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2화 (122/200)

122화 협상

-타앙!

과녁에 구멍이 하나 뚫린다.

브라우닝의 최고 걸작 중 하나라 불릴 만한 프랑스 제국의 제식 권총에서 튀어나간 7.5mm 권총탄은 표적의 중심에 정확하게 맞아들어갔다.

“영국 임시정부는 협상을 요청했습니다. 아일랜드와 우리 모두에게요.”

임시로 아일랜드인들에게 군정을 맡기고는 있지만, 그 군정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질적으로 영국이 협상할, 협상해야만 하는 상대는 프랑스 제국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을 가한 전범의 인도와 전범 재판, 배상금 지불,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요구하실 모양입니다.”

영토 할양 등은 어렵다. 영구점령도 불가능하다.

차라리 종전이 아니라 휴전을 해서 영구점령을 하고 있는 게 프랑스에게는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영국 본토의 영구점령은 그럴 만한 명분도 없고, 반발을 억누르기도 어렵기에. 영국에게 요구할 만한 거라면 대영제국의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해체, 즉 모든 해외 영토와 식민지의 포기였다.

연합왕국의 해체는 불가능하고 괜히 반발만 살 가능성이 더 높고.

“전쟁이 이렇게까지 오래 끌 줄은 몰랐네.”

여전히 왕립해군의 잔당은 해상에서 교전을 이어가고 있었고, 지금도 유럽 대륙 어딘가에서는 총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도 전쟁을 조속히 끝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총력전을 10년 넘게 끌었다가는 제국의 경제 전체가 붕괴할 겁니다.”

“동원령도 해제 절차를 밟고 있지 않나? 지금은 상비군만으로 전쟁을 치를 텐데?”

“그 상비군이 잡아먹는 물자와 비용이 보통이 아닙니다.”

군대는 본질적으로 거대한 소비조직이다.

막대한 비용을 잡아먹고,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프랑스는 호주까지 쫓아갈 보급능력이 없다. 핵이라도 가져오지 않는 한 진짜로 답이 없다.

그리고 핵무기가 만들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고, 이 전쟁 기간 중 실용화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어진 지금, 프랑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다지 없었다.

***

“네덜란드 정부가 휴전을 중재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휴전이라.”

“이 전쟁, 계속할 의미가 없습니다.”

양측 모두 전쟁에 지쳤다.

그리고, 지금 전쟁을 끝내면 양측 모두 할 말이 있다.

프랑스와 남북 독일은 차르 정권을 붕괴시켰고, 영국을 무너트렸다.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지브롤터와 바르샤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 약간의 영토는 손에 넣었다. 적어도 대내외적으로 체면치레를 할 수준은 되었다.

러시아는 일단 전쟁의 명분이던 보헤미아와 헝가리를 점령했다. 그리고 더 아쉬운 건 저쪽이었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손에 넣었다. 이탈리아는 독립을 얻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망했고, 영국은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테니 논외.

일단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이겼다’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있었고, 양측 모두 슬슬 국력에 한게를 느끼고 있었다.

협상을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였고, 결국 양측은 네덜란드에 대표단을 보냈다.

망한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영국의 대표단은 당연히 빠진 채였다.

“그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소.”

“하, 그럼 전쟁 계속해보시겠소? 당신들 이제 정권 유지도 위태위태하잖소. 당신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과 왕족들을 죄다 쏴죽였는데, 당신들도 그 뒤를 따르면 볼만하겠구려.”

프로이센 대표단과 적군 대표단은 으르렁거리며 열을 올리고 있었다.

프랑스 대표단은 관조하고 있었지만, 결코 상대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둘의 온도 차이가 생긴 원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프랑스는 저 빨갱이들과 국경을 맞대지 않으니까.

“우리 프랑스는 지브롤터를 합병하고자 합니다, 또한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99년간 얻고자 합니다.”

지브롤터를 합병하고,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가지겠다는 것은 곧 지중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겠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했다.

프랑스 제국의 국가운영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구조건이었다.

그러나 북독일 연방은 어떻게든 소비에트 연방의 군사력을 깎아내려고 시도했다.

“국경 지대 100km의 비무장화와 중립국 감시, 북독일과 남독일 항공기의 소비에트 연방 영내의 자유로운 정찰, 적위대의 해산, 그리고.......”

“적위대의 해산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적백내전에서 이긴 것도 아니고 아직 백군과 청군, 적군 간의 전쟁은 진행 중이다. 북독 측도 그냥 한 번 찔러나 본 것이었는지 바로 한 발 물러났다.

“차라리 배상금을 지불하는 건.....”

“배상금은 단 한 푼도 지불할 수 없습니다.”

배상금은 진 쪽이 이긴 쪽에게 지불하는 것.

그러나 양쪽 모두 상대에게서 배상금을 받아내면 모를까 배상금을 줄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자국 내에서 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선전해야 하는데-그리고 실제로 영토가 넓어지기는 했고-배상금을 지불한다면 그건 자기들이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증명밖에 되지 않으니까.

즉, 이들에게 있어 최선은 상대에게 최소한의 ‘배상금’이라도 받아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양측 모두 절대 배상금을 줄 리가 없었다.

“전쟁 계속 하고 싶으면 말만 하시오, 우리가 먼저 쓰러질지, 당신들이 총살대로 끌려가는 게 먼저일지는 우리도 궁금하니까.”

당연히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높다인 이유는 러시아라는 나라의 특수성 때문이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계속 전쟁을 벌이면 남독, 북독, 프랑스가 성하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러시아가 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아일랜드 공화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획득한 브리튼 섬의 영유권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자 합니다.”

물론, 이 주장에는 모두가 ‘니들 미쳤냐?’는 태도를 보였지만, 아일랜드로써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

아일랜드는 군국주의 국가로, 사실상 특정한 지도자가 아니라 일종의 군사 독재 정권이 집단지도체제로 국가를 이끌어가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군국주의 세력이 내세운 게 복수였다.

즉 프랑스가 군대를 빼는 바람에 꽁으로 브리튼 섬 전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한 이상, 아일랜드 군부는 절대로 여기서 뒤로 뺄 수 없었다.

뒤로 빼는 순간 그들은 정권을 잡고 있을 명분을 상실하고, 얼마 가지 않아서 정부가 엎어질 테니까.

그렇다면 애초에 완전 점령을 안 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랬으면 군국주의 이념에 깊숙하게 세뇌된 일선 지휘관들이 강력하게 반발했으리라는 걸림돌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그 모습은 사냥꾼이 죽여놓은 코끼리를 통으로 삼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한 보아뱀과도 같았다.

물론 그 보아뱀이 죽은 코끼리에게 어마어마한 원한이 있었고, 보아뱀의 구강구조상 코끼리를 씹어먹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아일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집어삼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땅, 브리튼을 사실상의 식민지로 운영해야만 국가가 유지될 수 있었다.

설령 그러더라도 병영국가로써의 유지 외에는 별달리 방법이 없었던 만큼, 애초에 아일랜드의 미래 자체는 결코 밝지 않았다.

“프랑스 제국은 이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 망하든 말든 프랑스가 알 바는 아니었다.

일단 우방이고, 설령 폭주할 대로 폭주한 아일랜드가 프랑스를 쳐도 기본적인 체급상, 그리고 비효율적인 국가 상태 등을 고려하고, 애초에 군국주의 자체가 강군을 만들기 어려운 형태라는 것 등을 감안하면 프랑스를 아일랜드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조만간 만들어질 것이 확실한 핵무기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미국 대표단이 좀 불편해하기는 했지만, 가장 발언권이 큰 프랑스와 북독일이 무관심에 가까운 암묵적 동의를 표하자, 딱히 유럽 전선에서 한 게 없는 미국이 할 말은 없었다.

실제로 미국이 멕시코나 캐나다에서 하고 있는 짓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고 말이다.

“미합중국이 전쟁 중 점령한 모든 영토를 인정하며......”

“이스라엘이 전쟁중 점령한 모든 영토는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토 팽창에 대한 인정은 그냥 말이 좋아서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이지, 사실상 인도의 분리독립이었다.

본토도, 인도도, 캐나다도, 여타 식민지들도 죄다 뜯겨나간 영국에게 남은 건 호주 대륙 하나뿐이었다.

해군력도 없으니 식민지를 지킬 방도도 없었다. 아프리카 식민지는 모조리 프로이센에 넘어갔으며 중남미 식민지는 미국에게, 오세아니아 식민지는 이미 1년 전쟁 때 호주 빼고는 다 뜯겼고 중동 식민지는 청군에게 넘어갔다. 동남아시아 식민지 역시 네덜란드 등에게 넘어간 지 오래였고, 그나마 남은 건 대부분의 국가가 별 관심이 없었던 홍콩 정도였다.

대영제국의 비참한 몰락이었다.

***

중화민국, 난징.

중화민국 최초의 자국산 항공기가 지상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펄스제트 엔진의 소음 때문에 귀가 먹을 지경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오늘, 중화민국이 또 한 발자국 크게 도약했다는 것이다.

“중화민국 만세!”

“중화민국 만세!”

곳곳에서 만세 소리와 함성이 쏟아져나오고, 고위급 장군들이 기술진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로 중화민국 역시... 강국이 되었다.”

얼마나 길었던가.

장구한 몰락과 핍박의 역사.

한족을 기준으로 한다면 청이 세워지는 그 순간부터 264년, 서역의 개입부터 센다면 아편전쟁으로 청이 몰락했다는 게 드러나고 오랑캐들이 누런 이를 드러낸 뒤부터 86년.

그 기나긴 몰락의 끝에, 중화는 자강에 성공했다.

중화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 저 비행기처럼 비상하게 되리라.

항공기를 스스로 제조할 수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으며, 중화민국 역시 이제 그 대열에 당당하게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수탈과 핍박의 역사는 이제 없다.

이제 발전이 남았다.

미래가 남았다.

이제 중화의 시대가 오리라.

그런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중화 인민들은 힘찬 환호를 끝없이 조종사들에게 보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것이다!”

“백인들의 시대는 끝날 것이다!”

보라, 백인들은 전쟁을 스스로 벌이면서 서로의 힘을 쉴새없이 깎아먹고 있었고, 중화는 백인들의 기술을 남김없이 흡수해가면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

이제 저들은 수에서 밀릴 것이다.

인민들이 총을 잡는 순간 백인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무기를 든 수천만 대군이 백인들의 알량한 군대를 밀어내고, 아시아 전역을 회복할 것이다.

류큐는 해방되었고, 동남아시아도 해방되어가고 있으며, 만주도, 몽골도, 대만도, 조선도, 일본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화질서를, 천조질서를 복원하고 모든 아시아인들이 공존하고 공영하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 탄생하리라.

그날이 오리라, 태산도 기뻐하고 장강도 즐거워할 그날이 오리라.

중화가 아시아를 발 아래에 두고 우뚝 설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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