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대공황(3)
미합중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기까지는 1년이면 충분했다.
1929년에 시작된 폭락은 1930년에 들어서자 너무 명확해졌다.
미국은 죽어가고 있었다.
의회 연설을 마치고 막 나온 후버는 어지러운 머리를 움켜잡았다.
“내가..... 존,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대통령 각하.”
수행원에게 물은 후버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걸 바라지는 않았어, 분명, 분명 모든 경제지표가 최상이었는데. 내가 취임하자마자, 어째서. 어째서?”
민주당 놈들 때문이다. 그놈들이 경제를 망쳐놨으니 그 똥물을 뒤집어쓴 것 아닌가.
경제는 자기들이 망쳐놓고 똥은 자신이 뒤집어쓰고 있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미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힌 스무트-홀리 법은 그의 계파가 만든 것이었으니까.
“난 잘못한 게 없어.”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순간, 후버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타앙!
한 발은 빗나갔다.
-타앙!
그러나, 다음 탄환이 그의 폐부를 꿰뚫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개자식아.”
“존........ 어째서?”
총성과 함께 사람들이 몰려들고, 순식간에 총을 쏜 수행원은 엎어져 구속되었다.
총에 맞아 쓰러진 후버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상대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뒈져라. 후버.
그 직후, 후버의 의식이 암전되었다.
***
“참모총장님.”
“뭔가? 대령.”
“대통령 각하께서 공격당하셨습니다.”
대전쟁 참전용사 시위대가 워싱턴 D.C.로 모여드는 것에 대해 대응방법을 확인하던 더글러스 맥아더의 커피잔이 쏟아졌다.
“뭐라고?”
정보참모, 콘라드 란자 대령은 딱딱하게 굳은 채로 말했다.
“대통령님의 수행원 중 존 리드라는 자가 대통령 각하께 총을 쏘았습니다.”
“언론은?”
“아직 새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부통령 각하를 모셨고, 대통령 각하께서는 총상을 입고 의식이 불명입니다.”
“계속 통제해, 그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제기랄, D.C.로 모여드는 그 무리들과 관계가 있나?”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죽는다면, 대혼란은 불가피하다.
그 혼란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면?
빨갱이들이 그 혼란에 편승한다면?
“...... 해병대에 용공분자들이 침투했다는 정보가 있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패튼 중령에게 지시해서 즉시 대대를 출동시키라고 해, 해병대, 시위대가 아니라 해병대를 포위하라고.”
“그럼 시위대는.....”
“우선 경찰력으로만 막는다. 예상이 맞다면 패튼 중령의 대대 병력을 포함해 수도방위부대가 있어도 상경을 막지 못한 이상 끝장이야.”
언론에서 이르기를 보너스 아미, 저들의 규모는 대략 5만에서 7만 사이.
참전용사들이 총과 중화기를 반입해 보관하고 있다는 정보가 사실이면, 수도방위군으로는 뭔 짓을 해도 막을 수 없다.
패튼 중령의 부대는 전부 경전차, 임시로 급조한 폭발물 따위에도 무력화될 수 있다. 대통령실 근처에 암살자를 심어놓을 정도라면 그 정도 대비를 안 하지는 않았을 터.
“최악의 경우, D.C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기밀서류 전량 소각하고 인원 소개 준비해.”
빨갱이 폭도 소굴이 된 D.C.를 탈출해 연방군 병력을 소집한다. 지금 대부분의 병력이 구 캐나다령과 멕시코에 있지만 소집해서 대응하려 하면 주방위군까지 지원받을 수 있으니 D.C 탈환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은?
‘종심이 너무 좁고, 병력은 부족하다. 무턱대고 진압하려 하면 각개격파당하겠군.’
협상을 해야 한다.
협상이 타결되어서 저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선동꾼을 제외하고는 자진해산하게 해서 빨갱이들만 밀어버릴 수 있다면 명분을 챙길 수 있고, 답이 안 나오는 병력비도 수습할 수 있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시간을 끌 수 있고, 역시 협상을 시도했으나 빨갱이들의 어깃장으로 실패했다고 선전할 수 있다.
‘그동안 부통령, 아니, 대통령 각하와 장관, 의원들을 워싱턴 밖으로 피신시키고, 뉴욕이면 되려나. 설마 뉴욕도 빨갱이 천지는 아니겠지.’
맥아더가 피워올리는 옥수수 파이프의 연기는 더욱 짙어졌다.
그때, 다음 전령이 도착했다.
“뭔가?”
“총장님, 대통령 각하께서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
“나는 헌법을 준수하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 된 찰스 커티스 대통령은 간단한 보고를 들었다.
“암살자는 자신의 동기를 가족의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가족이라면?”
“엘리너 테일러, 존 리드의 여동생으로 알렉스 테일러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사흘 전 알래스카에서 일가족이 함께 자살했습니다. 급하게 조사해본 결과......”
“그 원인이 대통령이.....”
“얼마 전에 거부권을 행사한 그겁니다. 참전용사 참전 수당 조기 지급 법안.”
커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의는 할 수 없지만, 이해와 동정은 할 수 있었다.
암살범이든, 이미 죽어버린 후버든, 모두.
대선에 러닝메이트로 출마하기는 했지만 그는 후버에게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티스는 힘이 없었고, 후버는 자신의 계파와 함께 모든 일을 좌지우지했다.
이제는 좀 이야기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몇 달 전에 뒈졌으면 몰라도 이제 와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일단 시위대가 대규모로 모여든 것부터 어떻게 한다면 시간을 두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만, 저들이 언제 폭도로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커티스로서는 후버가 싸놓고 떠난 똥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우선 참전용사 비용지급 법안이라도 어떻게든 통과시켜 봅시다, 내용을 살짝 바꿔서 발의하고, 그러면 시위대는 명분을 잃을 거요. 스스로 해산할지는 알 수 없지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해야 할 건 뻔했다.
후버의 문제는 아집에 휩싸여 안 된다는 게 증명된 대책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일단, 저 시위대부터 해산시킨 뒤에 다음 문제를 생각하도록 합시다. 맥아더 총장 당장 불러오도록 하십시오.”
해와 달, 모든 별이, 우주가 자신의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
후버가 사망하고 대권을 이어받은 찰스 커티스 대통령은 다급하게 의회를 열어 참전용사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거의 즉각적인 보너스 아미의 해산을 야기시켰다.
일단 생계를 이을 돈을 받은 이상 여기에 만족한 참전용사들은 의회에서 급히 융통해준 예산을 받아 ‘후버 촌’이라 불리는 판자촌을 철거했고, 예정된 각종 공공사업에서 우선적으로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약속받고 평화롭게 해산되었다.
그 와중에 미 육군이 해군과 해병대가 공산 혁명에 동참하려 한다며 조지 패튼이 지휘하는 기갑대대가 해병대 주둔지에 들이닥쳐 해병대를 무장해제하는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급한 불을 끈 커티스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곧장 대공황의 원흉으로 지목받은 스무트-홀리법을 폐기하고, 전전임 맥아두 대통령이 다 계획을 잡아두었던 운하 공사와 댐 공사를 모두 시작하고 농촌 살리기에 나섰다.
어차피 이 마당에 다음 대선에서 자리를 유지하는 게 가능할지 아닐지도 모를 판국이라 하고 가고 싶은 거 다 하고 떠나겠다는 생각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의외로 이는 효과가 있었다.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대대적인 돈을 풀어 참전용사들을 구호하고, 달러를 쏟아부어 파산하는 은행들을 살려내었다. 번번이 당 내 반대파에게 가로막혔던 농업조정법 역시 통과되어 농산물 시장의 합리적인 가격 조정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강력한 소득세를 부과하기까지 했다. 본래 윌가와 디트로이트는 커티스 대통령과 상극인 관계였으니 꿀릴 것도 없었다.
커티스가 취임한 지 단 100일 만에 경제 성장은 다시 회복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실업률 자체는 크게 줄지 않았을지언정 모든 경제 지표가 호조를 보이기 시작하자 커티스의 지지율은 정말 다음 대선을 기대해볼 수 있을 정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연쇄적이고 폭발적인 반발이 튀어나왔다.
연방 의회, 연방 대법원 등에서 온갖 견제가 쏟아졌지만, 커티스는 헌법 2조를 근거로 행정명령을 쏟아내고, 거부권을 퍼붓는 한편 거부권을 무효화하는 수준의 법이 나오면 전통적인 권한인 대통령 서명 문구라는 꼼수를 이용해 법안을 짜깁기하기까지 했다.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이었지만 원 역사에서 조지 부시가 쏠쏠하게 써먹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임기 끝나면 더는 볼 일 없다는 식으로 날뛰는 대통령을 저지할 수단 자체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것이 꼼수기는 하지만 명백히 대통령의 권한에 들어가는 부분이었기에 의회는 거품을 물면서도 커티스를 저지할 수 없었다.
공화당이고 민주당이고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지만 다음 선거는 없다는 식으로 날뛰는 대통령을 상대로 손을 쓸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었기에, 커티스의 지지율은 여당과 야당 모두와 분쟁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높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커티스가 취한 응급조치와 그의 행정명령들은 초기 뉴딜과 굉장히 흡사한 양상이었으니까.
일단 하락세가 진정되자 커티스는 곧장 독일과 프랑스 등 대공황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쉽게 흘려낸 것처럼 보이는 국가들의 경제정책을 벤치마킹했고, 이 역시 충분하지는 못해도 임시변통으로 경제가 짧은 시간에 제법 되살아나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그러고 보니 분노한 시민들의 눈에는 윌스트리트와 자본가들의 탐욕이 이 꼴을 만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구제해보겠다고 노력하는 대통령을 의회와 자본가들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꼴로 보였고, 이는 고스란히 커티스에 대한 지지로 연계되었다.
대통령이 안 될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하니까 효과가 보이지 않는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는 걸 가지고 바닥을 굴러대며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는 대통령에 대한 강성 지지로 연결되었다.
대공황을 터트린 정당을 상대하는 민주당으로써도 쉽지 않은 싸움을 예상할 정도로 말이다.
한편, 공화당에서도 혼란에 빠졌다.
커티스가 1932년 선거에 출마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커티스는 자신의 계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있다고 해 봐야 대통령이 된 뒤에 급하게 줄 선 몇몇 정도.
그리고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의 주장과는 그 결이 달랐던 커티스는 공화당 내에서 아군이라 할 세력이 없었다.
거의 모든 계파는 당연히 자신들이 권력을 쥐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지금 다른 후보를 내세우면 승산이 없다는 것도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
경제를 살리느라 출신 당과 척을 진 현직 대통령이 경선에서 밀려서 후보로 못 나온다?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오히려 대선의 승산을 생각해 보면 커티스가 불출마한다고 하면 공화당이 달려가서 제발 출마해주십사 빌어야 할 판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