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바르바로사(1)
1936년 9월 8일. 슈체친.
7기갑사단장 샤를 드골 소장은 쌍안경을 들고 전선을 바라보았다.
프랑스-독일 연합군이 반격을 개시한 지 꼭 100일째가 되는 날인 오늘, 그들은 슈체친에 도착했다.
베를린에서는 여전히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샤를 드골과 7기갑사단은 안타깝게도 베를린 공방전에 참여하는 중부전선군이 아니라 북부전선군에 배치된 상태였다.
어지간해서는 전선군 단위로 사단 배치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주목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후 정계 진출을 꿈꾸고 있는 드골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가지 않는 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금은 레닌그라드라 불리는 그곳.
지금은 수도가 아니지만, 혁명의 심장이라 불리는 레닌그라드를 정복한다는 것은 그만한 영예가 뒷받침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련 영내로의 진격은 정치적 문제라고 한다. 일단 독일 전역의 탈환은 합의된 사안이었지만 이를 넘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3국으로 진격하는 것은 프랑스와 나치 독일 간에 합의가 되지 않았고, 발칸 진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남독일의 처우도 어찌할지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판이다.
‘그렇다면 쾨니히스베르크 탈환전에서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라도 뭔가 눈에 띄는 전공을 세우겠다. 어차피 바르샤바 등지를 점령하기는 글러먹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샤를 드골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
베를린.
인간의 악의들이 끈적하게 비 오는 베를린을 덮고 있었다.
항공기들은 치열하게 항공전을 벌였고, 지상에 추락한 조종사들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급받은 소총을 잡았다.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소위 역시 숨어다니는 건 마찬가지였다.
조종사용 생존 소총을 들었다지만, 고작 5발짜리 볼트액션 카빈 소총으로는 기관단총을 들고 날뛰는 적들을 상대할 수 없다.
같은 볼트액션 소총이라고 해도 조종사용 소형 소총의 성능은 보병용 소총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 기습이 아닌 한 이길 가능성은 낮았다.
애초에 문자 그대로 야생에 떨어졌을 때의 ‘생존’을 목표로 제작된 장비이기도 했고.
“젠장......”
프랑스에서 준 이롱델 전투기를 타다가 연료가 떨어져서 땅에 갈아버린 마르세이유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줄 거면 좀 좋은 걸 주면 덧나나?
프랑스군은 조종사 생존용으로 처음에는 권총이나 접는 게 가능한 전용 생존용 볼트액션 소총을 줬지만 지금은 그 소총을 개량한 반자동소총이나 접이식 기관단총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손에 들린 건 그 프랑스군이 갖다버린 볼트액션 소총뿐이었다.
뭐, 억울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프랑스군이 자기 현역 무기가 남아도는 게 아니니 성능이 크게 중요한 게 아닌 조종사용 생존장비를 도태장비로 주는 건 이상할 게 아니니까.
뭔가 큰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더 나은 게 나와서 바꾸는 거니 말이다.
조종사가 보병처럼 전투에 휘말릴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는 논리였고, 본인부터가 공군 참모총장 출신인 괴링조차 그런 견해에 동의했으나, 마르세이유만은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줄 거면 기관단총 같은 방아쇠 당기면 나가는 물건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괴링이 듣는다면 ‘꼬우면 니 발로 착륙해’라고 답했을 가능성이 높긴 했다. 솔직히 말해 이번만 해도 벌써 6번째 비행기를 잃어버린 마르세이유가 문제인 것이다.
그간 8기의 격추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상부에서 이 ‘골칫덩이’에 대해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본인뿐이었다.
‘젠장, 총, 총 한 자루만 손에 넣으면.......’
조심스럽게 골목과 골목을 누비며 돌아다니던 마르세이유는 눈에 들어온 적병 하나를 겨냥했다.
-타앙!
단 한 발에 뒤통수가 뚫린 적병은 즉사했다.
그 직후 그 적병과 동행하던 다른 병사들이 총탄을 퍼부었고, 급히 마르세이유는 몸을 숨겨야 했다. 7.5mm 탄이 엄폐한 담장에 퍽퍽 박히면서 시멘트 담장이 조각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한 발 더 쏴야 하는데 도무지 조준을 못 할 판이었다.
‘몇 명이지?’
쓰러진 적 하나를 제외하고도 7명,
너무 많았다.
‘항복......해야 하나?’
그런데 자기 동료를 쏴죽인 놈의 항복을 받아 줄까?
순간, 그 생각을 마비시키는 쇳소리가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들렸다.
수류탄이 굴러들어온 걸 본 마르세이유는 직감했다.
피할 공간도 없는데 터지면 죽는다!
곧장 번개처럼 수류탄을 되던진 마르세이유는 골목 너머에서 폭음을 들었다.
저 너머에서 뭐라 꽥꽥거리는 소리를 들은 마르세이유는 재빠르게 몸을 내밀어 연기 너머로 한 발 더 쏘았다.
곧장 총성이 다시 울렸지만, 그 수는 많이 줄어 있었다.
아까 수류탄으로 최소 절반은 해치웠다고 판단한 마르세이유는 총성이 멎기를 기다려 한 발을 더 쏘았다.
그걸 두어 번 반복하자 슬그머니 자신감이 솟은 마르세이유는 소총을 겨눈 채 엄폐물에서 기어나왔다.
“다 죽었나?”
시체 여러 구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걸 본 마르세이유는 하면 절대 안 되는 짓을 했다.
맘을 놓고 총을 바꾸려고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그 대가로 날아드는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개머리판에 맞은 마르세이유는 그대로 나동그라졌고, 소총을 든 러시아군은 곧장 마르세이유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마르세이유는 에이스가 되긴 한 것에서 증명되듯 충분한 판단력과 대응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머리가 빙빙 도는 상황에서도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혼자인지 여럿인지는 몰라도 여럿이면 싸우는 동안 벌집이 될 게 뻔하니 달라붙어서 못 쏘게 하고, 몸싸움으로 밀고 들어가겠다는 심산이었다.
상대의 소총의 총몸과 총신을 붙잡고 역으로 밀어붙인 마르세이유는 상대의 목을 총몸으로 누른 뒤 죽을힘을 다해 밀어붙여 목을 졸랐다.
상대 역시 반항해 역으로 마르세이유를 쓰러트리고 죽여버리려 했지만, 마르세이유의 삶에 대한 간절함이 조금 더 우위였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총을 빼앗은 마르세이유는 그대로 개머리판으로 상대의 옆통수를 후려치고, 쓰러진 적을 몇 번이고 내리찍은 뒤, 총을 한 발 쏴서 마무리지었다.
“헉, 헉.......”
총을 떨어트리고 숨을 미친 듯이 몰아쉰 마르세이유는 조심스럽게 적이 들고 있던 카빈 소총을 집었다.
처음 보는 총이었지만, 탄창이 어디고 방아쇠가 뭐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적의 시체에서 탄창을 여럿 노획한 마르세이유는 어딘가에 있을 아군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길이 쉽지는 않았다.
얼마 뒤 적 한 개 분대와 마주친 마르세이유는 20발짜리 탄창이 왜 이렇게 느릿느릿 비워지는지, 조준 안 되게 왜 총신은 쏠 때마다 앞으로 왔다갔다하는지 등에 대해 원망하면서 숨고, 구르고 뛰기를 반복한 끝에 간신히 도망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독일 기갑부대와 마주쳐 간신히 둥지로 돌아갈 때까지 비슷한 경험을 세 차례는 더 해야 했던 마르세이유는 꼬박 24시간 만에 비행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슬슬 이롱델을 단종시키고 남은 장비를 전부 독일군에 떠넘기면서 전선에 배치될 시기를 보고 있는 프랑스군의 단발 단좌 제트전투기나 제트기시대에 영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대함미사일이 개발되면 대함미사일을 단 전투기에게 그 역할을 넘기고 독일에 공여되기 위해 라인을 폐쇄할 준비를 하는 뇌격기들, 적의 신형 107mm 주포에 펑펑 뚫리면서 중전차로써의 효용성이 바닥나고 중형전차로 굴려지는 중인 티그레를 대체하기 위한 신형 전차 개발 사업 등은 전부 지엽적인 일이었다.
중요한 건 현재 프랑스군이 적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
“남부전선군의 진격 속도가 늦군.”
“대규모 적 병력이 프라하 방면에서 나타나 이들과 교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련군의 전차 전력은 그야말로 끝이 없어 보였다.
“핵탄두의 재사격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끙.”
나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핵폭탄 남은 게 15발밖에 없네, 그게 그렇게 빨리 준비되는 게 아니고.”
핵탄두의 문제점은 실사격 이후 바로 드러났다.
대규모 부대에 대한 파괴력이 제한된다는 것.
이미 발트 해에서 샤를마뉴 격침의 보복으로 여러 개의 버섯구름이 피어오른 바 있었지만, 그로 인해 소련 해군이 전멸하지도 않았다
“적의 대규모 병참기지와 병력 집결지, 공장지대가 드레스덴에 있습니다. 적어도 드레스덴은 날려야 합니다.”
우리 폭격기들이 융단폭격을 할 만한 규모가 되지 못하니, 핵으로 날려버린다는 편리한 생각.
핵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어서 나오는 발상이다.
“핵무기의 수율을 높이기 위해 지금 우리 핵물리학자들이 밤을 새서 연구를 하고 있지만,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걸세, 핵은 아껴야 해.”
“드레스덴은 20만 대군에 맞먹는 가치가 있습니다. 황제 폐하.”
“.........”
“핵무기 한 발쯤은 할애할 가치가 있습니다. 적 남부전선군 사령부 역시 드레스덴에 주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독일 정부의 입장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드레스덴을 놔두는 것보다 도시 하나를 희생시키고 전선 전체에서 죽어나갈 수많은 이들을 살려내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그래서, 드레스덴을 날려버리자는 건가?”
“이미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나는 이미 많은 도시들을 파괴했다.
그때는.... 그때는 그래도 변명거리가 있었다. 그렇게 안 하면 나라가 망할 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소련을 독일과 프랑스가 연합해서 상대하는 판이다.
이기는 건 쉽지 않겠지만, 당장 나라가 망할 판이냐고 물으면 아니다. 소련은 지금도 협상을 고려하고 있는 게 너무나도 뻔히 보이니까.
즉, 내가 전쟁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면 핵무기를 쓰지 않고도 승전하는 형식으로 전쟁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아니, 애초에 나치의 손을 잡지 않고 소련의 제안처럼 독일을 분할해서 서독에 우리 괴뢰국을 세웠다면 전쟁은 이미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러지 않은 이유는 정치적으로 더 많은 걸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소련이 그 정도로 덩치를 키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즉, 소련을 놔두는 것보다 이번에 소련을 철저하게 짓밟고 유럽연합을 세우는 것이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더 낫다고 판단했기에, 더 많은 피를 흘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나는 또 다시, 내 손에 피를 묻히기로 결정했다.
“9발.”
나는 장군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답을 돌려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핵탄두의 잔존 숫자가 9발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게.”
내 말은 결국 핵폭격에 대한 우회적인 동의였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드레스덴을 비롯한 여러 전략 요충지에 다시금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