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맥동(4)
조제프 중령은 죽을 걱정이 거의 없는 소수의 군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임무 끝내고 돌아와 보니 훈장 파티에 진급 파티가 벌어진 건 좋은데 그대로 대기발령이 난 것이었다.
군인은 원래 할 일이 없을수록 좋은 직업군이라지만, 남들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자기 혼자 집에서 탱자탱자 놀자니 전우들에게 죄책감이 들기는 개뿔, 이미 인생 최대의 다이나믹한 경험을 하고 버섯구름 구경까지 하고 온 데다 자기가 타고 복귀한 전함이 바로 다음 출격에서 수장당했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죄책감이고 뭐고 전장에 다시는 나가기 싫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그 짓은 미친짓이었다, 내가 혼자 거의 30명을 사살하고 130여 명을 포로로 잡아 중대 하나를 무력화해? 분명 사실은 사실이지만 두 번 다시 하기 싫은 짓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서 놀고 있냐.”
“황궁이나 팔레 루아얄에서는 이렇게 마음 편하게 있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냐, 난 네가 마음 있는 여자라도 여기 있는 줄 알았지.”
<6월 혁명, 프랑스 해군에 의해 격침되다!>라는 큼지막한 타이틀에 침몰 중인 항공모함 사진이 헤드라인에 걸린 신문을 반으로 접어 내려놓은 조제프는 몸을 뒤집었다.
“뭐, 전황도 크게 나쁘지 않은 모양이고.”
“나쁘지 않다....보다는 교착 상태지, 형님이 쑥밭으로 만들어버린 남부는 어째야 할지 견적도 안 나온다만. 그래도 이 망명 생활도 조만간 청산할 수 있을 것 같다.”
“헤.”
“다만 이전의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아, 그 ‘유럽 연합’ 이야기요?”
“넌 뭐 들은 거 없냐?”
“뭐, 일단 할아버지는 확실히 서유럽 국가들이 한데 뭉쳐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시던데요.”
“그리고 가입국들의 주권을 제약할 거고, 수괴는 당연히 프랑스가 되겠지, 유럽 연합군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로 통합될 거고, 외교권도 제약될 거고.”
“뭐..... 그렇겠죠? 지금 할아버지가 내놓은 구상 보면 그 영토가 샤를마뉴 시대 저리가라던데.”
“그 영토보다 더 넓지, 이 전쟁이 엘베 강을 소련과의 국경선으로 처리하는 걸로 끝나더라도 그 영토를 다 수복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프랑스는 그럴 힘이 있지, 감히 독립의 독 자도 못 꺼내게 할 힘이.”
“할아버지가 그렇다고 아무 도시나 핵으로 쓸어버리진 않을 거에요, 아마도.”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의도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이번 사건으로 어떤 메시지가 각국에 전달되었느냐다.”
“아니, 근데 그거 안 떨궜으면 우리도 제법 불리했을 텐데요? 독일 놈들 탱크가 폴테아가보다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 듣긴 하셨죠?”
“들었다.”
“티그레는 좀 우위에 있긴 한데 수에서 달리고, 아무래도 폴테아가보다는 양산이 좀 어렵죠. 신뢰성도 떨어지고. 아무튼 간에 독일과 소련이 연합했으면 우리한테는 애초에 선택권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프랑스가 답 없는 소모전에 말려들어서 병력을 끝없이 소모하다가 망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시잖아요.”
“당연히 그런 망발은 할 생각도 없다. 나도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야.”
핵무기 사용은 필요악이었다. 사정을 안다면 모두가 납득할 말이다.
하지만, 이 핵무기가 드러나면서 전 세계 각국은 공포에 떨게 되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협상 제안이 모스크바에서 타진되는 이유가 뭐겠는가.
저들은 두려운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대량살상을 할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
“유럽연합, 그래, 유럽연합이라 이거지.”
힘러는 손을 덜덜 떨었다.
그의 눈은 환희로 물들어 있었다.
“히틀러 박사는 말했지,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위버멘쉬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는 골족(프랑스인)만의 의버멘쉬가 아니라 아리아인을 위한 위버멘쉬가 되기를 택한 거군.”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길게 생각할 게 뭐가 있는가, 우리 나치당은 이 ‘유럽연합’계획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걸세.”
골족의 위버멘쉬가 게르만의 위버멘쉬 역시 되고자 한다.
샤를마뉴 대제의 전례에서 보았듯이, 골족과 게르만은 그 근본으로 올라가면 하나의 군주를 섬기던 하나의 민족이었다.
국가사회주의 이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유럽연합을 완성시키고 레벤스라움을 확보하기만 하면, 국가사회주의는 그 의무를 다했으니 사라져도 좋으리라. 국가사회주의가 만들어진 모든 이유가 소모되어 사라졌는데 나치당이 존속해야 할 이유는 또 뭔가?
그 과정에서 외교권, 군권, 그리고 행정, 사법, 경제 기능 일부의 주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군 통수권이 프랑스에게 넘어가더라도 결국 그걸 휘두르는 건 아리아인의 위버멘쉬가 아닌가?
상대가 골족의 위버멘쉬이기도 하다는 것 역시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아리아인의 위버멘쉬이기만 하면 됐다.
어차피 운터멘쉬들은 위버멘쉬의 뜻에 토 달면 안 되니까.
그러니, 그들은 기꺼이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나치당이 저 정통정부라 주장하는 자들의 마지막 잔재를 쓸어버리고 유럽연합에 합류하면 다른 운터멘쉬들도 뒤따르리라. 네덜란드가 반항하겠는가? 아니면 이탈리아가?
물론 형식상으로는 이들 국가 위에 하나의 새로운 행정부를 세우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양원제 의회를 설립한 뒤 형식상의 지도자로 황제를 추대한 뒤 연방 대법원과 각종 국가행정조직을 꾸리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직위를 어느 국가에 분배할 것인지도 논의가 진행중이었다.
유럽 연합이 세워진 뒤의 의회의 의석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어느 나라가 어느 부서의 장관직을 먹어치울 것인가.
“일단 명목이 반공인 만큼 육군장관직은 우리 독일에서 가져가게 되겠지.”
물론 장관에게 군령권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어지간한 독일인들은 만족하리라.
그 외에도 수많은 행복회로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다.
나치당의 존재 목적 두 가지 중 하나가 완수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 역시 전쟁이 일어난 이상 반드시 해내고야 말 것이라고.
“유럽 통일 제국, 카롤루스 대제의 꿈이, 우리 대에 이루어지는구나.”
***
“이 학살은 인류가 인류에게 저지른 최악의 죄악입니다,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무기를 한 나라만 가진다면 세계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프랑스 정부는 원론적인 수준에서라도 핵기술을 공개해야.....”
지랄한다.
정정한다. 아주 지랄 염병을 한다.
사실, 핵의 충격은 그리 쉽게 퍼져나가지 않았다.
핵공격을 뒤집어쓴 국가들은 이 소문이 퍼져나가면 무슨 일이 날지 몰라 일제히 언론과 편지를 검열했고, 프랑스 역시 핵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평을 가하지 않았다.
이는 핵무기가 철저히 비정치적인 일종의 ‘신무기’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탱크 끄집어내서 전선에 투입할 때 ‘우리가 세계 최초의 탱크를 전선에 투입했습니다!’하고 동네방네 방송했나?
그러나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마침내 전 세계가 독일의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대한 침공과 독일 내전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마자 찾아온 건 혼란이었다.
우선 독일 서부 지역, 그러니까 엘베 강 이서 지역에서는 매일같이 힘러와 나치당의 선동이 벌어졌다.
<빨갱이에 굴복할 것인가, 빨갱이와 싸울 것인가!>
<탐욕에 눈이 멀어 동족상잔을 벌인 호엔촐레른과 귀족들에게 충성하려는가! 도적떼나 다름없는 저 슬라브인들에게 충성하려는가? 깨어나라 독일 민족이여!>
물론 핵무기에 대한 소문은 이미 독일 서부 지역에 한해서 알음알음 퍼져 있었다. 라인 동부의 공업도시들이 줄줄이 잿더미가 되었는데도 숨길 수 있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 방사능의 해악이 증명되지 않은 지금, 핵무기는 그저 한 발로 도시를 박살낼 수 있는, 집중포격이나 도심지에 대한 융단폭격을 대체할 수 있는 신병기에 불과했다.
즉 대략 프랑스에 대한 독일의 여론은 자국 공업도시에 수천 대의 중폭격기를 동원해 융단폭격을 퍼부어 도시를 지워버린 놈들, 모난 놈 곁에 있다가 정 맞은 네덜란드의 입장도 ‘동맹인 건 고맙지만 참으로 빌어먹게도 우리 도시 위에 융단폭격을 쏴갈긴 망할 놈들’ 정도다.
뭐, 이미 그것만으로도 여론은 나쁘지만, 애초에 도심지에 대한 융단폭격이란 개념이 없다가 나온 것도 아니고 스페인이랑 이탈리아 등지에서 내전할 때 진작 나온 개념이니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저놈들도 제공권 장악할 수만 있었으면 융단폭격을 파리에 날리고도 남았을 텐데 뭐, 방사능은...... 묻자, 지금 그런 것까지 책임지려 했다가는 이 프랑스란 나라가 버티질 못한다.
물론 방사능의 해악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몇 있지만, 퀴리 부인이 잘 단도리하겠지.
남은 한이라고는 폴란드 독립밖에 없는 퀴리 여사께서는 아마 내가 베를린을 불태워도 그 결과로 폴란드가 독립한다면 눈썹 하나 까딱 안 할 민족주의자다.
다만 폴란드가 독립해도 영구 귀국은 안 되겠습니다 여사님, 내가 미쳤다고 핵무기 개발의 핵심 역할을 한 과학자를 외국에 내보내냐? 폴란드가 유럽연합에 가입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잠깐 가서 연설 몇 번 하고 고향 둘러보고 오시는 것 정도는 봐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1개월 이상 머무르면 안 됨, 아무튼 안 됨.
내가 눈앞에서 우리에게서 유출된 기술로 다른 나라에서 플루토늄 추출하고 우라늄 농축되는 거 보게 되면 독일 사주에서 폴란드 멸망시킨다, 진짜로. 상식적으로 저런 민족주의자가 폴란드가 독립하면 암살자 찾아올 거 감수하고 핵무기 개발 핵심 기술을 전수 안 해주겠냐고.
그림 하나 딱 나온다, 외국에서 핵을 개발한 애국자가 드디어 독립한 조국도 핵이 있어야 어디가서 무시 안 받는다고 확신하고 핵에 대한 모든 정보를 넘겨주려 하고, 자기들 자원과 돈으로 핵을 개발해놓고, 그 헌신에 대한 대가로 독립까지 시켜줬는데 계약을 위반하고 그걸 고스란히 신생국에 넘기려고 드는 배신행위에 꼭지가 돌아버린 강대국에서 방사능 홍차를 선사하고.
더 열받는 건 분명 잘못한 건 과학자 쪽이라도 대중은 과학자를 순교자로 포장하고 똥물은 우리가 뒤집어쓴다는 거지.
그 꼬라지를 보느니 그냥 핵 만들기 전에 스탈린이랑 괴링을 살살 찔러서 폴란드를 다시 반갈죽하고 말겠다. 사람, 여기서는 국가가 없으면 문제도 없거든.
하지만 국가 단위의 판단은 둘째치고, 핵 한 발이 융단폭격 한 번이라고 해도 이런 대도시에, 이 정도 규모로 동시다발적으로 가해진 전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비판에 대해 내가 할 말은 단 하나다.
좆. 까.
나는 한 국가의 국가지도자, 그것도 전시 국가지도자고, 국가의 생존을 위해 뭐든 해야 하는 건 내 의무다.
이 자리에 앉은 이상, 개인의 호오든, 아니면 다른 문제가 되었든 간에, 이 대전제를 무시할 수 없다.
누구든 이 자리에 앉으려면 앉아라. 대신, 이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 동안은 인간성 좀 거세할 각오도 하고.
만약 그러기 싫다면, 내가 책임지고 권력에서 배제시키고 말겠다.
설령 그게 내 혈육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