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05화 (105/200)

105화 무제한 잠수함 작전(3)

뉴욕 항. 미합중국.

자유의 여신상이 없는, 그리고 높은 확률로 앞으로 세워질 일도 없는 뉴욕 항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프랑스로 수출될 막대한 양의 무연화약을 적재하고 있던 수송선이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브루클린 전체를 붉은 불꽃과 화염으로 뒤흔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유조선이었다.

대폭발을 일으킨 유조선은 가라앉으면서 대량의 불 붙은 석유를 사방으로 흩뿌렸고, 기름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면서 타오르는 바람에 어퍼 만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황급하게 해안경비대의 함정들이 달려와 기름의 확산을 저지하고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폭발을 일으킨 배들이 침몰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

“이는 명백한 전쟁범죄 행위이며, 미합중국에 대한 적대 행위입니다! 영국은 자국의 잠수함을 뉴욕 항 안쪽까지 침투시켜 어뢰를 사격, 민간 상선들을 파괴했습니다.”

오랜만에 일선에 나온 전직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주먹을 휘두르며 외쳤다.

“미국은 중립을 원했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미합중국이 저들이 적대 행위를 하는데도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미합중국은 맞고만 있어야 합니까? 이 자리를 빌어 저는 백악관에 묻고자 합니다. 영국인들의 편만 들며 중립을 외치는 당신은 영국인들의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미합중국 국민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까!”

지난 대선에서 낙선했던 루즈벨트는 가열차게 우드로 윌슨을 비판했다.

그는 개입주의자였기에, 제국주의자였기에, 먼로 독트린을 재정의해 제국주의 노선으로 틀어버린 장본인이었기에.

물론 그는 태평양 우선주의자이며 패권주의자였지만, 아무튼 간에 미국이 확장할 기회가 온다면 절대 주저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와 주요 정치인들은 현재 미국의 상태에 대해서도 상당히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미 육군은 장비로도, 병력으로도 유럽의 전선에서 구를 상황이 아니었다.

반대로 미 해군은 이미 세계적으로 수준급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을 도우면 미국은 육군을 파병해 파리와 베를린을 점령해야 한다.

프랑스를 도우면 전함 몇 척만 파견해도 된다, 지상전은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이 맡아서 할 테니까.

물론 정말 한 명도 파견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미국 정부 입장에서 느끼는 부담감의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상대가 강한데 나는 약한 부분으로 싸우느냐, 상대와 그럭저럭 해볼 만한 부분으로 싸우느냐를 고르자면 반드시 후자니까.

그리고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태평양 패권이 아른거릴지언정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 나라를 말아먹을 위인은 아니었다.

차라리 전쟁에 지친 프랑스가 관리할 능력을 잃고 미국에게 태평양에 퍼져 있는 식민지를 매각하게 유도한다면 모를까.

그리고, 이미 공화당에서도 버림받아 주권공화당을 창당해서 나가기까지 했던 그가 지지층을 결집하려면 전쟁을 부르짖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전쟁을 원하는 미국인들이 제법 많으니까.

그리고 이를 통해 순식간에 주전파의 거두가 된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곧장 우드로 윌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를 통해 아일랜드계 유권자와 독일계, 프랑스계 유권자 등 천만이 넘는 지지자를 확고하게 확보한 것은 덤이었고, 이 소식을 들은 우드로 윌슨은 진지하게 다음 대선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결국, 윌슨의 고집이 꺾였고, 미 의회는 논쟁 끝에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안을 극히 적은 격차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미군은 상당한 곤란에 빠져야 했다.

***

미국-캐나다 국경에서는 포화가 오갔다.

쓰러진 자들은 대부분 미군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병력이 멕시코 방면에 있었던 데다 각 주도 주방위군의 지원에 인색했으니까.

연방 의회에서도 상하원 모두에서 온갖 언쟁과 입씨름, 타협 끝에 간신히 통과되고, 늙어 퇴물이 된 줄 알았던 시어도어의 노욕에 위협을 느낀 윌슨이 타협을 선택한 탓에 선전포고가 발표된 판이었으니 제대로 된 군사력이 있을 리 없었다.

연방군이라고 해도 10만이 안 되는 판이었는데 거기에 전쟁에 반대하는 주에서는 주방위군이 병력 지원도 거부하고 드러눕는 경우까지 생기자 당장 영국과 전쟁할 지상병력이 있는지부터가 문제였다.

“젠장, 헨리! 재장전!”

7.92mm 버전 루이스 경기관총을 쏘고 있던 병사가 고함을 질렀다.

M1 페더슨 소총을 든 병사가 원반형 탄창을 한 아름 들고 와서 내려놓았고, 탄이 바닥난 경기관총의 재장전 작업을 도왔다.

막상 전쟁을 시작하고 보니 미군의 상태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제식으로 채용된 페더슨 소총은 7mm 페더슨 탄을 쓰는데 루이스 기관총은 7.92mm 마우저탄을 호환하니 이중으로 보급을 해야 하지를 않나, 심지어 징병을 하고 보니 그 소총과 기관총마저 모자란 판이었다.

다급하게 프랑스군의 제식무기인지라 남아도는 브라우닝 소총을 M1 카빈이라는 이름으로 채용하고, 프랑스제 야포를 수입해 와 지급하기로 했지만, 프랑스의 수송선들도 편하게 대서양을 건너는 건 아니었다. 영국 잠수함들은 작정하고 끈질기게 대서양 항로를 파괴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니 병사들과 장교들의 훈련부족과 자질부족은 그냥 애교로 느껴질 정도였다.

-탕! 탕!

구식 장비인 트럼본 소총이 불을 뿜었다. 졸속으로 채용된 페더슨 소총과 카빈마저 전군에 들려주기 충분하지 않았던 탓에 구닥다리 장비들까지도 전선에 꺼내온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합중국의 생산력은 캐나다와는 차원이 달랐기에, 엄청난 헤프닝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미국이 패배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

파리, 프랑스.

“미국이 합류했으니 이제 전력비는 뒤집혔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그대로 영국 본토로 직공할 수는 없지.”

“영국 본토는 저들의 홈그라운드입니다. 어뢰정, 지상 발진 항공기, 잠수함, 다수의 해안포에 기뢰..... 전함 다수를 상실할 각오를 하고 돌입해야 할 겁니다.”

“1년 전쟁과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기에 지브롤터를 제압한다. 그러자면 미 해군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미 해군이 뉴욕급 전함 4척의 지원을 약속했다. 컬럼비아급 전함이 없는 게 아쉽지만, 독일 제국의 프리드리히 빌헬름급 전함 4척이 전부 출격할 것이다.”

“우리 측은 브레스트급 전함 4척 전부를 투입할 것입니다.”

“대서양 함대의 전함을 뺄 여유는 없다. 강구트급 전함들이 지브롤터에 주둔하고 있다. 이들도 가능하면 섬멸한다.”

“해안포 상대만으로도 벅찬데 러시아 지중해 함대까지 상대할 여유는 없습니다, 폐하, 혹시 뭔가 복안이 있으십니까?”

“1년 전쟁 말기에 동원된 수중침투부대를 동원해서 몰타를 친다. 폭침시키면 좋고, 못해도 반파 정도는 시켜야지.”

물론 특수작전이 한 번 통했다고 두 번 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니 타격팀을 보내고, 그 다음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다. 공습부터 감행하면 경계가 확 치솟을 가능성이 높지만, 수중타격을 하고 공습을 가하면 그럴 염려가 없다.

물론 한 번에 네 척을 전부 이탈시키는 건 불가능해도, 한두 척만이라도 발목을 잡아놓으면 란체스터 법칙에 의거해 막대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질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전투력은 병력의 제곱에 비례하니까. 물론 4척 모두 이탈시키면 그야말로 잭팟이다.

더 정확히는 동시에 전투 상황에 놓인 병력의 절반에 비례하고, 이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모든 전략은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시에 전투하게 하느냐에 놓여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다음, 적에게 피해를 얼마나 주었느냐와 관계없이 전 병력을 이곳, 지브롤터 공략에 투입한다. 그러면 적들도 튀어나올 거고, 영국-러시아 연합함대와 싸운다면 이곳이겠지.”

나는 스페인의, 지브롤터 바로 근처에 있는 한 지점을 집었다.

스페인의 카디스에 위치한 곶(만과 반대로 바다 쪽을 향해 튀어나와 있는 지형, 작은 반도라고 할 수 있다, 오타 아님!).

지옥같은 침묵이 깔린 가운데, 한 장성이 입을 열었다.

“트라팔가르.”

나폴레옹의 야망이 좌절된 장소.

그곳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다시 맞붙는 것은 운명인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

사방이 불이었다.

남독일 연방군과 이탈리아 독립군 간의 전투는 치열하게 벌어졌고, 서로를 향해 야포부터 시작해 화염방사기, 수류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보병화기가 퍼부어졌다.

거기에 공습까지 이어졌고, 포탄 몇 발은 산사태를 노려 발사되었고, 수많은 병사들이 생매장당했다.

남독일 연방군의 제식화기인 K13(Karabiner 1913)소총을 든 장교가 고함을 질렀다.

앳된 목소리가 주변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소대 앞으로! 저 이탈리아의 모지리들에게 게르만 민족의 의기를 보이자!”

오늘 막 배치되어 전장의 참상을 모르는 10대 중후반의 꼬마의 행동에 호응해주는 고참병은 없었다.

그저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고 여기는 정도.

사실 그럴 만 했다. 어차피 저런 천방지축들은 사흘도 못 버틸 테니까 괜히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저 철 덜 든 학생들까지 전선에 내보낸다는 결정을 내린 상부를 조용히 욕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소총을 들어 쏴댔다. 대부분의 국가의 제식화기가 반자동으로 변하는 와중에도 혼자 스트레이트 풀 볼트액션을 선택해 연사력이 딸리는 대신 명중률 하나는 높기로 유명한 K13 소총이었지만, 애초에 조준이 잘못되어 있으면 맞을 턱이 없었다.

장전된 7.5mm 탄 6발을 모조리 쏴버린 소년은 클립을 밀어넣어 재장전했다.

“바이에른 만세!”

“엎드리기나 해 멍청아!”

물론 말하지 않아도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포탄 낙하 충격에 자빠진 것이었지만.

“이탈리아 만세!”

그리고 곳곳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저놈들이 또 돌격해온다!”

“기관총! 누가 기관총 잡아!”

“기관총이 망가졌습니다!”

“젠장, 수리할 시간 없어! 착검! 착검해!”

그러자 자빠져 있던 소년도 벌떡 일어났다. 몇몇 병사들이 저 팔푼이 아직도 안 뒤졌냐고 경악하는 동안, 사관후보생 하인리히 힘러는 사제 권총 하나를 뽑아들었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은 선택인 건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권총이 없어서 못 뽑는 거였지만, 근접전에서는 짧은 총, 특히 권총이 있다면 유리하다는 건 상식이었고, 당연히 병사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총을 한두 자루쯤 구하려고 햇다.

그게 구하려고 한다고 구해지는 것만 아니어서 문제였지.

그리고, 하늘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폭격이다!”

“산개해!”

“늦었어! 저 미친 새끼들! 자기편들까지 같이 죽이려는 거야?”

잠시 뒤, 이탈리아군과 남독군이 충돌했다.

그 위로 이탈리아 항공기들의 폭격이 빗발치듯 떨어져내렸다.

알프스는 더 많은 피를 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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