 하는가?

그는 아니라는 답을 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이해해 주었다.

스칸다나비아가, 노르드가 뭉쳐야만 한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약소국으로써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는 왕위를 포기했다. 어차피 통치할 수 있는 영토도, 지켜줄 수 있는 신민도 없는 왕위였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전역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고, 덴마크는 외국군이 한가득 들어와 있었다.

노르웨이는 어떻게 잘 넘기더라도, 문제는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의 왕위를 자신이 차지하려 하면 프랑스가 가만있지 않을 터.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찾지 못했을 뿐.

동생을 위해서, 그는 전쟁 수행의 협조와 기타 공적을 고려해 동생을 필연적으로 생겨날 신생국의 군주가 되게 해 달라고 연합국에 요구할 생각이었다.

들어줄지 비웃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아일랜드.

잉글랜드 독립군을 지원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었다. 덴마크의 정당한 영토인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에 아일랜드가 영토분쟁을 일으키며 시비를 걸었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것이었다.

덴마크는 나약하다. 인구도 적고, 무기도 약하다. 노르웨이를 합쳐도 도토리 키재기다.

하지만 잉글랜드가 독립해, 아일랜드가 프랑스에게 그러했듯 노르드 연방의 혈맹이 된다면.

그렇다면 남부의 견제를 뚫고서라도 스웨덴과의 통합을 꿈꿀 수 있다.

어찌되었든 저들은 잉글랜드인이고, 나폴레옹의 망령에 패배했을 뿐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자들이니까.

그리고 아일랜드군은 약하다. 전쟁 중이라는 사실만 제하면, 덴마크군을 파병하면 아일랜드군을 브리튼 섬에서 몰아내는 건 시간이 문제일 뿐 쉽다.

문제는 프랑스와 독일의 개입 여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문제를 찾자면, 노르드 연방을 꿈꾸는 명분상 스칸다나비아 전역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공공연한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있다.

그랬기에, 그는 때를 기다렸다.

스칸다나비아는 살아남아야 했기에.

계속해서 열강의 이해관계에 의해 침략이나 당하는 신세를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없기에.

중립국이라는 말은 허망하며, 힘 없는 중립은 침략을 애원하는 것이다.

이를 뼈저리게 깨달은 군주는, 같은 실수를 결코 다시 반복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

필리핀, 바탄 반도.

“공세는 순조롭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자신의 옛 부관 아이젠하워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조로워야지.”

해군력이라고는 제대로 된 순양함 한 척 없어서 자살공격이나 해대는 야만스러운 것들.

하와이 인근에서 크게 패배한 뒤에는 문자 그대로 제대로 된 군함 한 척이 없어서 무장상선과 자살공격기만으로 미 해군의 공세에 맞서온 야만스러운 칭키들은 전략도 없었다.

그저 숫자로 밀어붙이기만 할 뿐.

하늘에는 자폭기로, 땅에는 온갖 잡스러운 무기를 들고 온 보병들로.

비열한 기습과 자폭공격으로 아시아함대가 큰 피해를 입은 탓에 초반에 불리했을 뿐, 미군은 이미 주도권을 되찾은 상태였다.

“필리핀을 완전히 탈환하고, 인도네시아 지역을 제압한 뒤 인도차이나에서 싸우는 중인 이스라엘인들과 합류해 중국 본토로 향한다.”

“프랑스인들이 타이완 탈환을 서두르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타이완을 탈환하면 적어도 우리 머리 위에서 날아드는 자폭공격기들의 수를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

“필리핀이 먼저네, 루손 섬을 탈환하기 전에는 타이완을 공격할 교두보가 안 나와, 그 다음에는 이곳, 류큐를 점령하면 적들은 고립되네.”

고립이라고 하기에는 거대한 대륙이지만, 맥아더는 자신감 있게 선을 그었다.

“중국 남부에 상륙해서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서, 놈들이 누구에게 시비를 건 것인 줄을 똑똑히 알게 해주자고, 제놈들은 청나라와 다를 줄 안 건가, 하.”

중국 최북단의 대도시이자 옛 수도, 베이핑까지 진격해 승전을 선언한다!

작전계획을 복기한 맥아더는 명령을 내렸다.

“최대한 빨리 필리핀에서 저 냄새나는 칭키들을 쓸어버린다. 어차피 저놈들은 오합지졸이야! 유럽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우리 힘만으로 극동 전선을 끝내 버리자고.”

물론 이스라엘은 전후 지분을 제법 가져가리라.

지금 필리핀 전역이 상대적으로 잘 풀리고 있는 것은, 막대한 병력을 인도에서 징집한 이스라엘이 버마 전역에서 수백만에 달하는 중국군, 그리고 그 중에서도 중국 군벌들이 키운 최정예 병력들을 온몸으로 붙잡고 있기 때문이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인도차이나 반도를 통으로 잘라달라고 해도 단번에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의 전공이었다.

하지만 파이를 나누는 건 이스라엘로 끝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의지가 그러했으니까.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를 전부 해방시키면 그게 다 미국 물건 팔아먹을 시장이 되네?’

‘하지만 유럽이 태평양에서 공적을 주장할 상황이 되면 유럽 국가들은 절대 식민지를 순순히 독립시켜주겠다고 할 리가 없을 텐데?’

‘우리가 독립시켜주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저들에게 가르쳐주면 유럽 열강을 다시는 주인님으로 모실 생각이 안 들겠지?’

‘유럽 열강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소련에 의해 피폐해져 있을 터, 식민지인들과 전쟁을 벌이다가도 스스로 지쳐서 결국 발을 빼게 되면 결국 미합중국이 이 지역에서 패권을 자연스럽게 잡게 될 수밖에 없다.’

루즈벨트의 의중을 전달받은 맥아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저 제국주의 열강들이 순순히 식민지를 해방해줄 리는 없으니, 결국 미군이 움직여 식민지들을 해방시키고, 유럽 국가들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해방된 식민지 국가들은 미국의 친우가 될 것이며, 자유를 맛본 이들은 옛 지배자들을 결코 다시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니 유럽 국가들도 현실을 파악한다면 분루를 삼키면서 이들의 독립을 인정할 터.

그리고, 미국에게 있어서는 태평양에 더 힘을 주는 게 모양새가 좋기도 했다.

소련이 미국을 기습공격한 것도 아니고, 이미 유럽 국가들끼리 잘 싸우고 있지만 태평양에서는 미국의 독무대다.

게다가 프랑스와 독일군조차 고전하고 있는 소련군의 전투력은 미군보다 한참 앞선다는 게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괜히 소련군과 정면으로 붙었다가 피를 보고 전쟁 지지율이 폭락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루즈벨트의 정치적 논리 역시 따라붙었다.

그랬기에, 수백만 명을 징집한 미국은 저 너머에서 조지 마셜 장군이 날밤을 새가면서 준비한 보급품과 훈련 코스를 이수하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대서양에는 물자나 보내주고 함대와 지상병력은 전부 태평양에 몰아넣은 결과, 미군은 타이와에서 퇴각해 온 프랑스 식민지군과 연계해 필리핀을 끝끝내 지켜냈다.

그러나 거기까지, 프랑스 식민지군은 공세를 나설 상황이 아니니 이제 반격작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루즈벨트가 원하던 완벽한 판이었다.

***

소비에트 연방, 나르빅, 북부전선.

“매복이다!”

독일군의 기관단총과 소련군의 기관단총의 소음이 사방을 메웠다.

공격당한 슈츠슈타펠 소대는 2대의 하노마크에서 급히 하차했다.

“엄폐해!”

“수류탄!”

그들을 엄호하는 전차는 없었다. 보병을 지원할 전차들은 전부 다른 곳에서 돌파에 투입되어 있었고, 보병들은 하프트랙에 의지해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했다.

더 정확히는, 했었다.

“요제프!”

“예! 파이퍼 소령님!”

“당장 무전기 잡고 공중지원 요청해!”

“알겠습니다!”

슈츠슈타펠의 제복을 입은 소년, 요제프는 급히 무전기를 잡았다.

“여기는 프린츠 6-2! 대규모 적 보병대의 공격을 받고 있다! 즉시 지원을 요청한다!”

-여기는 워호스 2-2, 서쪽에서 접근, 망구스타 2기, 거리 2400m, 현재 무장, 로켓 560발, 기관포 2000발, 임무 대기 중.

“워호스 2-2, 여기는 프린츠 6-2, 항공 지원 요청한다, 현 통사의 위치에서 북동쪽 4km 지점에 호수가 있다, 입감했나?”

-입감 완료, 계속하라.

“그 호수의 남쪽에 거의 비슷한 규모의 침엽수림이 있다, 확인했는가?”

-확인.

“당소는 해당 지역에서 접근하고 있는 적 보병들을 상대로 반궤도장갑차와 소화기로 교전중이다. 입감했는가?”

-확인했다.

“귀소의 목표물은 호수 방향에서 발포하는 적 공용화기와 박격포 포대다, 박격포의 위치는 숲 내부로 추측되나 확실하게 관측되지 않는다.”

-당소 전부 확인했음. 목표 상공으로 진입한다.

잠시 뒤, 폭음과 함께 헬기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개의 프로펠러를 가진 대형 헬기들은 주렁주렁 로켓 포드를 달고 있었고, 기수에는 기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안전장치 해제, 사격 개시한다.

그리고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몇 줄인지 셀 수도 없는 흰 연기구름이 줄을 이루어 숲으로 날아들었고, 기관포에서 뿜어지는 고폭탄들이 지상을 타격하면서 소련군의 사지를 분해했다.

“워호스, 여기는 프린츠, 폭격피해평가 100점 만점에 65점, 적 공용화기 사격이 여전히 관측된다. 한 차례 더 공격할 수 있겠는가?”

-확인, 대기하라.

잠시 뒤, 헬기들은 다시 한 번 기관포를 퍼부었다. 로켓은 다 떨어졌는지 쓰지 않았다.

호버링을 시도했다가는 격추당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에 일격이탈 전법을 쓰게 된 헬기들은 숲을 날려버리겠다는 듯 그야말로 움직이는 모든 것에 포탄을 퍼부었다.

-1호기 탄약 고갈.

-2호기 탄약 고갈.

-본 편대는 탄약이 고갈되었다. 폭격피해평가 대기중.

슬쩍 고개를 든 요제프는 무전기로 답했다.

“폭격피해평가 100점 만점에 100점! 적 부대는 와해되었고 퇴각하고 있다!”

-워호스 입감 완료, 파이퍼 소령에게 빚은 달아두겠다고 하겠다. 교신 끝.

임무를 완수한 헬기들은 방향을 돌려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달고 있는 프랑스군의 국적표지는 햇빛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요아힘 파이퍼 소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자꾸 꼬인다, 원래는 상황이 위태롭지 않은 한 교전하지 않는 정찰 임무였는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전투였다.

공중지원으로 적을 제압했다지만, 그들도 사상자가 없지는 않았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파이퍼 전투단 전 통사에게, 정찰 중단, 귀환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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