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31화 (131/200)

131화 비둘기의 죽음

“괴링.”

“때가 가까웠네.”

루프트바페에서 제법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괴링은 돈이 많았다.

그렇기에, 뜻을 같이하는 친우 힘러의 뒤를 봐줄 수도 있었다.

“카이저는 정신을 못 차렸고, 융커들도 마찬가지야.”

희망은 단 하나에 있다.

진정한 국민군, SS.

“SS는 그 SA같은 어중이떠중이와는 달라, 내가 보장하지. 에른스르 룀... 그 얼간이는 내가 자기들을 소모품으로 내몰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모양이네.”

SA는 총알받이, 혁명의 날에 움직일 진짜가 SS.

둘 다 제대로 된 무장조직이지만, 혁명의 날이 오면 SA는 해체되어 신병 훈련과 모집이나 담당하는 부서로 전락할 것이다.

“물건은?”

“항구로 실어다 뒀네, 컨테이너째로 들고 가게.”

SS는 정규군이 아니기에 무기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랬기에 SS가 제식무기로 채택한 것은 작아서 숨기기도 쉽고, 재료도 싸구려라 만들기도 쉽고 값도 싼 MP9, 혹은 돌격권총이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연사력과 많은 장탄수가 장점이지만, 덤덤탄이 잼이 자주 걸린다는 게 단점, 그러나 프랑스군에 납품할 용도로 정식 조병창에서 생산한 7.5mm 탄을 프랑스에서 밀수해온다면 그럴 염려도 없다.

어차피 프랑스 정부의 주문량이 많아서 워낙 막대한 물량을 생산하다 보니 좀 빼돌리는 정도로는 눈치도 못 채는 것이었다. 총알이 프랑스 국내에 남아 있다면 문제가 될지 몰라도 아예 국외로 빼돌려지는 거라면 걱정할 일도 없으니 부패한 관리자들도 밀수에 동참했다.

프랑스 정부도 납품된 양만 확인하지 공장에서 실제로 몇 발이나 생산되었는지 알아낼 방법도 없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 총알분무기가 언젠가 저 빌어먹을 융커들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주리라.

물론 SS가 그걸로만 무장한 건 아니다. 무기 관리가 허술한 국가는 곳곳에 있었고, 아예 민간에서 기관총을 팔기도 했다.

분대지원화기로 쇼샤 경기관총을 보유하고 심지어 75mm 산포까지 구해 지하에 숨긴 SS는 매일같이 맹훈련을 하면서 결전의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갑병기가 없다는 게 흠이지만 적어도 프로이센군에 맞서서도 충분히 전투를 벌일 만한 전력은 보유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이쪽은 버나드, 그리고 이언이네.”

“흠,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영국에서 왔나?”

“그렇습니다.”

영국군이었다. 정확히는 ‘구’ 영국군이었다.

영국은 대전쟁에서 완전히 패망했다. 몇몇 인사들은 귀국해서 반아일랜드 저항 운동에 참여했으나, 몇몇은 아예 새 살 길을 찾았다.

그리고 SS는 이 영국인들을 통해 경험 많은 장교와 부사관을 모을 수 있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 상급돌격대지도자(SS중령)입니다.”

“이언 플레밍 최상급돌격지도자(SS대위)입니다.”

“입 무겁고 유능한 친구들이네, 이번 일을 맡기려고 데려왔지.”

물론, 괴링은 미심쩍은 눈치였지만, 힘러는 확신하듯 말했다.

“융커들을 싫어하는 걸로는 누구 못지않은 친구들이네, 장담해도 좋아.”

***

아일랜드령 브리튼, 캔터베리 인근.

-타타타타타타타타!

기관단총 소리가 미친 듯이 울렸다.

영국 파르티잔들의 공격에 아일랜드군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파괴와 학살로 응수했다.

민병대라면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파괴되는 모습에 절망해 저항을 멈추고, 그들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공산 파르티잔은 국민들에게 버림받게 만들어 고립시키는 전략이었다.

“젠장, 앙드레!”

“젠장, 어께에 맞은 것 같아.”

의외로 공산 저항군에는 프랑스인을 비롯해 외국인들도 있었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정치화된 함무라비식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심의 논리로 움직이지만, 그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못했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잉글랜드인들이 아일랜드인들을 지배하고 고통을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일랜드인들이 하는 식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고집하다가는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될 것이다.

잉글랜드인들이 아일랜드인들을 압제한 건 잘못이지만, 아일랜드인들이 잉글랜드를 압제하는 것도 옳은 건 아니니,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에게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잉글랜드가 내주면 두 민족이 과거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사회주의자들의 논리였다.

아일랜드인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혀 돌아가실 논리였다.

그래서 잉글랜드인들이 뭐 사죄와 보상을 하리라고 믿는가?

잉글랜드인들과 아일랜드인들이 동등한 관계에서 사죄를 주고받아? 그래서 미안하다 말 한 마디 하면 끝인가?

도대체 대가리에 무슨 꽃밭이 들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얼간이들의 개소리에 아일랜드 정부는 아일랜드를 찾아와 시위를 벌이고 위원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요구하는 멍청이들을 잉글랜드 부역자라는 혐의로 재판 없이 공개처형해버렸다.

당장 당사자들의 모국과 마찰이 벌어졌지만, 아일랜드 정부는 이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내란음모 수괴’라고 응수했다.

즉 잉글랜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서 아일랜드 정부의 정책을 바꾸려 하는 모든 시도는 아일랜드 국경 내에서 벌일 경우 국가반역음모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일랜드의 문제가 애초에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였기에 그러했다.

분명 초창기에는 복수심을 가진 아일랜드인들은 잔혹하게 잉글랜드를 압제했지만, 이제 잉글랜드에 대한 지배는 마이클 콜린스 대통령이 급사한 이후 만들어진 군국주의 사회의 유지와 군사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지속되고 있었다.

복수심이 다 식어버리더라도 잉글랜드를 짓밟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다. 실로 적대적 공생이라 할 만했다.

게다가 자신들이 한 프로파간다 때문에 잉글랜드에 가해지는 압박이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백주대낮에 총에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이었다. 게다가 대공황으로 삶이 팍팍해지자 그것도 잉글랜드를 쥐어짜 해결하려 했고 말이다.

문자 그대로 자승자박에 빠진 아일랜드 군부는 그저 현상만 유지하고 싶을 뿐이었고, 남의 나라 행사에 시끄럽게 구는 위선자들을 공개적으로 쏴죽임으로써 헛바람 든 놈들이 알아서 발길을 돌리기 바랐다.

국외에서 떠들든 말든 신경쓰지 않을 테니 국내에서 문제 일으키지만 말라는 생각이었지만, 이는 너무나도 얕은 생각이었다.

그 뒤에도 사회주의자들이 안 들어온 게 아니었고, 이제는 그들은 연설문과 전단지가 아니라 기관단총과 폭탄을 들고 밀입국했다.

브리튼 제도가 공산 파르티잔으로 들끓게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일랜드인들과 잉글랜드인과의 오랜 원한이 문제가 아니라 아일랜드 군부가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한 사회주의자들은 아일랜드군에 대한 공격을 가했고, 군국주의 국가인 아일랜드에게 있어 이는 곧 아일랜드 전체에 대한 공격이었기에 즉각 대거 병력을 동원해 토벌전에 들어갔다.

“필비, 잘 들어, 난 틀린 것 같아.”

“빌어먹을, 말로, 정신차려. 놈들이 물러가고 있어, 들려? 놈들이 후퇴한다고, 지금 치료받으면........”

“아냐, 젠장, 동맥을 당한 것 같아.”

그 말대로 깔끔하게 관통당한 총상에서는 피가 쉴새없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난..... 난..... 내가 죽으면, 필비, 내 머리카락을 잘라가서.......”

말을 잇기도 전에 굉음이 들려왔다.

로켓탄 다수가 일제히 사방에 착탄하고 있었다.

“미친 새끼들! 이 근방에 민간인들이 많은데!”

“저 새끼들이 언제 신경이나 썼나?”

“어쩌지?”

“방법이 없어,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적이 차량화로켓포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적 기갑부대가 출동했다는 거야!”

“하지만 앙드레는....”

“말로는 죽었어, 에릭! 지금이 아니라도 곧 죽게 될 거라고, 여기서 다 죽는 건 무의미해 멍청아!”

“적 전차 4대! 능선을 올라온다!”

“당장 피해!”

총성과 포성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탈출하던 필비는 총에 맞아 쓰러졌고, 프랑스인은 얼마 가지 않아 과다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에릭 역시 탈출하던 도중 전차에서 난사한 기관총에 맞아 쓰러졌다. 죽음을 기다리는 그를 향해 한 아일랜드 병사가 다가왔다.

그 병사는 죽어가는 젊은 공산주의자를 총검으로 찔렀고, 한 사람의 목숨은 또 다시 덧없게 끊어졌다.

아니, 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일랜드군은 그 마을을 통째로 지워 생존자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 잔혹성이 그들의 방식이었기에.

***

“북독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나는 고개를 묵묵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북독일 내 사회주의 분파인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현재 힌덴부르크 암살 사건 이후 집중적으로 탄압을 당했지만, 의외로 국내에서의 지지는 상당합니다. 이들은 반 제정, 반 융커 세력이고 자본가들에게 적대적......”

알어, 씨발.

나는 하켄크로이츠를 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심정을 느꼈다.

게릴라 지도자 중 하나라는 에른스트 룀의 명의로 오긴 했는데...... 그리고 원래 나치놈들이 좌파 색이 있었고 처음에는 SA를 내세운 깡패집단에 가까웠다는 것도 알긴 안다.

근데 힌덴부르크를 암살해버리는가 하면 반 카이저, 반 융커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끝에 탄압당하다가..... 손을 벌리는 게 우리야?

그리고 그 방식은 군 내 동조자를 이용해서 기밀을 누설하는 거고?

아니, 그래, 확실히 그렇다. 지금 논의가 어느 수준까지 되어있는지, 내가 북독일의 최고위 장성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나와있어.

심지어 회의록까지 사본으로 반출에 성공했으니 대단하다고밖에 말 못하겠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는 그 스파이가 누구인지 알 거 같다.

현재 북독일 연방에 내가 너무 잘 아는 이름이 하나 군 최상층에 박혀있거든.

‘공군 참모장, 헤르만 괴링.’

뭐 대전쟁기에는 뛰어난 조종사였으니까, 그리고 에이스까지 달았으니까, 응, 그렇겠지.

근데 돈을 걸라고 하면 난 저 괴링이 기밀을 빼돌렸다는 데 걸겠다.

히틀러? 나치 소리를 듣고 알아보니 그놈 진작 죽었더라, 다른 곳도 아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상륙작전에서 전사하고 사후에 철십자 훈장이 추서되었다는데, 그놈이 뒈지기 전에 원고를 한 뭉텅이 남겼고 옛 전우들이 돈을 모아서 자비출판한 그 원고가 ‘나의 투쟁’이다.

나도 한 번 읽어봤는데 내가 아는 것처럼 자서전이 아니라 완전히 ‘자본론’마냥 사상서가 되어 있었는데 융커에 대한 혐오와 독일 민족에 대한 예찬 등이 들어있는 게 참..... 남 입장에서 읽어보니 읽기가 참 고역이었다.

심지어 내가 책을 끝까지 못 읽게 만든 원인은 각 민족마다 그들을 위해 예비된 위버멘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를 그 예시로 들어놨더라, 망할 거.

물론 내가 위버멘쉬이니 날 섬기라는 게 아니라 프랑스에 내가 있듯이 독일 민족을 위한 위버멘쉬가 언젠가 도래할 것이지만, 그게 황실이나 융커는 아닐 거라며 날 선 비판을 가하는 부분이었다.

다행이야, 히틀러가 내 빠돌이짓 하지는 않아서, 그랬으면 진짜 어우...... 그냥 적당한 남의 나라 위인 보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 주면 내가 다행이지. 시발 히틀러의 멘토 나폴레옹 4세 같은 걸로 역사에 남아봐, 내가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있나.

히틀러가 나한테 아리아인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는 않고 어쨌든 프랑스인이라며 선을 그어놨으니 참 다행이다.

근데 그거 히틀러가 쓴 게 맞긴 한가? 애초에 원고도 미완성이라서 나치당에서 나중에 원고를 채워넣었다던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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