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8화 (128/200)

128화 대공황(1)

“프랑코라.....”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나치랑 손잡는 것보다는 낫지.

원 역사에서도 프랑코는 나치랑은 끝까지 거리를 두었고, 스페인 밖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시도 따위는 안 했다.

대숙청을 벌이면서 정권을 잡은 스탈린보다야 배는 안전한 상대다.

“톨레도 공화국은 인정하는 편이 낫겠군. 프랑코의 제안, 받아들이는 게 낫겠다.”

“알겠습니다.”

“문제는 이쪽인데.”

그래, 이쪽이다.

프로이센과 소련이 손을 잡고 거기에 중화민국이 붙었다.

물론 공식화된 동맹은 아니다.

문제는 이 연합이..... 상당히 골치아픈 조합이다.

소련은 기술력이 부족한데 프로이센이 그걸 메운다.

프로이센은 머릿수와 자원이 부족한데 소련이 그걸 메운다.

그리고 거기에 중국의 쪽수가 더해졌다. 물론 중국이야 극동에 있으니 유럽에서야 식민지가 위험해진 거 빼고는 큰 문제까지는 아니지만..... 아니, 진짜 저거 추축국인가? 나 지금 방공 협정 보고 있는 건가?

물론 저놈들은 북독이지 나치가 아니니까. 설마 영국도 굴복.... 아, 영국도 이젠 없지, 아일랜드도 굴복 못 시켰는데 소련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는 저능아급 선택지를 고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가 버티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스탈린이 독일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가능성.... 이건 굳이 생각하지 않겠다. 세상에서 행복회로만 돌려서 잘 되는 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면 결론은?

‘핵, 핵, 더 많은 핵.’

존나게 많은 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투발수단도.

“샤를마뉴의 개장은 어떻게 되어가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일정에 맞춰서 취역할 수 있습니다.”

“음.....”

저렇게 말하는데 어쩌겠는가. 믿어야지. 내가 드레드노트급..... 여기서는 잔 다르크급의 기초적인 설계를 했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난 해군 일에는 문외한이라고.

아니, 이제는 해군만 문외한이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문외한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대공황이 터질지도 모르겠고, 저게 그냥 냉전으로 끝날지 2차대전으로 커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거 예측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바뀌어버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다음 세계대전이 터지면, 그때는 지난 대전쟁처럼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

유럽에서의 총성이 적어도 국가 대 국가 사이에서는 완전히 멎은 1927년부터 2년간, 세상은 ‘일단’ 평화로워진 듯 보였다.

미국은 북미의 통일을 선언하고 미국의 남부 국경을 따라 니카라과 운하의 공사를 시작했다. 파나마 운하 역시 공사 계획안이 세워졌지만 아직 대대적인 공사 진행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미국 정부는 어찌되었건 ‘둘 다’ 진행할 작정이었다. 그게 가능할 정도의 호황이었다.

1928년의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인 후버와 커티스가 당선되어 오랜 야당 신세를 집어치우고 여당 지위를 되찾았다.

러시아 공화국, 러시아 제국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된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대숙청이 벌어졌고,소수민족들의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우크라이나에는 일본인들이, 벨라루스에는 발칸 반도의 주민들이, 발트 3국과 핀란드에는 러시아인들이, 발칸에는 벨라루스인들이, 일본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발트 3국과 핀란드의 주민들은 중앙아시아로, 중앙아시아와 캅카스인들은 시베리아와 러시아 본토로.

스탈린의 인종정책은 그야말로 유라시아 전역의 인종분포를 바꿔놓았다. 아니, 아예 이주하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소비에트 연방의 통제력이 더욱 강화될 뿐 아니라 반란을 일으킬 여력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한편 러시아 제국은 국가 발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공업화와 산업화를 위해 스탈린은 벤치마킹한 알렉세이 2세 차르는 국토 전역을 공장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러시아 공화국은 트로츠기가 암살당하기 전 완성한 이슬람 신학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 사회주의를 완성했다.

국가 무신론을 철폐하고 억지로 이슬람교와 트로츠키주의를 결합해놓은 기괴한 키메라였지만, 그렇기에 일종의 종교적 사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곳에서 서기장은 곧 칼리프였고, 가톨릭의 교황무류지권에서 따온 ‘칼리프 무오론’을 만들어내었다. 이는 서기장의 선언은 샤리아와 하디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여기에서 쿠란이 걸리는 걸 막기 위해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우세한 이슬람 종파인 수피즘, 그것도 백타시 수피즘과 공화국 최남단의 이바디파, 인도의 아흐마드파의 교리를 채택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다 같이 망하지 않으려면 공화국 북부의 정교회 세력을 끌어안아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있었으며, 자신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해 주는 서방 세계의 눈치도 보였을 뿐 아니라 공화국 내의 군벌들을 제압할 힘은 있었으되 명분이 필요했고, 거기에 국가를 위해, 혹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해야 할 행동이 샤리아, 더 나아가 쿠란과 충돌할 경우 정부 수반의 판단이 우선시된다는 걸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트로츠키로써도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사우드 가문 역시 어차피 이슬람 교리에 딱히 충실해서가 아니라 권력욕이 그들을 움직이게 한 계기였던 만큼 태클을 걸지 않았다.

자신들의 권력을 훨씬 거대하게 만들어 준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오히려 절대권력을 가지면 쿠란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불과했다.

이바디파가 충실한 것으로 유명한 ‘종교는 강요될 수 없다’는 쿠란의 구절과 더불어 쿠란이 ‘창조된’ 말이기에 문자 그대로의 쿠란 해석을 이단시하는 것은 서기장이 쿠란에 배치되는 행동이나 발언을 해도 넘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즉 하디스와 샤리아는 서기장의 선언과 세속법보다 하위에 존재하는 ‘예절’수준으로 격하되고, 쿠란은 추상적인 ‘도덕’으로 승화시킴에 따라 절대권력을 확립한 것이었다.

물론 군벌들과 무슬림들 대부분은 매우, 매우 불만이 많았지만, 군벌의 경우는 중앙 정부에서 기갑부대를 끌고 와서 탱크로 머리통을 날려버렸고, 남은 무슬림들은 이스라엘을 빼고 갈 수 있는 국가가 전부 공산화되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총살대로 끌려갈 판이었고, 중앙정부에 대항할 힘도 없었다. 지하드를 외치는 이맘들이 입을 놀렸다가는 비밀경찰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판이었다. 투쟁의 지하드는 종결되었으니 스스로의 수양을 위한 대 지하드에 힘쓰라는 선언이 나오기도 했고.

트로츠키의 국내 통제능력은 스탈린에 비해 못하지 않았고, 한 번 손에 칼을 쥐자 총살형 집행대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이슬람을 사회주의화해 계속해서 교리를 개정해서 사회주의적으로 바꿔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모든 인민이 자본주의 물이 빠지고 단단한 사상무장을 한 사회주의 낙원을 만들 수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 트로츠키는 스스로의 권력이 충분해졌다고 확신하자 그동안 뒷배가 되어주던 사우드 가문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통해 사우드 가문을 연회장에서 기습해 몰살시키고 가문 전체를 몰락시켰다.

권력을 세습하려는 무슬림 사우드 가문은 골수 사회주의 사상가인 트로츠키와 애초에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배신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트로츠키는 방심하지 않고, 칼리프 칭호를 유지했다.

러시아에서의 실패는 그를 단련시켰고, 이슬람의 체계 아래에서 사회주의 체계를 구축하려는 그의 노력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중화민국에서는 ‘위원회’라 불리는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섰다. 군벌들 간의 권력투쟁의 결과물로, 민주 지도자는 존재하되 실권이 없으며 실질적으로는 군벌들의 수장들로 이루어진 군사위원회에서 모든 종류의 국정이 행해지는 군사독재정권이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전 유럽의 유대인들을 모조리 받아들여 체급을 불렸고, 인도인들을 제어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거의 모든 노동 가능 인구가 군인이거나 그에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기형적인 체제를 완성했다.

북독의 국책사업인 콩고 강에 댐을 세워 사하라를 녹지화해 사막뿐인 식민지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을 돌릴 수 있게 하는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편 남독은 나치당의 기원지였음에도 나치당에 대한 혹독한 탄압을 벌였고, 이는 나치가 북독으로 근거지를 옮기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국내의 분리주의자들 가운데 나치와 손잡은 이들이 많았고, 이들을 진압하느라 남독 정부는 미칠 지경이었다.

스페인에서는 톨레도 공화국이 마침내 이베리아를 통일했다. 마요르카 제도는 프랑스에 넘어갔지만, 이는 톨레도 공화국의 정보 통제로 인해 스페인 국내의 시민들은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시칠리아가 독립해버렸다가 프랑스에 홀랑 넘어가버리자 경악한 이탈리아 연방의 주들은 연방정부가 힘이 없으면 생기는 결과를 목도하고 결국 외교권과 군사권, 조폐권 등의 다양한 권리들을 완전하게 연방정부에 이양했으며, 연방 탈퇴를 명시적으로 불법화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잉글랜드인들에 대한 탄압이 계속해서 지속되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일랜드인들은 브리튼 섬을 통째로 과거의 아일랜드처럼 바꾸어나갔다.

어떤 공장도 세워지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조리 해체해 아일랜드로 넘어갔다. 어떤 종류의 공업화도, 어떤 종류의 산업화도 허용되지 않는, 모든 곡물들을 수탈당해 감자만 먹어야 하는 세상으로 브리튼을 바꿔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 희미하게 짐작했지만 그 시기만큼은 예측하지 못하고 있던 사건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흘러내리듯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그들의 곁으로 밀려와 있었다.

***

1929년 10월 24일,

“매도! 1만 주 매도! 개새꺄! 빨리 처리하라고!”

“닥쳐! 내가 더 급해! 4만 5천 주 매도!”

뉴욕 주식거래소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신호탄은 모두가 의외로 생각할 만한 사건이었다.

농사가 너무 잘 됐다.

전근대라면 풍악을 울렸겠지만, 너무 잘 된 농사는 곡물가의 폭락을 예고한다.

거기에 프랑스 등 주요 곡물 산지에서도 풍작이 확인되자 당연히 곡물가는 하락하고, 곡물가가 떨어지면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몇 년 뒤에는 더스트볼이 불어닥쳐 모든 걸 박살내겠지만,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이들에게는 당장의 손해가 더 중요했다, 당연히 관련주를 매도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화약을 가져다 쌓고 기름을 붓고 분진과 유증기가 가득하고 100% 산소까지 아낌없이 투입된 미합중국의 경제에 누군가가 전기 스파크를 튀긴 꼴이었다.

매우 격렬한 화학 반응이, 단수한 연소가 아닌, 폭발이라 불리는 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월스트리트의 모든 티커들이 하방으로 쳐박혔고, 붉은색은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건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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