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32화 (132/200)

132화 첫 총성(1)

1932년, 미국 대선에서는 FDR과 찰스 커티스의 대결이 벌어졌다.

FDR과 커티스는 정책적으로는 거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실질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지지자를 끌어모은 루즈벨트와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과 그간의 실적을 등에 업은 커티스의 싸움이었고, 그야말로 개표 마지막 순간까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격전 끝에 간신히 선거인단 수에서 우위를 차지한 커티스가 재선을 확정지었다.

193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찰과 군이 합작한 기습적인 체포 작전이 벌어져 나치당의 행동대인 테러리즘 단체 SA(돌격대)의 수괴 에른스트 룀이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베를린과 뮌헨에서는 축배를 들었지만, 불의에 맞서 싸우다 순교한 룀을 추모하는 세력들은 나치당에게 더더욱 큰 지지를 보냈다.

이미 불법화된 지 오래였지만 나치당에는 계속해서 당비가 들어왔고, 군부 내에서도 주류 파벌에게 밀려 불만이 많은 여러 장성들에게 나치의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아직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지만, 실질적인 나치당의 리더 하인리히 힘러는 프랑스와 연계해 무기와 탄약을 비축하고 친위대를 훈련시켰다. 심지어 황실에서도 나치에 동조하는 인물이 나오는 등, 나치는 독일과 그 주변에서 공산주의 못지 않은 파급력으로 사방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1935년, 베를린 증시가 폭락하며 2차 대공황이 닥쳤다. 이 충격에 미국 역시 강력한 충격을 받았고, 파리 역시 1929년에 못지 않은 충격을 받고 경제 지표가 폭락했다.

그 시기에 맞추어 북독에서는 남독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세를 얻기 시작했다. 베를린과 뮌헨 등에서 몰려나온 시위대는 통일을 요구했다.

그리고 1936년 2월 14일, 북독일 연방은 공식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독과 통일해 독일 제국을 완성할 것이라는 선언을 했고, 곧장 프랑스 제국은 남독과 북독이 통합하려는 어떤 시도도 프랑스에 대한 적대 시도로 간주될 것이라는 통첩을 보냈다.

이미 양측 모두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프랑스의 최후통첩이 접수된 지 3시간 30분 후, 북독일 연방군은 남독과 북독 사이에 가로놓인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미리 배치되어 있던 북독군이 네덜란드와 프랑스 국경 전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차 세계대전은 북독일의 예방전쟁으로 시작되었다.

***

“젠장.”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은 입 안에서 우물거리던 껌을 퉤 뱉어냈다.

그의 군복에는 장교 계급장과 보병 병과장이 달려 있었고, 그의 손에는 FAB03 돌격소총이 들려 있었다.

평범한 초임 소위 같아보이는 이 청년의 이름은 조제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제국 계승 서열 2위이자 나폴레옹 4세의 맏손자였다.

남자애라면 전부 사관학교를 졸업시키고 야전 생활을 좀 시키다가 불러들이는 황실의 전통 아닌 전통-2대밖에 안 이어졌지만-탓에 일선 보병중대의 중대장으로 복무하다가 전쟁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성격상,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빼주려고 할 확률은 0에 수렴했다.

물론 그의 할아버지에게도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애초에 그는 전쟁이 내년이나 내후년쯤 일어날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때쯤이면 조제프는 알아서 후방으로 빠지든 의무복무기간을 채워서 제대하든 했을 시기였고, 전시 예비역 소집을 하더라도 파리 사령부에서 복무했으리라.

애초에 다들 군대에 가도 황족들은 더 필수적으로 군대에서 굴러봐야 한다는 황제의 지론에 따라 입대한다고는 해도 제위를 물려받을 황태자나 황태손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굴릴 생각은 황제에게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뒤로 빼기도 어려운 판국이니 조제프는 뭔가 보직이동을 할 만한 건수가 생기지 않고서야 일선 중대장으로 굴러야 할 판이었다.

‘그래, 다 내 팔자가 사나운 탓이지.’

애초에 팔자가 편하려고 했으면 20세기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자조하면서 한숨을 단 한 번 내쉰 조제프는 후방 근무에 대한 미련을 마음 속 쓰레기통에 가볍게 털어넣었다.

이곳에서, 그는 진흙탕에서 구르는 전우들과 다르지 않다.

후방에서 뻔뻔하게 죽음을 향해 부하들을 내모는 게 아니라, 저들과 함께 사선을 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리어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

“중대장, 소대장 전부 대대 회의실로 집합하라고 합니다! 반복합니다! 중대장, 소대장, 전부 대대 회의실로 1700까지 집합하랍니다!”

“지금이.....”

“1655입니다.”

“시발!”

그와 동시에 용수철 튕기듯이 일어난 조제프는 급히 달음질쳤다.

애초에 황족이라고 딱히 이점이 있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본보기를 보인다면서 빡세게 굴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대는 자나깨나 중간만 가야 하는 곳인데 그 중간을 못 간다.

물론 이곳은 프랑스, 왕이든 뭐든 꼬우면 단두대로 모가지를 써는 나라니 더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괜히 황족 티낸다고 찍히고 싶지 않았다. 본인도 나서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기도 했다.

‘아버지랑은 다르게.’

어머니 외에도 알려진 정부가 무려-망한 나라지만-공주로 하나 있고, 소문에 따르면 다른 정부가 하나 있으며, 아버지가 대국민 행사의 일환으로 대부가 되어 주고 양육비와 교육비를 지원하기로 한 아이가 사실 대자가 아니라 사생아라는 괴소문이 돌기는 했다.

그 대자 녀석, 조제프도 한 번 보기는 했는데 딱히 혈연인가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백인도 아니었고, 아버지 말씀으로는 옛 친구의 자식이라는데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대부가 되어줬다고 했다.

애초에 자신의 사생아 동생도 딱히 딱 봤을 때 가족으로 느껴지지는 않았기는 하지만, 일단 조제프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하나를 더하자면 아버지는 언론 노출도 자연스러웠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황족, 그것도 계승권이 매우 높은 황족으로써 언론에 노출되는 건 숙명이었으니 숙달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는 그냥 지나가는 청년 1, 병사 1, 장교 1이고 싶었다.

언젠가 그가 제위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거야 아직 정정하신 할아버지 때문에라도 현실감이 그다지 없는 일이었다.

잠시 뒤, 회의실에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게 도달한 조제프는 대대장이 들어서는 걸 보았다.

“다들 왔나? 바로 시작하지.”

대대장은 지도를 내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귀관들 전부 알아둬야 할 게 있네, 지금 전쟁은 한 곳에서 일어난 게 아니야.”

“네덜란드도 침공당했다는 건 다 전파되었......”

“조금 전 들어온 소식이네, 소련이 핀란드와 발트 3국에서 일어난 내란을 지원하고 전쟁을 도발했다는 명분으로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선전포고를 했네.”

“.........”

“누가 들어도 말도 안 되는 명분이지만, 여러 정황상 소련은 스칸다나비아 반도를 합병하기 위해 작정한 것으로 보이네. 그리고 이를 위해 소련이 북독과 손을 잡은 것으로 판단되네. 뭐, 일단 우리를 침공한 건 아니니 당장 중요한 건은 아니네.”

“저희 부대는 어디로 갑니까?”

“우리 부대는 저지대로 갈 예정이네. 북독의 주력군과 정면으로 맞붙게 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대규모 부대가 네덜란드로 향하고 있네, 우리 역시 네덜란드로 이동해 그곳에서 진행될 특별 군사작전을 지원하라는 명령이고, 이를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차출되었네.”

“암스테르담에서 뭘 합니까? 독일군이 우리랑 전쟁하고 싶은 거면 암스테르담까지 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네덜란드 왕실의 대피와 네덜란드 중앙은행의 금괴, 정부 요인들의 탈출이 주 목적이네, 그리고 암스테르담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네, 독일군이 이미 아른헴에 도달했고, 독일군 중 일부 병력은 암스테르담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네, 암스테르담이 공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인근의 위트레흐트 역시 공격당했고.”

“저희는 어떻게 갑니까?”

“장갑열차로 갈 걸세, 안트베르펜과 로테르담을 경유해 암스테르담으로 갈 예정이지만, 암스테르담까지 쭉 기차로 갈 거고 중간에 내릴 일도 없는 만큼 신경쓸 거 없네, 하지만 올 때는 기차를 사용하지 않을 거네, 병력이 배치된 뒤, 방어선이 설치된 발 강 북쪽의 모든 주요 철도와 교량, 도로, 항만 시설 등은 파괴 대상이니까.”

“어떻게 복귀합니까?”

“에이마위던에서 배를 타게 될 거네. 사령부에서는 암스테르담에 최대 6개 사단이 공격해올 수 있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이는 굉장한 고위험 임무네. 물론 이는 최대치야, 연대 한두 개 보내고 말 수도 있지.”

“혹시 얼마나 갑니......”

“우리 대대 하나만.”

“.........”

“대신 중요한 임무이니만큼 다수의 항공엄호와 군함들이 동원될 거고, 샤를마뉴 함이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호위함대와 함께 출동하네, 금괴를 안전하게 실어나르려면 샤를마뉴가 제격이기도 하니까.”

즉, 적의 주력부대가 몰려오는데 아무리 주 진격로에서 벗어나는 위치라도 그 입지와 위치상 크라우트 놈들이 절대 놔두고 넘어갈 리 없는 위치로 1개 대대만으로 투입되어 적들이 노릴 주요 목표를 가지고 해상으로 퇴출하는 것이다.

당연히 후퇴 과정에서 개떼처럼 달려드는 적 항공대와 그만큼 악착같이 추격해오는 적 정예부대와 교전해야 할 위험이 크다. 적의 지휘관이 상식적이라면 암스테르담만한 대도시를 점령하는 데 사단급은 할당했을 거고, 이는 1개 대대에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를 현지 병력만 가지고 독일군 사단과 맞서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좋게 말해 고위험 임무지, 적과 교전하는 상황에 놓이는 순간 그 고위험 임무는 자살 임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창씨개명을 당하게 될 것이다.

“프로이센 해군의 활동 소식은 없습니까?”

“모른다, 그리고 알더라도 해군과 공군이 알아서 할 일이다. 더 질문 있나?”

“전차 지원은 없습니까? 저희는 산악부대라고는 해도 순 보병이라......”

“본래 샤를 드골 중령의 794전차대대가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사령부에서 취소시켰다. 전차들은 단시간에 적재하고 수송하기 힘들어 촌각을 다투는 이러한 임무에서 동원하기 곤란할 뿐 아니라 전차가 동원되어야 할 정도의 대규모 교전이 벌어지면 이미 임무는 반쯤 실패한 것이니까, 게다가 해상탈출이라는 작전계획상 전차들은 선적하기 어려운 관계로 전부 버려야 하는데 1개 대대분의 폴테아가 전차를 전부 유기하거나 파괴할 정도의 낭비는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해당 대대는 전략예비대로 돌려졌다. 다른 질문 있나?”

“............”

“없는 모양이군, 이상이다, 1시간 내에 전 병력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에 집결할 수 있도록, 1900까지 기차역에 도달해 열차에 탑승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알았나? 그럼 이만 해산. 비바 랑펠로!”

“비바 랑펠로! 비바 라 프랑스!”

구호를 외친 장교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얼마 안 가서 대대는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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