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무제한 잠수함 작전(2)
지중해, 몰타.
한때 몰타 기사단이 있었고, 또 프랑스의 손에 넘어갔다가 이제는 영국의 것이 된 이 섬에서는 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러시아 제국 해군 소속의 4척의 항공전함이.
“네 시간 전, 무르만스크에서 출항한 강구트급 전함들이 지브롤터에 도착했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직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사실 두 나라 모두 타국의 전쟁에 끼어들 여력 자체가 없기도 했다.
“다만 프랑스 해군을 뚫고 그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가능성 자체가 희박해서 문제입니다.”
이탈리아 서쪽의 두 섬,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는 모두 프랑스령이다.
코르시카는 앙시앵 레짐 시절부터 프랑스령이었고 사르데냐는 1년 전쟁기의 참패로 이탈리아 왕국이 붕괴될 때 프랑스령으로 넘어갔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구 지역에는 모두 프랑스 해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즉, 강구트급 전함들이 튀니스 방면을 지나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굳이, 굳이 지나가야 할 이유도 없고.
애초에 강구트급 전함들은 대규모 해상전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여기서는 통상파괴를 할 상대도 없었다.
강구트급 전함이 보유한 18인치 포는 맞으면 전함도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일단 ‘맞으면’.
애초에 지상공격용 구포에 가까운 포를 군함을 상대로 발포해서 맞춘다? 그게 맞겠는가? 박격포로 전차를 맞추는 것 이상의 난이도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함용 18인치 포보다 위력, 특히 관통력도 낮으니, 애초에 함대함 전투용으로 설계된 게 아니라고 봐야 했다.
“강구트급 전함이 지브롤터로 왔다는 건, 수상함을 이용한 통상파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잠수함이 주력이랬지, 미국인들이 비난을 퍼붓는다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인들이 자유무역을 훼방놓는다면서 영국인들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프랑스인들도 경고 없이 잠수함으로 RMS 모리타니아호를 격침시켰던 것이었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기뢰를 건드린 것이라면서 발뺌했고, 사실 잠수함의 짓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남아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사건은 미국에서는 철저하게 묻혔다.
그러나 반대로 S.S 노르망디 침몰 사건은 미국에 보도되었다. 그곳에서 사망한 미국인 4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명백한 편파적인 행보였다.
“RMS 올림픽이 프랑스 순양함에게 어제 또 격침당했네, 생존자들은 프랑스 해군이 아일랜드에 석방했고.”
“제기랄.”
RMS 올림픽은 남미에서 대량의 필수물자를 수송해 오던 차였다. 올림픽이 침몰했다면 남아 있는 물자들의 재고분이 제법 많이 줄어들었을 터.
게다가 프랑스군이 인도로 향하는 희망봉 루트에도 다수의 잠수함과 순양함을 깔아버린 탓에 브리튼 섬에서는 기근이 이어졌다.
당연히 이전처럼 아일랜드를 쥐어짤 수도 없었다. 아일랜드는 독립했고, 영국인들이 다시 자국 영해에 기어들어오는 순간 해안포와 군함들로 화끈하게 환영해줄 테니까.
이미 영국 본토에서는 고기, 곡물, 설탕, 유제품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식료품의 보유량이 위험할 수준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게다가 모든 식량과 기타 등등 온갖 필수품들은 최우선 순위가 전선이었다.
영국인들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건 사실상 없었다. 그나마 후방의 사람들 입에 들어갈 수량이라도 확보된 건 감자와 대구 정도였다.
피쉬 앤드 칩스라도 만들어 먹으면 될 구성이었지만, 식용유도 부족하다고 들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존, 문제가 생겼네.”
“뭔가?”
“본토에 폭격이 가해졌네, 대규모 폭격에 공장들 다수가 박살났어. 군항들도 집중공격을 당하고 있고.”
“빌어먹을.”
“...... 본토 상륙인가.”
“그리고 그 전에 지브롤터를 밟아놓으려 들겠지.”
지브롤터 해협이 열려야만 지중해와 대서양의 함대가 만나고, 영국을 칠 준비를 끝낼 수 있다.
“지브롤터 기지는 바다에서의 위협은 확실하게 막고 있고, 스페인은 여전히 중립이네.”
스페인이 중립을 폐기하고 프랑스에 붙으면 그건 이미 지브롤터를 논할 상황이 아니니 그냥 항복 협상 준비나 해야 할 판이다.
스페인 주재 영국 대사관 역시 지금 굉장히 바쁘다고 들었다. 무슨 수단을 써서든 스페인이 참전하지 못하게 하라고.
심지어 아군으로 참전하는 것도 안 된다. 그럴 경우 프랑스는 냉큼 대규모 부대를 이베리아 반도에 파견해 허약한 스페인군을 단숨에 전멸시킨 다음 지브롤터를 공략할 테니까.
즉 스페인은 중립국일 때 가장 영국에게 유리하다.
“그리고 지브롤터가 진짜 위기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네, 아프리카 해안선에 붙어서 항해해서라도 지브롤터를 지원해야 해.”
다수의 전함들이 그 작전에 투입될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그들이 달려나가 프랑스 해군에 맞서야 했다.
지브롤터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함 몇 척이야 싼 대가였다.
“러시아 제국의 입장은 어떤가, 제독?”
“마찬가지네, 영국 없이는 전쟁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해, 기껏해야 현상유지겠지, 사령부에서도 지브롤터가 정말 위기라면 출격 명령을 내리는 데에 주저하지는 않을 걸세.”
“그렇군.”
***
발칸 반도, 베오그라드.
“엎드려!”
총알이 미친 듯이 날아들어 픽픽 소리를 내며 박혔다. 참호전 돌격대에게 지급되는 기관단총을 든 병사들은 자동으로 반원형 탄창에 든 탄환 16발을 모조리 비워냈다.
반자동 소총을 대폭 개조해서 만들어졌으며 개머리판도 없는 소총탄 사용 기관단총이라는 해괴한 장비였지만, 참호 안에서 휘두르기에는 그만한 장비도 없으며, 일단 주무기라면 화력이 강해야 한다는 군부의 판단 하에 제식 채용된 기관단총의 탄창을 빼낸 상병은 8발짜리 클립을 끼워넣고 다시금 자동으로 갈겼다.
러시아군 병사들이 들려던 머리를 도로 바닥에 쳐박는 걸 본 소대장이 외쳤다.
“돌격 앞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반자이이잇!”
이색적인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러시아군의 복장을 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총검을 겨냥하고 돌격해오고 있었다.
“쏴!”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총성이 울렸다.
“끼야앗!”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적병이 총기고장 때문에 끙끙거대던 병사의 복부를 걷어차 쓰러트린 뒤 그대로 총검으로 내리찍으려 들었다.
곧장 한 손으로 총신을 잡고 내리누르는 힘에 버티다가 몸을 틀어 총검이 바닥에 박히게 하고, 죽을힘을 다해 상대가 총을 뽑지 못하게 하던 오스트리아 병사는 품 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성인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권총을 급히 한 손으로 꺼낸 병사는 장전된 총알 일곱 발을 다 상대의 얼굴에 대고 쏴버렸다.
그러나 얼굴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상대는 인지하지도 못한 듯 그를 죽이려고 들었다.
그 직후 다른 병사가 그의 등에 칼을 찔러넣어 쓰러트렸고, 바닥을 구르던 병사를 일으켰다.
“젠장, 아돌프, 괜찮나?”
“괜찮습니다.”
“그 장난감이 자네 목숨이라도 구해줄 줄 알았나?”
상대의 얼굴에 피를 흘리게는 했지만, 대부분 빗나간 데다 맞춘 것도 두개골을 뚫지 못해 상대에게 변변한 부상을 못 입힌 조그마한 권총을 한심하게 바라본 중사는 소총을 집어다 주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권총 하나 구하라고. 그 병신같은 물건 말고.”
“알겠습니다.”
빈에서 샀다는 그 총 같지도 않은 물건을 마지막으로 흘겨본 중사는 부하를 끌고 갔다.
“자네가 쓴다는 그 원고를 출판하고 싶으면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움직이게! 일병!”
“예, 중사님!”
아돌프 히틀러 일병은 급히 대열에 복귀했다.
***
미합중국은 마침내 국방법을 개정했고, 대규모 훈련 캠프가 지어졌다.
명목상은 멕시코에서 발생한 우발사태에 대한 개입을 위함이었지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를 유럽에서 벌어지는 대전쟁에 참전하기 위함이라고 떠들었다.
“베이커 장관.”
“예, 대통령 각하.”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우리가 유럽에서의 대전쟁에 참여하려고 간을 보고 있다고 말입니다.”
윌슨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재계의 꽤 많은 인사들, 심지어 정치권의 인사들까지도 이 나라를 은근슬쩍 전쟁에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번 국방법 개정도 분명 그들의 입김이 들어 있겠죠.”
그러나 거기에 반박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각하, 국방법 개정과 신무기 도입은 실제로 필요합니다. 유럽의 전훈을 썩힐 수는 없고, 당장 북쪽의 캐나다를 지배하고 있는 영국이 참전국이라는 걸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캐나다가 미합중국을 침공한다면 연방군은 그에 맞설 능력이 없습니다.”
캐나다는 열강의 군대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한 정예군을 보유하고 있다. 그 병력은 대서양이 프랑스가 수행하는 통상파괴전에 의해 막혀버리면서 오갈 데 없이 놀고 있는 판이었다.
하지만 만일 영국이 침공을 결정한다면 굉장히 위협적인 세력이 될 것도 뻔했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은 얼굴을 구겼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영국인들이 상식이 있다면 이 상황에서 전선을 굳이 늘리지 않을 겁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
“대통령 각하, 외람되오나 국무부에서는 이번 멕시코 전쟁, 특히 판초 비야를 영국이 지원한다는 정보가 포착되어 있습니다. 유사시 영국이 미국을 상대로 개전했을 때 멕시코와 캐나다 양쪽에서 남북으로 공격을 가해 미합중국을 굴복시키고자.......”
“그 정보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프랑스? 독일?”
프랑스 외무부가 황제의 호령에 따라 미국을 어떻게든 프랑스 편으로 참전시키려고 어마어마한 로비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건 정계 내에서는 비밀도 아니다.
아예 전쟁이 끝나면 캐나다를 통째로 미국에게 주겠다고까지 하고 있는 게 프랑스였다.
당연하지만 이것도 그 이간질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미합중국은 참전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정하지요, 내가 백악관에 있는 한 미국은 참전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각하, 외람되오나 국민들의 뜻은 다릅니다. 벌써 세 척이나 되는 미합중국 시민이 탑승한 선박이 경고 없는 공격으로 가라앉았고, 왕립해군은 미국 영해까지도 빈번하게 침범하고 있습니다. 이미 영국은 미합중국을 적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이며, 캐나다에서도 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양면전선을 마주하게 됩니다!”
“멕시코가 영국의 지원을 받는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전선에서 온 보고로는 멕시코인들이 멕시코에 수출된 기록이 없는 영국제 총기를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탄환들이 우리 군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각하.”
“그게 증거가 되면 러시아가 프랑스제 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러시아를 프랑스군이 지원한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러시아군은 현역으로 프랑스제 무기 다수를 사용한다. 블라디보스토크급 전함은 말할 것도 없고 구식 소총부터 해서 각종 프랑스제 장비를 러시아군의 고질적인 장비 부족 탓에 최전선에서 사용한다.
물론 프랑스에서는 더는 쓰지 않는 퇴역장비들이지만, 아무튼 간에 그것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들이다.
‘대체 얼마를 받아먹었길래 단체로 지랄들인지.’
윌슨은 현기증이 났다.
이들은 모두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주의적인 마인드에서 이번 기회에 캐나다를 얻고 싶은 이들, 물론 프랑스의 태평양 식민지까지 받아먹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막말로 태평양보다는 캐나다가 크지 않은가? 그리고 이미 필리핀은 가지고 있고 말이다.
그리고 윌스트리트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 유대계 자본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우려했고, JP모건은 화이트 스타 라인 문제로 프랑스의 편에 섰으며, 기타 금융세력들도 변변한 식민지도 없는 프랑스가 전쟁에서 지면 국채가 휴지조각이 될 것을 우려했다.
프랑스가 미국에서 전쟁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장사에 워낙 열심이었던 탓이었고, 프랑스 국체는 나름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었기에 프랑스 국채를 구매한 이들은 미국에도 많았다.
그러나 프랑스가 초반부터 해군력에 막대한 타격을 입어버리자 프랑스가 나폴레옹 1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진지한 우려가 나오고 있었고, 이들은 당연히 개전해서 영국을 밟아버림으로써 프랑스의 숨통을 틔워 줘야만 프랑스가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미국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미합중국의 해군력은 그들이 볼 때 이미 크게 당해 골골거리는 왕립해군을 확실하게 수장시키기에 충분했으니까.
참전하면 필승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재계에서는 참전을 종용했고, 공화당 역시 참전을 외쳤다.
심지어 영국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민간인 희생자가 계속 나오자 국민 여론도 서서히 뒤흔들리고 있었다.
영국계가 미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지만 그 영국계는 본질적으로 자신이 영국계라는 자각이 그리 없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본국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었다.
반면 프랑스계, 그리고 독일계 미국인들은 자기 조국을 위해 적극적인 로비 활동을 펴고 있었다.
미국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참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