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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보나파르트-147화 (147/200)

147화 요동(1)

하늘은 맑고, 바람은 솔솔 불며, 풍겨오는 건 꽃향기가 아니라 휘발유와 화약 냄새이니, 이곳이 전장임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발사!”

포성과 함께 포탄 한 발이 목표와 약실 사이의 공간을 갈랐다.

그리고 섬광과 폭발이 이어졌다.

“명중!”

주먹을 휘두르는 조제프의 곁에서 짜증스런 표정의 한 여자가 내뱉었다.

“황태손 전하, 퍽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

지금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상대의 기분이 굉장히 좆같다는 이야기다.

“크흠.”

아니, 애초에 호칭부터가 ‘황태손 전하’다.

뭔가 시녀복 비스무리한 복장을 입고 있지만, 그녀는 평소에 자신을 ‘오라버니’라고 부른다.

왜냐고?

진짜 이복 여동생이니까.

“황제 폐하께서 아시면 어떻게 하실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황태손 전하께 특히 기대가 크시다는 거,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야, 릴리안.”

“전선시찰 나온다고 하신 뒤에 공세에 직접 참여한 것까지 아시면 어떨까요? 물론 하루 정도야 사람들이 다 입을 다문다면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클라라. 우리 협상 좀 하자.”

릴리안 클라라 드 보나파르트.

황태자의 사생아이며 황태손 조제프에게는 이복여동생 겸 시녀.

시녀는 하녀와는 다른 일종의 수행원이며, 황태자의 서녀이므로 시녀장급의 파워를 가진 황태손의 전담 시녀.....지만, 실제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손자를 감시하기 위해 붙은 감시자.

본래 남매는 서로를 죽이라고 프로그래밍되는 법, 붙어 있다가 황태손의 행동에 비행이 있다 싶으면 곧장 미주알고주알 고자질하기를 기대한 황제의 행동이었고,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다른 자식이면 몰라도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황태손이었기에 걸어둔 제약이었다.

물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고 두 사람 간의 협상 스킬만 늘어가긴 했지만, 이를 눈치챈 황제는 또 다른 이복여동생인 실비아 로라 드 보나파르트를 붙여서 이중감시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은 감시자가 릴리안 하나뿐이었다, 수행장교들은 당연히 있었지만, 황제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신뢰성을 그다지 믿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황태손은 가까이 붙어 있고 황제는 늙고 먼 곳에 있다.

황태손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장교들을 신뢰하기보다는 기회만 주면 서로의 머리채를 잡으려 할 거고, 서로 아쉬울 게 없는 감시자를 붙여놓는 게 낫지 않겠나.

“조건, 그 애보기 업무에서 나 풀어줘.”

“..... 많이 힘드냐?”

그러자 곧장 릴리안은 조제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시녀로써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이지만, 어차피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남매 아닌가. 이복이지만.

“힘들어? 힘들어? 오빠는 9살짜리 애 본 적 있어? 사람 미치게 만든다고!”

“내 앞에서는 얌전하던데.”

“그건 오빠가...... 아니다, 됐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릴리안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장기입원해야 하고 작은할머니가 와서 부탁하지 않으셨으면 진작 도망갔을 거야.”

“그런데 그럼 누구 시켜?”

“실비아.”

“..... 너도 제법 잔인하다.”

“흐흐, 그 년도 눈물 좀 빼봐야지.”

언니동생이 아니라 년이란다, 년, 세상에 황실에 이렇게 위아래가 없....다고 하기에는 애초에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니구나, 쯧.

“그런데 오빠.”

“응?”

“걔한테 관심 있어?”

“관심이야 당연히 있지, 그 불구덩이에서 내가 구해낸 애인데.”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음.”

턱을 톡톡 두드린 릴리안은 씩 웃으며 물었다.

“뭐 키워서 잡아먹겠다거나?”

“너 저번에 몸이 안 좋다더니 정신병원에 갔다왔냐?”

“역시 그래야 우리 오빠지.”

“...... 야, 잠깐, 니가 아무 이유 없이 개 풀 뜯어먹다가 옆구리 터지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거고. 뭐 이상한 소문이라도 도냐?”

“뭐, 꼬맹이가 오라버니를 너무 따르니까 농담삼아 오빠가 키워서 결혼해버리려고 주워왔다는 농담 정도? 미인이 될 싹이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미인? 9살짜리 꼬맹이 놓고 미인은 개뿔이, 한 14살 15살은 되어야 미인의 싹이네 뭐네 소리라도 나오는 거지, 너 봐라, 어릴 땐 그렇게 귀여웠는데 크면서 다 조졌....”

“죽었어!”

물론, 릴리안의 외모가 어디 가서 빠질 외모는 아니다.

모계 유전자를 받은 백금발의 미인, 흑발흑안의 귀공자상인 조제프와는 어디 가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남매라고 절대 생각하지 못할 모양새기는 했다.

사실 황태자의 자식들이 하나같이 선남선녀기는 했지만, 모계 유전자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릴리안과 실비아의 외모는 어디 가서든 튀는 편이기는 했다.

그런데도 조제프가 릴리안을 놀려대는 이유는 외모, 정확히는 그 외모에 대한 평판에 굉장히 민감한 릴리안이 발작하는 걸 보고 싶어서였다.

물론 정도 이상으로 긁으면 탈 난다, 릴리안의 성깔상 살살 맞으면 안 아프다면서 자기 허벅지에 권총 한 방 정도는 박아줄 인간이었기에.

그런데 또 세상은 그 미모로 유명한 릴리안이 그런 성깔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른다. 다들 현모양처감이라고만 생각하지.

‘현모양처는 개뿔이, 결혼해서도 욱하면 애 업고 설거지하다가 남편 대가리를 그릇으로 깨버릴 년이.’

저 늘씬한 팔다리에서 힘은 또 뭐가 그리 무식하게 나오는지 악력만으로 뭔가를 으스러트리는 장면을 몇 번이고 봤다.

아주 세상 사람들! 당신들은 전부 지금 속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블로이드지에 전면광고로 실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조제프는 자신의 삶을 사랑했기에 여동생의 꼭지가 돌지 않는 한도 안에서 동생 놀리기를 즐길 뿐이었다.

그리고 릴리안도 그걸 알기에 지금 걷어차는 것도 힘 조절을 나름 하면서 걷어차는 거고.

오라버니 엉덩이를 몇 대 걷어찬 릴리안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나름 가문이 전혀 이름이 없는 건 아니니까.”

부유한 귀족 가문의 미인이 될 싹이 보이는 상속녀. 어지간한 사람은 눈이 돌아갈 상대지만, 즉위한다면 나폴레옹 6세라 불릴 황태손에게 있어서는 큰 매력이 없다.

유럽을 호령하는 초강대국의 군주가 될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가 좀 알아봤는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 하실 수도 있어.”

“지랄.”

“들어 봐, 할아버지는 황실을 더 민중에 친근하도록 끌어내리려고 오랜 시간 노력하신 분이잖아.”

“그래서?”

“그러니 신분을 굳이 따지지는 않으실 거다 이거지, 그리고 외국인이란 거, 이거도 나름 플러스 요소라면 플러스 요소인데, 할아버지의 꿈, 알지?”

“...... 유럽연방.”

황제가 직접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짐작했다.

독일군 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러는 아예 이 계획안의 적극적인 지지자이기도 했다, 단 할아버님 본인이 그 유럽 연방의 수장이 된다는 전제 하에.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이들을 품는 게 필수야, 그런데 오빠 몸에는 남독일의 피가 4분의 1이고, 프로이센의 피가 절반이잖아.”

“네덜란드 여자랑 결혼하면 완벽하다 이거야?”

“뭐 비슷하지, 이탈리아가 좀 문제지만, 설마 자기 혼자 빼겠어?”

남독일 연방의 처리방안은 대략적으로 협의가 이루어졌다.

대충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만 뺀 나머지는 북독에 병합되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그 외의 전후처리는 아직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러시아 공화국이 참전한단 이야기도 있으니, 그들도 뭔가 전리품을 얻고 싶다면 발칸에서 잘 싸워야겠지.”

“할아버님은 소련을 완전히 거세시킬 작정이겠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연방은 천년만년 군림할 것이고.

“막대한 영토를 뜯어내실걸? 발칸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핀란드, 발트 국가들, 그리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캅카스 정도는 날아가겠지.”

중국도 마찬가지일 터, 그들은 할아버지가 야밤에 중국 지도를 앞에 놓고 선을 이리저리 그으면서 고민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뭐라고 하셨더라? 중국이 너무 좋으니 중국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던가.

***

파리. 프랑스.

“다른 문제로는, 프레데리크 10세가 칼마르 동맹의 복원에 미련이 있나 봅니다.”

“칼마르 동맹이라.”

뭐, 나름 원 역사에서 영토욕도 있었던 양반이기는 한데.

“스웨덴 왕위는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자기 동생이 가진 노르웨이 왕위를 덴마크에 합치겠다는 생각은 할 법 하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나폴레옹 전쟁 시기 줄을 잘못 서서 날아간 거긴 하다. 덴마크가 끝까지 나폴레옹에게 충성했으니까.

“그러니까 보나파르트 가문이 유럽의 패권을 잡았으니 그 시절의 일에 대해 보상을 요구해도 억지스럽긴 해도 하지 못할 소리는 아니거든.”

나는 정보부에서 가져온 덴마크의 군비 현황을 바라보았따.

“군을 노르웨이에 투입하고, 무기를 비축하고, 병력을 충원하고, 노르웨이 왕위에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지.”

“본인 동생 왕위지만 말입니다.”

“뭐..... 그거야 적당히 보상을 해 주면 되겠지.”

어차피 신생국이 많이 생길 텐데 거기에서 지분을 주장해서 동생을 왕위에 앉혀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수습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총독 직위를 보장해준다거나.

“하지만......”

“황제 폐하, 급보입니다.”

“뭔가? 모델이 패하기라도 했나?”

“아닙니다.”

“그럼 롬멜이?”

“아일랜드입니다.”

“....... 아일랜드? 그놈들 중립국 아니었나?”

“잉글랜드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반란이 일어났고, 아일랜드군이 런던에서 패퇴했습니다. 반군의 규모가 이미 200만에 달했다고........”

“200만?”

나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쳤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이 도와달라고 했나?”

“아닙니다.”

“하긴, 그놈들도 양심이 있으면 도와달란 소리는 못하겠지.”

“아일랜드 측에서는 사태를 축소하려고 애쓰는 모양입니다만, 이미 동부 해안 일대는 반군 세상이 된 모양입니다.”

아일랜드군의 전력이 객관적으로 절대 강한 것도 아닌데 머릿수만 무식하게 늘려서 억누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탈이 났다.

“어쩌시겠습니까?”

“놔둬, 우린 지금 서부전선을 열 상황이 아니다.”

아일랜드나 잉글랜드 독립군이나 해군은 없다시피 한 마당이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

무엇보다 그딴 데에 병력을 돌릴 여유도 없고, 지금 라스푸티차 전 마지막 대공세 펼치는 마당인데 잉글랜드에 투자할 사단은 없다. 그럴 사단 있으면 예비대로 빼야지.

반군 200만? 뭐, 실제로 한 20만쯤 된다고 쳐도 그놈들 제압하려면 병력이 얼마나 들겠나? 아무리 낮춰 잡아도 몇 개 사단 정도는 파견해야 할 텐데 그럴 사단이 있으면 모델에게 예비대로 주겠다.

“문제는, 덴마크가 여기 관련되어 있는 걸로 보입니다.”

“뭐?”

아니, 그놈들이 왜 또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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