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첫 총성(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기관총! 적 화집점 제압사격! 제압사격해!”
“썩을! 적이 없긴 뭐가 없어! 스톰트루퍼들이 진을 치고 있잖아! 정보 준 새끼들 돌아가면 절벽에서 밀어버리겠어!”
욕설과 저주가 터져나오든 말든 조제프는 돌격소총을 난사했다.
작전은 초장부터 꼬였다. 곳곳에서 네덜란드군이 독일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고, 암스테르담에 접근하던 장갑열차는 적 포탄에 맞고 완파되었다.
심지어 시 외곽에는 소련제 전차인 A-43 전차가 소대급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공습 요청을 하자마자 이롱델 전투기들이 날아들어 폭격으로 박살을 내버렸기에 망정이지 대대가 통째로 와해될 뻔했다.
저게 독일군이 소련군에게 물자 지원을 받은 건지, 아니면 소련군이 독일을 도와 비공식적으로 참전한 건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진짜 중요한 건 적어도 2개 대대급은 되어보이는 적 병력이 이미 암스테르담에 강습해 있었다는 거였다.
곳곳에서 공중전이 벌어졌고, 프로이센의 하인켈 전투기 한 대가 불꽃으로 된 긴 꼬리를 끌며 추락했다.
“젠장, 저놈들이 언제 온 거지?”
“글라이더입니다!”
소대장이 중얼거리는 그에게 답했다.
그제서야 그들은 들판 곳곳에 나뒹구는 글라이더들을 보았다.
“공수부대?”
“예, 적 본대가 아니고 수도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승산이 있습니다!”
그러자 조제프는 이를 악물었다.
사상자는 제법 날 테지만, 그래도 네덜란드군도 있으니 도시 내에 포위된 꼴인 공수부대쯤은 제압할 수 있다.
적 증원군이 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중대장님! 2소대에서 접적입니다!”
“전방에 슈탈렐름 쓴 적 보병! 독일군입니다!”
“사격 개시!”
그 뒤부터는 온통 총격전이었다.
쏘고, 명령하고, 뛰고, 숨어서, 다시 쏜다.
완두콩이라는 별명이 있는 프랑스군의 철모와 슈탈렐름을 쓴 독일군은 보기만 해도 구분이 가능했다.
유탄이 날고, 박격포탄이 터졌다.
기관총과 박격포를 충실히 장비한 데다 저격수를 빼면 자동화기를 들고 있지 않은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으니-그 저격수도 기관단총 한 자루쯤은 따로 챙기고 다니고-그 화력은 대부분의 부대 화력을 기관총과 박격포, 병사들의 숙련도에 의존하며 주무기가 볼트액션 소총인 독일군과는 달랐다.
물론 독일군도 기존에 쓰던 반자동소총을 개조한 자동소총이 부사관과 장교들의 손에 들려 있기는 했다. 문제는 기껏해야 기관단총 대용으로 쓰이는 미군의 카빈에 가까운 물건이라 프랑스군이 쓰는 돌격소총의 화력에는 못 미치는 게 당연했다.
순식간에 동수의 적 병력과 교전해 적의 수를 사상자 없이 반 이하로 줄여버린 프랑스군은 수류탄을 날렸다.
프랑스군이 소총 사격보다도 중시하는 게 수류탄 투척 훈련이었다. 사고가 빈발한다고는 해도 어차피 난전에서는 공격 범위가 정해져 있는 소총보다는 공간 자체를 지워버리는 수류탄이 훨씬 유리하다는 건 수많은 전훈으로 증명되었다.
괜히 최정예 부대가 수류탄을 사용하는 부대, 그러니까 척탄병이었겠는가.
세열수류탄이 터지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쇠구슬과 금속 코일 등 갖가지 모양의 파편에 팔쉬름예거의 뼈에서 살이 분리되었고. 프랑스군은 잔존병들을 단숨에 섬멸했다.
“이제 어쩝니까?”
“왕궁으로 밀고 들어가서 네덜란드군과 합류한다. 지금 목표물들이 어디 있는지도 전부 불명이니, 왕궁이 넘어갔다고 판단되면 은행으로 간다.”
은행의 금괴가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도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다, 꼴에 강도질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입맛이 썼지만 어쩌겠는가, 적들의 손에 넘어가게 놔둬서는 안 되는데 폭탄을 붙여서 날려버려도 녹여서 다시 주조하면 되는 게 금인데.
그러나 잠시 뒤, 그들은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달았다.
“야, 국가 단위의 금이면 1~2톤이 아닐 텐데 그거 어떻게 나르지?”
참으로 뭐같게도, 대대에는 차량이 없었다. 정확히는 장갑열차에서 못 내렸다.
“어차피 운하 있잖습니까? 곤돌라 몇 척 징발해서 운하 타고 빠져나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
암스테르담은 다시 생각해 보니 베네치아는 싸대기를 양쪽으로 후리는 운하의 도시였다.
***
“함장님, 해군 사령부에서 입전입니다.”
“뭔가?”
“미확인 해군 함대가 저지대 방면으로 접근 중, 식별된 아군 함선이 아니라면 국적을 막론하고 접근을 저지할 것.”
“잔 다르크에게 정찰기 좀 띄우라고 해.”
“알겠습니다.”
프랑스군은 이미 네덜란드는 버렸다.
애초에 프랑스군은 요새선에서 틀어박혀 싸우는 게 아닌, 기동전을 군의 핵심으로 삼았다.
말이 좋아 기동전 중시지, 세계 최강의 전차들과 그것들로 이루어진 기갑사단들을 보유하고 있으면 당연히 교리를 거기에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기갑부대 중심 교리를 통해 적들을 제파 전술로 밀어버리고, 선두의 기갑부대와 반궤도장갑차에 오밀조밀 모여 탄 기계화보병들이 돌파구를 형성하면 전차, 자전거부대, 차량화부대, 기계화보병부대들이 밀고들어가 전과확대를 벌인다.
그리고 핵무기가 있었다.
항공, 지상, 해상에서 쏘아지는 핵탄두는 필요할 경우 돌파구를 형성하기 위해 발사되어 버섯구름을 만들 것이다. 1제파인 기갑부대는 핵이 떨어졌든 떨어지지 않았든 적에게 정면으로 부딪혀 들어가 자신들이 분쇄되더라도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잔존 전력은 후방으로 빠지거나 기동집단과 합류해 분쇄된 적 방어선 내부에서 적을 포위섬멸한다.
그게 어떤 병기인지는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장 이 함대에도 핵무기 수십 발이 탑재되어 있었다.
샤를마뉴에서 사용되는 핵포탄, 항공모함 잔 다르크가 보유한 제트전투기 탑재 자유낙하식 핵폭탄.
그리고, 사용 시기와 장소는 지상군과 협의해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철수작전이네.”
그리고 아직 소련과 선전포고는 교환되지 않았다. 교전을 벌이는 건 두렵지 않지만, 그 교전을 벌였다가 임무를 실패하면 소탐대실이다.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무장정찰기에서 보고입니다!”
“빠르군, 뭔가?”
“덴헬데르 인근에서 대형 여객선 발견, 약 3만톤급 대형함이 붙어 있으며, 함선식별표에 일치하는 함선이 없답니다!”
“국기는? 국기는 확인했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고민은 짧았다.
“어느 방향이지?”
“서 프리슬란 제도를 지나 에이설 호로 진입하고 있답니다.”
“그럼 적이군.”
간단한 셈법이었다.
“여객선이면 수송선인가, 대형 여객선이면 최소 대대급 병력과 장비들을 같이 실었겠지, 지금 공수된 병력과 합치면 연대에서 여단은 되겠는데.”
거기에 같이 따라온다는 3만톤급 전함을 생각하면 거기에도 병력을 낑겨넣었을지 모른다. 이거저거 다 합치면 감편 사단급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반드시 격침시켜야 한다. 즉응 가능한 게 잔 다르크니 당장 동원 가능한 뇌격기 전부 띄워, 항공엄호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같이 붙여서 띄워, 해군의 첫 전과다.”
현재, 프랑스 해군의 교리는 상당 부분 항공모함 위주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겠는가, 정부에서 신형 전함을 건조할 예산에서 틱틱거리는데, 그러면서도 항모는 잘만 만들어주니 전함파 입장에서는 위가 꼬이겠지만, 대전쟁기의 졸전은 전함이 다 했고 항모부대는 기습공격으로 적 전함 셋을 작전불능으로 만들어버리며 유명세를 탔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항모에 더 호의적이었다. 황제까지 전함을 외면하는 판이었으니 프랑스 해군 총기함인 샤를마뉴를 유지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리라.
***
“상공에 적기 다수! 하인켈이다!”
무전으로 이롱델 전투기 편대에 다급한 통신이 들어왔다.
곧장 전투기 조종사들은 공중전을 준비했다. 시대는 제트기 시대였지만 전투법은 아직 기관포와 기관총으로 싸우는 도그파이트 정도였다.
미사일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공대공로켓을 기반으로 적외선 같은 걸로 적을 알아서 식별하고 쫓아가서 터지는 무기를 만들자는 제안이 병기국에 접수되긴 했지만, 진공관 따위로는 적외선으로 적을 추적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하다면서 병기국이 드러누워버린 탓에 실패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전자공학기술이 공학기술에 비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탓이고, 레이더조차도 아직은 제법 원시적이고 시범적인 기술, 대부분은 육안에 의존한다.
그리고, 모든 도그파이트에는 진리가 있다.
뒤를 잡는 놈이 이긴다.
독일의 하인켈 전투기가 3정의 20mm 기관포를 쏘아냈고, 거기에 맞서 프랑스군 역시 항공기마다 장착된 4문의 20mm 기관포를 쏟아내었다.
속도는 엔진을 2개 단 독일군이 우수했지만 기동성은 트윈붐 형태의 전투기를 만든 프랑스군이 훨씬 우세했기에 전투는 백중세로 돌입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에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었다.
프랑스 전투기들이 하인켈 전투기들을 붙잡는 동안 터보프롭 이중반전 뇌격기 수십 대가 방향을 잡고 날아갔다.
4발의 항공어뢰를 장착한 뇌격기 편대를 향해 대공사격이 쏟아졌고, 그 포화에 재수없는 뇌격기 여러 대가 떨어졌지만 나머지는 어뢰를 투발했다.
항공어뢰들이 흰 선을 그으면서 함대로 다가섰다.
붉은 군대 해군에서 조선소의 능력복원을 위해 건조했으며, 독일에게 다수의 신형 전투기와 공격기를 대가로 임대된 두 척의 배 중 하나인 여객선 ‘아무르’는 죽을 힘을 다해 회피기동을 했다.
2개 대대에 달하는 병력과 장비를 한가득 싣고 있는 아무르가 격침되면 상륙 예정 병력의 절반이 고스란히 증발한다.
같이 세트로 임대된-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의 수병들이 여전히 운용하고 있는-울리얍노스크 역시 살 길을 찾아 죽어라 도망치고 있었다.
독일은 소련에 각종 기술력을 선물했고 완제품 항공기와 각종 장비를 지원했으며 소련이 주문한 순양함을 건조한 뒤 수출했다. 소련은 독일과 전차를 공동개발하고 가지고 있는 군함들을 빌려주었다.
소비예츠키 소유즈는 아직 완성되지 못했으며, 경순양함들은 스칸다나비아 침공에 동원되었고 6월 혁명도 거기 들러붙어 있으니 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독일도 열성적이지는 않았다. 당장 암스테르담을 점령하는 게 문제인가? 당장 파리로 달려야 할 판에?
문제는 암스테르담을 그냥 놔두고 가자니 기동전을 중시하는 만슈타인 장군을 위시한 일부 장성을 제외한 모든 장군들이 작전 수립 단계에서부터 뒤통수가 근질거린다며 탈모의 원인이 되는 두피염 초기 증세를 보였고 이로 인해 프로페시아 대신 여단급 병력을 공수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수송기가 부족하다며 공군이 배째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작전은 굉장히 괴랄한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1. 작전 개시와 동시에 루프트바페가 끌어모은 2개 대대와 그 장비를 수송 가능한 수송기와 글라이더를 동원해 암스테르담을 공격한다.
2. 2개 대대는 다른 거 다 집어치우고 해안포 시설과 부두를 집중공격해 점령하거나 파괴한다.
3. 해군은 지난 전쟁에 대형함 싹 날려먹었고 남은 거랑 신건조한 거 다 합쳐도 프랑스 해군과 싸울 여력이 없으니 소련에서 지원받은 2척의 선박에 여단의 나머지 병력과 공수 불가능한 중장비들을 바리바리 실어서 해안에 던진다. 아무르는 바로 철수하고 울리얍노스크는 해안에 머무르면서 지원포격 임무를 수행한다.
작전종료는 공세가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군을 최대한 오래 붙들어놔서 네덜란드가 항복할 때까지 버틴 뒤 본대에 합류하는 걸로 끝난다.
척 들어도 개판으로 들리는 작전이었지만, 지금 여기서 어뢰를 한 방이라도 맞으면 그 개판도 물건너간다.
“적 어뢰 접근 중!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