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첫 총성(4)
조제프는 담담하게 현 상황을 설명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운명에 맡기고 여기서 숨어계실 것인지, 아니면 저희와 함께 떠나실 건지, 다만, 저희 군은 암스테르담에서 총퇴각할 것이며 한동안은 돌아올 예정이 없습니다. 참고하십시오.”
“따라가면 어떻게 되나요?”
“왕궁까지 가서 임무를 완수한 후, 수로를 따라 항구까지 가서 대기하고 있는 해군 육전대와 함대와 합류해서 프랑스로 철수할 겁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피난민들에게 주거와 호구지책을 지원........”
“그것까지는 필요 없어요, 괜찮습니다.”
처음 만났던 여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엘라라 밝힌 그녀는 자신이 네덜란드의 여남작이라고 말했고, 그녀의 저택도 그녀가 상당히 부유하다는 걸 입증했다.
“혹시 부군께서는....”
“작년부터 별거 중이었어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괜한 부분을,”
“혹시 한 가지만 여쭙겠어요, 아른헴은 괜찮나요? 그곳에 친척이 있어서요.”
“독일군의 주 공격 축선이며, 프랑스군은 발 강에 방어선을 꾸린 탓에 아마 독일군에게 넘어갔을 겁니다.”
“.....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럼 여러분은 왕궁으로 가시나요.”
“예.”
“,,,,,,, 좋아요, 여러분을 따라가겠어요.”
“왕궁으로 가면 잔존한 네덜란드군과 저희 동료들도 합류할 겁니다. 그리고 왕실과 내각 인원들도 구출할 수 있을 만큼 구출할 겁니다. 프랑스군은 네덜란드를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
우려한 게 바보 같게도, 왕궁까지 가는 데 11명이 된 일행에게는 단 한 발의 총알도 날아들지 않았다.
“누구냐!”
“프랑스 794 보병대대의 조제프 대위다!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네덜란드 왕실과 내각을 파리로 대피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
“책임자가 누군가!”
“나다. 나머지는 다 죽었다.”
“비무장으로 와라!”
급조한 백기를 든 조제프는 긴장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순간 모두가 숨을 멈췄다.
“....... 어?”
“어이.”
조제프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작은할아버님은 잘 지내시나?”
“대공 전하?”
“그래, 내가 직접 왔네, 문 좀 열어 주겠나?”
“예, 알겠습니다! 문 열어! 아군이다!”
“대공 전하?”
“인사가 늦었습니다, 필리프 프랑수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 필리프 황태손?”
뜨악하는 반응을 보인 여남작은 당황해서 물었다.
“아니, 황태손이 왜 여길......”
“지금은 보병중대장이니 말입니다. 프랑스의 황제는 군주가 아닌 제 1시민이며, 따라서 권리를 누리기에 앞서 의무를 반드시 행해야만 합니다.”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황제와 왕은 그 근본 이념이 다르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엘라 여남작과 토론하자면 밤을 새도 안 끝날 가능성이 높으므로 적당히 대화를 끊은 필리프는 생존자들과 함께 합류했다.
그리고 한숨이 터졌다.
“이게 다입니까?”
생존한 근위대원은 5명, 나머지는 왕궁의 정원과 실내 곳곳에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필리프.”
작은할아버지 루이 보나파르트를 본 필리프는 입부터 열었다.
“탄약 얼마나 있습니까? 저희는 거의 바닥입니다.”
“너희 총에는 안 맞을 텐데?”
“쓰던 총인지 아닌지 가릴 틈 없습니다. 다른 부대가 탄약을 넉넉히 가지고 합류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독일놈들 총이라도 써야 합니다.”
네덜란드와 독일군의 총기는 호환된다. 둘 다 DWM에서 만든 소총인 것이다.
“일단 무기고를 개방하겠다, 네 부하들은 네가 알아서 하려무나.”
“얼마나 있습니까?”
“내각과 왕실을 합쳤지만 그래도 한 줌에 불과하다. 지금 총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전부 무장했지만.......”
“알겠습니다.”
애초에 전투력은 크게 기대 안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조제프는 입을 열었다.
“엘라 여남작이라는 사람과 그녀의 딸을 오던 길에 주웠습니다, 그냥 놔두면 독일군에게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잘했다, 본래는 내가 지켜야 하는 국민인데, 네게 부담을 지웠구나.”
“‘내가’요?”
“그럼, 이 나라에서 살려면 이 나라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나도 아직 센 강이 그립지만, 여왕의 부군이 된 이상 나는 네덜란드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자니 여기도 정 붙일 만 하더구나.”
“후, 그러셔야 작은할아버지죠.”
“요 녀석이, 너랑 나랑 얼마나 알고 지냈다고 아는 체냐.”
“자주 뵙지는 못했더라도 알 만큼은 압니다. 작은할머님과 공주님은요?”
“네 도움까진 필요없다, 내가 아무리 늙다리라도 내 아내와 딸은 내 손으로 챙겨.”
“아니 뭐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그럼 알아서 챙기십쇼, 저는 내각 인원들 좀 주워가겠습니다.”
“근데 너희는 9명이 전부냐?”
“저희 중대는 그렇습니다. 다른 3개 중대랑 3개 직할소대가 있었는데 전투 도중 뿔뿔이 흩어지고 무전병들이 다 전사해서 어디 쳐박혀 있는지는 몰라요.”
“합류 지점은?”
“여기서 1km 떨어진 부두에서 합류할 예정입니다. 시간은.... 26분 남았군요.”
“시간 없는 거 아니냐?”
“어차피 일찍 가봤자 개활지라 방어가 안 됩니다. 여기서 망원경으로 확인했습니다. 엄폐물이랄 게 없어요, 이동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할 테니 20분쯤 더 뭉개고 있다가 출발할 겁니다. 아니면 아군 병력이 도착한 거 확인한 뒤에요. 못 싸우는 사람들까지 데리고 있다가는 전멸당합니다.”
“끙, 네 말이 맞겠지. 나는 군사학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해서 말이다.”
“저도 잘해야 사단장까지입니다. 할아버지처럼 수백만 대군을 손바닥 위에 놓고 휘두르지는 못해요.”
“형님은 그냥 괴물이고.”
투덜거린 루이 보나파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 총을 가지고 나오겠다. 나름 사냥은 열심히 했지.”
“그걸로 되겠습니까?”
“인간 사냥이나 짐승 사냥이나 목표를 맞추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딱히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던데..... 뭐 알겠습니다.”
물론 촌수로 따지면 사촌간인 조손의 대화는 진지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그래서 제가 주워온 애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너 꼭 결혼해라, 마누라는 여왕으로 맞고 딸은 율리아나 같은 애로 낳아라! 너도 그러면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하게 될 거다!”
“제가 결혼하면 어차피 황후인데요?”
그러하였다고 한다.
***
-타타타타타타타!
“의무병!”
“기관총이다! 엎드려! 엄폐해!”
250m밖에 못 갔는데 장애물이 나타났다.
“거리와 방향! 빨리!”
“500m 정도입니다!”
“상황은?”
“6명 전사! 3명 부상입니다!”
“씨발.”
단숨에 가용 병력이 자기까지 해도 5명으로 급감했다. 나머지는 총을 들었다고는 해도 명중률이나 연사력 따위는 기대하면 안 되는 오합지졸.
게다가 그 오합지졸은 후방에 쳐박아놨다.
“루이, 소총 내놔.”
“예?”
“루이 말고 나머지는 부상자들과 VIP들을 지켜.”
“저는요?”
“저쪽에서 사격을 유도해, 기어나갈 건 없고 엎드려서 막대기에 얹은 철모 흔드는 걸로도 충분해.”
“알겠습니다. 중대장님은요?”
“저 씨발새끼들을 다 쓸어버릴 거다.”
***
조제프는 사냥꾼이다.
귀족들의 품위있는 여가생활 가운데에는 사냥이 있었고, 프랑스 제국에도 신흥 귀족은 없어도 대대로 내려온 귀족들은 있다.
수많은 혁명을 거친 원 역사에서도 2차대전 끝난 뒤까지도 관례적으로 ~의 백작이네 뭐네 하는 건 사라지지 않았는데, 벌써 사라지기에는 아직 이르다.
아무튼, 조제프는 총으로 하는 사냥을 즐겼고, 사실 뛰어난 편이었다.
말을 달리고, 총을 겨누어 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리고, 지금 하려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 사냥.
-타앙!
총성이 울리고, 슈탈렐름을 쓴 독일군의 얼굴에 큼직한 구멍이 뚫렸다.
7.92mm 탄은 높은 정밀성을 보이며 적을 적중시켰다.
-타앙!
다시 한 번 명중.
엄폐를 제대로 한 상태에서 총질을 해대자 한 번에 한 명씩 독일군이 거꾸러졌다.
몇 발이나 쐈을까, 조제프는 탄이 떨어진 걸 느꼈다.
소총을 내려놓고 권총을 뽑아든 순간 외침이 들렸다.
“황제 폐하 만세! 대독일 만세!”
“이런 씨발.”
몇 명의 독일군이 착검한 채 달려들고 있었다. 상대가 자신의 위치와 거리까지 파악했고, 볼트액션 소총으로는 뭔 짓을 해도 도달하기 전에 다 못 죽인다!
하지만 조제프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브라우닝 권총은 장전되어 있던 일곱 발의 탄을 전부 내뱉었고, 달려오던 적 보병 일곱 명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탕! 타탕! 탕! 탕!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다른 쪽이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C96 권총을 들고 있는 적 장교에게 빈 총을 들이밀자 곧장 적 장교는 손을 들었다.
“귀관이 책임자인가?”
“..... 그렇다. 본관이 중대장이다.”
“항복을 요구한다. 귀관의 부대는 이미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우리 병력은 뒤에 더 있다, 계속 싸울 건가?”
“....... 젠장.”
아까 방아쇠를 당겼는데도 발포되지 않으면서 총알이 떨어진 걸 확인시켜준 C96 권총을 내던진 장교는 기운빠진 소리로 말했다.
“항복하겠다. 자비로운 처우를 바란다.”
***
조지프가 구르는 동안 다른 병력들도 딱히 편하지는 않았다. 조지프의 중대는 그래도 꽤 많은 병력을 살린 편이었다.
조지프의 중대를 뺀 대대의 생존자는 7명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7명은 어찌어찌 임무를 완수했다. 선박 한 척을 탈취하고, 그 선박 밑창에 네덜란드 중앙은행의 금괴를 싹 쓸어담았다.
금쪼가리 하나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털어낸 생존자들은 수송선에 탄 채 부족한 인원수로도 겨우겨우 목적지인 부두까지 왔다. 독일군은 야포가 없었기에 해안에서 포격을 당하는 등의 일은 없었고, 그저 총알에 돛이 좀 찢어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정도 문제는 그들이 부두에 도착했을 때 작게 압축되었다.
130여 명에 달하는 포로와 노획한 기관총 30여 정, 전투 가능 인원은 5명, 부상자 3명, 그리고 구출 대상들.
물론 그들이 끌고 온 요트는 그걸 다 태울 만큼 크기는 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여기 책임자 누군가!”
“중위 필리프 프랑수아 마리 콩트 드오트클로크입니다!”
“중위? 나머진 다 어디 갔어?”
“대대장님과 중대장님은 전사하셨습니다! 전 선임 소대장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이마를 짚은 조제프는 외쳤다.
“이제부터 내가 지휘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저, 대위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은 일이 있었다, VIP와 부상자, 포로들부터 태워!”
“중화기는 어쩝니까?”
“여기 무기 있나?”
“탑승자 개인화기뿐입니다!”
“탄약은?”
“돌격소총탄은 여분이 좀 있습니다.”
“총 안 버리길 잘했군, 기관총 실어서 거치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탄 좀 꺼내, 여긴 탄이 바닥났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