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40화 (140/200)

140화 맥동(3)

소비예츠키 소유즈, 격침.

샤를마뉴, 격침.

국가를 대표하는 두 전함이 서로 맞찌르고 공멸하자, 여론은 우왕좌왕했다.

샤를마뉴의 상징성은 크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통시조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단군함.

그런데 소비예츠키 소유즈는...... 소비예츠키 소유즈, 번역하자면 소비에트 연방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함이 격침된 거다.

국민 사기 저하는 상식적으로 보면 저쪽이 더하겠지, 샤를마뉴라고 해 봐야 별로 와 닿지도 않지만 자국의 정식 명칭을 이어받은 해군 총기함이 수면 아래로 사라진 거다.

그런데, 빨갱이들은 언론통제가 쉽다. 우리? 보도지침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소식 자체를 숨길 수는 없다. 시간을 끌 수 있을 뿐이지.

게다가 샤를마뉴는 해군의 마지막 전함이자 꽤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 해군의 상징이었던 녀석이다.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전함을 건조하는 게 아닌 항모에 집중했지만, 민간의 인식은 다르겠지.

물론 핵투발 능력은 이상이 없다. 항공모함 함재기나 항공기를 통해서 핵을 떨구면 되니까.

핵미사일은 좀 더 기다려야겠지만, 전자장치를 못 만들고 있다. 썩을.

“러시아 제국..... 아니, 무크리(Moúkri) 연방으로 바꿨다고 했나?”

무크리가 뭔가 하니 기록상에 있는 해당 지역을 지배했던 국가에서 따 왔단다.

그 넓은 영토를 통치하려니 이들의 공통조상을 찾아서 제법 역사책을 뒤진 모양인데, 이게 그리스어다. 대체 러시아 놈들이 왜 그리스어로 나라 이름을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제 4의 로마 그런 거냐?

그래서 그 무크리가 뭐냐고? 나도 발음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고구려란다, 대체 뭔 발음을 해야 고구려가 무크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한국어로 하면 고려연방이다.

왜인지 주체의 이름이 어쩌고 해야 할 것 같은 작명이지만, 또 왕조는 로마노프 왕조다. 민주주의적 선거로 뽑힌 의원들이 구성한 의회에 권력을 이양한 입헌군주제가 되었을 뿐.

간단히 말해 비빌 데 없는 러시아 제국 잔당들이 이대로 가다가는 반란 쳐맞고 다 뒤진다고 확신하고 통치 하에 있는 민족들을 달래기 위해서 제국 치하에 있는 민족들 사이에서 대타협을 해서 만든 연방인데. 아무리 봐도 오스트리아 제국 꼬라지란 말이지.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니즈를 맞춰야 할 주 민족이 대놓고 있으니 좀 낫나, 대충 저기서 한국계가 70퍼센트 좀 넘는다고 들었거든.

그 다음이 10% 간신히 넘기는 위구르, 비슷한 티베트, 그 아래로 몽골, 만주인 등등.

“예.”

“그쪽이랑 러시아 공화국은 어떤가? 참전할 의사가 있다는가?”

“양쪽 다 전쟁보다는 장사 쪽에 관심이 더 커 보였습니다.”

“젠장.”

한숨이 나온다. 아무리 이놈의 유럽이란 동네가 잘나가는 놈 쥐어패는 동네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냐? 하다못해 아일랜드 그 새끼들이라도 참전해야 하는 거 아냐? 개새끼들이 진짜 혈맹이네 뭐네 할 때는 언제고.

아니, 차분해지자, 어차피 아일랜드는 끼어들어봤자 별 도움 못 된다. 자국 내에서 시위대에게 총질하는 것만으로도 곤욕 치르는 놈들이잖아.

이쯤 되면 슬슬 타협할 때도 되었는데, 아일랜드 놈들의 광기는 무슨 일제의 그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우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 민간인들을 이주시키는가 하면 원주민들을 강제로 밀어내고 있다. 덕분에 잉글랜드의 인구밀도는 급증했고, 전염병 위험 역시 급상승했다.

보다 못한 우리 정부가 인도적인 의미에서 탄압의 수위를 좀 낮추라고 은근히 권고했지만, 아일랜드 놈들은 그 말에 아주 정중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주는 걸로 응수했다.

하긴 아일랜드인들이 하얀 흑인, 혹은 하얀 황인이라면서 핍박과 모멸을 받은 세월이 얼마나 되는가, 아주 그냥 아파르트헤이트 하나 제대로 만들어서 천배 만배로 보복하고 싶겠지.

근데 그게 니들 배때지가 터질까 말까 한 상황에서조차 그러고 있으니 원, 가스실 안 만든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하나?

“무엇보다 지금 무크리 연방은 중화민국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화민국은 동남아시아를 갉아먹고 있지만, 언제 미쳐서 북쪽으로 무기를 들이댈지 모르죠.”

완벽한 공감이다. 사실 저 판도에서 중국을 경계 안 하면 그게 웃기는 짓이지.

“아무튼,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대로 극동에서 소련을 쿡쿡 쑤셔줄 일은 없다는 거군.”

“아예 남으로 갈라서서 서로 제 갈 길 가기로 한 마당에 무슨 마찰이 있겠습니까, 사이 안 좋은 남녀가 한 지붕 아래에 있으면 부부싸움이지만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면 싸움도 없습니다.”

즉 러시아 제국이 고려연방이라고 이름 갈아치우면서 러시아 제국의 정통성을 포기했고, 당연히 영토 수복도 포기했으니 싸울 명분도 실리도 없다 이거군.

소련은 당연히 극동에 신경쓸 여력이 없을 텐데, 알렉세이 2세는 영 전쟁을 할 의지가 부족하고, 이걸 내가 멱살 잡고 참전시킬 수도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소련은 계속해서 그냥 엘베 강을 기준으로 독일을 분할하자고 하나?”

“그런 셈입니다. 만약 합의가 되면 노르웨이는 포기하겠다는데......”

“쯧,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나는 혀를 찼다.

이미 소련 해군은 파멸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고, 스칸다나비아 반도를 반분하는 크고 아름다운 산맥을 넘어서 붉은 군대가 노르웨이를 정복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우리 식민지 함대와 소련 극동함대가 붙어서 우리는 함선 몇 척이 약간의 손상만 입었고, 소련군은 경순양함 5척이 용궁으로 간다거나, 발트 해에서 기어나온 순양함 5척 중 4척이 격침당하고 한 척만 빌빌거리면서 돌아간다거나. 1척의 함선이 손상을 입는 대가로 적 순양함 3척에 기타 잡다한 함선들을 포세이돈에게 선물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바다에서 싸우기만 하면 일방적으로 털리는 마당이다, 우리가 소련과의 전투에서 주력함을 손실한 건 이번에 샤를마뉴가 격침당한 게 처음이란 말이다.

“그나저나, 중화민국의 움직임은 어떻게 되었나?”

“장쉐량이 신임 지도자로 선출되었는데 이와.......”

“그게 아니라, 동남아 침략 말이네.”

“베트남과 태국을 공격했습니다. 현지 네덜란드 관헌들은 네덜란드인들의 철수만 보장받았답니다. 태국은 그런 것도 없이 침공당해 짓밟혔습니다.”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거기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등.

전쟁이 나고 네덜란드가 붕 떠버리자 좋다고 침략을 개시한 중화민국은 케이크 까먹듯이 아직 형식상으로는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국가들, 그리고 네덜란드 식민지를 마구잡이로 먹어치우고 있었다.

문제는, 저기 촉수를 뻗고 있는 게 네덜란드만은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손 뗐고, 영국은 강제로 떼게 만들어졌다. 스페인은 뺏겼고, 독일이나 러시아는 손을 거의 댄 적 없고. 그러나 그런 국가가 있긴 있다. 대놓고 식민지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여러 불평등조약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가 있지 않은가.

미합중국이라고.

“중화민국이 계속 미국의 이권을 침해하면, 미국 정부가 가만히 있을 것 같나?”

“우선 경고를 할 겁니다.”

“경고를 하고, 경제적으로 압력을 가하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중국이 가만 있을까?”

“일반적인 국가라면 확장을 중지할 겁니다. 중화민국은 해군력이 빈약하기에 미국을 이길 가능성이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맞을 뿐입니다.”

“그렇지, 그게 맞는데.”

나는 다음 장을 보았다.

현재 중국 주재 대사와 정보원들이 파악한 중국 군벌들의 꽌시 관계였다.

“만약 여기서 반전을 외치는 놈이 나오면, 그놈이 살까?”

“........... 실각을 면하진 못할 겁니다.”

“그리고 중화민국의 지도자들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자기가 권력을 잃는 걸 용납할 만큼 애국심이 투철할 리가 없지.”

분명히 말하지만, 중화민국의 본질은 쑨원이 혁명으로 만들어낸 민주국가가 아니라 군벌 연합체다.

그 군벌들은 군사충돌을 벌일 경우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부역자로 몰려 좆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당장 서로를 향해 총질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대신 가진 재산과 꽌시로 거대한 계파들을 꾸려 막후정치를 펼쳤고, 사실상의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섰다.

집단지도체제는 고만고만한 놈들이 모여 있기에 선택된 것이고, 국가주석 직위는 군벌들이 돌려먹는 명예직에 불과했고, 거대한 꽌시의 거미줄은..... 아마 중화민국 정부 스스로도 그 꽌시의 거미줄이 얼마나 뻗어나가고 있는지는 파악 못하고 있을 거다.

당연하지만, 계파 간의 암투도 치열하다. 암살이나 그런 건 애들 장난이고, 아직도 그 사상 근거한 테러를 의협이네 뭐네 하면서 좋게 봐주는 게 있어서 뭔가 이 새끼를 조질 만한 대의명분이 있으면 탄핵부터 물리적으로 박살나는 것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당장 그런 식으로 세상 하직한 군벌들도 여럿 있다 보니 다들 계파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강경책을 외치고 온건파를 매국노라 매도한다..... 이거 그냥 일제 아니냐.

아무튼 간에, 그런 판에 미국에 굴복하고 동남아 침략 중단하자고 할 놈이 있나? 있다고 해도 자칭 협객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테니, 지위 있는 놈치고 대놓고 미국에게 굴복하자고 할 배짱이 있는 놈은 거의 없겠지, 잃을 게 많을 테니까.

결국 극동 상황에 대해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왜인지, 불타는 진주만이 눈에 들어오는 듯 했다.

“이스라엘.”

“예?”

“이스라엘 놈들에게 유사시 협조 요구해, 지리상 러시아랑 싸우는 데에는 쓸모가 쥐똥만큼도 없겠지만, 극동에서 일이 나면 그놈들 협조도 필요해질 테니까.”

“보내줄 병력 없다고 징징거릴 것 같습니다만.”

“윽박질러서라도 해.”

***

찰스 커티스 미합중국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생각했다.

그의 임기는 내내 대공황과의 싸움이었다.

1929년, 사상 최악의,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 대공황.

그리고 보너스 아미, 혼란 속 후버의 죽음과 대통령직 승계. 정말 공산 혁명이 나는 건가 싶었던 보너스 아미 사태의 기적적인 수습. 몇 개월 만에 간신히 조금씩 회복된 경제, 경제를 회복하려면 일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벌인 선거전 끝에 당선.

본래 미국 대통령은 2선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워싱턴 이래의 법도라지만, 커티스의 경우는 애매했다. 어차피 전임자의 임기는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이었고, 대통령직을 2년 미만 수행했으면 보통 한 번 한 걸로 안 쳐준다.

설령 커티스가 재선된다고 해도 그의 총 임기는 8년하고 몇 개월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 될 터, 워싱턴 이래의 전통을 깬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러나, 커티스는 애초에 재선에 미련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번 뽑히기는 했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행운에 행운이 겹친 결과물. 게다가 거의 패배할 뻔했다.

그리고, 그의 임기가 시작된 직후 다시 미국의 경제는 다시금 폭락했고, 커티스는 임기 내내 민주당, 그리고 여당인 공화당까지 적으로 돌려 가면서 더더욱 급진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데 힘을 쏟아부었다.

정계 내에 적은 수두룩하게 만들었고, 공황은 임기 시작 직후에 다시 몰아닥쳐 지지율과 함께 폭락했다.

그나마 올해 전쟁이 터지면서 대량의 물자를 팔아먹을 수 있으리라는 심리 덕에 경기가 순식간에 부양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장차 다가올 11월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프랭클린 델러노 루즈벨트일 터.

차라리 출마하지 않고 곱게 물러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전쟁이 일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을 건너는 동안 말을 갈아타지 않는 건 미합중국의 전통, 그랬기에 윌슨이 욕을 많이 먹었어도 민주당의 맥아두가 대전쟁 당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익이 아니라 재선을 위해 국민을 전쟁에 밀어넣는 건, 그의 신념 자체가 용납할 수 없다, 이건 절대 변할 리 없는 명제였다.

그러나, 전쟁이 다가온다면 어떤가.

“중화민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중화민국 주재 대사가 중화민국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필리핀 방위 상황이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합니다.”

“나도 알아요, 하지만 의회는 군부에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주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커티스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미 해군에 신형 함재기로 FL-1 에어라보니타를 사주고, 육항대에 B-25 중(中)폭격기를 사주고, 프랑스 해군을 벤치마킹해 항공모함을 건조해주는 게 한계였다. 그나마 항공모함은 전함보다 싸다는 해군의 호언장담 덕에 의회가 예산을 승인해줬지, 전함은 아예 제대로 건조도 못 하는 판이었다.

전함은 상대할 전함이 있어야 하는데 전쟁 끝나고 건함 시작한 나라가 어디 있냐는 게 의회의 논리였고, 미 해군은 이에 대해 반박할 말이 없었다. 괜히 건함 시작해서 타국 자극해서 건함경쟁 시작하지 말라는 압박에 찍 소리도 못할 만큼.

커티스 역시 군에 예산을 줘야 할 필요성은 인지했지만, 돈자루 쥔 의회가 저렇게 비협조적이면 커티스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군비 증강보다는 차라리 마닐라항에 함대를 전진배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중화민국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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