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백래시(2)
벨라루스 서부, 빌레이카, 민스크 북쪽 약 60km.
-콰앙!
전차 한 대가 포탄에 맞아 불덩이가 되었다.
“격파!”
“계속 쏴!”
“다수의 적 보병 접근 중!”
총알들이 빗발치듯 하늘을 날았다.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지도 못한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쌍안경으로 전장을 바라보던 장교는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빌어먹을 놈들, 총도 제대로 안 들려준 놈들을 죽으라고 밀어넣다니.”
전장은 그야말로 총기 박물관이었다. 나폴레옹 전쟁기에나 썼을 법한 플린트락 머스킷조차 전장에서 발견되는 판이었다.
지금이 중세시대인 마냥 냉병기를 들고 나온 적들도 있을 만큼 러시아군의 무장수준은 형편없었다.
아니, 저게 러시아군이 맞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적 병력은 대부분 아시아계입니다. 장교들은 백인도 있었습니다만, 절대다수가 아시아인에 군복도 제대로 입지 못했습니다. 명백히 이상합니다.”
“어디 극동에서 총알받이를 끌어오기라도 했나?”
“그랬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벌써 러시아군의 징집 자원이 전부 소모되지는 않았을 텐데.......”
“모를 일이지. 뭔가 다른 게 문제일지도.”
“대규모 반격이라도 준비하기 위해 예비대로 뺀 걸까요?”
“배제할 수는 없겠지.”
***
“잔 다르크급 항공모함의 추가건조 예산이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신형 뇌격기의 개발안건도요, 전함파 제독들은 불만스러워 할 수 있겠습니다만......”
“지금은 전함보다 항공모함이 더 급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신형 뇌격기의 풍동시험 모형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중반전 프로펠러에 폭장량이 3.6톤? 무슨 폭격기인가?”
“3인승 항공기니까요. 어뢰도 4발을 투하할 수 있습니다.”
“뭐, 컨셉 자체는 좋은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이미 제트 추진 전투기 역시 열심히 연구되고 있었다. 기존의 펄스제트 전투기의 계보는 펄스제트는 전투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성적표만 받아내고 끊어졌지만, 이를 대신해 1세대 제트전투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트윈붐 꼬리날개에 후퇴익과 쌍발 엔진을 장비하고, 공대공로켓과 기관포, 폭탄 등을 장비하겠다는 계획이다. 전자기기는 아직 공학기술만큼 발전하지 않아서-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고-내가 바라던 공대공 미사일 같은 물건은 없었지만, 충분히 강력했다.
‘핵무기가 개발되면 핵투하용으로도 써먹을 수 있겠지.’
물론 핵물리학의 기초부터 열심히 쌓아올리는 중이다 보니 10년은 걸릴 것 같긴 하지만.
이 두 종류의 항공기를 탑재한 개량형 잔 다르크가 나오면 바다는 어지간해서는 걱정 없을 거다. 물론 대잠세력과 호위세력을 계속 확충하기는 해야겠지만.
“영국 상황은 어떤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랬겠지.”
“영국 정부가 협상을 애걸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방침은 정해졌다. 무조건 항복 외의 협상은 없다. 계속 저항하면 포로들을 아일랜드에 전부 인도하겠다고 협박이라도 해. 아일랜드 국가판무관부 같은 게 런던에 세워지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흘리고.”
“브리튼 섬을 아일랜드에게 넘겨주실 생각입니까?”
“그쪽 하는 거 봐서.”
물론 이 상황에서 아일랜드인들에게 브리튼을 통제하라고 하면..... 아마 아일랜드 섬은 남자가 모자라서 여자들까지 징병해야 할 거다. 인구수 차이가 얼마인데. 당연히 영국 본토는 아프가니스탄급 지옥도가 펼쳐질 거고.
아니,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독소전쟁이라고 해도 될 거다. 아일랜드군은 미군처럼 신사적으로 상대하는 게 아니라 인종청소로 대답할 테니까.
즉, 아일랜드가 아니꼽거나 영국이 반항적이라면 그냥 둘을 도로 묶어버릴 수 있다. 그 다음에 일어날 일? 우리가 알 바냐.
“인도, 캐나다, 호주, 전부 이참에 분리독립시키지.”
“캐나다와 인도가 전부 공격받는지라 영국인들은 호주에 망명정부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뉴질랜드에서 공격해봐야 호주 정도면 스스로 방어가 가능하니 말입니다. 그쪽까지 대규모 원정군을 보낼 여력도 사실 부족합니다.”
“저놈들이 호주에서 망명정부 놀이를 하든 말든 간에 상관없다. 우리의 목적은 애초부터 대영제국의 해체와 러시아의 거세였으니까.”
러시아, 독일, 영국, 전부 상잔시켜 무너트리고, 프랑스가 군림한다.
나폴레옹 체제의 부활이다.
물론, 당대의 나폴레옹은 그 패권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지만, 나는 다르다.
20세기 이후 전 세계의 패권이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게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 누름돌, 최종병기가 있으니까.
‘무슨 짓을 해도 전면전으로 프랑스 제국을 해체하는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날이 전 세계의 종말이 된다면.
패권을 거부하는 그날 모두가 다 같이 망하고 만다면, 자폭 버튼을 건드릴 간 큰 놈이 어디 있을까?
물론 그 패권을 대서양 너머까지 뻗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럽연합의 맹주 정도.’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가능하지도 않다, 프랑스 체급으로 미국과 소련에 맞먹는 초강대국을 길러내서 냉전이라도 벌인다? 가능하겠는가?
뭐 유럽연합의 맹주가 되어서 유럽을 한 개의 기치 아래 통합한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건 유럽연합의 맹주로써 하는 거고, 프랑스 자체의 체급을 그렇게 키우기는 까놓고 말해 불가능하다.
“영국이 무너지면, 총력을 동부전선에 집중한다. 러시아 놈들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러시아 제국은 망한다.
“러시아 제국 하니까 그 아가씨 생각나네. 아나스타샤, 그 여자는 뭐하나?”
“제가 알기로는 별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대문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부에 깔아놓은 정보원들 보고로는 마당 정도나 돌아다니는, 무슨 수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더군요.”
“흐음. 샤를 녀석이 찾아갔나?”
“예, 몇 번 정도.”
“뭐, 그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게 내 관념이다.
게다가 워낙 시대 자체가 고위층의 불륜에 관대한 세상인 데다, 그 프랑스다.
쓸데없이 이혼하겠다고 설치든가 하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다.
‘찰스 왕세자 꼴만 안 나면 되지.’
적어도 다른 황족들이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에게 했듯이 일방적인 따돌림을 가한다거나 하지만 않으면 된다.
근데 다른 황족이라고 할 사람이 없긴 하다. 나랑, 아내랑, 아들이랑, 딸은 시집가서 외국에 나가 있으니 상정 밖이고, 동생은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고. 그 다음은 바로 방계로 빠져야 하니까.
뭐, 시동생이자 내 셋째로 자크 스테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있긴 한데 걔는 아직 어린애라서.
‘그리고 본래 영국 왕실이 다이애나 비를 괴롭힌 건 왕실의 가식적인 분위기에 다이애나 비가 적응하지 못했던 게 원인이었지.’
일종의 왕따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간에 왕실 내에서는 그녀의 편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선 나부터가 황태자의 결혼생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사람 마음이란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부부로써 서로에게 보일 수 있는 존중은 최대한 보일 것, 내가 샤를 녀석 따귀를 후려쳐서라도 그건 확실히 할 거다.
정 안 되면 내가 충분히 오래 산다는 전제 하에 황태손에게 양위해버리는 방법도 있긴 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논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지금, 일단 황태자비가 첫 임신은 한 상태다.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아들이기를 바라고는 있다.
그리고 적어도 고부관계는 그럭저럭 원만해 보인다. 보통 시부모가 며느리의 주 스트레스 원인이란 걸 감안하면..... 난 적어도 며느리에게 스트레스 딱히 줄 일이 없었지, 아마? 애초에 국가원수로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시아버지가 며느리 얼굴 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마는, 적어도 내 정보망에 그들이 크게 다투었다거나, 한기가 풀풀 날린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어온 적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서로에게 사랑이 없더라도 배우자로써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는 보여야지.’
나도 황후의 얼굴도 안 보고 바이에른과 프로이센 간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지만, 사랑 없는 결혼일지언정 서로와 못해도 좋은 친구 정도의 관계는 유지한다고 확신한다.
그 정도만 해도 파국은 막을 수 있을 거다. 정치적인 이유로 맺어진 부부 관계는 반드시 사랑이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써는 존중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국.
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매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주로 경제 파탄과,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공격당할 정도로 악화된 전황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해안가에는 한 척의 장갑순양함이 정박해 있었다. 러시아 제국 해군의 몇 안 되는 잔존전력, 이즈마일이었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항명으로 간주하겠다!”
“지랄하네! 썩은 고기 니들이나 쳐먹어! 이 개새끼들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상륙작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발트 해를 떠돌고 있었던 이즈마일은 상륙작전 진행 동아넹는 꼼짝 못 하고 있다가 전투 종료 후 복귀하자마자 재정비 후 출격을 해야 했고, 다른 함대가 모조리 전멸했다는 걸 알고 있던 수병들의 불안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 와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막 구해온 고기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사건이 터지자, 분노한 수병들은 무기를 들었다.
-타앙!
“컥!”
“무.... 무슨?”
수병 한 명이 총을 들어 식사를 할 것을 강요하던 부장의 미간에 총탄을 박아넣은 순간,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어졌다.
얼마 뒤, 이즈마일에는 노동자 계층의 상징인 적기가 올랐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혼란에 빠졌다.
반란 사실을 인지한 해군성에서는 즉각 이즈마일을 위협하거나, 최악의 경우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간니발 요새에 하달했다.
지난 상트페테르부르크 상륙전 당시 폭격과 포격에 피해를 입어 19인치 단장 포탑과 17인치 열차포, 대형 박격포와 대공포 등의 전투 수단을 전부 상실했으나 요새 주포에 해당하는 20인치 포는 무사했고, 이를 이용해 위협사격을 가해 이즈마일을 압박하고, 유사시 격침시키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요새 주둔군이라고 대우가 개차반인 건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요새 내부의 병사들까지 반란에 참여해버렸다.
이미 러시아 제국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었고, 수병들의 폭동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오히려 진압하러 달려온 헌병대에서도 반란 동조자들이 발생했고, 순식간에 잔뜩 뿌려놓은 휘발유에 불씨가 떨어진 듯, 엄청난 규모의 시위와 폭동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뒤엎었다.
***
페테르고프, 여름궁전. 러시아 제국.
“골리킨! 지금 근위대가 동지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있어!”
“젠장, 화기가 필요해! 소총으로는 못 버틴다고! 저놈들 기관총에 대포도 있어!”
“이즈마일은 어디 갔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동지들을 지원하느라 바빠! 지금.....”
“상황은 어떤가?”
항구에 있던 민간 선박 한 척을 잡아타고 온 혁명 동지들을 본 골리킨은 얼굴을 구겼다.
“병력보다는 대포나 기관총이 필요해, 제기랄! 무기고만 빨리 뚫었어도.....”
“구식이긴 하지만 좀 가져왔네.”
“뭐?”
“이즈마일에서 57mm 속사포 2문, 47mm 속사포 2문, 개틀링포 10문을 내렸네, 지금 이즈마일이 가진 무장은 부포 2문과 주포 4문뿐이야.”
“어떻게? 그거 쉽게 내려지는 게 아닐......”
“이즈마일은 구닥다리 아닌가, 애초에 속사포에 포탑도 없이 그냥 노천으로 기관총처럼 쏘는 형태였으니 연결고리만 빼내면 분리할 수 있네, 문제는 이거 제대로 된 포가가 없어서....”
“괜찮네! 일단 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야!”
“포탄도 탄약고에서 있는 대로 꺼내왔네, 백여 발씩은 쏠 수 있을 거야.”
즉시 환호성이 터졌다. 이거면 지금 전열에서 기관총과 포격에 죽어나가고 있는 전우들을 도울 수 있었다.
소수라고는 하지만 아직 로마노프 왕조에 충성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폭도들을 상대로 상당히 선전하고 있었지만, 이제 폭도들에게 중화기가 들려졌다.
러시아 제국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