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1화 (121/200)

121화 악의 태동(2)

중화민국은 이 전쟁의 수혜자였다.

전쟁 내내 군수물자를 팔고 사람을 팔면서 중화민국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공장들은 호황이었고, 중화민국은 전쟁 특수로 모아들인 돈을 모아 차근차근 근대화를 시작했다.

돤치루이는 북양군벌이었던 세력을 끌어모아 여타 군벌들을 제압하거나 복속시켜 중앙집권을 달성했고, 순식간에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형식상 쑨원의 아랫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는 실세였고, 민중들에게 제법 인기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쑨원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몸져누웠고, 돤치루이는 이 틈을 타서 권력을 휘어잡았다.

중화민국 내의 거의 모든 무장조직을 손에 넣고, 사병들도 대규모로 보유한 돤치루이를 거스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순식간에 중화제국을 선포하는 것도 가능할 수준의 권력을 움켜쥔 돤치루이는 쑨원이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진 관계로 대총통의 직무대행을 선언했다.

물론 중화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다거나 하는 자충수를 두지는 않았지만, 돤치루이의 권력은 그러고도 남았다.

중화민국군 그 자체가 된 돤치루이의 군대는 계속해서 덩치를 키워갔고, 중국 전역을 군대식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문맹을 개선하기 위해 프로이센을 모델로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고, 여러 국가에서 대규모 군사고문단을 받아들였으며 무기들을 수입했다.

프로이센과 남독일 연방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장교와 부사관단을 내주었다.

그리고, 주중 군사고문단 소속 장교, 하인리히 힘러는 글을 읽고 있었다.

자신의 전우가 전사하기 전 자신에게 남기고 간 원고.

나의 투쟁을.

“히틀러, 그 친구가 죽은 건 정말 세계의 불운이다.”

중얼거린 힘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틀린 부분은 단 하나도 없다.”

그는 여러 대화를 했다. 만약 황실과 융커들이 군부에 압력을 넣지 않고 루덴도르프가 자신의 권한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었다면?

루덴도르프가 실패하지만 않았더라면 게르만 민족은 레벤스라움을 이룩했으리라, 이 점마저 예언한 그의 전우 아돌프 히틀러의 안목에 힘러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융커들이야말로 제 5열이다. 융커야말로 우리의 등에 드리워진 칼날이었어, 다 이겼는데, 정말 다 이겼는데 융커와 황실이 우리의 등 뒤에 칼을 꽃아서 싸우다 만 거야!”

“동의하네.”

건너편에 앉아 있던 장교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우리는 이길 수 있었어, 이길 수 있었지만 저 배에 기름만 잔뜩 낀, 이기지는 못하고 패배하기만 하는 무능한 병신들이 우리의 등 뒤에 칼을 꽃았어, 그들이야말로 등 뒤의 비수였어!”

그레고어 슈트라서 대위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 원고는 완성되어야 하고, 출판해야 하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읽어야 해.”

“내 지인에게 부탁해서 칼 슈미트라고, 슈트라스부크 대학의 교수에게 사본을 보내두었네, 조만간 답이 올 거야.”

그 두 사람은 이 원고의 사본을 여러 권 만들었고, 주변인들에게 추천하고 있었다.

그러나 힘러는 아직 원고를 출판하지 못했다. 뒷부분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엉성한 부분이 많아서였다.

이를 완전하게 채워서 출판하지 않으면 이는 전우의 희생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래도 조만간 이 모임에 참석자가 늘 것 같네, 이번에 몇몇 중국 장교들이 이 원고에 관심을 보였거든.”

그리고, 단순히 출판이 아니다.

이를 사상화하고, 정치적 지향점으로 바꾸어, 독일을 통일하고, 세상을 바꾼다.

그것이 그들의 최종적인 목적이었다.

***

“동지, 서기장께서 레닌그라드에서 암살당하셨습니다. 지노비예프 동지가 상황을 통제하려 시도하고 있는 중이고, 모스크바가 곧 봉쇄될 겁니다. 지금 움직이셔야 합니다.”

“.......”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어설프게 일을 벌였고, 그렇기에 저들은 실패할 것입니다. 카메네프 동지.”

“판을 짠 자는 스탈린인가.”

“그렇습니다. 지노비에프 동지는 완전히 놀아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스탈린은 지노비에프 동지를 제물로 혁명전쟁의 평화 협정에 서명하고, 지노비에프 동지를 체포해 처형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지도요.”

조용히 침묵한 카메네프는 조용히 말했다.

“우린 처음부터 놀아났군, 스탈린.... 레닌 동지께서 스탈린을 주의하라 하셨지, 들었어야 했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었다.

“비행기를 준비했습니다.”

“....... 그 날을 보고 싶었는데.”

끝내 오지 않을 그 이상을 한탄하며, 카메네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트로츠키 씨.”

“트로츠키 서기장이라 불러 주시오.”

“원한다면, 트로츠키 서기장 나으리.”

터번을 쓴 남자 몇이 자리에 앉았다.

“예언자께서는 말하셨지, 무신론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그런데 그 성서의 백성보다 더욱 지독한 무신론자와 내가 한 자리에 앉게 될 줄은 몰랐소.”

“나 역시 당신들과 협력하는 게 마땅치는 않소, 하지만 내게는 당신들이, 그리고 당신들은 내가 필요하지.”

잠시 차를 마신 남자는 입을 열었다.

“개종하시오.”

“..........”

“그럼 일이 쉬울 거요, 뭐, 진심으로 알라에 귀의하라거나 하는 말은 아니오, 어차피 우리도 술은 술대로 마시거든, 알라께서는 술을 금지하셨지만.”

“그렇다면.”

“알라의 이름 아래에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이오, 당신이 재편한 붉은 군대와, 당신의 경제정책, 우리도 나름 관심이 있거든.”

“내 철학에 이슬람교를 섞으란 말이오?”

“그렇소, 그리고 당연히 알라께서 우위에 있어야 하고.”

“내가 그걸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오?”

“그 정도로 몰리지 않았으면 당신은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겠지.”

“...........”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지, 우리도 동의하오, 종교는 억압받는 사람의 탄식이고, 잔악한 세상의 정서이며, 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며, 인민의 아편이지. 그런데, 댁은 마르크스 선생이 떠든 그 사회주의 낙원이 올 거라 생각하오? 그랬으면 여기로 도망치지도 않았겠지.”

“인정하오.”

“종교는 당신네들이 주장하는 낙원이 오는 순간까지는 필요해, 그리고 우리는 그때까지 이 나라를 지배하는 종교가 이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때까지는 협력할 수 있겠지, 물론 당신네들이 말하는 종교도 필요없는 세상이 올 리가 없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이미 혁명은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였다.

그리고, 자신은 살기 위해서라도 이들과 손을 잡아야 했다.

트로츠키는 명백히 약자였고, 그들은 트로츠키를 필요로 하되 절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명백히 기존 교리와 충돌하는 부분은 어쩔 거요?”

“두 성지의 수호자라는 이름은 충분히 그걸 극복할 수 있소, 여차하면 칼리프를 자칭할 수도 있으니. 칼리프 계보는 오스만의 멸망과 함께 끊어졌지만, 이제 우리가 그것을 이어받았소.”

“교황이 하듯이 공의회라도 열 거요?”

“어디 교황이 처음부터 그런 위치에 있었소, 애초에 교황은 고대 로마 주교였을 뿐이오, 그러나 온 세상의 신자에게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지, 그의 뜻에 따라 교리도 뒤바뀔 수도 있고 말이오, 우리 역시 쿠란에 손을 대는 건 불가능해도 하디스 정도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소.”

“............”

“당신은 우리의 군대를 재조직해주고, 정책을 만드시오, 말 위에서 얻은 세상을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고 하던가? 그런 이야기도 있었으니, 당신이 다스리란 말이오, 대신, 알라의 축복 아래에서.”

트로츠키는 깨질 듯한 머리를 억누르며 내심 한숨을 쉬었다.

저 종교쟁이들의 소굴, 아편굴에 제발로 걸어들어와야 할 정도로 자신이 몰락했다는 것이 도저히 실감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도저히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그 오만과 멸시로 인해 적을 너무 많이 만든 탓이었다.

결국, 트로츠키는 결정을 내렸다.

***

호주, 멜버른. 대영제국 임시의회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맺어진 것은 휴전일 뿐이며, 우리는 저 간악한 아일랜드인들로부터 조국을 되찾......”

“개 짖는 소리 작작 해라!”

“전쟁 네놈들이 하자고 했잖아! 그럼 책임을 져야지!”

연설하던 남자, 윈스턴 처칠을 향해 온갖 욕설과 비난이 날아들었다.

영국을 말아먹은 작자, 그러고도 뻔뻔하게 살아서 도망쳐온 놈 등등.

영웅으로 칭송받던 윈스턴 처칠에게 사람들은 염치가 있다면 본토에서 싸우다 죽었어야지 왜 여기 있느냐는 비난만을 쏟아냈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제법 억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최소한 누군가가 저항의 불씨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왕실을 보위하기는 해야 하지 않는가. 그저 그럴 상황이 되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을 뿐이다.

겁이 나서 도망친 게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그는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대부분은 절망적이었고 나머지는 비현실적이었지만-최선을 다해 궁리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불도저 같은 존재였다. 막대한 추진력으로 달려나가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 방향을 잘못 잡으면 끝없이 추락하게 되는.

그리고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여럿 길동무로 끌고가게 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 캐터펄트 작전.

전부 대영제국이 살아남기 위해 행한 일이었다. 예상 외로 프랑스 해군의 저항이 강력해 캐터펄트 작전이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고 수상함 전력이 반토막나자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벌였고, 그 결과로 미국이 참전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타당성이 있었다. 일부분은 효과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책임을 져야 했다.

“제어봉 추출.”

“제어봉 추출 진행중, 출력 상승......”

곳곳에서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응 속도가 너무 빨라. 제어봉을 넣어.”

“하지만 출력이 너무 낮아지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집니다.”

“위험한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한 게 낫다. 상부 지침도 안전이 제일이라는 쪽이야.”

“예, 알겠습니다. 제어봉 삽입.”

붕소 제어봉이 흑연과 우라늄들 사이로 사라지고, 원자로 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원자로의 운영에 대한 지침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여러 과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세운 자료들을 이용해 장님 문고리 잡듯이 운영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분명히 효율적이었다. 물을 끓이는 게 가능했고, 이것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했다.

하지만, 이 원자로는 실험용 원자로는 아니지만, 상업 원자로도 아니었다.

이 원자로의 목적은 사용 후 핵연료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 그리고 이를 이용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

수천 기에 달하는 원심분리기는 우라늄을 농축해 무기 등급 우라늄을 만들고 있었고, 연구진은 두 가지의 핵무기를 이미 이론적으로 설계했다.

두 덩어리로 나뉜 우라늄을 화약으로 쏴서 충돌, 임계질량을 넘겨 기폭시키는 ‘포신형’ 핵폭탄, 그리고 중성자원을 넣은 플루토늄 구체를 모든 방향에서 폭약의 폭발 압력을 이용해 쥐어짜 폭발시키는 ‘내폭형’ 핵폭탄.

이 가운데 개발 진척도가 훨씬 빠른 것은 우라늄형 핵폭탄이었다. 원리 자체도 단순하기 그지없고, 성능이 떨어질언정 원심분리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돈을 퍼부으면 핵연료를 재처리해야 하는 플루토늄보다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플루토늄 팀은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사이좋게 늦어지면 몰라도 다른 팀은 진도가 죽죽 나가는데 본인들은 아직도 코어를 어떻게 생산해야 할지를 놓고 씨름을 하는 판국이면 압박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질산에 넣고, 등유에 인산 트리뷰틸을 녹인 걸 섞어서 화학반응을 통해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순도를 높이는 작업을 거친 뒤 다시 환원제로 환원시키는 등 매우 복잡한 방법을 취하는 게 일반적인 재처리 방법인데, 이들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해 가면서 그 기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연히 황제도 재처리 재처리 말만 들어서 핵연료봉을 어쩐다는 것만 알지 자세한 건 모르고, 그냥 원심분리기를 대량으로 써서 우라늄을 농축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플루토늄 연구팀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조언이었다.

우라늄이 분열하고 남은 것에 플루토늄이 미량 섞여 있다는 건 아는데, 그걸 어떻게 추출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

물론 프랑스는 이걸 위해서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플루토늄 폭탄은 10년에서 20년은 더 걸리지 않겠냐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판이었다.

게다가 전비에서 황제가 이리저리 돈을 빼돌려 가면서 만들어준 예산이 끊기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판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황제가 플루토늄은 관두고 우라늄에나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라도 했다가는 플루토늄 연구팀은 그냥 새 될 판, 당연히 일단 최대한 많은 플루토늄 ‘원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용 후 핵연료를 모아야 했다.

“이렌 퀴리 박사님. 오늘 오후에 있을 실험에 대한 사전 리허설이 필요하답니다.”

“누가?”

“프레데리크 졸리오 박사님이.......”

“지금 가지.”

어머니를 혹사한 걸로도 모자라서 딸까지 알뜰하게 부려먹는 악덕 고용주 나폴레옹 4세는 프로젝트 총책임자인 마리 퀴리의 제자들도 다수 투입했다.

프랑스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핵물리학자들이었으니 사실 자명한 일이기는 했다.

그리고 플루토늄 연구팀에 소속된 이렌 퀴리는 벽에 부딪힌 심정이었다.

복잡했다. 폭축렌즈의 형성, 중성자 공급원의 배치 등등, 구형으로 발산되는 파면을 평면으로 전환하기 위해 어떤 형태를 폭축렌즈가 취해야 하는가 등등.

그들이 전부 알아내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바르샤바라는 이름이 붙은 원자로는 여전히 덜컹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지식으로 무기를 만드는 것에 총력을 기울인 이유가 드러나는 이름.

핵무기가 완성되어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을 잡으면, 폴란드를 독립시켜주겠다는 황제의 약속 하나만 철썩같이 믿고 달려왔지만, 폴란드가 독립할 날은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반면 이렌 퀴리는 애초에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인이었기에, 그녀의 어머니처럼 폴란드에 대한 애정은 딱히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녀의 일이었기에, 그리고 어머니가 너무나도 간절하게 원하는 일이었기에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자들 가운데 원자폭탄이 실제로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지를 계산은 할 수 있더라도 실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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