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5화 (125/200)

125화 변화(1)

프랑스제 뇌격기 겸 경폭격기 수십 대가 일제히 강하하면서 목표를 향해 접근했다.

곧장 그 살의에 대응해 대공포탄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전투기들이 적 뇌격기들을 노리고 달려들었고, 곧장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

러시아 제국, 덕수궁 석조전.

조선과 일본은 흔히 1년 전쟁 당시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1년 전쟁의 종전 후에도 13년, 즉 1906년까지는 명목상 존속하고 있었다.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었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지금은 조선 왕족이든 일본 황실이든 간에 벌집이 된 후 불태워진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러시아 제국은 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피지배국의 왕조의 재산을 보장해주었다.

그렇기에 석조전은 지어질 수 있었고, 1906년 망국 이후 건설이 중단되어 방치되었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사가 재개되었고, 동시에 극동 러시아 제국의 궁전이 되었다.

이곳에서 알렉세이 2세 차르의 대관식이 있었고, 차르의 거처이며 집무실이자 군 사령부로 쓰이고 있었다.

“실패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완파에는 실패한 모양입니다.”

“역시 무기만 좋아서는 안 되는 건가?”

프랑스군이 운용하던 2인승 뇌격기 겸 경폭격기들과 최신형 전투기 다수를 전선에 투입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프랑스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볼셰비키들의 확장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대량의 무기와 탄약, 물자들을 지원했다.

알렉세이 2세는 뛰어난 인물이었고, 프랑스에서 지원받는 자원들을 최대한 알뜰하게 운용했다.

물론, 그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머릿수에서 밀린다, 적어도 청군처럼 내분으로 정신이 나갈 상황은 아니었고, 숙청을 통해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지휘관들을 모조리 처형해버리는 것으로 군사적으로 절대적인 지위를 획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충성심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간신히, 간신히 현상유지만 하는 판국이었다.

물론 볼셰비키 역시 이들을 끝장내기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차르 충성파들을 극동으로 추방해버리고 러시아 제국은 볼셰비키 지지자들을 시베리아로 추방하는 식으로 암암리에 교환을 벌이고는 했지만, 그마저도 최근에는 뚝 끊어졌다.

“이번에 정권을 잡은 이오시프 스탈린은 기존 집단지도체제에서 진행한 5개년 계획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서방에 비해 50년 뒤쳐진 기존 체제를 10년 내로 따라잡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오흐라나 국장의 보고를 받은 알렉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전쟁 중이지만 그 전쟁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이상 사실상 국지전과 유격전에 불과했다.

항공전은 계속 벌어지지만 이는 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폭격작전이고, 오히려 알렉세이는 스탈린의 공업화 계획은 소련보다 오히려 러시아 제국에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러시아 제국 역시 소련이 발표한 공업화 계획을 벤치마킹해 5개년 계획을 수립, 대대적인 공업화를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경제성장과 국경에서의 전투를 동시에 치러내야 한다는 악조건이었지만, 국가 자체가 워낙 넓은 것과 전면전을 벌일 상황은 서로 아니라는 점 등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아슬아슬하게 남고 있었다.

소련은 덩치가 워낙 컸고, 청군의 러시아 공화국은 지형과 무기지원으로, 백군은 천연장벽과 해외원조를 이용해 그럭저럭 버텨나가고 있었고, 빠듯하게나마 전쟁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해나가고 있었다.

“폐하, 불확실한 정보입니다만, 스탈린 서기장은 조만간 러시아 공화국과 본국 양자 모두에게 비공식적으로 휴전을 제의할 생각이랍니다.”

“휴전이라면?”

“통일이고 뭐고, 어차피 서로가 서울이나 모스크바,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할 여력은 지금 없으니 일단 현재 국경에서 전쟁을 적당히 끝내자는 의미로 사료됩니다. 미합중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에 중재를 타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 우리로써도 군비를 줄이고, 군에 동원된 병사들을 경제 발전에 투입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기는 하지, 미국이든 어디든, 중재가 나오면 긍정적으로 협상에 임하도록.”

***

프랑스 제국, 부르고뉴 조병창.

“오늘이군.”

“예.”

활주로에 있던 최신형 이중반전로터 장착 3인승 뇌격기는 전부 오늘만큼은 격납고로 치워졌다. 오늘 실험할 프로토타입의 비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몇 주 전 피스톤 엔진을 사용한 실험기는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터보제트 엔진은 처음이다.

아니, 터보제트 엔진을 항공기에 다는 시도 자체가 처음이다.

트윈붐에 후퇴익을 장착한 제트기, 이롱델 전투기의 프로토타입은 천천히 활주로로 이동했다.

“이롱델-003, 이륙합니다.”

잠시 뒤, 굉음과 함께 터보제트엔진이 가동되었고, 활주로를 내달린 전투기가 둥실 떠올랐다.

“그렇지!”

짧은 환호가 있었지만, 곧 잦아들었다.

환호는 항공기가 모든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하고 내려앉았을 때 해도 늦지 않았다.

그들은 꿈에도 몰랐지만, 프랑스 제국의 정점에 앉아 있는 한 남자는 이 제트 전폭기의 개발에 굉장한 무게를 두고 있었다.

제공전투기, 그리고 유사시 핵 투발 플랫폼.

황제가 이롱델에게 기대하는 바였다.

***

태평양, 미드웨이 제도, 샌드 섬.

“황제 폐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오늘이군.”

“예, 오늘입니다.”

“다음 전쟁은 프랑스가 진정으로 유럽의 패권을 잡는 전쟁이 될 것이다.”

나는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지난 전쟁에서, 나는 박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우리 역시 전쟁을 더 했다가는 국가가 파탄날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에 대해서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연구 성과를 너무 늦게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아니겠지, 내일도 아닐 거야, 하지만..... 내가 죽기 전에, 내 숨이 다하기 전에.”

나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내 삶에서 세 번째 전쟁이 일어날 거다.”

1892년의 1년 전쟁. 1915년의 대전쟁.

그리고, 대전쟁을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바꾸어 기록하게 될 2차 대전쟁, 제 2차 세계 대전.

이미 그 씨앗은 뿌려졌다.

‘아일랜드는 군국주의 정권이 장악했다. 반드시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남독은 내분으로 혼란스럽고, 북독은 지난 전쟁에서 희생만 컸지 많은 것을 얻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러시아에서도 총성이 일단 멎었다고는 해도, 칼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공황이 다가온다.’

정확한 시점은 이제 알 수 없다.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하지만, 온 세상을 무너트릴 거대한 공황이 온다.

공황이 두려운 것은, 당장 도처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건물이 무너져서가 아니다.

그런 재해나 전쟁과는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의 성향을 극단적으로 만든다. 먹고살기가 팍팍해지면, 개인의 이기심은 최고조에 달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가.

지난 전쟁의 장작은 아직 덜 탔고, 그 위에 휘발유가 끼얹어지고 있다.

하나의 불똥만 튀어도 온 세상을 다시금 불태워서, 더 이상 불탈 것도 없을 만큼 화끈하게 불태워버릴 쥐불놀이를 위해 전 인류는 준비하고 있다.

‘6주 따윈 없다.’

이제 전군에 배치된 폴테아가 전차, 그리고 개발이 진행 중인 티그레 전차.

프랑스군은 원 역사의 2차대전처럼 멍청한 군대가 아니다. 모든 전차에 무전기가 지급되고 모든 병사들에게 돌격소총이 지급된다.

전쟁이 경마 경기인 줄 아느냐며 통신기를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병신들은 싹 정리해버렸고, 프랑스군은 전차를 이용한 기동전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만일 그것도 어려울 정도로 적들이 몰려든다면.

핵이 그들을 징벌할 것이다.

제공권의 확보가 어려워 주요 도시에 핵을 떨굴 수 없다면 열차포와 전함, 전투기가 출격해 적 부대의 머리 위에 버섯구름을 만들 것이다.

핵지뢰가 요소요소에서 터져 적들의 머리에 방사능과 핵폭풍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알게 되리라.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프랑스 제국이, 보나파르트 왕조가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게 된다면.

다른 모든 이들이 그 길동무가 되어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준비되었습니다.”

“최종 점검 완료,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10.”

저 멀리에서 로켓 한 발이 하늘로 날아갔다. 모든 게 정상 작동 중이라는 신호용 로켓이었다.

“9.”

사람들은 마지막 점검을 했다. 계산상 밖에 나가 있어도 안전한 거리라고는 했지만 안전을 기하기 위해 총안구가 있어야 할 곳이 두꺼운 유리창으로 막힌 콘크리트 유개호에 들어앉은 과학자들과 최고위 장성들은 색안경을 꼈다.

“8.”

플루토늄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농축한 우라늄으로 만들어진 폭탄 한 발이 프랑스 제국이 가진 전부였다.

“7.”

그러나, 단 한 발만으로 세상을 영원히 바꾸어놓기에는 충분했다.

“6.”

핵무기는 30m짜리 철탑 위, 200톤짜리 강철 용기로 차폐되어 있었다. 유사시 핵물질을 회수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5”

위력은 대략 15kt으로 추정되었기에 프랑스군은 반경 10km를 완전히 비운 상태였고, 주요 인사들이 있는 벙커는 진주만의 포드 섬에 위치해 있었다.

“4.”

본래 황제는 다른 곳,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등에서 핵실험을 진행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구 영연방이었으며 여전히 반프랑스 게릴라가 존재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등의 지역에서 안심하고 핵실험을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그리고 폭풍 몇 번이면 방사능은 쓸려나갈 거라고 판단했기에 샌드 섬에서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3.”

그 인근 지역 전체는 프랑스군이 군사지역으로 선포한 지 오래였고, 하와이 거주민들의 입을 막는 것 역시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2.”

기폭 장치의 슬라이드가 움직였다.

“1.”

TNT들이 폭발하고, U-235의 비율을 굉장히 높여 농축한 우라늄 포탄이 포신을 따라 날아가 표적으로 준비된 우라늄 덩어리에 명중했다.

그 충격으로 임계질량을 돌파한 우라늄 사이에서 중성자 하나가 우라늄 원자핵 하나와 충돌하며 반으로 갈라버렸다.

거기에서 튀어나온 중성자 두 개는 다시 우라늄 원자핵 두 개를 동강내고, 넷으로 늘었다.

그리고, 모래알 하나에 못 미치는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찰나의 순간에 우라늄을 둘러싸고 있던 케이스는 증발했고, 새로운 태양은 강철 구조물과 탑 전체를 먹어치우며 땅에 닿았고, 그 에너지를 모든 방향을 통해 발산했다.

엄청난 폭음과 폭발이 일고, 충격파는 하와이 주변지역의 파도를 강하게 출렁이게 했으며 인공적인 해일을 만드는 데에 충분했다.

미리 모든 선박이 대피해 있었기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강력한 방사능이 주변을 훑고 지나갔으며 강력한 열이 수 킬로미터 내의 모든 것을 구워버렸다.

세상은, 이 순간 영원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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