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36화 (136/200)

136화 지옥의 문(1)

파리, 프랑스.

“적 신형 전차의 성능이 예상보다 위입니다. 폴테아가 전차는 적 신형 전차들을 상대로 역부족인 성능을 드러냈습니다.”

“20년 전에 쓰던 놈을 개량만 한 게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게 양심없는 짓이기는 했지, 폴테아가 전차의 생산라인을 티그레 중전차로 바꾸는 건은 어떤가?”

티그레 중전차는 폴테아가의 장갑과 엔진, 주포만 바꾼, 굳이 따지자면 폴테아가가 75mm 셔먼이면 점보 셔먼+파이어플라이 같은 놈이다.

폴테아가를 생산중단하면 있는 놈들은 전선에서 소모하다 사라질 거고, 전차가 손실된 부대는 티그레 전차를 대용으로 받겠지.

이쯤 되면 ‘진짜’ 제대로 된 물건을 생산하기는 해야겠다만.

“순조롭습니다. 1개월 내에 생산라인 전환은 완전히 끝날 겁니다.”

“폴테아가 전용 장비만 생산하기도 어려우니 그냥 있는 건 다 최전선에 투입해서 소모시켜버리고 그쪽 라인도 티그레용 부품을 생산하게 바꿔, 양은 양만의 질이 있는 법이다.”

이게 아마 스탈린이 한 말이었던가?

“알겠습니다.”

“그리고 적기를 압도할 수 있는 신형기를 개발하도록.”

어떻게?

그건 니들이 잘 알아서 해봐야지.

지금 사실 미사일 개발이나 그런 것도 다 이런 식이다. 난 대략적인 것만 말하고 그걸 어떻게 구현할지는 과학자들 갈아가면서 하는 거.

‘이런 계통의 천재가 있으면 좋을 텐데.’

다들 시대가 안 맞거나 적국이다.

내가 아는 천재 과학자가.... 이 시대에는 엔리코 페르미는 분야가 다르고, 베르너 폰 브라운은 적국이고, 테슬라가 아직 살아 있을 텐데 어떻게 영입해 볼 수 없으려나. 앨런 튜링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고. 폰 노이만이 지금 몇 살이지?

‘인재 수집 미리미리 좀 해둘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일단 정보부에 시도라도 해 보라고 해야지.

“그리고 조제프 녀석이 전공을 세웠다고?”

“네덜란드 왕실과 내각을 성공적으로 탈출시켰고, 금괴 역시 빼냈다는 게 보고입니다. 단신으로 적 28명을 사살하고.....”

“해머다운 작전은?”

손주 녀석 칭찬을 듣는 건 입이 헤벌쭉해질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예정대로 준비 중입니다.”

“표적 하나 더 선정한다, 예상 외지만 어쩔 수 없지.”

“어디를......”

“암스테르담. 사단급 적 병력이 몰려들어왔다면서.”

“하지만 암스테르담에는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도.......”

내 목소리는 나조차 두려울 만큼 차분했다.

“이미 우리는 목표를 선정했고, 그 중에 대도시가 몇이나 있었나? 말해보게, 페탱 장군.”

“...... 많았습니다.”

“우리가 후세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한다면, 애초에 이런 저주받은 무기를 개발해서는 안 됐네.”

나는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프랑스 제국이 멸망하는 날, 인류 문명 역시 그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걸 세계에 똑똑히 보여줘야 하네.”

전 세계를 불태우며 공멸하더라도.

흔히, 미치광이 전략이라 불리는 전략.

소련과, 독일과, 중국이 모두 적으로 돌아섰다. 남독일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않고 북독일군을 환영하고 있다는 정보다.

게다가 아일랜드는 참전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미국에서도 반전여론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 스페인도 중립이다.

그러니 프랑스는 포위되었다. 이 난국을 타개하고, 포위망을 무너트릴 대전략이 먹히기 위해서는, 본보기가 필요했다.

그때, 가슴팍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뭐라 잘 말하는지 들리지 않는 여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뭐라고 말했지?

기억나지 않았다.

***

“제독님, 왜 연안에 머무는 겁니까? 피난민이 더 나오지도 않습니다만.”

함교에 들어와 질문을 던진 황태손을 바라본 제독은 차분히 답했다.

“최고사령부에서 해머다운 작전에 대한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해머다운?”

“기밀입니다. 곧 아시게 될 테지만요.”

“암스테르담을 탈환하랍니까? 그러기에는 병력이 없습니다만.”

“대공 전하께서는 권한이 없습니다. 저는 대공 전하께 이를 발설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한 축객을 당하고 이마를 찌푸린 조제프는 여러 가지를 계산했다.

‘상륙전은 말이 안 된다. 이 병력으로? 미친 짓이지, 그럼 포격으로 암스테르담을 밀어버릴 생각인가? 확실히 아까 정찰정보를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제법 큰 규모의 병력이 암스테르담으로 추가로 돌입하고 있다고 했지, 그렇지만 단순한 포격으로는 충분한 타격을 주기 어려울 텐데.’

갑판 위를 걷던 조제프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꼬마 숙녀님, 여기는 어떻게 올라왔어?”

“엄마가 아파요.”

“.........”

조제프라고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엘라 여남작은 탈출의 마지막 과정에서 총상을 입었다. 다행히 뼈는 건드리지 않고 관통했기에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조치가 늦어져서 피를 좀 많이 흘린 게 문제였다.

그래도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오죽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숙녀님 이름을 못 들었네?”

“에다, 에다 판헤임스트라에요.”

“판헤임스트라 양, 갑판은 위험해요, 그러니까 함내에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거긴 갑갑하고 어두운데....”

그러나 조제프는 딱히 그녀의 사정을 봐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포격을 한다면 갑판 위에 있는 건 굉장히 위험한 짓이다, 괜히 대공포좌가 시야각 좁아지는 걸 감수하고 죄다 장갑화된 게 아니다,

약간 강압적으로 소녀를 어께 위에 태우고 함내로 들어가려던 조제프를 향해 장교 하나가 달려왔다.

“대위님.”

“뭐지?”

“해머다운 작전이 실시되었습니다. 전투지휘실로 오시랍니다.”

“내가? 왜?”

“좀, 언론에 보도해야 하는 게 있어서...... 게다가 이번에 세운 전공 관련해서도 인터뷰를 하셔야 한답니다.”

‘아이고,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언론플레이를 할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맹활약해서 주요 인사만이 아니라 목표는 아니었던 네덜란드 민간인들까지 구출하고 단신으로 적 28명을 사살, 30여 정의 기관총을 노획하고 130여 명에 달하는 포로를 잡아 개선한 영웅!

게다가 황족.

할아버지가 안 써먹고 싶어하실 리가 있는가.

그러나, 전투지휘실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색안경! 색안경 못 받은 사람?”

“색안경?”

“대위님이랑.... 어, 이 애는 뭡니까?”

“우리 중대가 구출한 민간인인데, 위험하게 밖을 돌아다녀서.”

“여기 있습니다. 색안경 벗지 말라고 하십시오.”

“아니, 왜 색안경을 주냐니.......”

함교 당번병이 급히 사라지는 걸 본 조제프는 찝찝한 심정으로 색안경을 썼다.

“장약 상태는?”

“최대 장전!”

“1번 포탑에서 보고입니다, 적색 A. B. C 플러그 모두 분리, 흑색 플러그 삽입 완료.”

“기폭장치 결합 완료!”

“보조로켓 점검 완료되었습니다.”

함장이 고개를 돌렸다.

“대공 전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해머다운입니다.”

아니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물으려는 순간, 포신 하나가 그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

“해머다운, 5초 전.”

“왜 한 문만 움직입니까? 포격이면 9문 전부가......”

“4.”

“알게 될 겁니다.”

“3.”

“색안경 벗지 마십시오, 거리상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습니다.”

“2.”

“대체 무슨.........”

“1.”

그리고, 포성이 울렸다.

***

프랑스군 최전선, 발 강, 네덜란드.

“해머다운! 해머다운 개시!”

“목표, 아른헴 방면 축선! 적 기갑부대 다수 존재 확인!”

“장전 완료!”

열차포는 포신을 들어올렸고, 잠시 뒤 명령이 떨어졌다.

“발포!”

***

수십 기의 항공기들이 유유히 하늘을 날았다.

“에센, 뒤스부르크, 뒤셀도로프, 부퍼탈, 도르트문트, 프랑크푸르트, 슈투르가르트 방면에 항공대가 접근 중입니다.”

“함부르크, 빌헬름스하펜, 브레멘, 뤼벡, 킬에도 해군 항공대가 접근 중입니다.”

“베른, 로잔, 제네바, 루체른, 취리히도 표적입니다.”

독일 서부의 거의 모든 대도시, 그리고 적 주요 군사기지, 주둔지 공격 축선을 향해 항공기들이 날았다.

아직 레이더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아 방공망을 뚫는 일은 그래도 제법 수월했다.

그래도 일개 전투기이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거지, 폭격기는 띄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애초에 제트전투기에 장착할 정도로 탄두가 소형화되지 않았더라면 이 작전은 애초에 시도되지도 못했으리라, 적의 방공망을 뚫을 재간이 없으니까.

베를린이 목표가 되지 않은 것 역시 방공망을 뚫을 가능성이 있는 소형기들은 항속거리 상 거기까지 갈 수가 없어서였고, 샤를마뉴가 개장을 받은 것 역시 가상적국들의 방공망을 뚫을 수가 없어서였다.

적들이 전투기는 요격해도 포탄마저 요격하지는 못할 테니까.

“목표 상공에 도달했습니다.”

“지상에 불빛이 보입니다.”

아직 등화관제가 실시되지 않은 도시들과, 군사기지들과, 적 부대의 집결지들을 시야에 넣은 항공기들은 차례차례 폭탄을 분리했다.

단 한 발의 폭탄이 분리되자 가벼워진 몸을 이끈 전투기들은 최고 속도를 내면서 선회하고, 탈출했다.

같은 작업들이 독일 서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섬광이 덮쳤다.

암스테르담에, 아른헴에, 위트레흐트에, 도르트문트에, 에센에, 프랑크푸르트에, 하이델베르크에, 슈투트가르트에, 취리히에, 베른에, 뮌스터에, 브레멘에, 빌헬름스하펜에, 올덴부르크에, 브레머하펜에, 뤼벡에, 킬에, 함부르크에.

온 세상을 암흑으로 뒤덮어버릴 듯한 강렬한 섬광이, 질량-에너지 교환 법칙의 세례를 받고 태어난 우라늄과 플루토늄, 그리고 좀 더 위력을 올리겠다고 중심부에 추가로 쑤셔넣은 삼중수소의 무도회가 독일 서부 주요 공업지대와 독일군의 주요 집결지, 진격로를 덮쳤다.

4천 도의 복사열을 뒤집어쓰고 1초 내로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현장에서 증발한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음속에 달하는 속도로 몰아친 열폭풍을 뒤집어쓴 건물들은 붕괴했고, 그 열폭풍은 다시 후폭풍을 만나 막대한 화재를 일으켰다.

그리고 검은 재로 하늘이 가려진 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사선에 물든 검은 비가 쏟아져내렸다.

지옥의 문은 유럽 대륙에 활짝 열어젖혀졌다.

***

“이런 빌어먹을.”

급보를 받고 밤을 새워 달려온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박사는 멍한 눈으로 지옥도를 바라보았다.

손을 덜덜 떨며, 하이젠베르크는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토, 오토, 이거..... 내가 생각하는.....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 그래.”

핵분열 현상에 대해서는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무기화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근시일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

“2년 전.”

오토 한은 중얼거렸다.

“고작 2년 전에 핵분열 현상이 알려졌어, 그런데 벌써 이 정도 규모로? 아냐, 말이 안 돼, 훨씬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훨씬 오래전부터 준비했겠지.”

“프랑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들밖에 없어. 그리고, 아마 더 많겠지.”

두 사람은 그 순간 몇몇 선배 과학자와 프랑스의 과학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렌느, 대체 무슨 짓을.”

오토 한은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한 프랑스의 여성 물리학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개발에 참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니, 생각해 보면.....

‘더 일찍 눈치챘어야 했는데.’

한은 자책하며 이를 악물었다.

평화의 기술이 되기를 바랐던 핵물리학은 도시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는 병기가 되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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