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4화 (124/200)

124화 포세이돈의 몰락

미합중국의 상황은 복잡했다.

전쟁은 이겼다.

그러나 민주당은 웃을 수 없었다.

우드로 윌슨은 여전히 맹비난을 받고 있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자들은 부여된 지 1년도 안 된 여성 참정권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엇다.

유럽 국가들이 미 해군의 희생을 인정해 윌슨에게 선심쓰듯 던져준 것은 북미 전역뿐, 그 외에는 단 하나도 받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1919년 가두연설을 하던 윌슨이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자 그야말로 미국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이디스는 제법 야망이 있는 여자였지만 멕시코와 캐나다의 혼란상을 대통령이 제어해줘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럴 능력까지는 없었고,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는 곧장 반군조직이 결성되었고, 뉴욕과 워싱턴 D.C.에서조차 반군과 공산주의자들의 테러가 이어졌으며, 미 행정부는 지리멸렬했다.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민주당은 1920년 대선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맥아두 상원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고, 공화당은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하이럼 W.존슨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시점에 일어난 연쇄적 공산반란이 민주당을 구원했다, 각국의 공산주의자들의 긴밀한 연계를 본 미국에서는 빨갱이들이 미국을 장악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타국과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타이밍 좋게 몇 차례의 적색테러가 발생하자 공화당은 사상 최고의 호재를 얻은 데다 전체 득표율에서 앞서고도 선거인단을 적게 얻는 바람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는 강을 건너는 동안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 즉 전쟁 기간에는 여당을 바꾸지 않는다는 링컨 이래 미국 정계의 오랜 전통에도 부합했다. 정작 전쟁은 얼마 안 가서 호주에 잔존한 영국 잔당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끝나버렸지만.

그러나 전함은커녕 순양함이나 구축함 한 척 남지 않은 호주의 영연방 잔당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몇 척 남지도 않은 무장상선으로 프랑스나 미 서해안을 통상파괴하는 것 뿐이었고, 그마저도 프랑스 해군과 미 해군의 합동작전으로 씨가 말랐기에 미국 정부에 가해질 수 있는 위협은 없었다.

맥아두 대통령은 유럽에서의 국가 간의 총성이 일단은 멎자, ‘국내’가 된 캐나다와 멕시코의 문제에 주력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미국의 영토는 쿠바를 비롯해 카리브 해의 수많은 섬들과, 멕시코, 그리고 기존에 보호국이었던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영국의 식민지인 벨리즈 등을 점령했지만, 전쟁 내내 모두에게 느껴진 문제, 파나마든 니카라과든 통과할 수 있는 운하가 아직 지어지지 않아서 미 해군의 기동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미 미국은 파나마에게 운하 부설권도 받아냈음에도 아직 운하를 개통하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니카라과에 운하를 파서 아예 미국 국내에 운하를 두자는 제안이었다.

공사해야 하는 거리, 공사 난이도 등이 한참 낮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이었으며, 맥아두 대통령은 중미에 대한 통제권도 강화할 겸 공사 계획안을 세우는 중이었다.

인근의 마르티니크 섬에 있는 몽펠레 화산이 니카라과 운하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반대가 있었지만, 화산이 안 터진 지 10년이 넘었고, 과학자들 역시 이만한 폭발이 다시 일어나려면 수천 년이 걸릴 거라는 의견을 냈기에 결국 괜찮을 거라 판단한 미국 정부는 니카라과 운하 공사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계획된 파나마 운하 공사대로 하면 대형화되는 추세의 현 전함들로는 절대 통과할 수 없으며, 더 넓힌다면 산을 더 깎아야 하는 관계로 천문학적인 공사비가 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받은 재무장관 출신 맥아두 대통령으로써는 니카라과가 더 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니카라과 운하 계획을 구체화하던 와중, 미국 정부는 프랑스 정부의 연락을 받았다.

“프랑스 해군의 기항지를 제공해 달라고 하셨습니까?”

“정확히는 프랑스 해군이 미국 내 군항에서 보급과 정비를 받고, 해군과 해군 육전대의 장병들이 미 해군의 기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기항할 함선 규모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전함 샤를마뉴, 그리고 항공모함 잔 다르크급 3척, 이 주력함 4척을 호위하는 중순양함과 경순양함, 구축함 등이고, 군단급 병력을 수송할 수송선도 따라갑니다.”

“.........”

“그리고 미국에서 작전에 필요한 물자를 구입할 예정입니다. 이건 정상적인 상거래인 만큼 그저 참고만 하십시오.”

“작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상륙입니다. 영국의 잔당들의 마지막 잔재를 지구상에서 쓸어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랑스가 자신의 모든 식민지를 태평양에 두었다는 건 유명하다.

그리고 프랑스가 원하는 건 태평양의 패권이라는 것도.

어차피 대서양과 인도양은 경쟁자가 너무 많으니 멀더라도 태평양을 가지겠다는 생각이었고, 이를 저지할 국가도 별로 없었다.

이제 와서는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었다, 미국의 태평양 진출로를 정면으로 막아버린 꼴이니까.

그러나 프랑스와 전쟁을 해가면서 빼앗을 능력은 없으니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프랑스가 상륙전을 벌이겠다는 의도도 명확하다, 이번 기회에 호주도 프랑스가 점령해서 태평양을 완전히 프랑스의 호수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이다.

“함대는 대서양을 건너 뉴욕항에 기항한 후, 보급과 정비를 마치고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북쪽으로 이동, 뉴질랜드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물론 시간이 굉장히, 굉장히 오래 걸린다.

진지하게 그냥 그 전에 영국이 항복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실 이미 종전조약까지 다 체결하고, 아직 저항 중인 영국을 어떻게 처리할까도 합의가 끝난 상황이라 쉽게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호주의 지위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지만, 프랑스가 호주를 점령한다면 ‘호주는 프랑스령으로 한다’는 조항을 박아넣는 것도 간단할 터.

거기에 프랑스 제국은 조롱이라도 하듯이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영국 정부와 왕실이 명맥을 이을 수 있도록 키프로스는 영국 영토로 남겨주겠다’고 불과 얼마 전 제안했다.

즉시 묵살당했지만, 그 정도로 프랑스의 우위는 확고했다.

동시에, 프랑스가 호주를 영국에 남겨놓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는 것 역시 명확해져 있었다.

***

임시 의회에서도 항전파는 소수였다. 윈스턴 처칠을 비롯해 항전파도 현실적으로 저항할 능력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본토를 통째로 빼앗긴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상대가 그토록 멸시했던 아일랜드인들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항복했으리라, 하지만 인도, 본토, 캐나다까지 모조리 빼앗긴 데다 대놓고 ‘키프로스는 남겨줄게’라면서 자비를 빙자한 조롱을 하는 프랑스의 행태에 이가 갈리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눈앞에도 현실이 들이밀어졌다.

“프랑스군의 대규모 상륙군이 준비되고 있소.”

병력 규모는 정예부대로 대략 4개에서 6개 사단으로 추정, 주력함 4척에 90여 척에 달하는 기타 함선들이 남미를 통과해 뉴질랜드를 목표로 이동 중.

거기에 프랑스 태평양 함대의 병력이 증원될 것, 그리고 식민지 사단 등을 감안하면 육해군 규모는 더 많이 불어날 수 있었다.

“......... 항복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대가 국왕 폐하께 항복을 상주하시겠소? 그리고 그 다음은? 저들이 조롱하는 대로 키프로스에라도 영국을 다시 세울 거요?”

“우리가 무슨 체면으로 자리를 지키겠소, 하지만 시민들은 죄가 없지 않소.”

“.........”

“국왕 폐하께 항복을 상주한 뒤, 항복 절차가 끝나는 즉시 의회와 내각 양자 모두를 해산하기로 합시다. 그 다음은 왕실에서 처리할 일이지요.”

앨버트 왕은 최근 건강이 굉장히 악화된 상태였기에 왕세자가 대부분의 사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아마 전쟁에서 패배하면 패전 책임을 명분으로 퇴위할 가능성이 높았다.

진짜 이유는 왕위를 지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된 것이었고, 최근에는 아예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였기에 실질적인 결정은 왕세자가 내리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건 그거고, 최근 신민들 사이에서 불경한 소문이 떠돌고 있소, 폐하의 병증이 매독 때문이라는.......”

“크흠.”

체면이 있으니 대놓고는 말할 수 없었어도 알 사람은 다 알았다. 빅토리아 여왕이 손자인 앨버트 왕자가 처음부터 싹수가 노랗다면서 분노했었고, 선왕인 에드워드 7세도 왕세자의 비행에 대해 염려했으며, 왕비 역시 한 성깔 하는 인물이라 지독한 부부싸움이 이어지고는 했고, 덕분에 더 밖으로 나돌았다는 것까지.

그리고 그만큼 여자를 더 밝히고, 런던에서 매음굴에 쉴새없이 드나들어 이 뒤처리를 하느라 내각과 왕실 사람들이 고생했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바였다.

심지어 언론통제를 간신히 하기는 했지만 남색까지 했다는 ‘증거’가 나왔는데 매독에 안 걸렸으면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매독의 증상은 걸린 직후에 나타나지 않고 한참 뒤에 나타나는 경우도 간혹 있지.”

“소문에 따르면 폐하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인위적으로 퍼트리는 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첩자, 아니면 빨갱이, 둘 중 하나겠지.”

공식적으로는 국왕의 와병은 그냥 단순한 건강 악화다. 물론 그 상태가 좀 심해서 아들딸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 그래, 그래야겠지.”

프랑스의 통치에 호의적으로 반응할 반역자들이든, 공산주의자들이든, 남겨둬서 좋을 게 없다.

미국 독립전쟁 때도 영국은 캐나다에 엄청난 규모로 왕당파를 모아둬서 미국이 캐나다까지 먹어치우지 못하게 했다.

호주도 마찬가지, 왔다가 가는 존재인 내각과 다르게 왕실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으니 왕실에 대한 지지가 높아야 언젠가 탈환이라도 노려볼 수 있다.

그리고 겸사겸사 프랑스의 통치에 크나큰 장애물로 작용해줄 수도 있을 터.

영국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순순히 망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설령 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리더라도 자신을 멸망시키는 상대에게 똥을 한 줌이라도 더 뿌리고 가겠다는 각오이기도 했다.

그날 영국 임시의회는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중립국을 통해 프랑스와 독일, 미국을 비롯한 적대국들에 항복 의사를 타진했다.

그 다음 날, 프랑스 정부의 명의로 영국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답이 도착했고, 독일과 미국 등 역시 이에 동의했다.

대전쟁(The Great War)의 끝이자, 1893년, 룰 브리타니아의 붕괴 이후 30년만에 벌어진 대영제국의 몰락의 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