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스칸다나비아 전역(2)
내각에서 이미 차기 총리로 점쳐질 정도로 위세를 얻은 처칠 장관은 기세등등하게 연설했다.
“우리는 대영제국이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떠들 듯 쇠락한 것이 아님을 보여야 합니다. 노골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에 협력하는 국가들을 제압하고 무너트려, 대영제국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야 말 것입니다! 대영제국은 과거에도 위대했고, 지금도 위대하며, 앞으로도 위대할 것입니다!”
대영제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아니다.
대영제국은 이미 위대하니 굳이 그걸 강조할 필요도 없고, 그저 대영제국이 아직 위대하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천치들에게 현실을 때려박아주는 것뿐이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귀환한 처칠에게 보좌관이 다가왔다.
“현 상황은 어떻지?”
“최대 13개 사단 정도를 작전 개시일 이전에 편성할 수 있습니다. 8개 사단은 병력과 물자의 부족으로 타 사단들과 통폐합해야 할 듯 합니다.”
“씁, 어쩔 수 없지. 그 13개 사단만으로 개시하는 수밖에.”
노르웨이의 지도가 펼쳐졌다.
“제1목표, 나르빅, 트론헤임, 베르겐, 오슬로, 제2목표, 크리스티안산, 아렌델, 에게르순.”
나르빅, 트론헤임, 베르겐은 당연히 노르웨이 서부의 핵심 항구들이니 핵심적인 목표고, 오슬로는 수도, 크리스티안산, 아렌델, 에게르순은 프랑스에서 올 지원을 틀어막는 데 의의가 있다.
“개구리들과 제리 놈들이 그렇게 단시간 내에 스웨덴에 많은 병력을 옮겨놓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우리도 쉽지 않은 일이야. 블러핑이다.”
그리고 설령 스웨덴에 병력을 전개했어도 스칸다나비아의 지랄맞은 지형 때문에라도 프랑스와 프로이센군이 노르웨이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일은 험난하기 그지없을 터.
노르웨이의 주요 항구들이 다 틀어막히면 프랑스군이 작전하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많이 꽃필 터,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고, 몇 달쯤 더 지나서 겨울이 되어 바다가 얼고 보급로가 싹 끊어지면 스웨덴은 자급자족하는 초거대 포로수용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와 독일 입장에서 북해의 제해권은 나가리, 프로이센 해안지대 전역이 왕립해군과 러시아 해군의 사거리에 노출된다.
거기에 중요 전략물자 공급처를 날려먹었으니 적들의 보급에도 소소하게나마 타격을 주는 건 덤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연합을 했는데도 대영제국이 승리한다는 사실은, 대영제국이야말로 유럽의 패권국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처칠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모든 것은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
노르웨이, 오슬로.
곳곳에서 포성과 총성이 울렸다.
전함 두 척이 포격을 퍼붓고, 영국군을 태운 수송선 다수가 바글바글 몰려와 갈색 군복의 영국군을 토해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노르웨이 해군 소속의 소형함 몇 척이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모조리 가라앉았기에 현재 오슬로로 접근하는 적 함대를 막고 있는 것은 해안포뿐이었다.
그리고, 그 해안포들은 영국 해군의 맹포격을 뒤집어쓰고 파괴되었거나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대비해! 상륙정이 접근한다!”
기뢰밭과 수중 어뢰발사관, 해안포들이 접근하던 적함들에 피해를 강요하며 분전했지만, 끝은 다가왔다.
그리고 상륙함에서 원통형 물체들이 발사되었다. 거대한 바퀴 두 개에 로켓이 달린 물체들은 로켓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데굴데굴 굴러서 해안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뭐, 뭐야!”
“피해!”
몇몇 병사들은 굴하지 않고 기관총 사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건 효과가 있었다.
로켓이 떨어져나간 물체는 비틀거리면서 방향이 틀어져 엉뚱한 데로 굴러갔으니까.
로켓이 떨어져나간 물체는 비틀거리면서 방향이 틀어져 엉뚱한 데로 굴러갔으니까.
그 물체들이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키는 걸 본 노르웨이 병사들은 그것이 폭탄이라는 걸 깨달았고, 바퀴를 공격하면 로켓이 떨어져나가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상륙정들은 무식하게 많은 수의 물체를 가져와서 굴려댔고, 몇몇 폭탄은 성공적으로 노르웨이 군 방어선을 타격했다.
쏟아부은 수에 비해서는 그 비율이 형편없었고, 효용도 의문이었지만, 결국 영국군은 노르웨이군의 해안방어선을 분쇄했다.
퍼붓는 기관총 사격은 포격을 가해 침묵시키고, 병력의 수로 밀어붙여 가면서 해안의 방어를 분쇄한 영국군은 오슬로 시내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샤를은 한숨을 쉬었다.
“내 인생이 평온한 건 아무래도 10대까지였던 것 같다.”
출발 전에 작별인사를 하려던 차에 전혀 뜻밖의 일을 당했기에 뒷골이 댕기던 차인데, 상황까지 돌변했다.
너무 뜻밖의 사실은 두 가지나 알게 되어서 뒷골이 댕기던 차였는데, 원래는 조용히 지나갔어야 할 항해에 걸림돌까지 생겼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자, 부관으로 따라온 드골 대위가 물었다.
“그거 황태자비께서 주신 겁니까? 향수 냄새가 납니다만.”
“..........”
“아니신가 보군요, 아나스타샤 황녀님이십니까?”
“함장, 잠깐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대놓고 대답을 회피하자, 드골은 의아했다. 그라고 가십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황태자 주변에 손수건을 줄 만한 여성은 그 둘밖에 없을 텐데 아무래도 둘 다 아닌 걱 같았다.
‘누구지?’
물론 짧은 의아함이었다. 지금 그런 걸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현재 상황은?”
“놈들이 기어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급 1척, 킹 에드워드 7세급 1척, 두 척입니다.”
영국 해군이 보유한 전함은 11척, 7척이 지금 수리 중이니 남은 전함은 4척인데, 그 중 절반이 투입된 셈이다.
“나머지 2척은 오슬로에 있다는 정보입니다.”
“오슬로라.”
함대의 진행 방향에 있지는 않지만, 문제는.....
“저희 전대가 상대해야 합니다.”
전투를 회피할 수가 없다. 현재 이 함대는 프랑스 제국이 동원한 수송선 중 상당수를 동원해 프랑스 지상군을 실어나르는 중.
여기에서 프랑스 수송선단이 괴멸하면 스칸다나비아는 끝이다.
“킹 에드워드 7세급은 그렇다쳐도 엘리자베스급은 어렵지 않겠나.”
그러자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전대의 전력만으로는 자살 행위가 맞습니다.”
“전력 ‘만’으로는 말이지.”
“예.”
황태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
영국 O 함대, 북해. 덴마크 인근.
“방위 220에 적기 다수!”
“적기?”
견시의 외침에 제독은 쌍안경을 들었다.
정말 보였다. 바다 너머 하늘에서 뭔가가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귀찮게 됐군.”
어디서 한 방 재수없게 얻어맞고 기동력을 상실한 전함도 아니고, 전투 항해 중인 전함 두 척을 항공기로 상대한다?
오만이 과하다.
‘아니면 우리가 항공기들에게 묶여서 시간을 지체하기를 바라는지도.’
제독은 곧장 고함을 질렀다.
“대공 전투에 대비하라!”
고래 같은 함형의 전함 곳곳에서 곧장 갖가지 구경의 대공포가 그 머리를 들었다.
“함대, 사격 개시!”
두 척의 전함과 세 척의 순양함, 몇몇 구축함들이 일제히 대공포를 쏘아올렸다.
대구경 대공포들이 하늘을 검은 연기로 물들였지만, 적기가 너무 많았다.
몇몇 재수없는 기체가 추락하기도 했지만, 프랑스군의 쌍발 뇌격기들은 무리 없이 함대에 접근했다.
“회피 기동해!”
“함장! 그러면 함대 진형이 흐트러지네!”
“전함을 살리는 게 우선입니다! 어뢰에 피격당하면 임무 실패입니다!”
어뢰에 피격당하면 한두 발로는 침몰하지 않더라도 속도가 느려지고, 심지어 재수 없으면 중요 구획을 맞춰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임무는 깔끔히 실패다.
“..... 젠장, 전 함대 회피 기동 자유!”
그 명령을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마구잡이로 벌어진 회피 기동은 가뜩이나 얕은 대공포화의 탄막을 중구난방으로 흩뿌려지게 만들었다.
“적기 뇌격 고도로 접근!”
뇌격기들은 매우 위험한 행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
어뢰를 투발하기 위해 정해진 고도와 속도로 낮게 적함을 향해 달려들어야 하고, 회피기동도 할 수 없이 그 자세를 투발이 완료될 때까지 지켜야 한다.
당연히 공격당하는 함선들은 그 시점 때를 공격 타이밍으로 잡고 대공포화를 퍼붓고, 실제로 이로 인해 격추되는 뇌격기가 부지기수다.
다수의 뇌격기가 목표를 잡고 날아들었다. 목표는 전방에 3개의 포탑이 몰려 있는 고래 모양의 전함, 엘리자베스였다.
채널 제도의 마녀, 프랑스의 원수.
심지어 저 마녀가 격침시킨 로렌급 1번함 로렌은 다름아닌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을 무수하게 구조한 전함으로, 생존자들이 감사패까지 전달한 바 있었다.
그 패와 기념물 역시 로렌과 함께 차디찬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배은망덕한 마녀를 징벌하기 위해 족히 100여 대가 넘는 프랑스 항공대의 뇌격기들이 어뢰를 투하했다.
“적기, 어뢰 투탄!”
“이런 빌어먹을.”
“제독님! 해군성에서 긴급 통신입니다! 프랑스 해군 전함 5척이 현 방향으로 접근 중!”
“5척?”
“낭트급 2척, 톨롱급 2척, 로렌급 1척이 세 방향에서 접근 중이랍니다!”
대서양에서 프랑스 해군이 동원 가능한 전력의 거의 전부가 몰려온다는 의미였다.
“...... 당했다, 놈들은 우리를 노리는 거였어.”
물론, 낭트급이네 툴롱급이네 로렌급이네 하는 놈들이 덤벼 봐야 몇 척은 역으로 수장시켜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저 빌어먹을 항공공격을 두들겨맞고도 그럴 여력이 남아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뢰 접근 중!”
순간, 폭음과 함께 물기둥이 솟았다.
“맞았습니다!”
“피해 보고해!”
“하부에 침수가 약간 발생해서 속도가 느려졌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적기 어뢰 투탄!”
“빌어먹을, 한두 놈들이 아니잖아!”
정면과 측면, 두 개의 방향에서 어뢰가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대응할 수 있는 건 측면에서 날아드는 적기뿐이다.
어느 방향으로 피하든 최소 한두 발의 어뢰는 피격당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저거 뭐야!”
“회피! 회피! 빌어먹을! 좌현 전타!”
간신히 어뢰를 피한 전함의 진행방향에 놓여 있던 경순양함 HMS 큐라소가 죽을 힘을 다해 엔진을 가동해 사선에서 벗어났다.
하마터면 정면 충돌할 뻔했다. 충돌의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어뢰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코사크 피탄! 침몰 중입니다!”
구축함 한 척이 깔끔하게 동강나며 침몰하는 게 보였다.
“페르시아 피격!”
“빌어먹을 것들!”
어뢰를 다 쏟아낸 뇌격기들은 철수했지만, 더 많은 뇌격기들이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그들에게 원수라도 진 듯이 퍼붓는 걸 본 제독은 쓴웃음을 지었다.
‘원수를 진 게 맞긴 하군.’
순간, 폭음이 울렸다.
“맞았습니다! 후미에 어뢰 2발 피격!”
“현 해역을 전속력으로 이탈한다! 이대로는 싸울 수도 없어!”
영국 항공기들의 항속거리는 이곳에 닿지 않는다.
그 의미는 하나였다.
그들을 도와줄 능력이 있는 함선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오슬로 상륙부대와 통신 연결되었습니다! 지금 지원이.....”
“이미 늦었네.”
제독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원이 오기도 전에 우린 전멸당할 걸세.”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매연이 솟아오르고 있었다.