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02화 (102/200)

102화 스칸다나비아 전역(4)

전투함들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호순양함 7척, 장갑순양함 5척, 기타 순양함 4척, 슬루프 2척, 구난함 1척, 등대순시선 1척.

도합 20척으로 구성된 발트함대의 출격이었다.

이 가운데 출격하는 것은 순양함 16척이었고, 슬루프와 구난함, 등대순시선은 각각 후미에서 지원 임무를 맡아 뒤따라올 예정이었다. 등대순시선의 경우 임시로 병원선으로 개조되었으나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무장은 따로 내리지 않았다.

상대인 스웨덴 해군은 경순양함 2척, 장갑순양함 1척, 방호순양함 1척, 기타 순양함 1척, 구축함 11척, 모니터함 3척, 해방함 3척, 어뢰정 25척, 경비정 12척, 기뢰부설함 4척, 무장어선 7척이 있는 상황. 지금까지 격침시킨 함선의 수와 스웨덴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군함 수를 계산하면 적의 전체 전력 정도는 바로 계산할 수 있었다.

모니터함은 해전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전력 외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니 실질적인 전투력은 순양함 5척과 구축함 11척, 해방함과 어뢰정 등등이었다.

“즉 스웨덴군은 어뢰정 중심의 전술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와 정면대결했다가는 필패라는 걸 아니까. 경비정 정도는 등대순시선으로도 제압할 수 있지만, 어뢰정이 기어나오면 곤란해.”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그렇게 훈시했다.

원래 구축함은 어뢰정을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함종, 그러나 함대에는 구축함이 없었다. 잠수함은 상대도 없으니 상관없지만, 어뢰정들이 치고 빠지는 전술을 벌이면 골치아파지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건 독일 해군의 전함이다. 다행히 독일 해군의 전함은 쾨니히스베르크에 4척이, 덴마크 쾨벤하운과 말뫼에 1척씩이 있을 뿐이다, 물론 고속성능으로 유명하니만큼 주의해야겠지만, 이들이 자리를 벗어날 거라는 징후는 현재로써는 전혀 없다.”

“우리의 목적은 예블레 방면의 아군에게 바사에서 출격한 수송선단이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호위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군은 현재 예블레 방면을 기뢰로 봉쇄하려 기도하고 있다. 또한, 고틀란트에서 출격한 적 함대가 이를 엄호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제독은 지도를 내리쳤다.

“우리는 이들을 요격한다.”

그들도 발트함대의 움직임은 알 터, 발트함대 전체가 움직이면 소규모로 부대를 보내봤자 상대가 안 된다는 것 역시 뻔히 알 테니 전 함대를 이끌고 오리라.

“그리고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

보트니아 만, 발트 해.

12인치 포탄이 물기둥을 세웠다.

러시아 제국 해군의 선두에 선 장갑순양함 두 척은 선두의 스웨덴 경순양함에게 포격을 가했다.

사실 구식이라지만 전함으로 분류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포템킨과 이즈마일의 포격은 6인치에 불과한 스웨덴 해군의 경순양함 따위의 방어력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벌써 두 척째의 순양함이 불꽃을 보이며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그 수는 막 세 척으로 늘었다.

트리 스뱌티텔라급 순양함이 달고 있는 320mm 단장포가 스웨덴군 순양함을 적중시켰고, 대구경 포탄은 단숨에 순양함을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제독님, 섬 뒤편에서 적 함선 발견! 구축함 다수 접근 중!”

“놈들을 최우선 목표로 둔다! 발포!”

각종 구경의 함포탄이 허공을 가르고, 물기둥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명중탄 발생! 적 구축함 폭침!”

“스베를리나에서 명중탄!”

“로스티슬라프에서 입전, 적 구축함 두 척째 격침!”

추풍낙엽, 그 말이 실로 어울렸다.

“순양함이 시선을 끄는 동안 구축함을 돌격시킨다..... 야간이었거나 적에게 제대로 된 병력이 있었다면 크게 당했겠어.”

수염을 쓸어내린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명령을 내렸다.

“얼마나 남았지?”

“기동하는 함선은 구축함....... 제독님! 어뢰정입니다! 구축함들 사이에!”

“구축함들 뒤에 어뢰정을 숨긴 건가? 제법 머리 썼군. 블라디미르 모노나흐, 드미트리 돈스코이, 알마스, 노빅, 시노프, 류리크, 바랴그는 어뢰정을 공격하라고 해, 나머지는 순양함들을 마저 정리한다.”

“제독님! 이미 너무 접근을 허용했습니다!”

“어뢰를 투하하면 함선을 돌려서 적 함대에 선수를 향하게 해라, 그리고....”

“너무 많습니다! 적어도 30.....40척은 되어 보입니다!”

“뭐?”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얼굴을 구겼다.

“스웨덴 놈들의 어뢰정은 전군에서 긁어모아도 25척이야, 40척이 어떻게 나와!”

“아닙니다! 지금.....”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총알받이?”

여기서는 포탄받이라 불리는 게 옳겠지만, 정확했다.

어뢰정들과 뒤섞여 달려드는 경비정과 무장어선이 어뢰정에 집중되어야 할 포화를 절반 정도는 대신 받아내고 있었다.

이들을 골라내서 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구축함 한 척과 10여 척의 어뢰정은 함대에 근접하는 데 성공했다.

“적 어뢰 투탄!”

그리고 어뢰들이 흰 항적을 그리며 파도를 갈랐다.

파도로 인해 유폭한 어뢰 몇 개가 물기둥을 세웠지만 대부분은 순양함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왔다.

“어뢰 발사! 100여 기는 되어 보입니다!”

“이런 제기랄!”

족히 스무 놈은 잡았지만, 살아남은 어뢰정들과 구축함이 어뢰를 풀어냈다.

“이런 빌어먹을, 전 함대 회피기동 자유!”

명령을 전달받은 함선들이 회피를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류리크 회피기동.... 맞았습니다!”

“어뢰 3기 접근 중! 회피합니다!”

곳곳에서 상황을 보고하는 부하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포템킨에서도 물기둥이 솟았다.

“포템킨 피격..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염병할!”

순양함부대가 무너지고 있었다.

발트함대가 무너지고 있었다.

어뢰 공격이 그치고 나자, 척 보기에도 아직 멀쩡히 항행하는 함선은 많지 않았다.

그 순간, 기함 오로라에서 폭발이 일었다.

제독 이하 지휘부가 일제히 폭발의 충격으로 나가떨어지는 가운데, 적중한 어뢰는 오로라의 용골을 쪼개버렸다.

발트함대 수뇌부가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

이즈마일, 러시아 해군 임시기함.

전투서열에 따라 기함의 빈자리를 메운 이즈마일의 함교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얼마나 남았지?”

“본함 외 시노프, 로스티슬라프, 이쟈슬라프, 오르페이가 전투를 속행가능합니다.”

단 한 번의 어뢰 사격에 함대의 절반 넘는 수가 전투불능이 되었다.

물론 이들 중 침몰하는 수는 많지 않았다. 어뢰로 인해 기동력을 상실했을 뿐, 내구력으로 어떻게든 떠 있는 수가 더 많았다.

“적 구축함과 어뢰정 부대 재접근 중!”

“가까이 다가오게 하지 마! 다시 갈겨!”

그러나 이미 늦었다. 재장전을 마친 어뢰정 부대에는 해방함까지 합류해 있었고, 해방함 세 척은 격침되는 순간까지 이즈마일조차 좌시할 수 없는 포격을 가했고, 이즈마일을 비롯한 순양함들은 해방함과 구축함부터 격침시켜야 했다.

그리고 확연히 줄어든 순양함들은 다시금 어뢰 사격을 뒤집어썼다.

이번에는 이탈하는 어뢰정들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다섯 척의 어뢰정이 포화를 뚫고 어뢰를 쏘아낸 뒤까지 살아남았지만, 격침당하건 살았건 간에 어뢰 사격권까지 들어온 어뢰정들이 쏟아낸 어뢰 40여 발이 함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회피기동을 계속하던 이즈마일은 아예 어뢰들 사이에 끼어버렸고, 로스티슬라프 역시 그 어뢰들을 피해 아예 전장을 이탈해야 했다. 시노프는 어뢰 네 발을 피격당한 뒤 용골이 부서지며 굉침했다. 이자슬라프 역시 두 발의 어뢰에 피격되었고, 이내 침몰하기 시작했다. 슬루프인 오르페이는 어뢰 세례는 피했지만 아직까지 살아남은 스웨덴 함선들의 앞에 덩그러니 던져진 꼴이었고, 이내 잡다한 전투함들과 혼자 맞서야 했다.

제 체급에 걸맞게 소형함 몇 척을 간신히 잡아낸 오르페이는 생존한 순양함 한 척에 포탄을 적중시킨 직후 6인치 포탄에 직격, 대폭발을 일으키며 침몰했다.

어뢰들의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일직선으로 달리며 전장에서 이탈한 이즈마일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어뢰정이 전멸한 뒤에는 이즈마일을 격침시킬 수단 자체가 없었던 스웨덴 해군은 포템킨을 비롯해 러시아 해군 발트함대를 몰살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만족하고 도주했고, 이즈마일은 죽을힘을 다해 추격해 여러 척을 격침시켰지만, 이미 임무는 실패했다.

이즈마일 혼자서 함대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고, 목표에 입항할 수도 없었기에 이즈마일은 분루를 삼키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항로를 잡았다.

모든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남긴 보트니아 만 해전의 종막이었다.

생환에 성공한 함선은 이즈마일 단 한 척 뿐이었다. 그 대가로 스웨덴 해군은 사실상 전체 전력을 상실했지만 애초에 상대 자체가 안 되는 발트함대와의 전면전을 치룬 결과치고는 굉장히 양호했다.

이렇게 되자 프로이센 함대 역시 항구를 떠났다, 발트함대가 빈집을 칠까 봐 집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즈마일을 제외한 위협이 모조리 무력화되자 발트해 주둔 함대에게 완전한 자유가 허용된 것이었다.

스칸다나비아 전역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 무게추가 돌이킬 수 없이 기우는 순간이었다.

***

“멍청이들.”

불타오르는 전차들의 잔해를 짓밟은 장교가 중얼거렸다.

“괜히 기겁했잖나.”

대포 몇 방 맞으니 그 육상전함이고 나발이고 아주 박살이 나버렸다.

기존 형식의 전차보다도 내탄성이 떨어질 지경이었으니 뭐, 말 다한 거 아닌가.

“딱 봐도 위태위태해 보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뭐가 있을 줄 알았지.”

“그런 것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러게.”

러시아군의 전차들은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프랑스군의 기갑병기와 화력으로도, 숫적으로도, 성능으로도 상대가 안 된 것이었다.

“이대로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밀고 가는 것도 어렵지 않겠습니다.”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

“윗선에서는 좀 고민이 많은가 보더라, 진격을 할지 말지 놓고.”

“아니, 전쟁이 났으면 당연히 수도를 점령해야.....”

“그건 네 생각이고, 윗분들은 생각이 복잡하시겠지. 그리고 계속 이런 식이면.... 우리가 방어만 해도 이길 것 같은데?”

그 말을 단 한 사람도 부정하지 않았다.

***

베이페 강. 인도-이스라엘 국경지대.

시체로 그 넓은 강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스라엘군은 압도적인 교환비로 선전했지만, 장비들의 손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겼습니다.”

“.... 우리 군의 사실상 전체 전력과 교환해서 얻은 것도 승리라면, 그렇겠지.”

이스라엘군의 시몬 육군참모총장은 그렇게 말하며 쌍안경을 내렸다.

“개전 이전, 우리 군은 257대의 기갑차량을 보유하고 있었네, 지난 6일간 우리는 253대의 기갑차량을 완전 손실했네.”

남은 장비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참모총장은 눈을 감았다.

“프랑스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았어야 했나.”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며 자책하는 장군에게 부관이 위로하듯 말했다.

“언젠가는 한 번쯤 싸웠어야 할 상대입니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나폴레옹 4세 황제가 본인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권총을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함께 보냈습니다. 총장님 몫입니다. 한 쌍을 이루던 다른 권총은 듣자하니 스웨덴 해군 참모총장에게 황태자가 직접 수여했다는군요.”

“그딴 걸 보내느니 연료 한 통, 총알 한 발을 더 보내달라고 해. 그 권총도 필요한 사람 쓰게 무기고에 넣어버려.”

“.........”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방관으로 휘하 함선과 아끼던 부하들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훈장과 부상만 보낸 스웨덴 해군 참모총장이 보인 반응과 굉장히 비슷했다.

그는 차마 황태자 면전에서 내뱉지는 못하고, 수도방위사령군 무기고 어딘가에 던져버리는 걸로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었긴 했지만.

“프랑스가 우리를 독립시켜줬더라도, 우리가 피를 흘릴지 말지는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프랑스에게 이렇게 끌려다니는 게 식민지인으로써 징집되어 저기에서 시체가 된 인도인들과 다른 게 뭔가?

혈맹을 위해 피를 흘린다는 결과가 같다고 해도 과정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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