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바르바로사(4)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상식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통제 불능이 된 항공기가 추락한 거 아닌가?”
“아닙니다! 명백히 부스터를 달고, 충돌을 위해 날아왔습니다!”
“무인기 아닌가? 그 프랑스에서도 그 비슷한 무기를 개발한다던데......”
“시발 콕핏이 있었다니까요!”
“프랑스에서 개발된 펄스제트 엔진은 그 엔진 특성상 급기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판단해 보았을 때 급강하폭격이나 뇌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빈약한 해상공격능력을 메우고자 저들이 자폭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래, 자폭기를 만들었다 치자, 그런데 조종사를 그 항공기에 밀어넣는데 아무도 반항하지 않는다고? 그 정도면 반란이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적의 대함 공격 능력의 부재를 생각하면 일회성 시도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밀어넣어야 하는데? 아무리 노랑 원숭이들이라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패닉.
이 자살돌격 행위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때의 미 해군 수뇌부의 반응이었다.
살아돌아가기는 글렀다고 판단한 조종사가 적에게 더 큰 피해를 주기 위해 돌격한다면 적군이든 아군이든 그 용기를 존중해 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전문적인 자폭병기를 제작해 투입하고 조종사를 거기 밀어넣는다는 듣도 보도 못한 발상 앞에서는 기가 막혀서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살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 국민들은 찍 소리 안 하고 국가가 명령하니 스스로의 생명을 내다버린다.
그야말로 경험해 본 것 중 최대의 컬처 쇼크였다.
“현재 표준 함재기인 코브라 전투기로는 안 됩니다. 프랑스제 신형 제트기를 수입해 와야........”
“다수의 폭격기들이 작전 도중 적 방공망에 막대한 손실을 냈습니다.”
“중국인들은 최소 수만 대의 작전 가능 기체를 보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전부 자폭돌격을 시도한다면 막대한 해군력 손실이 예상됩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당장 이 전혀 새로운 종류의 공격에 대한 대책부터 연구해야 했다.
***
전투기 여러 대가 하늘을 날았다.
레이더에 포착된 적기들에 대응해 출격한 프랑스의 신형 전투기 리베르타스로 이루어진 편대는 고속으로 하늘을 날았다.
“적 전투기 확인! 15기..... 아니, 20기, 아니, 24기... 계속 늘어납니다!”
“적기들은 핵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노리고 온 거다, 절대 접근 못 하게 해!”
핵 탄도미사일.
프랑스군의 전술핵을 탄두에 장입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원형공산오차가 3km에 달하며 사거리는 200km 내외.
프랑스에서는 이를 잠수함에도 장착해 보려고 꼬물거리고 있지만, 여러 문제 탓에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프랑스군이 보유한 이 핵 탄도미사일은 순식간에 격추되면 끝인 항공투발, 운용에 제한이 많은 열차포 대신 프랑스군의 핵 투발수단의 주류를 차지했다.
전선이 고착된다 싶으면 주요 지점에 핵을 갈겨버리는 전술을 즐기는 프랑스군에게 있어서 핵무기는 굉장히 실용적인 전략물자였기에, 이를 제압하기 위해 항공기를 파견하는 것도 당연했다.
“기종 확인! 적 미그기다!”
공기흡입구가 기수에 큼지막하게 나 있고 델타익을 한 단발 제트기, 러시아제 미그 전투기였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놈들이 제발로 왔다! 제군들! 가만 있을 건가?”
“아닙니다!”
“놈들을 박살내자! 기체만 좋은 거 탔지 오합지졸들이야!”
최고속도는 적기가 조금 위, 무게는 적기가 두 배 가까이 무거웠지만 그런 속도를 낸다는 것은......
‘저놈들도 그만한 성능의 제트엔진을 만들었단 거지.’
정확히는 독일제 엔진이라고 들었지만, 그걸 복제해낸 건 소련인들의 기술이다.
결코 얕볼 수 없는 상대.
하지만 그들에게도 결전병기는 있었다.
잠시 뒤, 전투기들이 뒤섞여 도그파이트를 벌이기 시작했다.
편대장은 능숙한 기동으로 미숙해 보이는 적 조종사의 꼬리를 잡았다. 6시를 잡힌 적기의 배기구를 향해 조준선을 맞춘 편대장은 헤드셋에 귀를 기울였다.
-갈갈갈갈갈......
“드래곤! 드래곤!”
미리 약속된 신호를 주며, 편대장은 붉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불꽃이 튀며 날개 아래에 장착되어 있던 것이 튀어나갔다.
초기형 적외선 추적식 공대공 미사일이 꽁무니에서 불꽃을 뿜어내면서 창공으로 날아갔고, 미그기를 정통으로 맞춰 불덩이로 만들었다.
공대공 미사일의 역사상 첫 실전 발사였다.
그날, 4기의 미그기가 미사일에, 11기의 적기가 20mm 기관포에 격추되었다.
그 화망을 뚫고 돌입한 적기들 중 12기는 프랑스군의 레이더 연동 75mm 대공포에 벌집이 되었고, 결국 출격한 36기의 전투기 중 3분의 2를 넘는 피해를 입은 소련군은 다급하게 퇴각했다.
프랑스군의 피해는 3기뿐이었다.
***
함대공미사일과 75mm 레이더 연동 대공포로 무장한 프랑스의 주력함 잔 다르크급 항공모함 3번함 장 바르는 필사적이었다.
“어뢰 접근 중!”
“좌현 전타!”
함장의 비명같은 명령에 조타수가 급히 거대한 함선을 틀었다.
프랑스군의 수직이착륙기가 하늘을 날면서 잠수함을 쫓고 있었지만, 이미 발사된 어뢰를 어떻게 해줄 수는 없었다.
위쪽에는 거대한 로터, 그리고 양쪽으로 뻗은 두 날개에는 전방 프로펠러가 있는 대형 헬리콥터는 굉음을 내면서 수면 위를 날다가 그대로 폭뢰를 떨어트렸다.
네 발의 폭뢰가 잠수함에 있을 법한 위치에 일직선으로 떨어지자 대폭발이 일어났고, 그대로 어뢰를 발사한 소련 잠수함은 산산조각났다.
그러나 저 어뢰들을 모함이 다 피하지 못하면 대잠헬기도 상당히 곤란해질 상황이었고, 항공모함은 엄청난 속도를 내면서 어뢰를 회피했다.
-쿠웅!
폭음과 함께 물기둥 하나가 솟았다. 항모에서 좀 떨어진 쪽이었다.
“파도 때문에 유폭한 모양입니다. 다행이군요.”
헬기 조종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냐. 그리고....”
“어뢰, 빗나갑니다.”
잠시 뒤, 어뢰의 포말들이 완전히 시야 밖으로 나간 뒤에야 착륙 준비를 하던 부조종사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는지 질문을 던졌따.
“기장님.”
“왜?”
“최근 발트 해에서 군사활동이 눈에 띄게 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전쟁 중이잖냐.”
“그런 거 감안해도요.”
“높으신 분들이 뭔가 생각이 있겠지, 혹시 아냐? 저~ 아래에서 대대적인 규모의 공세라도 준비하고 있을지.”
***
“북부전선의 총공세가 될 바르바로사 작전의 최종목표는 레닌그라드의 점령입니다.”
직선거리 800km에 육박하는 긴 거리.
그러나 이번 공세에 우리가 보유한 대부분의 기갑차량과 항공전력을 털어넣을 뿐 아니라 해군의 적극적인 지원도 곁들여질 예정이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이 세 지역에서는 본래라면 현지인들의 환영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다만, 소련 정부의 숙청으로 인해 현지의 인종 구성 자체가 뒤바뀐 상황에서는 쉽게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남부의 우크라이나 방면에서는 롬멜 장군이 공세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는 조공으로......”
롬멜에게 모델이 쓸어가고 남아 있는 장비를 다 몰아주다시피 했다.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이 두 부대가 괴멸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러시아군의 기갑부대를 보병으로만 막아야 할 판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봐도 벨라루스 전선이 좀 불안하네만.”
“르끌레르 장군의 기갑군단이 신편되어 배치될 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됩니다.”
리베르타스 전투기의 소모율이 너무 크다. 물론 그만큼 밥값을 하고 있지만 새로 생산해서 채워주기가 무섭게 무슨 사탕 까먹듯이 소모되고 있으니.....
아니, 이건 근본적으로 수적으로 불리한 게 문제다, 리베르타스는 성능에 비례한 생산 및 정비에 인시를 소모한다.
물론 리베르타스를 만들 기회비용으로 이롱델을 만들어서 기대할 수 있는 전과는 리베르타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전과와 비교가 안 되니 리베르타스, 그리고 그보다 더 우수한 항공기를 전선에 투입하는 건 합리적이다.
다만 그래서 모든 전선에 투입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지. 아마 다른 기체로 대체하기 위해 생산 중단하는 순간 잔존 기체들도 순식간에 사라질 거다.
다행히 소련군 역시 제트기를 막 찍어내서 투입하지는 못하는지 발견되는 수량 자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많지 않지만, 그래도 골치아픈 건 사실이다.
“발칸 전선의 상황은?”
“적들도 방어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전선이 너무 넓다.
동부전선, 태평양 전선. 발칸 전선, 스칸다나비아 전선.
거기에 물자공급은 우리가 다 도맡아 하고 있다, 빌어먹을, 우리는 천조국이 아니라고.
전선의 압박보다는 물자공급의 압박이 더 심한데, 미국은 아직 국가를 전시체제로 전환하지 못해서 애를 먹고 있다.
신형 전차에, 전투기에, 화포에, 보병무기까지. 전부 우리가 양산해서 배포하고 있다.
전차들도 수량이 언제나 아슬아슬하고, 신형 전차를 우리가 더 생산한다 치면 미국이 없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보유한 기갑전력이 신형 전차가 실전에 투입되기 전에 전멸할 판이었다.
뭐, 동맹국이라도 잔뜩 있는 우리와는 달리 저놈들은 혼자서 저 많은 전선을 열어젖혔으니 만만찮게 괴롭기는 개뿔, 머릿수로 유명한 국가가 전 세계에서 둘이 있는데 둘이 다 우리 적이네.
이스라엘에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만 빼고 동남아를 다 약속해서라도 대규모 병력을 인도에서 징병해 투입하면 좀 나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걸 실어나르는 거리와 비용을 생각해 보니 차라리 우리 병력으로 상대하는 게 낫다. 그래도 공업 능력은 상대적 약자에 가깝다는 게 위안 아닌 위안이기는 한데.
무엇보다 미국이 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아마 이번 공세가 올해의 마지막..... 그리고 미군이 참전하기 전의 마지막 주요 공세가 될 것이오.”
전선 곳곳에서 파쇄공격 정도는 진행되겠지만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규모 공세는 이번 공세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번 공세가 끝나면 모든 전선에서 공세 역량이 소진되고, 그걸 채우려면 이번 겨울이 지나야 할 테니까.
저들의 동계공세에 대해서도 대비하려면 최소한의 여력은 남겨둬야 하니 추가 공세는 거의 불가능할 거고.
“그러니, 이번 공세는 단순히 전략목표의 점령이 아닌, 전선의 축소도 고려할 것을 요청하겠소, 현실적인 수준으로 전선을 축소해야만 다음 공세에서도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전선이 늘어지면 병력밀도가 옅어진다.
그렇게 되면 아주 많이 곤란하다.
“모스크바를 점령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련을 상대로는 한 치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라겠네.”
38식 전차가 배치되니 이제 또 다른 신형 전차를 연구하고, 리베르타스 전투기가 배치되니 그 발전형 전투기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그걸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들.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들과 그들을 이끄는 장교들, 이들을 지휘하고 전략을 짜는 장성들까지.
모두가 노력해야만 이 싸움에서 진정 ‘승리’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