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6화 (126/200)

126화 변화(2)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크렘린 궁.

“이번 해군 증강정책은 혁명전쟁에서 반동분자와 구체제의 잔재들을 완전히 무찌르지 못한 것이, 반역자들의 내부중상 외에도 해군력의 부재에도 있었다는 군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붉은 군대 해군은 135mm 2연장 3기를 보유한 경순양함 12척, 그리고 이들의 기함 역할을 할 12인치 3연장 3기를 장비한 대형순양함 울리얍노스크 1척, 항공모함 6월 혁명 1척,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해군의 최고 기함이자 소비에트의 자랑이 될 신형 전함, 20인치 4연장 3기로 무장한 소비예츠키 소유즈 함의 건함을 골자로 한 건함계획을 당에 제출하고자 합니다.”

스탈린은 그 보고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까딱했다. 계속해보란 신호였다.

“이는 부르주아 세력의 일익이자 보나파르트주의의 수괴인 프랑스 제국의 전함 샤를마뉴를 압도하고, 또한 부르주아의 국가 미합중국이 건조할 가능성이 높은 전함의 건함에도 대비하고자 기획된 바입니다. 물론 막대한 비용 소모가 예상됩니다. 그러나 20인치 주포는 기존에 확보되었던 것을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항공모함 6월 혁명은 구식화된 이즈마일의 엔진을 증기터빈으로 교체한 후 개장할 예정입니다, 6월 혁명은 장차 소비예츠키 소유즈에 항공엄호를 제공하는 역할만을 담당할 것이기에 이것만으로 충분하리라 판단됩니다.”

“울리얍노스크를 제외한 순양함들은 해외에서 주문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이탈리아 연방 내 토스카나 주가 우리의 주문을 받아줄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울리얍노스크 역시 주포는 이즈마일의 것을 재활용해.....”

재활용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오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전함 주포 한 개 만들 여력도 모자란 판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 건함계획 중 해외에서 주문해오는 것 외에는 사실 언제 끝나고 얼마나 비용을 잡아먹을지도 알기 어려운 현실성 부족한 계획이었다. 그나마 이미 있는 배를 개조하기로 한 6월 혁명은 배의 완성도가 어떻든 취역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머지는 혁명 동안의 혼란 속에서 건함기술이 크게 상실된 소비에트 연방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대형 선박의 건조 기술은 열강들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엔진은 서방에서 일부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우리는 이를 담당할 레닌그라드 조선소의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이즈마일이 사용했던 3단 팽창식 엔진을 토대로 대형 여객선 ‘레닌그라드’호를 건조할 예정입니다. 이는 해군 예산으로 건조될 것이나, 유사시 군용 수송선으로 사용되고, 평시에는 인민들의 쾌적한 여행을 위해 해상 교통에 투입될 것입니다.”

몰로토프의 얼굴은 짜증으로 굳었다. 해군이 평시 운용권을 넘기겠다고 선심쓰는 것 같이 말하지만, 결국 그건 내무부 예산을 포함해 다른 곳에 끌어다 써야 할 예산을 해군이 잠식해들어간 결과일 터였다. 재정부와 내무부를 겸임하며, 인민위원회 회의의 수장 자리에 있는 몰로토프의 입장에서는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걸 왼쪽 주머니에 바라지도 않았는데 옮겨주고 선심쓰는 척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게 돈만 잡아먹고 허탕이 될지 누가 아는가.

그러나 스탈린이 아직 말하지 않았기에, 몰로토프는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저 망할 자식을 죽이든 살리든 하는 건 오로지 그의 입에 달려 있었으니.

물론, 저자만이 아닌 그 자신의 목숨도 포함이었다.

“연방은 언제나 위협에 놓여 있습니다. 저 동방에는 여전히 러시아 제국의 잔재들이 살아 있으며, 중화민국 역시 동남아시아와 류큐 공화국으로 진출하면서 제국주의적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던 옛 왕실들과 귀족들은 모조리 학살당했지만, 류큐인들은 러시아의 손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도로 복속되었다. 러시아 제국에 시비를 걸기는 어려우니 우선 옛 조공국부터 되찾기로 결정한 중화민국의 군사정권은 이를 국가적으로 홍보하고, 붕 떠버린 동남아시아에도 탐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러시아 내전이 애매하게 끝났다는 것과 더불어 소련에게 있어서 굉장히 큰 군사적 압박과 막대한 군비 소요를 강제했고, 모두에게 사방에 적 첩자가 있다는 편집증에 시달리게 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의 방위를 위해서 이 건함계획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합니다.”

“아아, 동지, 그 말은 맞는 말이오, 언제나 제국주의자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노리고 있지, 하지만 국내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요.”

체카의 국장인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예조프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멘셰비키가 우리 등 뒤에서 언제나 칼을 찌를 준비를 하고 있소, 지난번 세르게이 키로프 동지의 그토록 뜻밖의, 비극적인 죽음 역시 그 뒤에 자본주의자들의 스파이가 암약하고 있었음이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소.”

당내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불과 며칠 전, 체카의 전 국장 겐리흐 야고다가 체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산은 한정되어 있지, 체카는 내무부와 연계하여 중화 제국주의자들과 연계할 가능성이 높은 일본계 인민들을 발칸, 체코, 우크라이나 등으로 이주시키는 작업, 역시 북독과 연계해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 발트와 발칸, 체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주민들을 일본,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개척에 동원하는 데 있어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고 있소, 특히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소요가 크기에,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복선화 계획 역시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몰로토프 동지?”

“맞소.”

“그 비용이 얼마나 들겠소? 그리고 방금 말했듯, 연방의 예산은 화수분이 아니오, 해군의 기술개발과 시험적인 건조 등에 들 천문학적인 예산을 생각하면......”

언제나 문제는 예산이었다.

특히, 원 역사보다 일찍 일어난 여러 사건들로 인해 당의 업무 및 예산의 부담은 훨씬 가중되어 있었다.

원래는 20~30여 년에 걸쳐 일어났어야 할 정치적 사건들이 10여 년 만에 압축적으로 일어났으니 안 그러는 게 이상했다.

***

북독과 남독에서는 최근 한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두 국가의 정부에서는 이를 왕정을 정면으로 비판한다면서 금서 처분을 했지만, 금서들이 다 그렇듯 이 책들은 순식간에 지하화되어 비밀리에 유통되었다.

<나의 투쟁>, 상트페테르부르크 전투에서 전사한 아돌프 히틀러 상병이 남긴 유품인 원고를 그의 전우들이 갈무리해 내놓았다는 서문으로 시작한 이 책은 그 어디보다 더 금서가 금지되어야 할 군대, 그리고 대학가 등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 새로운 사상에 매료되었다.

조금쯤 사회주의적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사회주의 사상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사상, 마르크스를 강력하게 비판하지만 노동자의 권익 향상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무엇보다 강력한 정부와 이에 복종하는 국민, 그 정부를 이끄는 ‘위버멘쉬’로 이루어진 국가.

그 위버멘쉬에 대해 편집자는 이 책의 저자인 아돌프 히틀러야말로 그 위버멘쉬에 걸맞을 만한 영웅이었다며 극찬했으나, 그는 이미 죽고 없었다.

과연 누가 위버멘쉬에 적합한가? 그 책은 그에 대해 누가 위버멘쉬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누구든 간에 스스로가 위버멘쉬라고 증명할 수만 있다면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

야심가들은 이 책을 이용할 구석을 머릿속에서 짜냈고, 지난 전쟁의 결과에 치를 떨던 이들은 이 책이 ‘예언’한 위버멘쉬가 오기를 기대했다.

그러한 이 중에는 심지어 빌헬름 2세의 4남, 아우구스트 빌헬름 하인리히 귄터 빅토르 대공도 있었을 정도로 상류층, 하류층을 가리지 않고 위버멘쉬 사상과, 이를 예언한 나의 투쟁은 순식간에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터졌다.

나의 투쟁을 읽고 다 이긴 전쟁을 망쳐버린 융커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던 한 청년이 힌덴부르크 장군을 여객용 비행선 그라프 체펠린에서 암살한 것이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빌헬름 2세는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어떻게 짐의 신하가 여객선에서 그런 식으로 처참하게 살해된단 말인가! 반역도에게!”

힌덴부르크가 빌헬름 2세의 수족임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지난 전쟁에서 융커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루덴도로프를 탄핵하고, 그게 이리저리 꼬여서 결국 점령지는 제대로 건지지도 못하고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영토 일부를 얻는 것에서 그친 것 역시 빌헬름 2세의 판단 착오였다.

물론 그걸 대놓고 말하는 자는 없기는 했지만, 아무튼 간에 힌덴부르크는 빌헬름 2세의 의중을 충실히 발휘했다.

그런 그가 암살당하고, 그가 한 짓이 불만이어서 죽였다는 진술이 나왔다면 그건 결국 빌헬름 2세의 판단에 반발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빌헬름 2세는 <나의 투쟁>의 겉표지에 새겨진 이래 사민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에 의해 반 제정, 반 융커 운동의 상징처럼 쓰이고 있는 표식, 하켄크로이츠를 구겼다.

“짐이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겠네.”

“폐하?”

“불온한 반역도들이 감히 짐의 충신을 살해했네, 짐이 움직여 더 이상의 망동은 명백히 짐에 대한 불충임을, 그리고 반역힘을 선언하겠네.”

빌헬름 2세는 손을 덜덜 떨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저 무지렁이들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저 빨갱이들에게, 공산 폭도들에게 제국을 감히 넘겨 줄 성 싶은가!”

“물론입니다, 폐하!”

절대 그럴 일은 없다.

1년 전쟁의 패배도 호엔촐레른을 축출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이번 전쟁은 진 것도 아니고 명백히 이긴 것이지 않은가. 러시아는 망했다.

물론 전쟁명분이던 보헤미아를 지키지야 못했지만 그건 애초에 그들의 땅이 아니었고, 땅 주인도 망했으며, 아무튼 영토도 조금이지만 넓히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누구인가. 독일 기사단국 이래 일개 공국에 불과한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북독일, 실질적으로 남쪽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독일 그 자체로 자처할 수 있을 만큼 키워낸 장본인이 누구인가.

호엔촐레른 가문과, 융커들이었다. 민중들은 그저 군대를 제공해주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그걸로 족한 존재들이었다. 판단은 군주의 몫이며, 조언은 융커들의 몫이다.

하지만 저 배은망덕한 자들은 그걸 잊은 모양이었다, 하다못해 프리드리히 대왕조차 벌이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지는 못했는데 전쟁에서 좀 졌거나 이겼지만 큰 피해를 입었거나 딱히 얻은 것이 없다고 감히 불평을 하는가.

사민주의자든, 히틀러주의자든,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든, 결국 전부 다 똑같은 불경한 빨갱이들일 뿐이다.

그리고 빌헬름 2세는 결코 빨갱이들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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