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0화 (120/200)

120화 악의 태동(1)

프랑스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군을 따져보면 전사자와 부상자 포함 사상자가 약 60만 정도였으며, 해군은 함선 다수가 격침당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전쟁 중 계산하기도 싫을 정도로 막대한 전비가 소모되었고, 경제는 파탄 일보 직전이었다.

물론 그나마 사상자가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은 본토가 불바다가 되지 않은 것이 컸다.

대부분의 사상자는 해군에서 나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국경이 붙어있는 모양새 상 본토에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스페인 내전기를 제외하면 없었고, 그나마도 우리 측이 공산주의 확산 저지를 위해 개입한 게 전부다.

민간인 피해는 영국과 러시아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 당시 바다에서 희생된 게 전부고, 프랑스 영토가 공습당한 적이 없지는 않지만 이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다. 공습 규모 자체가 상당히 좁고 한정적이었으니까.

문제는, 재정이었다.

“전쟁에서 졌어도 이 정도 피해는 아닐 겁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빨갱이들이 정권을 잡아버리는 바람에 전쟁에 이겨도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국고는 이미 텅 비었습니다. 재고 무기는 잔뜩 쌓였는데 팔 만한 데라고는 대금 지불을 기대하기 어려운 청군과 백군뿐입니다.”

“스페인 정부군에 신형 105mm 야포와 105mm 대공포, 각종 항공기를 판매할 예정이네, 스페인에서는 국민파가 우세한 상황이니 상환이나, 정 안 되면 국내외 이권이라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앞으로는 청군에게서 석유를 대금으로 받을 수 있고, 아예 석유채굴권을 대금으로 받는 것도 고려할 수 있네, 그 정도면 재정 압박이 좀 해소되지 않겠나.”

전쟁의 결과로 지브롤터를 얻고, 대영제국을 대영제국‘이었던 것’으로 만들어주었지만, 프랑스가 실질적으로 얻은 이득은 없었다.

식민지? 지금 와서 주워먹을 건 없다. 영국 망명정부는 호주에 세워졌고, 브리튼 섬은 아일랜드가 군정 중이며 인도는 이스라엘령 인도가 되었고, 캐나다는 미국에 먹혔다.

그래도 아직 공식적으로는 영국 정부가 항전하는 탓에 캐나다군과 멕시코군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어서 야포와 전차, 총기는 아직 계속 수입처가 있다. 이런 식으로 총력전 체제에 들어갔던 국가 상태를 연착륙시켜야겠지.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군비를 당장 감축할 수가 없네, 일단 당장 제기된 소요만 해도 기존의 전차보다 더 느리더라도 장갑이 두꺼운, 움직이는 토치카 형의 전차가 기존의 전차와 다르게 별도로 필요하다고 기갑부대가 계속 주장하잖나.”

“신형 전차 개발에 쏟아부을 자금은 거저 나오는 게 아닙니다.”

“무에서부터 개발하란 건 아니네, 그냥 폴테아가 전차 기반으로 좀 더 두꺼운 장갑에 강력한 화력을 가진 전차를 개발하자는 거지, 엔진 기술을 좀 더 발전시키고, 주포는 이번에 시제품이 나온 110mm 전차포를 사용하는 쪽으로 진행한다니까.”

티그레(Tigre) 전차.

세상에 중형전차가 있다면 중전차도 있어야 한다.

물론 하나의 전차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면 좋다. 누가 싫다겠나?

문제는 그게 안 된다는 거다.

21세기에는 MBT라는 이름을 갖춘 전차가 나와서 그게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정찰용 경전차, 전차전 및 기동 등의 주력을 맡아 줄 중형전차, 그리고 단단하게 구축된 방어선 돌파용 중전차로 세분해야만 한다.

시원하게 망하기는 했지만, 그걸 다 합쳐보려는 첫 시도가 바로 다포탑 전차였다.

지금 우리는 경전차는 따로 생산 안 한다. 경전차를 뽑기보단 중형전차를 더 생산해서 정찰 임무도 맡기는 게 합리적이니까.

문제는 폴테아가라고 중형전차는 있는데 전선 돌파 임무를 맡을 중전차는 없었고, 이는 우리 군이 러시아 전선에서 방어선을 단단하게 굳힌 러시아군에게 고전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러시아군이 원체 가난한 군대인 탓에 2차대전기에 서부전선에서 셔먼 녹아내리듯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폴테아가 전차들이 전선돌파임무에서 부적합한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개발을 시작한 게 티그레 전차.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기본 틀은 그대로 놔두고 더 두꺼운 장갑, 더 강력한 주포, 더 강한 엔진을 적용한다는 개념이다.

이미 프랑스 연구진은 가스터빈 엔진을 시제품까지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전차나 항공기에 적용하려면 시일이 걸리겠지만, 어차피 티그레 전차도 만들라고 해서 당장 나올 물건은 아니다. 110mm 주포에 원시적이지만 자동장전장치까지 달린 물건을 쓰려면 당연히 포탑도 재설계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으니까.

이렇게 군비를 감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쟁을 이기더라도 누군가가 승자가 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지브롤터를 접수하고 영국을 박살냈지만 돈과 인명은 잔뜩 소모하고 군함은 상당수 날려먹고, 위치상 변변한 배상금을 얻기도 어려울 우리가 승자인가?

브리튼에 복수하자는 일념으로 브리튼 전 지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시작했지만, 이를 위해 막대한 비용과 생명을 쏟아부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폭동으로 인해 두 나라 사람들의 피로 브리튼을 붉게 물들이는 아일랜드가 승자인가?

아니면, 전쟁 내내 탱커 역할을 하면서 해군력은 소멸에 준하는 피해를 입고 인명 피해도 러시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냈는데 영토는 폴란드 일부 정도나 겨우 얻어낸 프로이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연방에 가맹시켰지만 심심하면 일어나는 반란으로 여전히 피라는 피는 잔뜩 흘리고 다니는 남독일 연방?

아예 공중분해된 오스트리아-헝가리나 캐나다랑 본토, 인도를 잃어 호주로 도망간 영국은 논외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자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느라 연방안 합의도 전쟁을 일단 끝내기 위해 간신히 나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전에 준한 정권싸움이 벌어지는 이탈리아 연방? 한 번의 전쟁으로 영토를 한참 넓혔지만 그 영토를 유지 못해서 영국 식민지 관료들에 의존하는 이스라엘? 내전 중인 러시아?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뒤집어엎은 내전에 여전히 고통받는 스페인? 아직도 멕시코와 캐나다에 수백만 대군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 그래, 미국은 장사는 엄청나게 해서 돈을 벌어들였고, 거기에 북미 통일도 했으니 승자라고 치자. 중화민국은 전쟁 내내 장사 잘 했지만, 돤치루이의 군사독재체제로 이행되고 있고, 전쟁 끝나자마자 경제 지표가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유럽 대륙의 국가 중 만족한 국가가 어디 있는가, 프랑스 국민들은 칼을 뽑았으면 이베리아나 이탈리아라도 가져오자는 정신나간 주장을 하는 우파와 국가 경제가 파탄나게 생겼는데 지금까지 먹은 걸로 만족하자는 좌파로 갈려 개판이 났다.

아일랜드? 그 군국주의로 폭주 중인 국가? 그놈들은 아주 그냥 파시즘의 효시 나셨다. 성인 남자 징병률 95%라니, 물론 성인 남자 중 95%를 군에 상시 잡아놓는다는 게 아니라 남자 95%가 군 복무 경험이 있을 정도의 강력한 징병제를 운영한다는 의미다.

그마저도 모자라서 여자들도 징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뭐 답 나왔지.

프로이센은? 당장 심심하면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내년에 프로이센에 가보니 빌헬름 2세는 쫓겨나고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해먹고 있어도 안 놀랄 자신 있다.

내전급의 반란이 상시 지속중인 남독일과 이탈리아는 아예 전쟁이 안 끝난 수준이고, 심지어 스칸다나비아 국가들도 쑥밭이 됐다. 이스라엘도 영토 지키느라 우리 프랑스의 우량고객이 되었고, 정권도 혼란스럽다. 러시아는그냥 예측불허고.

스페인은 내전 양상이 너무 복잡하니 저놈들은 내전 끝나고 어느 놈이 정권 잡는지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할 판이니 소련과 별로 다르지 않다. 청군도 내정은 개판이고, 백군은 나름 알렉세이 차르가 어떻게 안정화는 시켰다지만 오래 지속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중국은 아무리 봐도 파쇼 냄새가 풀풀 나고, 미국은 모르겠다, 그놈들이 공산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파시스트만 집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설마 미국에서 로마 진군 같은 일이 일어나겠냐마는,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 연방이 들어선 지금 무솔리니는 로마 진군 같은 거 못하고, 한다고 해도 주 하나만 장악할 수 있을 뿐이니 여기서는 무솔리니는 평범한 극우 인사로 남으려나.

히틀러는 모르겠다, 롤모델이던 무솔리니가 정권 못 잡으면 그놈은 어디로 튈지, 설마 어디서 빨간 물이 들어서 오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우리는 슬슬 핵무기의 개발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물론 핵무기의 실제 배치까지는 아직 3년은 더 있어야 할 걸로 보이지만. 일단 앞으로 나올 무기가 어떤 무기가 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 정도는 관련자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대륙간탄도미사일 같은 건 아직 없고, 순항미사일도 격추당하기 쉬운 데다 간신히 영불해협이나 넘을 정도, 폭격기로 쓴다고 해도 제공권을 장악한다는 보장도 없기에, 나와 군의 똑똑한 사람들은 여러 아이디어를 짜냈다.

먼저 폭격기로 못 쓴다면 열차포로 원자폭탄을 쏜다, 더 경량화되면 야포로도 쏜다, 이게 육군의 해결법이었고 해군은 프랑스 해군의 마지막 전함, 샤를마뉴를 개장하자는 제안을 했다.

일단 포탄을 최대한 경량화해서 16인치 포에 우겨넣고, 최대한 장사정 사격을 가할 수 있게끔 주포도 개장하고, 장갑을 줄여서라도 속도를 확보한다.

이들의 개장안에 따르면 대충 장갑은 14인치 방어가 확보될 정도로 줄이는 대신 핵포탄을 다수 탑재하며, 목표 최대사거리는-명중률을 때려치운다는 전제 하에-60km 정도를 확보한다. 만일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보조 부스터를 달든 해서 플루토늄 코어 핵포탄의 9발 일제사격을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아직 핵무기의 위력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모른다, 기술이 그쯤이니 위력도 히로시마 원폭 정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우리도 터트려 봐야 안다. 그래도 60km 밖에 있는 전함을 단번에 전투불능으로 만들 정도는 아닐 테지만. 일격에 주요 항구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SSBN만은 못해도 엄청난 전략병기다. 한반도에서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부산, 인천 등에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예 포탄 한 방에 수도가 증발하면 국가적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우리야 수도가 내륙에 있으니 안전하지만, 미국의 뉴욕이 날아가거나, 영국 런던이 날아가거나, 일본 도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이탈리아의 로마와 베네치아, 포르투갈 리스본 등이 일격에 증발하면 제대로 된 전쟁 수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로마는 항구도시는 아니지만 해안에 인접헤서 포격하면 충분히 사거리 내에 넣을 수 있고. 호주도 시드니와 멜버른, 브리즈번 등의 주요 도시가 날아가면 그냥 망하는 거다.

미사일 나오기 전까지는 포탄이 가장 확실한 핵폭탄 운반 수단이다. 우리가 미국도 아니고 항상 제공권을 잡을 거라 장담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거기에 대함 핵포격의 경우, 전자기파로 인해 레이더-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있긴 있다-가 마비되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내가 전생에 주워들은 게 많아서 말이지.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핵이 터질 때 나오는 EMP가 전자기기를 박살내버린다는 건 안다.

정 안 되면 아예 핵을 높은 공중에서 터지게 세팅을 해서 핵 한 방으로 떼거지로 몰려오는 항공기들을 핵폭풍으로 싹쓸이하든가.

방사능에 대해서는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발언하면 핵투하에 주저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원 역사에서도 몇몇 과학자들이 너무 비인도적인 무기로 전 세계에 이 무기를 공유해야 평화가 유지된다는 망상을 하면서 공산권에 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유출하는 스파이짓을 했다.

내가 핵무기의 실체를 까발리면 같은 일이 안 터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모두가 이 무기를 놓고 ‘존나 짱센 포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낫다. 아예 신종 화약 같은 걸로 인식하든가.

그거 가지고 죽어서 지옥을 가게 된다면....

가야지,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죽인 인간 수만 생각해도 천국 가긴 이미 글러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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