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34화 (134/200)

134화 첫 총성(3)

물기둥이 솟았다.

“아무르 피탄!”

“젠장!”

“함장 동지! 어뢰 다수가 접근 중입니다!”

“아무르 뒤로! 아무르 뒤편으로 진행해!”

“예? 그건......”

“어차피 아무르는 끝이다, 우리까지 죽으면 그때는 정말 임무 실패란 말이다!”

말이 좋아 후방으로 진행이지 아무르를 어뢰받이로 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그 방향에서만 어뢰가 날아오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적 뇌격기 부대 접근중!”

아까 돌입한 각도와 90도 각도에서 접근해온 뇌격기들은 어렵지 않게 어뢰를 투하했고, 후미 쪽에서 날아든 어뢰들은 이미 침몰 중인 아무르를 완전히 끝장냈다.

완전히 수중으로 가라앉아 흔적도 남지 않은 아무르의 곁을 지나쳐간 울리야놉스크는 죽을 힘을 다해 대공포를 쏘았다.

12인치 주포를 제외한 모든 화기가 대공사격을 퍼부었고, 상공에 살아남은 독일 항공기들은 어떻게든 뇌격기를 잡아내려 했지만 민첩한 프랑스 제트기들은 이탈하려는 순간 어렵잖게 뒤를 잡고 전투기를 불덩이로 만들어버리고는 했다.

이래서야 적기를 요격하기는커녕 제 목숨 챙기기도 바쁜 수준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뇌격기 편대는 대공포화를 뚫고 2차 뇌격을 가했다.

몸을 죽어라 비트는 울리야놉스크에서 물기둥이 솟아올랐고, 그걸로 울리얍놉스크의 무의미한 저항은 끝났다.

아무르를 방패로 삼아 가면서까지 삶을 도모했으나 결국 울리얍놉스크 역시 모든 탑승자와 함께 수중으로 가라앉을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

총열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느껴진다.

곳곳에서 포탄이 터지고 집이 폭삭 무너져내렸다.

20발짜리 탄창을 모조리 비워버린 조제프 대위는 허리춤을 더듬으면서 다음 탄창을 찾았다.

“제기랄! 너무 노출되어 있습니다! 중대장님!”

“나도 알아! 젠장, 기관총은 엄호해! 연막탄 까고 저 빨간 지붕 집까지 달린다!”

“알겠습니다!”

“우리 다 가면 바로 엄호조가 건너온다! 셋, 둘, 하나! 던져!”

연막탄들이 굴러다니면서 연기를 뿜어내고, 그와 동시에 기관총의 치열한 사격이 시작되었다.

“달려! 달려! 달려!”

빗발치듯 날아오는 탄환 사이로 대로를 달린다, 단 한 발도 맞지 않고 개활지를 통과한 조제프는 곧장 새로운 탄창을 꽃고 탄환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지향사격을 가했다.

맞았는지 빗나갔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달려! 달리라고!”

적을 한 명 더 죽이는 것보다 부하 하나를 더 살려보내는 게 중요했다.

“..... 얼마나 남았냐?”

“작전 개시 시점에서는 중대 총원 170명이었는데, 14명 남았습니다.”

“빌어먹을.”

4개 소대 중 1소대는 생존자 4명, 2소대는 전멸, 3소대는 생존자 3명, 4소대는 생존자 5명, 중대본부 생존자는 그 자신 하나와 어쩌다 편입된 대대 전령 한 명뿐이었다.

다른 3개 중대와 대대본부 직속 3개 화기소대 등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도 없었다. 통신병들이 죄다 전사한 탓이었다.

그나마 남은 약속은 왕궁에서 1km 떨어진 운하의 부두로 정해진 시간까지 오라는 것. 거기에서 다른 대대원들과 합류해 해군이 기다리는 곳까지 탈출해야 한다.

독일 공수부대는 잘 무장되었고, 보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잘 싸웠다. 게다가 수도 2배가 넘었으니 단위부대 화력이 우월하다고 해도 시가전에서는 소모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알 길이 없었지만, 이미 팔쉬름예거는 작전 초기에 소지했던 탄약을 죄다 소진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총탄이 날아오는 건 네덜란드의 문제였다.

네덜란드군은 독일군과 완벽히 같은 종의 탄약을 사용했고, 네덜란드군의 시체와 탄약고를 턴 팔쉬름예거는 부족한 탄약을 보충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 번은 네덜란드군이 확실해 보이는 병력이 독일군이라고 판단하고 공격해와 어쩔 수 없이 전멸시킨 적도 있었다.

“다 들어왔나?”

“그렇습니다!”

“안톤, 장, 로베르, 건물 구조 확인해, 들어올 만한 통로는 전부 막아,”

“알겠습니다.”

“에드몽, 필리프, 샤를, 이 집에서 감제할 만한 곳이 있었던 것 같다. 2층으로 올라가서 기관총 거치하고 경계해. 나머지는 둘씩 짝지어서 집안을 확인하고, 일 끝나면 2층으로 가.”

“알겠습니다.”

제법 큰 저택을 훑어본 조제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지킬 사람이 더 필요해 보였다.

‘보통 이런 저택에는 뒷문 같은 것도 있는데.’

본인이 황족인 만큼 상류층의 생활에 대해서는 빠삭한 조제프 대위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집사인지 모를 남자 하나가 피를 흘리면서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유탄에 맞은 게 분명해 보였다.

“화장실 이상 무, 맥박이 없습니다.”

“제기랄, 이 도시에 남은 프랑스군이 우리뿐인 건 아니겠지.”

“민간인들도 피해 제법 입었을 겁니다. 크라우트 놈들 패악질이 유명한데......”

“망할, 왕가 탈출시키고 금괴 가져가려고 왔는데 역으로 몰살당하게 생겼군.”

창 밖으로 집 뒤뜰에서 죽은 독일군의 시체가 보였다. 총에 맞은 게 아닌, 낙하산에 문제가 생겨 추락사한 모양새였다.

“이 집 사람들은 다....”

“잠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조제프는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손 들어!”

코너를 확 돌면서 총을 들이대자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총을 겨눈 조제프를 보자 애원하듯 뭐라 빠르게 말하는데, 조제프는 다급하게 네덜란드어로 내뱉었다.

“프랑스군이다! 네덜란드인인가? 우리는 적이 아니다.”

여성의 눈에서 불신의 빛이 사라지지 않는 걸 본 조제프는 물었다.

“뒤에 뭐지? 독일군인가?”

“제 딸이에요, 아직 어린애에요, 부디......”

“젠장, 공격할 생각 없다니까, 무기 없다는 것만 보여 주도록, 아무 일 없을 거다.”

“엄마, 엄마...”

“괜찮을 거야, 엄마 여기 있어, 괜찮을 거야.”

다독이는 여성을 본 조제프는 총을 내렸다.

“이상 무, 민간인 둘 확인. 위협 요소 없......”

-콰아아앙!

순간,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뭐야!”

“빌어먹을! 놈들이 대전차포를 들고왔습니다!”

“뭐?”

“젠장! 로베르! 로베르! 정신차려!”

“응사해! 쏘라고!”

“엄폐! 엄폐해!”

“총류탄!”

-콰앙!

곧장 민간인들을 내버려둔 조제프는 밖으로 뛰쳐나오다가 다급하게 몸을 벽에 붙였다.

농담이 아니라 최소 탁구공만해보이는 불덩이가 그의 곁을 지나쳐 창 밖으로 날아갔다.

“저 씨발새끼들!”

크루프 37mm 대전차포의 실루엣을 두 눈으로 확인한 조제프의 입에서는 절로 쌍욕이 터져나왔다.

“대전차포! 대전차포부터 어떻게 해야 해! 썩을! 엄폐물이 다 날아가잖아!”

적어도 서넛은 되어 보이는 부하들의 시체가 무너진 벽 주위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또 부하들을 잃었다. 그 생각에 조제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지원자 둘 받는다! 나랑 같이 대전차포 조지러 갈 새끼 있으면 튀어나와!”

“제가 가겠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누군지 확인할 틈도 없었다.

“밖으로 나간다! 전원 있는 대로 퍼부어!”

“외람된 말이지만 중대장님, 탄약이 부족합니다.....”

“그냥 다 써!”

“알겠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소총의 탄도 얼마 안 남았다. 아마 이번 전투가 끝나면 총을 버리고 적의 총기를 노획해야 하리라.

“셋, 둘, 하나, 쏴!”

일제히 여러 정의 총에서 총성이 뿜어져 나왔다. 운용병들과 적병들이 다급하게 엄폐하는 틈을 타 세 명의 프랑스군이 뛰쳐나왔다.

미끄러지듯이 잔해에 몸을 숨긴 조제프는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콰쾅!

순식간에 포방패 너머에 숨어 있던 운용병들이 튕겨나갔다. 그 직후 부하 한 명의 머리를 탄환이 뚫어버리는 걸 보아야 했지만, 다른 한 명은 아슬아슬하게 몸을 숨겼다.

“수류탄!”

몇 발의 수류탄이 더 날아들었고, 그 수류탄 세례에 살아남은 적들은 총격으로 마무리되었다.

“중대장님, 이건 어쩝니까?”

“수류탄 남은 거 있지?”

“없습니다.”

“젠장, 시체 뒤져서 크라우트 놈들 수류탄이라도 꺼내, 안에 고폭탄 한 방 장전해놓고 포구로 수류탄 떨어트려서 박살내자.”

“중대장님..”

“또 뭔데?”

“고폭탄이 무슨 색입니까?”

“.......”

잠시 당황했던 조제프는 침착하게 답했다.

“노란색.”

잠시 뒤, 폭발과 함께 대전차포는 다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었고, 두 사람은 터덜터덜 반쯤 무너진 저택으로 돌아왔다.

물론 저택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벽이 무너져서 방어 기능은 상실하다시피 한 상태, 여기서 농성하기는 무리다, 더욱이 탈출도 어렵다.

“어쩌죠?”

“필리프, 여기서 왕궁이 보이나?”

“아까 2층에서 쌍안경으로 봤습니다. 일단 확실히 교전이 벌어지는 듯했습니다. 왕궁 2층에서 기관총 사격이 이루어지는 걸 봤습니다.”

“아직 안 무너졌단 말이지.”

“중대장님, 설마.”

“지금 몇 명 남았지?”

“중대장님까지 9명입니다. 하지만 중대장님, 지금 탄약도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 저 전투지역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지. 하지만 철수 지점까지는 한참이네, 저기서 네덜란드군, 그리고 대대 본대와 합류하지 못하면 우리도 다 죽은 목숨이다.”

“..... 제기랄.”

“게다가 저쪽에는 기관총까지 쏜다는 걸 보니 탄약이 제법 남았겠지, 우리랑 호환이야 안 되겠지만 네덜란드군 총이라고 총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9명의 생존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번만큼은 명령하지 않겠다, 반대 있나? 5명 이상이 동의하면 임무를 포기하고 즉시 부두 쪽으로 빠져나가겠지만, 그것도 사실 성공할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본관은 귀관들을 집으로 보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제기랄.”

“대위님 말이 맞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죠.”

“어차피 직선 거리로 6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입니다. 죽기살기로 뚫어보죠.”

“우리 아홉이서 해군이 기다리는 24km 거리의 바다까지 갈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대대나 다른 네덜란드군과 같이 행동하는 게 살 확률이 더 높습니다.”

차분하게 지도를 보고 생각한 생존자들의 의견은 일치했다.

어차피 지금 임무를 방기해 봤자 살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차라리 본대와 합류해서 죽기살기로 돌파를 시도해보는 게 낫다.

본대가 몇이나 남았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중대장님,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그.... 여기 민간인들은 어쩝니까? 여자 둘뿐이라는데 여기 놔두고 가면 독일군에게 보복당할 텐데.....”

“..... 본관은 데려갈 수 있는 데까지는 데려가는 게 사람으로써 해야 할 일이라고 보네만, 어떻게 생각하나?”

“젠장, 그렇게 말하시면 반대하면 사람 새끼도 아닌 게 되잖습니까.”

“그냥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사상자가 과하게 늘면서 슬슬 올라오던 불온한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걸 감지한 조제프는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네, 다들 탄약 챙기고, 무기도 점검하고, 부족한 놈은 어디서 주워오든 해라, 민간인들은 내가 챙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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