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7화 (127/200)

127화 변화(3)

“인민전선은 지금 이 시간부로 톨레도 공화국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톨레도와 그 인근 지역 다수를 점령한 스페인 내전의 가장 규모가 큰 세력, 인민전선은 참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온건 사회주의자로 분류되며, 이베리아 반도 중심부를 도넛 구멍 모양으로 장악한 이들의 세력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외국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

애초에 프랑스 국경에도, 다른 바다에도 인접하지 않은 국가가 군사지원을 받을 수단이 없었다.

그 대신, 그들은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한 이래 가장 스페인인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 세력이었으며, 이베리아 반도 전체의 10%를 겨우 넘는 면적만 차지한 상태에서 고립까지 당했음에도 훨씬 큰 세력, 즉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포르투갈 정부군, 혁명군 등등 다양한 세력들을 연전연파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업적에 한 줄이 더 추가될 수도 있었다.

“프랑수아 라 로크 대위입니다.”

“샤를 드골 중령입니다.”

“중령....께서 굉장히 젊으시군요.”

“지난 대전쟁에서 황태자 전하를 수행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굉장히 젊은 중장은 자리를 권했다.

“두 분은 프랑스의 눈과 귀로 오셨지요, 그러니 우리는 기꺼이 우리 무기고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말입니다.”

중장은 단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사민주의와 볼셰비키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죠. 적어도 폐하는 그런 얼간이에 포함되지는 않으십니다만.”

“다른 정도가 아닙니다, 저 러시아 공화국과 소련은 남들이 보기에는 같은 빨갱이겠지만, 저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사상적으로든, 수뇌부들로써든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볼셰비키와 러시아 공화국의 차이보다 더 큽니다.”

“최근 소련이 떠드는 이야기와도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황제 폐하께서 우려를 하시게 만든 원인입니다.”

“그럴 일 없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드리죠.”

당번병을 부른 중장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군요,”

우아하게 인사를 한 남자는 씩 웃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입니다.”

***

프랑코는 두 사람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프랑스 제국이 저희의 지브롤터 반환 주장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한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지브롤터는 대전쟁의 결과로 프랑스에 할양된 명백한 프랑스의 영토요.”

“저희의 몇 안 되는 군자금 출처는 기부금입니다. 그리고 반식민주의자들은 저희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지요, 이를 위해서 저희는 모로코도 포기했습니다.”

“모로코는 지킬 수가 없어서 포기한 것 아니었소?”

모로코에서 박살난 스페인군은 결국 지브롤터 북쪽으로 쫓겨났다. 세우타는 영국에게 조차되었지만, 프랑스는 이 세우타를 모로코에 조기에 반환하도록 했다.

반면 지브롤터는 프랑스령이 되었다.

“프랑스 제국은 형식상 반환만 해 주면 기존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지브롤터의 기지는 대사관 건물과 같은 등급으로 간주해 치외법권이 적용될 것이며, 프랑스는 여기에 병력을 배치하거나 감축하는 데 있어 어떠한 사전협의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민전선은 지지율이 필요하고, 프랑스는 실질적인 기지가 필요했다.

“지브롤터를 프랑스 제국에 영구 조차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요르카를 프랑스에 할양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마요르카 제도는 어차피 해군이 없는 톨레도 공화국에 있어 탈환이 불가능한 영토일 텐데요.”

“이베리아 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의 승인이 있으면 국제법상 가능합니다. 국민들은 어찌되었든 저희를 지지하며, 마요르카의 할양은 조용히 처리할 수 있고, 어차피 프랑스군에 있어 마요르카 제도의 제압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지 않습니까. 국제법상 합법적인 영토 매매가 될 것입니다. 영토 대금은 지브롤터로 받는 셈이고요.”

“프랑스 제국이 시칠리아를 점령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은근한 위협이었다.

공산 반란을 일으켜 이탈리아 연방을 탈퇴했다가 프랑스에 강제병합당한 시칠리아의 전철을 이베리아 반도가 밟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위협.

그러나 프랑코는 능글맞게 답했다.

“시칠리아와 이곳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프랑스군도 과거에 이곳에 들어왔다가 게릴라전에 못 이겨 후퇴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반면 저희는 이베리아 반도 어디에나 저희를 숨겨주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지요. 프랑스 제국이 게릴라를 완전히 근절할 수 있는 곳은..... 섬 뿐일 겁니다. 그 고생을 하고 섬만 가져가느니 차라리 저희 손으로 넘겨받으시는 편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니들이 뭔 짓을 해도 결국에는 소모전을 벌이다가 마요르카나 겨우 먹고 떨어질 거, 우리 손으로 갖다 바칠 테니까 마요르카에 더해 지브롤터 기지도 같이 유지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미였다.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저희가 뱃멀미가 심해서 바다를 건널 수는 없어도 피레네 이남에서는 저희만큼 환영받고, 또 잘 싸우는 사람들도 없을 겁니다.”

마요르카만 빼면 자신들의 힘만으로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조약에 대한 서명권이 없습니다.”

“물론 그러실 겁니다. 그러니 파리에 잘 전해주십시오, 톨레도 공화국은 충분히 협상이 가능하고, 프랑스 제국과 공존이 가능한 국가라고 말입니다.”

***

쾨니히스베르크, 프로이센.

중절모를 눌러 쓴 남자는 묵묵히 신문을 읽고 있었다.

<유대인은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로!>

<유대인은 이스라엘로, 독일인은 독일에!>

모든 유대인에게, 유대교 신자에게 이스라엘 국적 발급.

이 선언이 나온 배경은 제법 복잡하다.

이스라엘은 영국의 인도 식민지를 고스란히 삼켜서 태어난 국가였고, 영국인들의 자리에 유대인들이 들어간 것 외에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 유대인들의 수가 영국인들보다 한참, 한참 모자란데 뒷심은 달린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대인들은 여기서 쓸려나가면 갈 데가 없고, 수도 부족하다.

세포이 반란 같은 대규모 반란을 한 번만 얻어맞아도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랬기에 여성징병을 포함해 아일랜드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강도 높은 징병제를 펼칠 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 이스라엘 국적을 지급하고, 심지어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국가에 유대인들을 추방해달라고 로비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인도에 많이 들어와야 국가가 존속할 수 있으니까.

유대계 자본들의 지원도 한계가 있으니 스스로 존속할 수 있도록 하려면 결국 머릿수가 정답이었고, 그 결과가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의 유대인 추방령이었다.

그 아래에는 콩고 댐 공사에 대한 사설이 있었다.

프로이센, 네덜란드가 합작해서 벌이는 공사로, 콩고 강에 댐을 세워 차드 분지 전체에 물을 채워 호수화함으로써 사하라 사막을 녹지화하는 프로젝트였다.

물론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기껏 얻은 식민지를 좀 더 잘 뽑아먹어야 할 필요성에 더불어 대내외적 치적이 필요했던 정부의 사정 등이 더해져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폭이 넓은 강인 콩고 강의 강줄기를 댐을 이용해서 돌려버린다는 초거대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이 공사에 대해 반발하는 여론도 제법 나왔고, 이 사설도 그 중 하나였지만 1945년까지 공사를 완성한다는 계획 하에 대대적인 공사를 아예 국가 단위에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성공만 한다면 사하라 사막이 통째로 녹지화되며 나오는 것 없는 사막에서 경제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위신용으로만 식민지를 구한 탓에 제대로 된 해외 수입이 없던 프로이센이 광분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돈 냄새를 맡은 미국인들까지 기어들어와 돈을 퍼붓는 마당이었다.

“볼프강.”

“아, 후케바인.”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하지 않았나.”

서로를 바라본 두 남자는 피식 웃으며 악수를 했다.

“오랜만이군.”

‘미행은 없겠지.’

“네가 아직 여기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지, 아직도 국내에 있었나? 다른 사람들은 다 아일랜드로 도망간 줄 알고 있던데.’

“켈트인들의 신화를 탐구하는 일은 즐겁지만 자네를 안 만나고 갈 수가 있어야지. 정말 모든 게 다 끝나면, 아일랜드에 정착이나 할까 보네.”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지.... 힘러.”

하인리히 힘러는 힌덴부르크 피살 사건으로 정부에 찍혀 도피하는 신세가 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이자 당외 핵심 협력자, 헤르만 괴링을 바라보며 웃었다.

“좋은 생각이네.”

***

“분명히 말하지만, 내 지시가 아니었네, 어설프게 경도된 멍청이가 저지른 거야.”

“그라프 체펠린에서 차기 수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오죽하겠나, 티르피츠 수상이든 빌헬름 2세든 자네를 잡아 죽이려고 작정했어.”

“하, 죽여보라지.”

콧방귀를 뀐 힘러는 자우어크라우트를 한 입 먹었다.

“당장 황실 내에도 우리의 지지자는 얼마든지 있네, 바이에른은 우리를 지독하게 탄압하기는 하지만 빌헬름 그 미친 노인네만 뒈지면 바로 합법화야.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쿠데타라도 꾸미는 건가?”

“융커들은 대가리가 굳었어, 우리도 당령상 융커들과 함께 가지는 못하고.”

“글쎄, 꼭 그렇지만도 않더군.”

“뭐?”

“티르피츠 수상이 비밀리에 몰로토프와 회동했다고 하네.”

“몰로토프? 내가 아는 그 소련의 몰로토프?”

“그래.”

“무슨 꿍꿍이지?”

“..... 소련에서 자원을 싸게 공급받고, 프로이센은 그들에게 기술력을 제공하고 공업화에 협조한다. 내가 알아낸 건 여기까지네, 이것도 내가 지난 대전 전쟁영웅이어서 알려준 거라더군.”

“...... 독일 통일이라도 꿈꾸는 건가?”

“십중팔구 카이저 소리를 듣고 싶은 거지, 노망이 난 거야.”

“젠장, 그러면 프랑스는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반드시 전쟁을 선택할 거네, 지난번에 룩셈부르크를 연방에 가입시킨 것만 해도 무리수에 가까웠는데 남독과 통일하겠다? 프랑스군이 정면공격을 가해올 걸세.”

“카이저가 미쳤군.”

“티르피츠 수상은 카이저의 광기를 막는 게 아니라 충실한 수족으로 움직이고 있네, 독일이 살려면 카이저가 죽어야 해, 아니, 호엔촐레른 자체가 없어져야 하네.”

“슈츠슈타펠은 아직 규모가 적어, 무기도 없고, 융커들과 정면대결을 해서 이길 가능성이 없네. 게다가 군 조직은......”

“죄다 융커들이 틀어쥐고 있지.”

그들은 위버멘쉬가 아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임무는 저 융커들을 독일에서 몰아내고, 위버멘쉬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독일을 ‘맡아’ 두는 것.

그들은 융커들의 귀족 군대가 아닌, 국민의 군대의 모태가 되길 꿈꾸며 돌격대와 슈츠슈타펠을 만들었다.

자연의 법칙, 둘은 서로 투쟁하여, 약한 쪽은 징병과 훈련이다 담당하는 쪽으로 밀려날 것이며 승리하는 쪽이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조국의 ‘국군’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 위버멘쉬가 나타나 자신의 군대를 확고히 꾸린다면,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기존 군대-SS든 SA든 간에-는 해산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가 위버멘쉬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힘러는 그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위버멘쉬가 나타난 뒤에도 군을 해산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 군대를 독일에 남겨두지도 않을 것이다.

독일 민족을 위한 성전에 부름받을 때까지, 그들은 기사단으로 재편되어 해외의 조그마한 섬에서-어디가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때를 기다릴 것이다.

독일을 지배하는 자가 위버멘쉬가 아니라면 갈아치우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반공 성전에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들은 십자군의 일원이 되어 출발할 것이다.

그것은 위버멘쉬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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