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적과 백(2)
세상이 미쳤다.
그 단어 외에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공산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군이 우발적으로 발포했습니다, 지난 공세가 작전목표는 달성했지만 사상자가 너무 컸다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보입니다.”
“젠장. 발포했다면 글렀다. 당장이라도 폭동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 남독일 연방은 아직 조용한가?”
“그쪽은 아직 괜찮은 듯 합니다.”
“이탈리아 쪽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제법 많고, 전선군이 영향을 받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남독일 연방에 오스트리아로 진격할 준비, 그리고 이탈리아로 넘어갈 준비를 하라고 해, 스위스 정부에게 연락해서 유사시 우리 군이 요구했을 때 즉시 국경을 개방하지 않을 경우 침공할 수도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영세 중립국이고 외교적 결례고 나발이고 지금 사정 봐줄 시간 없다.
“스페인은 어쩌시겠습니까?”
“영국 파견을 위해 준비하던 2군과 5군을 즉시 그쪽으로 투입한다. 아일랜드인들에게 병력을 더 내놓으라고 해. 아일랜드 놈들이 내놓는 만큼 우리 병력을 뺀다.”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오스트리아의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은 관계로 황제가 헝가리에 임시 수도를 두겠다고.....”
“그쪽은 안전할 것 같나? 위험하긴 마찬가지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가두연설을 해야겠다.”
“위험합니다. 암살 가능성이......”
“걱정 말도록,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암살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기는 더 어려울 테니까.”
***
헝가리, 솜버트헤이.
“황제 폐하, 헝가리에 도착하신 걸 환영합니다.”
“고맙네. 대공은?”
“브타리슬라바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렇군.”
한숨을 쉰 루돌프는 중얼거렸다.
“러시아 황족 꼴은 당하고 싶지 않으니.”
분위기가 안 좋은데도 궁전에 얌전히 머물러 있다가 여름궁전에서 아내와 함께 폭사한 차르의 전철을 밟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아직 충성스러운 이들이 남아 있는 헝가리로 빠져나가서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대응하는 것이 낫다.
설령 러시아처럼 내전이 일어나더라도 헝가리와 보헤미아만 잡고 있으면 된다. 오스트리아에는 제대로 된 산업기반이 없이 금융과 정치 중심지라는 입장만으로 먹고살던 나라다.
산업은 보헤미아가, 그리고 농업은 헝가리가 책임지고 있다. 프랑스도 지원해줄 테니 스스로 말라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사방이 공산주의자들의 테러입니다. 각별히 신변에 유의하십시오.”
“알겠네.”
의전을 위해 병사들이 모여들었고, 황제의 방문 소식에 군중들도 모여 있었다.
황제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리볼버 권총 한 자루가 황제를 겨냥했다.
***
-타앙!
총성이 울렸다.
“피하십시오!”
그 순간 두 번째 총성이 울렸고, 고통이 엄습했다.
아프다.
‘썩을, 갈비뼈에 금 간 것 같아.’
최소한 피멍이다. 이거.
그 생각을 할 때쯤에는 경호원들에게 끌려내려온 뒤였다.
“황제 폐하, 괜찮으십니까?”
“방탄복에 막힌 것 같네만, 아파 죽겠네.”
“총성이 두 번 울렸습니다. 한 발은 빗나간 것 같습니다만....”
“범인은? 잡았나?”
“프롤레타리아 혁명 만세! 독재자에게 죽.....”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고함을 들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망갈 생각이 없었나 보군.”
“시민들이 잡아 팹니다, 죽이면 안 되는데.”
“산 채로 잡아서 법원에 넘기게, 때려죽이면 안..... 아윽. 어떤가?”
“멍이 좀 크게 들었습니다. 얼음 가져오겠습니다.”
“탄환은 막아도 멍은 못 막는군.”
“탄환 막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죠.”
“그건 그렇지, 갈빗대 나간 것 같나?”
“잠시만....”
“아프네, 누르지 말게.”
“일단 부러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X선 촬영을 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X선?”
그러고 보니 그런 게 나올 때가 되었던가, 아니, 이미 나와 있었나.
“황제 폐하!”
“괜히 호들갑 떨지 말게, 암살자는 잡혔으니.....”
“연설은 중단하시고 즉시 귀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암살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방탄차량이 오고 있으니.....”
“나라면 다음 테러는 폭탄으로 하겠네. 차 안이랑 이동 경로 꼼꼼하게 수색하라고 하도록.”
“알겠습니다. 즉시....”
“황제 페하, 그게 아니라 긴급한 사안입니다.”
“내가 총 맞은 것보다도 긴급한가?”
“루돌프 황제가 암살당했습니다.”
“뭐?”
“열차에서 내리던 와중에 괴한이 권총을 난사했답니다. 적색테러입니다. 황제 본인은 죽었고, 총에 맞아 발생한 부상자도 몇 있습니다.”
“이런 젠장......”
“그리고 베를린에서도 폭탄이 터졌습니다. 황족들과 고관들이 승전 기념식을 하고 있는데 폭탄이 터져서 두 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장군 중 네 명이 중상이랍니다.”
“명단은?”
“보고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스마다 사상자 명단이 달라서.. 현지에서는 죽은 건 한 명이고 5명이 중상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대사관 보고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빌헬름 2세의 생사 역시 불명입니다.”
“.........”
“단순한 테러가 아닙니다. 철저히 연계된 시도입니다. 당장......”
“군 병력에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해,”
“폐하, 전선 사령부로 가시는 게.....”
“프랑스에서 파리를 잃으면 이미 진 거다. 외국과의 전쟁이든, 동포와의 상잔이든.... 난 파리를 지켜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건재하다는 걸 국민에게 확인시키는 거다. 지금 의회로 가겠다.”
“의회입니까.”
“그래, 국민의회에서 연설하겠다, 설마 거기까지 암살자가 들어오지는 않을 것 아닌가?”
“확실히.... 암살자를 심을 틈은 없을 겁니다. 튈르리궁으로 가시면 가시지 설마 의회로 가시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테니까요.”
“폐하,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내부수색도 이미 완료했습니다.”
“알겠다.”
***
스위스-바이에른 국경.
“저, 병장님?”
“뭔데.”
“저거.... 저거 군대 아닙니까?”
“뭐? 그게 무슨 개소.....”
“컥!”
순간, 국경초소의 두 병사는 자신의 생명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목에 깊숙하게 난 자상에서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진 스위스군 초병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수많은 병사들이었다.
스위스가 이탈리아로 가도록 길 내놓으라는 프랑스의 국경개방 요구에 대해 빙빙 돌렸지만 결론적으로 ‘좆 까잡수셔’라고 답변한 직후 이탈리아 전선이 급해지자 프랑스의 사주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수습하기 위해 움직인 남독일 연방의 전면적인 스위스 침공이었다.
***
“이런 젠장, 프랑스 국경은 대비했는데 남독일 연방이라니!”
“바이에른군이 셀 수도 없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약 60만으로 추정되는....”
“60만? 어디서 그 많은 병력을 내! 저놈들은 오스트리아로도 간다면서!”
“그건......”
“이쪽에 총력을 집중했든가, 아니면 블러핑이야, 당장 프랑스 전선.....”
“프랑스군의 통신이 국경지대에서 급증합니다. 명백히 공격 징후입니다.”
“차라리 예방전쟁을 시행하는 게....”
“우리가 희망이 있는 건 방어전이오! 프랑스를 상대로 예방전쟁? 스위스 장병들 전원을 시체로 만들려고 작정했소?”
“이탈리아 인민 공화국을 자칭하는 공산반군이 알프스 이남에 도달했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뭔가 대책이 있어야.....”
“벌써? 아니,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밀어붙이고 있다지 않았나!”
“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이 자중지란으로 무너졌습니다. 그 대군이 순식간에 패잔병 무리로 변했단 말입니다!”
그 뜻은 하나뿐이었다.
남쪽에는 공산군, 북쪽에는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면 그냥 니들 다 죽여버리고 내려간다’고 선언하고 진격해오는 남독일군.
세계혁명을 외치는 저자들이 스위스라고 우회해 갈 리가 없으니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마저 무너져내리면 바로 스위스군이 저 빨갱이들을 맞이할 판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황제가 암살당한 뒤로 빨갱이들이 자기 세상이라고 활개치고 다니고 있고, 계승 1순위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보헤미아에서 군을 이끌고 있다.
사방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낙원이 도래하는 게 눈앞으로 보였지만, 각국 정부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도리어 치킨 게임을 걸고 있었다.
프랑스와 브리튼 제도의 경우 공산주의자들은 빠르게 섬멸당했다. 황제 암살 시도가 그들의 한계였고, 브리튼 제도에서는 아예 군의 색출작업으로 섬멸되었다.
아일랜드 역시 마찬가지, 오히려 군국주의 국가인 아일랜드에서는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공산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라인의 동쪽은 사정이 달랐다.
***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로 남독이 성공적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북독에서는 공산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카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그 두 사람이 주동자라고 합니다.”
“러시아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보헤미아와 헝가리를 방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혼란.
아니, 이건 혼란 정도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대혼돈, 카오스.
나는 어지럽게 널브러지다시피 한 전황을 보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원 역사에 비해 상황도 훨씬 나았을 텐데 왜 무너진 거지? 역시 남독과 북독으로 나뉜 게 문제인가?’
원인은 찾아 해결하기에는 역사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일은 이미 일어났다.
“폭동이 일어났다지만 진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러시아인들의 공세입니다. 무장 수준이 낮지만 족히 수백만에 달하는 군대가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으며, 수적으로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완전히 탈락하고, 전선에 있던 부대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된 프로이센군이 전선을 좁히느라 총퇴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봐도 너무 전선이 넓어지기는 했다.
“러시아군의 포격이 굉장히 정밀해 예비대의 투입이 어렵답니다. 게다가 적들이 정예 충격보병들을 상당히 능숙하게 운용하는데, 상대 지휘관의 역량이 굉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 브루실로프인가.”
내가 잘은 모르지만 브루실로프가 포병과 충격보병의 운용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는 건 어디서 주워들었다.
“러시아 공화국 내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이 연립정부를 붕괴시켰습니다. 다만 모든 부대가 충성하는 것은 아니기에....”
“브루실로프 장군이 적들을 지휘하는 게 맞다면, 그게 전선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다.”
아주 오래 전, 한 책에서 읽은 내용에 따르면 브루실로프는 국가를 지킨다는 쪽에 모든 걸 다 바치는 사람으로 안다.
그 충성의 대상은 차르나 공산당이 아닌 국가이므로,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전선의 모든 부대를 휘어잡고 싸웠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애초에 발칸 방면 전선을 브루실로프가 담당하고 있었다면 본토가 불바다가 됐는데도 발칸 방위군이 지형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굉장히 잘 싸운 게 설명되는군.’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절망적인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도 발칸 전선은 굉장히 러시아가 선전한 편이었다.
“북독일군은 모든 전선에서 철수 중입니다.”
“보헤미아와 헝가리가 빨갱이들에게 무너져내리면 전선이 거의 두 배로 늘어, 나라고 해도 후퇴할 수 있을 때 후퇴하겠지.”
그 한도야 동프로이센까지겠지만.
이유? 뻔하다. 동프로이센은 프로이센 스스로도 양보할 수가 없는 지역이니까.
대충 잡아도 프로이센 혼자 담당해야 할 전선을 잡으면 현 시점에서 3400km에 달한다. 게다가 이 전선들은 딱히 방어할 중간 거점도 없다.
“독일군이 남부에서는 드네프르 강에 의지해서 방어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강은 평시의 국경으로는 좋아도 전시에는 산맥이 훨씬 방어하기가 좋은데...”
문제는 그런 산맥이 없다. 남쪽에야 발칸과 다른 지역을 가르는 큼지막한 산맥이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어렵다.
‘재수없으면 독일 야전군들이 죄다 쌈싸먹히겠군.’
설마 러시아 제국군이었던 놈들이, 혁명까지 얼마 전 겪었는데 그 정도 기동력과 전투력을 발휘하겠나 싶지만 언제나 만일의 가능성은 있는 법이었다.
“다만 북독일 연방의 군부가 지금까지 점령한 넓직한 영토를 모조리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건 놀라운데, 아무래도 브레멘의 공산 반란이 영향을 준 건가?”
“적어도 엉덩이를 걷어차주는 역할은 했겠죠. 뭣보다 당장만 넘기면 다시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니까요.”
우리는 동부전선에 제한적인 개입만 했다. 논공행상도 까다롭고 무엇보다 영국을 저지한다는 명분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영국이 이제 망해간다, 왕실의 소재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영국 본토의 마지막 항전지역이던 스코틀랜드도 몇몇 거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제 도망갈 곳이라고 해 봐야 호주 정도일까. 캐나다도 슬슬 미군의 물량공세에 망해가는 차고.
그러니 우리 군도 본격적으로 전선에 투입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가 봐도 이 공세는 러시아의 마지막 발악이다.
지금 러시아에는 남아도는 게 사람뿐이다. 물자도 좀 있긴 있겠지만 여유로운 수준은 절대 아닐 게 뻔하고, 무기도 부족할 터.
이번 공세가 성공해서 우리 군에게 치명타를 주면 협상을 시도할.....생각은 있으려나? 내가 알기로 초기의 공산당원들은 세계혁명론을 떠들면서 아예 외교부도 폐쇄했었다는데.
어쩌면 자기들이 병력이 대규모로 갈리면서 염전론으로 인해 여론이 폭발하면서 혁명이 성공했으니까 우리도 병력이 대규모로 갈려 보면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
‘왜 그럴듯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