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지옥의 문(2)
모스크바, 크렘린.
“서기장 동지, 전부 도착했습니다.”
지하 벙커로 옮겨진 회의실은 침묵이 감돌았다.
“몰로토프, 보고하게.”
“13시간 전, 북독 서부와 남독 서부 지역의 주요 공업도시와 군부대 집결지, 최전선, 지휘부, 보급창 등에서 미상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폭발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총 43곳입니다.”
군 사령부, 보급창, 집결지, 진격로.
공업 중심지, 주요 도시, 교통 중심지, 군항.
독일 서부는 이 순간 폭삭 무너졌다.
“베를린이나 독일 중부 공업지대가 공격당하지 않은 이유는, 프랑스군의 공격 사정거리가 닿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겠지, 베를린을 빼놓을 이유가 없어.”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위험합니다. 저들은 뤼백, 함부르크 등도 타격했습니다. 모두 해안에서 일정 거리 이상 인접한 도시입니다,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탈린, 리가, 헬싱키 등이 언제든 공격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기의 원리나 공격 방식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저게 모스크바를 때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지만....
“현재 NKVD는 총력을 기울여 언론을 통제하고 있으며, 유언비어의 유포도 거의 없습니다.”
라브렌티 베리야의 말에 스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NKVD의 활약에는 내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네.”
이번 신병기의 등장을 예측하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뭐, 최근 반동들을 때려잡느라 NKVD의 업무가 과중되기는 했고, 독일이나 다른 나라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태였으니 정상참작해줄 만 했다.
‘독일 놈들이 알았으면 애초에 전쟁을 안 일으켰겠지.’
베를린에서 뭐라고 매달리든 간에 선전포고를 안 하고 배를 째고 있었던 게 정답이었다. 만약 북독과 같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날렸으면 지금쯤 어떻게 해야 프랑스가 예쁘게 봐줄까를 궁리해야 했을 테니까.
“베를린에서는 파리에 협상을 타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도저히 진격을 이어갈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당연하다. 번쩍 하더니 단 한 발의 폭탄이나 포탄에 도시 하나가 산산조각나는 걸 봤는데 계속 전쟁을 해?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 호엔촐레른 가문을 다 죽여버릴 거다.
“북독에 계속 물자를 공급합니까?”
북독에 공급되는 물자는 전차, 희귀금속, 석유, 식량 등등 많았다.
그 대가로 받아먹는 것 역시 쏠쏠했으니 그간 소련은 그 거래를 끊을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이거였다.
누가 봐도 동맹국인 독일과 소련인데, 독일이 굴복하면 독일을 밟고 소련을 날려버릴 생각을 안 하겠는가?
“NKVD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의외로 군의 병력 면에서의 피해는 크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기가 바닥으로 쳐박히고 조직력이 모조리 붕괴된 탓에 실질적인 전투 병력으로 기능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프랑스군이 반격을 시작하면 독일은 단숨에 무너질 겁니다. 게다가 프랑스군이 보유한 모든 병기를 소모했다고도, 그리고 더 생산할 여력이 없을 거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결론은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프랑스와 전쟁 상태로 들어간 북독이야 끝장이지만 소련은 아직 전쟁 상태에 들어가지 않았으니-아무리 해군을 파견하고 수개월 내로 개전하겠다고 약속을 했더라도 이제 와서 지킬 이유는 없다-차라리 손절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
문제는, 이미 시작된 스칸다나비아 침공이었다.
“스칸다나비아와 프랑스가 동맹인 것도 아니고, 프랑스는 발트 해의 제해권에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와서 후퇴하면 당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겁니다.”
“스웨덴 왕세자비가 프랑스 황제의 딸이라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황제가 자기 딸이 죽게 생겼는데 가만 두겠습니까?”
“.........”
산술적으로는, 이길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와 통합된 남북독일의 능력은 거의 동급이다.
그리고 프랑스와 소련 역시 공업능력으로는 거의 비등하다.
즉 프랑스는 2대 1의 상황.
게다가 도와줄 국가가 없다. 톨레도 공화국? 내전의 내상을 수습하느라 바쁘다. 이탈리아? 프랑스에 좋은 감정이 있겠나? 러시아 공화국과 러시아 제국? 자기 살기 바쁜 것들이?
아일랜드는 영토에서 나오는 국력의 효율이 극도로 저하되어 있고, 스칸다나비아는 제대로 된 동맹이 아니며, 네덜란드는 나약하다.
미국? 대공황의 후폭풍을 아직도 수습하는 중인 미국은 어지간한 사건이 아니고서야 참전할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 전쟁은 압살했어야 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겼어야 했다.
프랑스군이 가지고 나온 상식을 모조리 뒤엎는 강력한 신병기가 없었더라면 필시 그렇게 되었으리라.
“그렇다면 서기장 동지, 차라리 독일을 공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몰로토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인가?”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독일의 배후를 공격하는 겁니다. 독일은 현재 우리를 전혀 경계하고 있지 않으니 한 번 찌르면 걷잡을 수 없게 무너질 겁니다. 그리고 프랑스에게 유럽의 반분을 제안하는 겁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조용. 외무인민위원장, 자신 있나?”
순식간에 예배당마냥 고요해진 회의장에서 몰로토프만 홀로 식은땀을 흘렸다.
“프랑스의 내부사정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만. 우선적으로 군사행동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군사행동이라면?”
“문자 그대로 군사행동입니다. 어느 정도 독일의 영토를 점거해 저들에게 우리와 전쟁을 벌일 경우, 저들도 상당한 곤란에 빠진다는 점을 상기시켜야 줘야 합니다.”
저들도 신무기를 무한히 쏴갈길 수는 없을 거다.
뭐, 애초에 무한히 쏴갈기는 게 가능하다면 애초에 협상이 성립도 안 되겠지만, 프랑스군이 독일을 잡아 죽이느라 핵 있는 걸 다 쏜 다음에 붉은 군대를 마주했을 때 쉬운 싸움이 안 될 거라는 걸 인지하게 만들면 협상의 여지가 있지 않겠는가.
스칸다나비아 전역에서는 제법 죽을 쑤고 있지만, 그건 지형에 더불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저항이 완강해서 그런 거고 지상군은 이야기가 다르다.
어차피 독일군은 전 병력을 서쪽으로 빼놓은 상황, 그야말로 치면 이길 수 있을 만큼 텅텅 비어 있다.
“보로실로프 동지.”
“예, 서기장 동지!”
“붉은 군대가 충분히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으로는 3월 14일까지 공세 준비를 갖출 수 있소? 가능한지 여부로만 답하시오.”
“가능합니다. 물론.”
가능할 리가 없지만, 일단 그렇게 답한다.
지금은 스탈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만 중요하니까.
굉장히 편안한 눈치지만, 설마 속까지 그럴 리가 있겠는가, 지금 그들만 해도 속이 끓는데.
그 무기는 얼마나 더 있을까? 프랑스의 생산 능력은 어느 정도 되는 거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대응 방법은? 우리도 그런 무기를 만들 수 있을까?
전부 깜깜이다. 독일에서는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한 병기가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추측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실 증거같은 게 나오기도 좀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 폭탄이 터진 지 만 하루나 되었는가?
“일단.”
스탈린의 입이 열렸다.
“조금 시간을 두고 결정하기로 하겠소. 아직 우리가 모르는 사안과 불명확한 정보가 너무 많으니, 정보들이 충분히 모이면 결정하도록 하지.”
“예! 서기장 동지!”
잠시 뒤, 삼삼오오 흩어져 나오던 최고위원들 중 국방장관 보로실로프가 몰로토프의 어께를 잡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한 거요?”
“그럼 이 상황에 다른 방법이 있소?”
“빌어먹을, 당신은 그런 속편한 제안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수행해야 하는 건 우리 붉은 군대란 말이오!”
“속이 편해? 위장이 꼬이는 지경이오, 제기랄, 프랑스인들은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는 무기를 쏴대는데, 그게 군대로 막아지겠소? 전쟁은 이미 일어났고, 그러면 남은 수단 자체가 없잖소, 적대적 공생이 최고요,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우리를 핑계로 으스대게 하고, 그럼 독일인들은 제 발로 프랑스의 아래로 기어들어가겠지, 일단 우리에게 맞설 능력을 갖춘 건 프랑스밖에 없어 보일 테니까. 서기장 동지도 듣자마자 이해하셨잖소.”
“난 당신처럼 돌려 말하는 태도에 익숙지 못하니 그냥 말하겠소, 프랑스가 그 제안을 무시하고 동진한 다음 우리까지 공격하면 어쩔 작정이오?”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으면 애초에 논의 자체가 의미 없소, 대체 무슨 수단으로 그 빌어먹을 무기를 막겠단 거요? 동지에게는 뭔가 수가 있소?”
“없소, 쥐뿔도 없지. 아는 게 없는데 뭘로 막으란 말이오?”
“본인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그 경우만은 아니기를 바라야지 다른 방법이 뭐 있겠소?”
***
“때가 되었다. 형제들이여!”
붉은 바탕에 그려진 검은 하켄크로이츠가 펄럭였다.
검은 제복을 갖춰입고 기관단총을 장비한 병사들은 부동자세로 힘러의 연설을 들었다.
“지금의 시대를 보라! 서부에서 열린 지옥을 보라! 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 지옥이 벌어졌는가! 전부 어리석은 융커와, 황실 때문이다!”
“융커와 황실은 위버멘쉬가 아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들은 오만하여 과거의 동맹을 배신하였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동쪽에 있거는데, 그것을 배신하였다!”
“프로이센의 사명은 튜튼 기사단의 시절부터, 십자군의 시대부터 명확하였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저 불신자들의 성채를 무너트리고 동쪽으로, 저 동쪽에서 도사리는 악마 볼셰비키를 무너트리기 위해 전진했으나, 저들은 타락했다!”
“타락한 이들은 그 악마와, 묵시록의 붉은 용과 손을 잡고 우리의 전우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그것이 바로 서쪽에서 벌어진 신의 징벌이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소련이다! 그러나 황실과, 융커는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이를 배반하였다.”
“그러니 우리가 이를 징벌하리라! 이것은 성전이다! 이것은 정의로운 싸움이다! 융커들을 몰아내고, 황실을 축출한다, 어리석은 군대 역시 필요하지 않다. 우리야말로 진정한 국민군이니, 우리야말로 독일군이 될 유일한 자격이 있는 군단이다!”
연설자, 하인리히 힘러는 주먹으로 연단을 내리쳤다.
“우리가 이 타락의 고리를 끊어낼 것이다, 이곳에 있는 우리는 단순한 군대가 아니다, 십자군이고, 기사단이다! 죄악의 고리를 끊어내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돌려 마침내 붉은 용을 무찌를 기사단이다!”
슈츠슈타펠, 다른 이름으로 친위대.
이들은 그 누구의 친위대도 아니다.
언젠가 올 위버멘쉬의 친위대.
힘러도 아니다, 내부에서 호응해줄 괴링도 위버멘쉬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올 것이다.
독일 민족을 타락과 몰락으로부터 구원할 메시아가 곧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와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러한 신앙심으로 무장한 친위대는 진격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베를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