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맥동(5)
프랑스 제국은 군국주의 국가는 아니다.
물론 황제는 대원수이기도 하며, 황태자는 당연직으로 원수를 겸임하고, 황족들은 장교로 병역을 수행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정은 의회가 수행하며, 황제도 실질적인 군무에서는 손을 떼었고, 황태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손을 뗀 것 치고는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긴 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제 없이 잘 돌아가는 군부에 이거 좀 검토해보라고 휙 던져놓으면 참모본부의 장성들과 영관급들은 그날부터 온 세상을 저주하면서 밤샘에 들어가는 거지만.
그리고 그런 종류의 무기체계 가운데에는 특이한 물건들도 제법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물건을 따지자면, 단연 로켓병기일 것이다.
전자장비 성능이 개떡같아서 정밀한 미사일을 만들 수는 없지만, 프랑스군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에 제법 투자했다.
사거리는 프랑스 해안지대에서 발사해서 간신히 영국에 닿을 정도에, 신뢰성도 떨어지지만 일단 발사되는 순간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이 병기는 세 가지 무기 가운데 가장 진척도가 높았다.
또 다른 개발 중인 병기로는 장기적으로 뇌격기를 대체할 대함 미사일, 문자 그대로 미사일을 퍼부어 적의 대형함을 격침시킨다는 목표로 개발되고 있는 병기로, 만들어지면 세상을 뒤집어놓을 무기체계지만 그 성능을 맞추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 병기는 대공 미사일, 레이더로 유도되며 초음속 목표를 요격할 수 있는, 장기적으로 대공포를 대체할 중거리 미사일이 목표였고, 이 요구사항을 들은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기술력이 미비하다면서 단체로 드러누웠다.
레이더 성능이 아직 걸음마 수준인데 대체 뭘 바라는 거냐는 연구진의 시위는 안타깝게도 황제의 마음을 바꿔놓지 못했고, 과학자들은 혁명의 나라 프랑스답게 황제를 단두대에 올리거나 엘바 섬에 유배를 보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할 능력이 없었기에 예산이 필요하면 예산을 주겠다는 황제의 대답만 듣고 패퇴해야 했다.
게다가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는 건 그들만은 아니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이롱델 전투기를 대체하고, 지금 열심히 개발되고 있을 미래의 적 전투기조차 압도할 경량 고기동 초음속 전투기를 만들어내라는 요구에 연구진은 거품을 물었지만, 황제를 워털루에서 패배시킬 수 없었던 연구진 역시 예산으로 싸대기를 한 대 맞은 후 얌전히 갈려나가고 있었다.
***
미합중국, 백악관. 1936년 5월 1일.
“어렵군, 어려워.”
차를 홀짝인 커티스 대통령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눌렀다.
재선을 위한 경선.
참 골치아픈 문제다, 일단 대통령이 되고 싶은 대통령 꿈나무들은 그가 재선에 도전하면 8년 이상 재임하지 않는다는 워싱턴 이래의 전통을 깬다고 비판할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징후가 경기 호전의 징후를 보이고 있지만 그게 단시간 내에 경기가 수습된다는 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할 것 같지도 않았다.
“월리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부통령 헨리 아거드 월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를 이길 가능성이 낮습니다.”
원래 FDR을 지지해 탈당까지 고려했지만, 커티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이 된 월리스는 현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FDR은 엄청난 규모의 세력을 끌어모았습니다.”
“들었네, 뉴딜 연합이라고.”
“그는 각하가 더 과감하게 사태 수습에 나서지 못해 2차 공황이 닥친 거라고 비판할 겁니다.”
“후, 누가 들으면 내가 과감한 수습을 하지 않은 줄 알겠군.”
빌어쳐먹을 연방대법원과 의회 같으니라고.
만약 커티스가 황제 같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면 FDR이 주장한 정책은 진작 실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에서 커티스에게 필요한 법령들에 위헌 선고를 날려대고, 의회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히히 못 가!’를 외쳐대는 판에 대통령이 뭘 어쩌란 말인가.
물론 행정명령으로 꼼수시행을 시키지만, 각 주의 법원이 자체적으로 판결해 위법하다면서 효력정지를 날려버리면 소용이 없다. 연방법원 판결이 있으면 찍어누를 수 있지만, 그 연방법원이 자기 편이 아니다.
결국 거부권, 대통령 서명 문구와 항목별 거부권법 등을 이용해 법안 짜깁기로 간신히 시행에 성공한 정책이 대다수인 마당에 커티스가 그것밖에 못 한 게 아닌,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면서 그거라도 했다는 게 대단한 거였다.
애초에 자기 세력이 없던 아웃사이더 출신의 한계였고, 그 와중에 적도 수두룩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 게 훨씬 나으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흉통이 밀려왔다.
“컥!”
“각하?”
그 순간, 커티스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백악관 바닥에 쓰러졌다.
“각하! 대통령 각하!”
잠시 뒤, 백악관은 대혼란에 빠졌다.
***
함부르크. 북독일.
사방에서 총성이 미친 듯이 울린다.
남독일에서 제조되어 나치의 손에 넘어온 25년식 경기관총은 순식간에 30발짜리 탄창을 비워버렸고, 프랑스군의 돌격소총이 미친 듯이 불을 뿜었다.
소련군 한 명은 급히 막대탄창을 기관단총에 꽃고, 달려오는 독일 병사에게 40발짜리 탄창을 통으로 비웠다.
탄창을 옆으로 꽃는 방식의 구식 기관단총이지만, 연사속도가 높고 반동 제어가 쉽다는 이유로 대량채택된 35년식 기관단총은 공격으로 전환한 프랑스-나치 연합군에 막대한 피해를 선물하고 있었다.
-콰앙!
전쟁 초기 높은 숙련도와 맞물려 프랑스군을 애먹게 했던 독일군의 대전차자주포가 7,5cm 주포를 쐈고, 24mm 기관포를 쏘며 프랑스-독일군을 저지하던 소련의 탱켓은 그대로 번뜩이는 섬광을 내뿜고는 불덩이로 변했다.
“아아악! 아아아악!”
온몸에 불이 붙은 병사가 전차에서 굴러떨어져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걸 본 한 병사가 그 병사를 쏴서 자비롭게도 고통을 끝내 주었다.
“돌격 앞으로!”
“비바 라 프랑스!”
“지크 하일!”
“소비에트 우라!”
세 언어로 된 외침이 뒤섞였다.
프랑스군의 티그레 중전차가 적의 전차에서 발사된 107mm 포탄에 격파당했고, 그 전차는 나치 독일군의 8,8cm 대공포에 산산조각났다.
전선은 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피의 대부분은 소련군의 피였다.
막대한 사상자를 낸 소련군은 힘없이 밀려났고, 연합군은 엘베 강을 넘었다.
***
경선 진행 도중 커티스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절차에 따라 부통령인 헨리 아거드 윌레스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는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혼란은 불가피했다.
하필 그 시점이 대통령과 부통령이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던 시점이었으니 독살설까지 나도는 판이었다.
하지만, 장례식과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윌레스는 의욕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군은 재무장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미합중국은 유럽에 개입해야 합니다.”
“대통령 각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국민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루즈벨트는 개입주의자입니다. 지난 선거 때도 루즈벨트와 고 커티스 대통령 각하께서 거의 비슷한 경제 정책을 내세우자 양측 후보의 인기만으로 선거가 결정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보너스 아미를 해산시키고 한없이 추략하던 경제를 반등시킨 공로가 아니었더라면 커티스가 당선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웠으리라.
“지금은 고립주의 정책을 채택해야만 국민들의 표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개입을 하게 되더라도 선거 직전인 지금은 안 됩니다.”
***
“윌레스가 대통령이라.”
회의장에 모인 고관들 앞에서 나는 치통이라도 느끼듯이 인상을 구겼다.
“폐하, 그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진성 빨갱이네.”
“예?”
“그 작자라면 빨갱이들을 돕겠다고 참전해도 이상하지 않다..... 정도로 해 두겠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낮다.
아직 진주만 공습 따위가 일어나지도 않았고, 우리가 벌일 일도 없다.
독일은 애초에 그럴 해군력이 없고 우리는 그 정도로 미치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중국이 필리핀을 기습한다는 게 더 말이 되겠지.”
현재, 중국은 동남아시아 침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련에서 지원받은 무기들을 마이너 카피한 무기들을 들고, 약탈과 강간과 학살을 자행하면서.
명분은 동남아시아 ‘해방’이었지만..... 그 실상은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별로 차이도 없다.
게다가 임기 1년도 안 남은 대통령이 전쟁을 하겠다고? 그 미국에서?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소련 빨갱이들을 돕겠다고 하면...... 더글러스 맥아더가 ‘구국의 결단’을 해도 납득될 거다, 진짜로.
맥아더는 여기서 필리핀으로 쫒겨나지 않고 계속 육군의 고위직에 있다. 보너스 아미가 평화적으로 해산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D.C 인근에 배치된 해병대를 공산 혁명에 내응하려 한다는 혐의로 조지 패튼이 지휘하는 기갑부대로 강제로 무장해제시킨 게 문제가 되긴 했지만..... 비무장 시위대를 탱크로 뭉갠 것보다는 쿠데타 준비중이라는 잘못된 첩보를 받고 기갑부대로 수도권 인근의 군부대를 제압하고 무장해제시킨 게 변명할 말은 많으니까.
“그와 관련없이, 현재 북독이 보유한 공업지대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라 복구에 곤란함이 크다.”
우리가 핵으로 날린 것도 있고, 내전 중에 작살난 것도 제법 있다.
“그렇기에 북독일군의 무장을 우리가 도와줄 필요성이 있지.”
***
난징, 중화민국.
중화민국은 민국이되 민국이 아니었다.
국호에는 민국이 박혀있으되, 그 실체는 거대한 군벌 연합체.
쑨원의 삼민주의의 본의는 저 멀리 흩어져 껍데기만 남은 지 오래였고, 중화민국의 내실을 갉아먹은 군벌들은 중화 민족주의를 이용해 그들을 통치했다.
프랑스인들은 대만을 강제로 빼앗았다.
미국인들의 위선은 역겹기 그지없다.
저 추잡하고 졸렬한 행태에 일자무식을 벗어난 중화의 모든 인민들이 비난을 퍼부었으니, 중화제국의 번국이었던 조선을, 그리고 중화의 정당한 강역인 몽골과 민주, 토번, 신강을 지배하고 고려연방을 자칭하는 저 구세대 제국의 마지막 잔재들도, 동남아를 쳐먹은 네덜란드의 추악한 식민지배도.
모두 끝내버려야만 한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손에!”
“미제를 타도하라!”
“대동아공영 만세!”
이 광기는 이미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군벌들 중 여기에 반대할 깡이 있는 자가 없었다. 반대했다가는 애첩이든 시종이든 간에 단도든 독약이든 권총이든 폭탄이든 동원해서 자기를 날려버릴 것 같았기에.
중화대륙의 수장이든, 영락해서 간신히 의회에 자리만 보장받은 조그마한 군벌이든 간에 차이는 없었다.
“미불란의 의지는 분명합니다. 서양인들의 탐욕이 한이 없다는 사실만 증명되었고, 도저히 평화적인 해결책은 모색할 수조차 없습니다.”
“소비에트 연방과 우리는 군사동맹입니다. 소련이 서부에서 프랑스인들을 붙들어주면 우리는 미국만 상대하면 됩니다.”
물론 미국이라고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상륙하는 멍청한 짓을 하다가 함대고 병력이고 싸그리 날려먹은 전적이 있지 않은가?
덩치만 컸지 실속이라고는 없는 미제를 두려워하는 자를 어찌 중화의 건아라 부를 수 있겠는가.
“미국은 선거에 대부분의 정치적 논리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올해 11월에 선거가 있을 것이고, 그 선거가 끝난 후 미국에 최후통첩을 보내도록 하지요.”
아시아는 아시아인에게 맡기고 꺼지라고.
너희들의 제국주의적 탐욕을 반성하고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기타 등등.
물론, 이들 모두 현실감각이 없는 미친놈들은 아니었으되, 여기에 반대했다가는 서양에 매수된 한간으로 몰려 좆되는 미래가 보였기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이기면 될 거 아닌가, 이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