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11화 (111/200)

111화 정치적 이유(1)

누가 말했던가.

미합중국의 국민정신은 ‘싫은데’라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합중국은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공화정을 꽃피울 수 있었다.

압제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태생부터 반골의 국가.

누군가가 너에게 반골의 상이라 하거든 미국으로 가라, 가장 미국인스러운 이가 될지니.

근본이 없는 게 근본인 미합중국의 국민정신은 미군의 지휘권을 외국에 넘기는 데 결코 동의하지 못했다.

프랑스군은 미군의 지휘권을 뺏어서 휘하에 편입시키거나, 최소한 프랑스 제국과 함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를 바랐지만, 당장 프로이센도 그런 협의체가 구성되지 않고 연락장교나 몇 명쯤 두는 판국에 미국인들이 그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의 관계는 그나마 낫다, 상대하는 국가와 전선이 철저히 분담되어 있으니까.

프랑스는 스칸다나비아와 영국, 프로이센은 대러시아 전선, 남독일 연방은 대부분 발칸,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탈리아.

이를 통해 군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통합기구가 없다는 문제를 어느 정도 무마했다, 그러나 조금만 발을 맞출 일이 생겨도 유대는 순식간에 박살나고는 했다.

당장 미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군이 압도적인 우위로도 번번이 큰 피해를 입는 걸 못 면한 이유는 군함의 설계 문제나, 함급 문제나, 숙련도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력함들이 거의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지리멸렬한 행동을 보였던 탓이었다.

해상에서는 내륙국인 남독일 연방 빼고 머리가 네 개인 꼴이니 몸통도 네 토막이 나서 자기들끼리 행동하는데 왕립해군은 지휘부가 하나뿐이고, 러시아 해군이 낀다고 해도 둘밖에 없으니 혼선은 확실히 줄어들고 조직적이고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피해를 입어도 결국 프랑스군은 상륙에 성공했고, 제해권을 장악했으며, 영국과 러시아의 해군은 일소되었다.

그러니 그 이후에라도 머리를 하나로 합칠 생각이 안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역마다 타국의 사단급에서 군단급 부대를 부대째로 넘겨받아서 각 군단이나 야전군 휘하로 편입해 전선에 투입하는 경우는 제법 있었지만, 그 경우에도 통수권 문제로 진통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다른 머리 넷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면 미국도 자존심을 꺾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는 그 머리들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미국이 상륙을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고, 남독일 연방은 프로이센의 의견을 대체로 따라갔으며, 프로이센은 막말로 미군이 다 죽어나가도 러시아군의 예비대가 손실되거나 제때 증원되지 못하게 만들어 육상 방어선을 붕괴시킨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점령할 수 있다면 미군의 목숨 따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되려 경험이 부족한 미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일부 병력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하는 등 부채질을 했고, 말리려던 프랑스는 뒷목을 잡았다.

정작 베이커 장관은 프랑스와 자국군 장성들의 합리적인 반대를 듣고 뜻을 접고 싶었지만, 압력은 장관보다 더 윗선에서 내려왔다.

윌슨 대통령은 애초에 철두철미한 정치가다.

이는 곧 민심에 민감하다는 것이며, 미군의 활약으로 고립주의자들의 입을 닥치게 하고 국민을 열광하게 할 재료가 필요했다. 안 그래도 선거철이 아닌가.

게다가 계속해서 들려온 승전보는 미군의 장성들마저도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리, 사실은 강한 게 아닐까?’하고.

게다가 프랑스는 지상군과 해군력의 동원만 거부했을 뿐, 무기 지원은 해주었기에 그 와중에도 미군의 무장에는 큰 차질이 없었다.

프랑스는 단순히 공을 뺏길까 봐 졸렬하게 미국의 발목을 잡는다는 시선이 형성되자, 이미 상륙작전의 진행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

“이건 미친짓이네.”

퍼싱은 한숨을 쉬었다.

“더 나쁜 건 그 미친짓을 내가 해야 한다는 거고.”

“프랑스 측은 손 뗐습니다. 무기는 팔아줄 텐데, 딱 거기까지만이고 더 이상은 기대하지 말라는 식입니다.”

“제기랄.”

한 번 크게 데여 보면 정신차리겠지, 프랑스 측의 반응은 사실상 그것이었다.

“다행히 북독일 연방, 남독일 연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일부 부대를 차출해 보내준답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5개 사단, 북독일 연방 1개 사단, 남독일 연방 1개 사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개 사단이면 총 8개 사단이군.”

캐나다에서도 전투가 진행 중이니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없다.

“지휘권은 우리 쪽에 넘겨주겠다고 확언했습니다. 이들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남북독일군을 선두에 세운다. 그 다음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이다, 전부 전선에서 제법 경험을 쌓은 부대니 우리보다야 낫겠지.”

해병사단 1개와 육군 3개 사단은 실전을 겪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 위치,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해보라고 전선에 던져지면 막대한 희생을 낼 가능성이 다분했다.

수송선들은 전부 민간 용선, 소해함들은 징발된 어선들, 이래서야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다행히 해군력을 총동원해서라도 지원해주겠다지만, 그래도 불안요소가 많네.”

성공하면 정계 진출과 대통령도 무리가 아니겠지만, 실패하면 그대로 나락.

그런데, 도저히 성공할 것 같지가 않았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간니발 요새.

“대공 전하.”

“쉬게.”

키릴 대공은 눈으로 요새를 슥 훑엇다.

간니발 요새는 전쟁이 시작된 뒤에야 부랴부랴 부지를 잡고 착공했지만, 기록적인 속도로 건설되고 있었다.

“이즈마일에서 내린 3문의 어뢰발사관을 수중 어뢰발사관으로 개조해 매복시켰습니다. 기뢰와 해안포와 조합하면 적 함선을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즈마일 스스로는 지금 리가 만에 들어가 있지만, 그 일부는 지금 이곳에 남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호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해안포는?”

“열차포 두 문을 진입시켜 요새포로 쓸 수 있는 시설이 있습니다, 520mm 열차포 한 문과 430mm 열차포 한 문이 즉시 동원할 수 있고, 그 외에도 장갑 포탑에 19인치 단장포 1문이 장착되었습니다. 적 상륙시에 대비해 540mm 초대구경 박격포도 1문이 배치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영국제 맥심 1파운더 대공포가 배치되며, 요새 내의 부대도 야포와 기관총을 비롯한 잡다한 화기를 보유한다.

이미 그 외에도 다른 해안포대와 요새들도 비상 경계 태세로 들어간 상태.

하지만 키릴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게 아니었다.

요새 인근의 부두에 연결되어 있는 것들.

거대한 움직이는 성, 이동요새.

전함.

세 척의 항공전함,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국 최후의 전함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배치되어 있었다.

“야음을 틈타 프랑스군이 살벌하게 경계를 서고 있을 덴마크 해협을 통과하다니, 간이 몸무게의 9할은 차지해야 가능한 일이네.”

“프로이센으로 가는 스페인 상선으로 위장한 데다 항행등까지 켜고 통과했으니 가능했습니다. 물론 프랑스 해군이 조사해보겠다고 했으면 전투를 치러야 했겠습니다만.”

“프랑스 해군도 인력부족이 심각하다더군, 숙련된 승조원 다수를 상실했으니 말이네.”

덕분에 프랑스 해군 병력들 대부분의 과로가 심해졌고, 해안경계부대 역시 전쟁 내내 이어진 과로 때문에 검문을 건성건성 하고는 했다.

물론 항행등을 끄고 갔다면 주저없이 조명탄을 띄워 실체를 확인한 뒤 포격을 가해왔겠지만, 대놓고 항행등을 켜고 지나갈 거라고는 예상을 못한 것이었다.

“전함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계속 배치하지는 않겠지.”

“조만간 탈린으로 재배치된다고 합니다. 쾨니히스베르크를 공격할 거라는군요.”

“쾨니히스베르크라, 쉽지는 않겠군.”

“그러나 발트 해 유일한 전함입니다.”

다른 수단으로 대항할 수 있다면 전함이 아니다.

요즘 날파리들이 좀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 날파리들이 혼자서 전함을 격침시킨 사례는 없다. 그저 포위당하게 발을 묶는 정도. 그들의 목적은 정찰과 견제일 뿐이었다.

수백 대 일의 싸움을 일반적인 경우로 보기도 어려웠고.

게다가 이들은 그 두 가지 역할을 전부 수행할 수 있는 항공전함이다.

패배는 선택지에 없다. 오직 승리뿐.

***

파리, 프랑스, 군 최고사령부.

“아일랜드인들이 이번 작전에 합류하겠답니다.”

“그놈들은 또 왜, 전쟁 끝나면 스코틀랜드라도 뜯어가려고 저러나?”

지금 미국은 삼면전선을 치르고 있다.

북부에 캐나다, 남부에 멕시코. 그리고 유럽 전선까지.

멕시코야 뭐 개판이고, 북부 캐나다 전선에서는 그래도 꽤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캐나다가 아무리 미군이 병신이라고 해도 머릿수와 생산력으로 밀어붙이면 답이 없으니까 밀려나는 모양이다. 일단 최소한 미국이 불리하지는 않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선전에 따르면 캐나다는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몇 조각 남지 않은 조그마한 캐나다 지역에서 항전하고 있다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번 전쟁이 끝나면 분명히 캐나다는 미국령으로 흡수될 거다.

멕시코도 마찬가지, 아예 제대로 개전한 미군은 계속해서 남진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반도는 이미 미국 손에 넘어갔고, 지금 진격하는 기세를 보면 못해도 멕시코의 절반 이상은 전후에 미국령으로 넘어갈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멕시코를 통째로 합병하든가.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영토 확장은 멕시코를 미국이 삥뜯은 역사랑 거의 일치하긴 하니까. 이번에 한 번 더 못 뜯을 리 없겠지.

거기에 이번 전쟁에서는 멕시코를 도와 줄 열강도 없다. 정확히는 멕시코 편을 들어 줄 열강이 있기는 한데, 이번 전쟁에서 승전하든 패배하든 간에 걔들이 북미에 관심가질 여력은 눈곱만큼도 없다.

“잘하면 아예 북미를 통일할지도 모르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일랜드군은 지금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영국 상륙이 시작되자마자 스코틀랜드를 공격했고, 1년전쟁기처럼 군 병력을 차출해 우리 군을 돕겠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습니다.”

“아예 영국을 역으로 집어삼키려는 수작은 안 부리던가?”

“영국을 침공한다 한들 그치들이 지배나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무리를 좀 하면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정도는 점령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러려면 잉글랜드도 아예 철저하게 없애버려야겠지만. 그리고 그 잉글랜드를 점령하고 유지할 만한 능력이 있는 국가는 주변에 프랑스뿐이다.

근데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고. 무슨 고대 바이킹들의 군주, 크누트 대왕의 재림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영국인들의 반발을 어떻게 억누르라고? 당장 1년전쟁기에 우리가 영국 본토에서 급하게 물러난 이유가 뭐였는가. 영국인들의 반발을 감당할 수가 없고, 우리가 영국을 계속 점령하겠다고 하면 영국인들도 결사항전할 테니까 적당한 선에서 배상금만 받고 물러난 거지.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을 지배하겠다는 망상을 한다면 맘대로 하라고 해주겠다, 말릴 의무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뒷수습은 자기들 능력으로만 해야 할 거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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